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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위왕보다 더 불쌍한 팔영산

위왕보다 더 불쌍한 팔영산

 

-천공의 팔영산묵화-

 

어제 진종일 내린 봄비 탓일까? 짙은 안무는 새벽에서 열시를 지나쳐도 아침을 열지 않고 고흥반도 끄트머리 팔영산자락을 담대한 묵화로 앞을 막아섰다. 뿌연 천공(天空) 속에 거뭇한 선으로 그은 여덟 봉우리의 붓놀림은 신의 화풍이 아니곤 장난칠 수 가 없을 여덟 폭의 병풍이라!

 

 

 

그 몽유 같은 묵화에 이끌려선지 능가사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산님들은 병풍 속으로 빨려든다. 실개천물소리가 일상을 털어내고 점점 가팔라지는 산길은 바튼 숨을 몰아쉬어 배창세기까지 관정을 해댄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인가? 봄맞이하러 남녘 끝에 온 셈인데 생강나무가 노란수술뭉치를 꺼내 흔들 뿐이다.

 

 

-생강나무의 봄-

 

촉촉이 봄비도 내리고 햇살도 따뜻한 3월 하순에 접어들었는데 페르세포네는 아직 명계(冥界)에 있단 말인가? 아님 아직껏 하데스의 눈치를 살핀단 말인가! 그 많은 산님들은 모두다 자켓을 벗었는데도~.

한 시간 남짓을 땀 훔치며 몸살 나게 애태워 오르니 유영봉(儒影峰)이 얼굴을 내밀었다. 천공에 섰다.

 

 

 

산자락만 어렴풋이 들쳐 낸 안개는 다도해를 해무로 가두고 안무속의 산책이나 즐기라고 하는 성 싶다. 봄 냄새도 실컷 맞고 다도해에서 알랑대다오는 봄바람에 찌뿌댓대한 심신도 살랑살랑 녹여보고 싶었는데 푸른바다를 해무로 감싸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늘은 L이 동행한다는 점이다. L이 있어 홀로산행의 부담을 덜 수가 있을 테다.

 

 

 

성주봉(聖主峰)을 향한다. 여덟 개의 연봉들은 죄다 바위무덤들이다. 옛날 뭍이 바다를 파먹고들 때 달려온 바위들이 나로도를 만들다가 어떤 연고로 올`스톱한 채 오늘에 이른 바위산인가 싶은 것이다. 그 바위무덤 여덟 개가 세월의 때깔 옷을 입어 미치게 멋져 부려 위왕(조비)의 꿈에까지 현몽하였던가 보다.

 

 

 

위왕이 꿈에만 보았던 팔영산을 나는 8년 전에 등정하고 그 열락에 조비를 불쌍하다고 대비해 봤었다. 위태위태한 수직의 바위산 여덟 봉우리를 애간장 태우며 네 손발로 기다시피하며 등정한 후의 기쁨을,

환희를 곱씹다가 꿈에서만 보았을 위왕이 불쌍하다 생각했던 것이다.

 

 

 

근데 오늘은 위왕이 불쌍한 게 아니라 팔영산이 불쌍해보였다. 팔영산은 몸통 전체에 철사다리를 걸치고 그 많은 등산객들을 받느라 신음하고 있어서였다. 기괴하리만치 굴곡진 바위를 쌓아놓은 성, 주상절리 같은 바위 숲에 철사다리라니? 너무나 흉물스럽지 않던가?

자연은 자연스러울수록 더 아름답다. 사람의 손길이 타면 탈수록 아름다움과 신비의 경외감은 반감된다.

 

 

 

자연의 신비경을 꼭 샅샅이 파헤쳐가며 확인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높고 험한 산은 정상을 오를 수 있는 자만이 오르게 하고 우리들은 먼발치에서 완상하며 그 신비경을 꿈에 그리듯 상상의 나래짓을 하게 해야 한다. 미지란 것은 늘 꿈과 의욕 속에 있기에 우리들의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개 한다.

 

 

 

자연은 우리들의 것이기에 앞서 자손만만대의 유산이다. 어떤 놈한테 국립공원자연에 구조물을 설치할 권한이 있단 말인가? 고흥군수는 넋 빠진 작자다. 내 견문이 일천해 직접 가보진 않았지만 세계유수의 국립공원에 이토록 처참하게 구조물을 설치했단 기사나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유수의 국립공원에선 스틱 짚는 소리도 주의를 요한다. 노자는 산(자연)에 들 땐 입도 뻥긋하지 말라고 했다. 오직 새와 짐승만이 소릴 낼 수가 있단다. 그들이 산의 주인이니까! 입 벌리고 싶거들랑 그곳의 새나 짐승의 허락을 받은 후에 소근대라. 근데 산을 잘 알지도 못한 꼬락서니가 주인인 척하는 불한당이 우리나라엔 가끔 있다.

 

 

 

바위 위 소나무그늘에서 점심을 들고 있는데 까마귀가 까악 까악 울어대며 배회하다 앞 바위에 앉았다. 날씨가 풀려 살만해지니 되먹질 못한 인간들이 침입해 훼방 부린다고 경고하는 성 싶었다.

