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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일왕가조 신(神)의 본향 우두산

일왕가조 신(神)의 본향 의상봉 & 우두산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평생에 가보고 싶은 산이 몇 개는 있으리라. 거창우두산과 의상봉도 내 딴엔 버킷 리스트에 웅크린 산이다.   제오후 산악카페검색을 하다 서동요의 넷째일욜 산행지가 우두봉인 걸 알고 미친 척 총무님께 전활 넣었다. 결원자리가 있음 끼고 싶어서였는데 쾌히 응낙을 해 행운을 잡은 셈이다.

 

 

 

우두산과 의상봉 연봉들을 인터넷에서 접했을 때 멋지기도 했지만얼마나 산세가 기막혔으면 일본왕가의 신인 가조신(카무스사노오노 미코토)의 본향이라 할까 싶어 무지 궁금했었다.

찌뿌린 겨울 아침을 깨워서 세 시간쯤 촐삭대며 고견사입구 주차장에 내리니 10시다.

 

-밟아야 할 상봉, 의상봉 연봉능선-

 

오늘 비가 올 거라는 예보는 잿빛하늘이 잔뜩 꾸무럭댈 뿐이어 등산하긴 오히려 좋았다. 마장재를 향해 토종소나무들이 빼곡하게 골짝을 점

령한 완만한 오름길을 밟는다. 흑갈색낙엽들은 부엽토 더께로 생을 마감하는데 박재된 이파리 몇 잎은 나지에 붙어 한파에 나붓대고 있다. 질기고 모진 놈은 세상사 어디에도 존재하고 예기치 못한 불행에 목숨이 간당간당하기도 한다.

 

 

 

적설에 몸 가누지 못해 부러져버린 소나무는 희멀건 속살을 찢겨 내비친 채여서 어느 여산님은 연신 짠하다고 안타까워한다. 그렇게 죽어간 나무들의 시목도 시간의 때를 타면 우리보단 아름답다. 한 시간이 훌렁 흘러 마장재를 밟고 우두산을 향한다. 하늘은 잔뜩 웅크린 채다.

 

 

 

하늘은 금세 비라도 쏟을랑가 싶은데 용케도 참으며 앙칼진 바람떼를 몰아친다. 앙상한 나지들이 사시나무 떠듯하며 비명을 질렀다.        마지막 담금질일까?

우수도 지났으니 이번만 넘기면 한파는 훨씬 부드러워지고, 햇살은 겨드랑이에 내려앉아 살찢어 뽀얀 싹을 틔워도 될 거란 걸 놈들은 비명 속에서 꿈 키운다. 까닥하면 바위동네가 길을 막곤 한다. 우두봉과 의상봉 연봉들이 전초기지로 만든 바위 숲일지 모른다.

 

 

 

 

바위마실 몇 개를 바튼 숨 쉬며 빠져나와 그 바위 숲 양지배기에 숨어들어 점심자릴 폈다. 정오였다. 우두산정이 뒤편에 뭉퉁 솟았고, 지금 막 지나온 화강암바위마실 능선 뒤로 비계산능이 해일처럼 파도를 치고 있다. 자릴 털자 빗발이 튕긴다. 얼른 판초우의를 꺼내 입었다.

 

 

 

펑퍼짐한 산릉에선 산님들이 떼거리로 모여 점심을 즐기는데 바람과 빗발이 끼어들어 심통을 부린가 보다. 그게 싫은 일단의 몰인정한(?) 산님들은 비닐포장을 치고 겨울끝자락을 외면하려 숨어들었다

이미 빗발은 거뒀는데~. 우두산(牛頭山.1,046m)정상에 섰다.

시계가 뿌옇다.

 

 

-우두봉정상 본 비계봉능선-

 

동쪽에 우뚝 솟은 의상봉뿐 남쪽의 비계산과 서북쪽으로 수덕산, 덕유

`남덕유능선, 기백`금원산능선, 황석`거망산 능선은 실루엣이라.    그 실루엣이 겹겹 파도를 일군 연한 수묵화로 사위를 파노라마 친다. 의상봉을 향한다. 급살 맞은 내리막이다. 스틱을 접어야하나?로 갈등한다.

 

-의상봉에서 장군봉을 잇는 연봉-

 

그 보다 더 조바심 나는 건 삼각원통처럼 우뚝 선 의상봉을 어찌오를까 하는 심난함이었다. 걸쳐놓은 사다리를 멀지 감치서 보이긴 하지만 그놈의 딸가닥 계단을 오르는 고역도 만만찮을 것이다.

밧줄과 사다리에 의지하고 때론 기고 누워서 바위숲을 빠져나오며 순간순간 마주치는 비경과 스릴은 통과의례의 보상일 것이란 생각을 하게된다.

 

 

 

그 통쾌함에 미처 산을, 험한 산을 찾는 거다. 지그재그 가파른 계단을

올라 의상봉(義湘峰 1,046m)에 섰다. 의상대사가 선정에 들곤 했다는 정상은 꽤 넓은 바위마루였고 예의 소나무와 연애질이 한창 이였다. 뿌연 농무에 우두봉만 선연할 뿐인데 어디서 조감해야 소머리 같은지 도통 의아하고, 장군봉,상봉,처녀봉,비계산,박유산정이 붓질한 장대한 묵화로 남았다.

