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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아

어느 팔순부부의 애틋한 별거

어느 팔순부부의 애틋한 별거

 

            부부 인륜지시 만복지원 (夫婦 人倫之始 萬福之原)

오늘 상경하신 정읍누나를 모시고 아내와 내가 신내동누나 댁을 찾아든 건 오후 3시 반쯤 이였다. 누나 댁 방문은 아내와는 3년 전에, 정읍누나와의 동행은 7년 전이라 했다. 딴 장소에서 뵙긴 했다지만 누나 댁 방문치곤 너무 오래 걸렸다싶어 죄송하기 그지없었다.

여든세 살인 누나는 무릎관절수술을 두 번이나 받아 거동이 불편하신데다 요즘은 속도 안 좋으셔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이란다. 그래서 나는 며칠 전 정읍누나께 문안가자고 제안했던 바다.

아까 내가 정읍누나를 뫼시고 방문하겠다고 전화할 때 정말이냐?’고 울먹이시던 누나는 바싹 연읜 채 내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 대셨다. 하나 밖에 없는 남동생이 혹여 땅에 떨어질까 고심하며 애지중지했었다는 - 그런 내가 매정하여 얼굴 잊을만하게 내왕 안했으니 쥐구멍에라도 들어갈 수 있음 들어가야 할 나였다.

어머니뻘의 누나라 어려웠고, 당신의 생활이 고단하여 찾아가고 싶어도 도움 주지 못하면서 찾아가 괜한 불편만 끼쳐드리지 싶어 발길 뜸했던 게 알량한 이유고 치졸한 변명일 테다. 후회스러웠다.

누나 말씀대로 이러다 동생 못보고 죽을라?’라고 요새 아픈 맘에 더 야속했다며 눈시울 붉히셨다. 마음 아프게만 한 나는 이웃사촌보다 못한 동생 이였던 셈이다.

00아파트단지 1005/803. 14평짜리에서 누나는 혼자 사신다. 3년 전에 왔을 때는 비좁아 답답했었는데 오늘은 왠걸 그렇질 안했다. 아니 노인부부 살기에 딱 일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정읍누나와 아내도 모두가 공감하는 바였다.

누나는 지금 자형님과 별거 아닌 별거를 6년째 하고 계신다. 자형님께서 약간의 치매기기 있어 근처 노인요양병원에서 입원가료중인데 건강상태는 더 호전 된 편이란다. 그런 자형님을 굳이 입원시켜야 하는 소이는 몸 불편하신 누나께서 수발할 수가 없고, 더는 치매가 발작하면 물건이 손에 잡히는 데로 폭력도구가 돼서란다.

 

 

치매기도 사람마다 다르다고 한다. 약골노인(자형님 연세90세다)6년을 병원신세 질 거라곤 언감생심이었단다. 그래 가난한 형편에 월 입원비 80~100여만 원은 버거운 지출이지만 딸 셋이 감당하며 버티고 있었다.

하여 저렴한 요양원으로 옮기고 싶어도 딸들이 반대하고 있다는 거였다. 아들 아닌 딸이길 잘 했다고 이구동성이다. 딸만 셋이어서 감내해야했던 누나의 설음을 나도 얼핏 알고 있다.

아들 없단 핑계로 자형님은 딴 여자를 넘보고, 보다못한 누나는 아예 아들 낳아오라고 오입을 권유하기까지 했었단다. 지질이도 가난하고 능력 없는 남편에게 당시엔 그게 부도(婦道)라 당연시했다는 거다.

평생을 가난고생과 아들 못 둔 설음에 단장의 세월을 살아야했던 누나지만 자형님을 원망 내지 힐난하지 않았단다. 누나는 오히려 자형님께 측은지심의 애틋한 감정이 들어 한숨만 쉬었다고, 그런 감정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집에 오고 싶어도 못 오고, 남의 눈치 보며 환자들과 살아야하는 자형님이 맘에 걸린다는 게다. 병원에서 온갖 수발 다 들어 편안할 자형님을 짠하다는 누나의 청승에 뭐가 그리 좋은데요?”라고 정읍누나와 아내가 묻자 누난 자형님을 사랑하다 못해 짝사랑까지 했다고 믿기지 않을 고백을 하는 게 아닌가.

가난은 제켜두고 젊었을 때 아들 낳겠다고 바람피워도, 신혼 초에 군대 가서 매독 걸려 휴가 나와 그 몹쓸 병을 자신에게 옮겨 일 년 내내 고생시켰어도, 미운마음 보다는 측은지심이 항상 앞섰다고 고백하셨다.

약골에 키 작고 가난한 형부가 뭐가 그리 좋던가?”라고 정읍누나가 시큰둥하니 되묻자 누난 그래서 더 애틋했던가 봐야라고 응수한 누나였다. 진정한 사랑은 측은지심일지 모른다. 나의 손길이 가야만 뭔가가 이뤄질 수 있을 거란 애틋한 애정이 사랑일 테다. 아카패사랑 말이다.

 

자형님은 뭐 한 가지라도 누나보다 낫다고 할 건더기도 없었다. 누나가 자형님과 결혼해야 했던 건 6.25동란이란 수난 탓 이였고, 뼈대 있는 양반집 사내란 점이였단다. 남한 빨치산아지트였단 불갑산 자락의 우리 마을은 국군과 빨치산이란 두 진영의 대립으로 밤낮으로 수난을 당한 마을 이였다.