어쨌거나 그 철사다릴 타고 수월하게 생황봉(笙簧사자봉(獅子峰오로봉(五老峰두류봉(頭流峰)을 오르고 내렸다.

 

-다도해는 해무속에-

 

두류봉을 오를땐 통천대문에서 멀리 해무 속에서 가물가물한 쥐도가 선사하는 해풍에 한 숨 돌리고, 다시 수직바윌 내려서서 칠성봉(七星峰)을 오를 땐 통천문을 통과한다. 통천문에 들어서면 파란하늘은 네모 속으로 오그라든다.

그 하늘에서 맞는 바람이 그리 시원할 수가 없다.

 

-하늘길 대문-

 

워낙 험난한 일곱봉우릴 등정하며 헐떡거리긴 했지만, 8년 전의 죽을 고생에 비해서 왠지 신바람나지 안했던 건 결코 푸른 다도해를 볼 수가 없어서만은 아니었다. 고생을 진탕 한 후에 등정하는 정상의 호연지기는 두고두고 감칠 맛나게 한다. 삶의 값진 의욕으로, 추억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통천문-

 

집 나가면 개고생이지만 한사코 여행을 떠나는 까닭은 그 고생이 수반하는 환희가 훨 맛있어서다.

 

건곤이 맞닿은 곳 하늘 문이 열렸으니

하늘길 어디메뇨 통천문이 여기로다

두류봉 오르면 천국으로 통하노라

 

 

-아쉬운 다도해-

 

옛날 어느 글쟁이가 죽을 고생하며 통천문을 통과하여 두류봉에 오른 후에 읊은 시 한 구절이 전설처럼 회자된다. 하늘길에 이르는 길목이 어중이떠중이들로 난장판이 되선 팔영산의 경외감은 사라지게 됨이다.

 

-점심자리서 본 관목구릉-

 

8-적취봉(積翠峰)를 밟곤 하산한다. 돌너덜길을 내려서는 흥취도 옛맛을 못 느꼈다. 그땐 소사나무떼거리가 옹두라지를 뽐내기라도 하듯 앙팡지게 널려있었는데 안 보였다. 대신 편백나무숲이 그 미흡한 갈증을 덜어줬다. 편백숲의 신선한 공기는 넘 시원했다.

골짝의 신선한 공기가 편백숲의 피톤치드를 품어 형언할 수 없는 청량감을 내뿜는 거였다.

 

-편백숲-

 

시간이 허락함 한 두 시간 농땡이치고 팠던, ! 저 밑 골짝물소리에 귀기울리다 눈 감고 싶은 힐링 처였다. 능가사가 멀지않을 하산길인데도 어쩌다 양지꽃 외엔 야생화가 안 보였다.

페르세포네는 언제 지상으로 나와서 데메테스와 씨를 뿌리는 봄을 만개시킬지 궁금하다. 능가사를 향하는 골짝물소리는 한껏 옥타브를 높여 봄을 여는데 말이다. 부도밭을 훑는다.

 

-능가사와 팔영산-

 

신라 눌지왕 3(419)에 아도화상이 창건했다는 보현사는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고, 인조 22(1644) 정현대사가 중창하여 능가사라 개칭한 경내에 들었다.

8년 전엔 갓 지은 대웅전이 넓은 경내에서 노거수 벚꽃을 벗 삼고 있는 스산함을 느꼈었는데, 그간 몇 채의 요사채가 더 들어서 사찰의 풍정을 제법 폼나게 하고 있었다.

 

-능가사지킴이 쌍벚 & 종루-

 

그 능가사를 중창하던 인부들이 모여 터울 삼았던 곳이 사찰입구 평촌마을이다. 동네앞길엔 그 후예들이 팔영산특산품을 좌판에 올려놓고 또 다른 한 시절을 낚고 있었다.

더는 동네고샅은 가지런히 돌담을 쌓고 집들은 정갈하게 다듬어 <담길>이란 산책길을 만들었다.

 

 

 

L이 그 정담길을 걸어보잔다. 동네를 휘감아 흐르는 개울에 버들강아지가 통통 물 올라있다. 보송보송한 솜털의 젖무덤이 빠개터질 땐 페르세포네가 얼굴 내밀 거다.

옛 팔영산이 그립다. 불쌍하다고 여겼던 위왕 이였는데, 8년이 흐른 시방은 팔영산이 불쌍해졌다내 죽기 전에 불쌍한 건 나였음 좋겠다.

 

 

-능가사입구의 좌판-

 

팔영산아, 그 무겁고 흉칙스런 철골재들을 내게 떠넘겨 나를 불쌍하게 하라. 나는 어차피 죽을 몸뚱이가 아니더냐.

대동인들인 나를 팔영산에 대려다줬다. 그들의 따뜻한 손길이 맘에 닿았다.

 

2016. 03. 19

 

 

 

 

 

 

 

 

 

 

 

 

 

 

 

 

 

 

 

 

 

-퉁퉁물오른 버들-

-동백의 절박한 사연은?-

 

 

 

-양지꽃-,

 

 

 

 

 

-통천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