 

-그레이하운드의 본향도 이 바윌까?-

 

허나 굽이치는 산정들과 능선과 바위 숲들은 가조神(카무스사노오노 미코토)이 처음 하강할 만한 빼어난 산자락이고, 그곳이 소시머리라니

소모리산 즉 우두산을 말함은 분명하다. 그니까 가조신이 일본으로 가기 전에 살았던 고천원은 신라국(경주`가야)의 우두산이고, 지금 내가 서있는 이곳이 일본신의 고천원[本鄕]인 셈이다. 내가 우두산을 보고 싶었던 소이였다.

 

 

 

세종실록지리지(거창편)"견암사(見庵寺, 현 고견사)는 가조현(祚縣) 우두산(牛頭山)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하여 거창군은 일본신들의 파라다이스인 이곳을 가조의 고천원으로 태마관광지화 할 예정이란다. 거창군은 이 점을 스토리텔링으로 우두산을 일본인들에게 대대적으로 홍보하면 좋을 듯싶다.

 

-의상봉을 오르는 마지막 계단-

 

고견사를 향한다. 벼랑길하산은 오금을 절이게 한다. 게다가 바위너덜은 신경도 날 새웠다. 남쪽골짝 하산 길엔 푸른 산죽이 스킨십하며 솟은 땀을 거둬들이자 고견사가 천년을 동거한 은행나무를 앞세워 맞는다. 최치원이 심었다는 은행나무를 지킴이 하며 동거하는 석불은 세월에 고운 자태 묻고 윤곽시늉만 남았다.

고견사는 신라문무왕7년 원료스님이 세운 건암사가 뿌리란데 태조 이성계가 고려 왕씨들의 명복을 빌기위해 전답 1백50결을 하사 매년 2월과 10월에 수륙제를 지낸 원찰이란다.  

 

-최치원이 심은 천년살이 은행나무-

 

또 하나 고견사동종은 1630년 인조 때 설봉(雪峰)스님이 제작하면서 미지산설봉사문천보술(彌智山雪峯沙門天寶述)”, “도대장미지산설봉사문천보(啚大匠彌智山雪峯沙門天宝)”라는 찬문을 천보가 짓게 했다. 천보는 경기도 용문사동종에도 손길을 폈단다. 용문사의 은행나무와 고견사의 은행나무가 천년을 살아오는 동년배의 노거수이기에 그 기연이 현존하고 있는지라 참으로 심오하단 생각이 들었다.

두 사찰의 동종과 은행나무의 인연~!

 

 

-문화재 석불-

 

울울창창한 소나무 숲을 헤친다. 삐둘빼둘 튀어나 울퉁불퉁한 바위너덜 길을 걷는다. 이어졌다 끊겼다, 를 반복하는 계곡물소리가 아리아처럼 은근히 심저를 울린다.

의상대사가 선정할 때 매일 2인분의 쌀이 나왔다는 쌀굴을 찾느라 뒤처진 탓에, 아무도 없는 골짝이 깊고 아늑하여 뭔가를 독차지 하는 융숭감에 편안하다.

한 시간을 그 정취에 빠져들었는데 80m의 고견사폭포가 맘과 눈을 붙

잡는다.

 

-고건사폭포-

 

갈수기라 찔금찔금 오줌 절이는 것 같은 놈일 망정 돌아설 수가 없게 한다. 끗발날릴 때의 웅장할 위용을 못 봐 섭섭했지만 마침 어느 산님이 폭포에 나를 가두고 사진 한 컷을 담아줘 기분 좋았다.

어디 한 군데 흠 잡을 만한 아쉬움이 없는 우두산과 의상봉자락!

거창군은 이곳 고견사일대를 향노화 힐링랜드로 만든단다.

 

 

 

기대가 된다. 노화를 예방하는 치유의 숲으로 안성마춤일 것 같단 생각을 해봤다.

서동요님들이 오늘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했는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귀로버스차창엔 비바람이 폭죽처럼 퍼져 흩어졌다.

가조신은 우리가 하산하길 기다려 비를 뿌리나 싶기도 하고~?

 

2016. 02. 28

 

 

 

 

 

-마장재-

-다정한 커플은 모델에 기꺼이 임하곤 정상에서 귤까지 주며 인살 나눴다. 결혼 전 낭군은 계단이 없어 네 발로 의상봉을 오르곤 했단 산마니아였다. 판초 걸친 필자의 정상 사진도 이 커플의 배려였다-

-되돌아 본 우두봉, 어디서 어찌 봐야 소머린지? -

-고견사 경내의 죽은자와 산자-

-석불좌상 앞서 본 소견사-

-막 주조한 것 같이 선명한 동종-

-천년을 버텨온 은행나무-

-승천문-

-쌀전길목을 지키는 용송-

  -세 분의 선남선녀들이 어설픈 내 사진솜씨를 눈 감아줄런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