낮엔 경찰, 밤엔 빨치산이 날뛰는 세상에서 처녀들은 수난의 최우선순위였단다. 그 수난을 모면하려고 열여덟 살의 누나는 은신하고 밖엘 나오면 병신흉내를 내야했단다. 그때 이웃마을 지인의 거간으로 자형님과의 혼담이 순식간에 결혼에 이르렀단다.

선친께서는 신랑 선을 보러 신랑집을 방문하였는데 동네 부잣집에 초치해 감쪽같이 속였다는 게다. 옛날엔 어른끼리 혼사를 결정하던 시대라 그런 속임수결혼이 매파의 농간으로 가능했다는 게다. 암튼 빨치산에 끌려가는 걸 피하려 서둔 결혼이 별 볼일 없는 가난뱅이 청년을 반려로 맺게 됨인데 문제는 그 지긋지긋한 가난 이였단다.

더구나 아들까지 없는 고뇌를 감내해야 했던 누나의 지난한 얘기는 밤새워 이어졌다. 세 살 연상이 아닌 일곱 살 연상인데다 6년간의 군복무로 신혼 맛도 채 몰랐지만 금실은 좋았단다.

두 분은 깍듯한 존댓말로 60여년을 살아오면서 여태 싸움 한 번 한 적이 없었노라고, 어쩜 당신이 자형님을 더 사랑했던가 싶다고, 당신 홀로 살다보니 재미도 없고, 먹는 것도 부실하여 죽지 못해 사는 게란다.

애들이 용돈도 주며 매일 전활 하고 간간히 찾아오긴 하지만, 허울뿐일망정 부부만 못하단다. 몸 불편해도 자형님 수발하며 같이 살고 싶어 퇴원시켰으나 치매기 발작하면 폭력을 휘둘러 그마져 포기했다는 거였다.

 

 

누나는 아파트단지 내 노인정에서 점심을 때우고 노래방과 화투로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때 귀가하신다. 일제하초등학생시절을 보냈기에 일본어도 곧장 하시고 일어로 창가를 뽑으면 꾀꼬린 저리가라다. 미인에다 영특하고 활달하신 성품에 붙임성도 좋아 늙어도 강여사로 통한다. 귀가하면 화분 가꾸기와 티브이시청이 일과란다.

누나께서 지금 태어나셨으면 한 경지에 올랐을 거라고 확신한다. 속절없는 말로 아까운 여성이다. 가난한 시집생활에서 어쩌다 색다른 반찬이 생기면 부엌에서 입맛보고 싶어도 (친정)아버지 생각나서 꾹 참아야했단다. 아버지한테 누가 될까싶어서였다.

렇게 위엄(威嚴)느끼는 아버지 생각에 이혼자도 생각 못했다는, 시집귀신으로 일부종사한다는 신념 이였기에 못난(?)남편이 더 애틋할 수밖에 없었단다. 누나를 보며 우리들의 경박한 부부애정을 생각해봤다. 나의 이익과 안락만을 위해선 이혼뿐이 아닌 어떤 인간관계도 파기해버리기 일쑤다.

 

두어 평짜리 방에 우리 넷이 나란히 누워 누나 말씀대로 필설로 밤새워도 모자랄 얘기들을 듣다가 날이 새자 요양병원으로 자형님을 문병 갔다. 자형님은 단박에 나를 알아보셨지만 정읍누나와 아내는 못 알아 보셨다.

듬성듬성한 백발에 피골 접한 하얀 얼굴의 자형님은 커다란 눈동자로 뚫어지게 응시하며 어둔한 말씀을 하시는데 영락없는 어린애였다더욱이 갖고 간 닭죽을 떠 넣어주는 누나에게 먹기 싫다고 고갤 절래절래 흔드는 자형님께 먹어야 힘나서 또 볼 수가 있다고 달래는 실랑일 보면서 부부란 무엇인가?를 여미게 했다.

그리고 휠체어에 의지한 채 보조간병인들의 수발로 살아가는 많은 노인들을 보면서 내일의 나의 모습일거란 생각에 숙연해지고 허탈해지는 거였다스스로 거동 못하는 삶은, 노년의 생은 죽음이 더 행복할 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 몸 아파 불편한 삶에 친구도, 자식도, 많은 돈도, 으리으리한 집도 필요 없다권세도 축재도 한갓 부질없는 욕망일 뿐이다. 아니 나의 젊음을 피곤하게 갉아먹은 허울이란 걸, 이토록 탈진하게 한 빌어먹을 욕심이란 것에 허탈해할 것이다.

휠체어에 앉아 죽음을 기다리면서 그동안 발버둥 치며 악착같이 모았던 유형무형의 것들이 얼마나 허망한 거란 걸 통감할 것 같았다. 병원에 의탁할 약간의 돈과 부부라는 짝꿍만이 절대 필요한 것 일뿐~!

다만 하나, 사람들로부터 욕 먹지 않은 삶이였음 성공한 일생일 것이다.  아파트 앞 건널목에서 누나와 헤어졌다. 지팡이 짚은 누나는 그만 들어가시라고 손짓하는 우리에게 눈길을 못 땐 채 간혹 힘없는 손을 들어 보이셨다.

아픈 몸에 형제간의 만남이란 잠시의 기쁨은 보다 더 감당키 싫은 허전함을 안겨줄지도 모른다. 길 건너 누나의 모습이 한 없이 쓸쓸하고 그리고 아주 먼 나라의 노파 같기도 했다누나 말씀따나 인제 우리 언제 또 만날라나?”

2015. 0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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