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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그 여적

위대한 생태주의 성자-더글러스 톰킨스

 

 

 더글러스 톰킨스 - 위대한 생태주의자, '노스페이스'창업자

 

 

 

법은 바뀌고 인간은 죽지만 땅은 남는다(Laws change; People die; the Land remains)’는 진실을 우리에게 각성시켜준 위대한 자연주의자였으며 비전가였던 더글러스 레인스포드 톰킨스(Douglas Rainsford Tomkins)가 지난 128일 그토록 열애했던 자연에 귀의했다.

그는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접경지대인 푸말린파크(715,000에이커), 아르헨티나의 몬테레온(Monte Leon)파크와 에스테로스 델 이베라(Esteros del Ibera). 칠레 파타고니아의 코르코바도(Corcovado)파크 등 약 27억평을 약 27,500여만 달러(3,250억 원)에 사들여 세계최대의 야생내지 습지공원으로 만들어서 두 나라에 기증 했다.

 

 

서울이나 싱가포르의 15배에 해당하는 광활한 땅인 것이다. 그보다 우리를 더 매료시킨 건 그가 세계적인 아웃도어브랜드인 노스페이스창업주이고, 엄청난 유산을 슬하의 두 딸과 두 손자에겐 일절 상속하지 않겠다는 유언(인터뷰)을 남겨서다.

특히 변변한 졸업장도, 기술도, 연줄도 없었던 톰킨스가 남다른 신념과 의지로 인류를 위한 비전을 일생동안 이뤄냈다는 점은 오늘날 헬 조선을 외치는 젊은이들에게, 부의 독식과 계승을 위해 혈안인 재벌들에게 신선한 각성제가 됐음 싶어서다.

 17살에 학교와 집을 뛰쳐나와 유럽여행 후 20살에 귀국, 시에라네바다 산림감시원으로 지내다 히치하이킹으로 만난 수지 러셀과 결혼하여 목구멍에 풀칠하기 위해 연 가게이름이 노스페이스였다.

등산과 암벽타길 좋아했던 그가 유럽에서 익힌 아웃도어용품을 갖다 판 게 오늘날 세계적인 브랜드가 됨이다

싫은 세상을 바꾸려고 도전하던 이들과 세상이 싫어 아예 등 돌리던 젊은이들이 팽배했던 60년대 미국사회에서 그는 후자였으며 사업도 번창했다.

 68, 회사를 동업자들에게 맡긴 채 톰킨스는 친구들과 낡은 포드 밴을 타고 남미를 종단해 아르헨티나와 칠레 국경의 파타고니아의 피츠로이 등정에 나섰다. 그가 유명세를 탄 건, 그 과정을 담은 다큐영화‘Mountain of Storms’가 국제어드벤처필름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산악컬트무비의 전형이 되면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게리 슈나이더 같은 생태`환경주의들의 다양한 에세이와 시에 매료 돼 읽었고, 노르웨이 철학자 아르네 네스(Arne Naess, 1912~2009)와의 만남, 조지 세션스(George sessions)와 빌 디벌(Bill deval‍l)의 공저 ‘Deep Ecolocy’의 독서 체험이 자연에 대한 경외로 각성한다.

인간은 생존에 꼭 필요함만큼 외에 자연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철학, 지구가 감당키엔 인구가 너무 많다는 각성, 자연을 살리자면 경제 패러다임을 근본부터 바꿔야 한다는 생각, 한 마디로 자본주의의 미래는 없다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하여 톰킨스은 댐은 말할 것도 없고, 가라앉은 사료와 항생제로 물을 죽이는 양식과 과도한 방목으로 파타고니아초원을 황폐화하는 목장을 허용할 수 없었다.

 

 

46살 때 생태주의 가치관을 공유한 크리스와 재혼 뒤 도시`문명과의 결별, 사업`자본주의와의 결별한 그는 남미로 향했다.

과도한 목축으로 계곡(Cochrane)이 황폐해졌다. 파타고니아의 25~30%는 이미 사막화했다고 단언했다

우리의 재벌들이 골프장을 만들고,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데 정부가 맞장구 치는 행태가 자연의 사막화를 부채질 함인 것을 깨우처야 함이다.

그는 또 두 딸과 손자들에게 단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겠노라고, 노년에 쓸 작은 농장과 집만 남기고 전 재산을 칠레와 아르헨티나 환경 보존을 위해 기부할 생각이라고도 했다.

돈 될 만한 땅은 모조리 사서 사유화하고, 부당하게 취득한 몇 천 억대의 주식을 꼬맹이에게 편법증여 하며, 근로자들의 무단해고와 임금착취를 일삼는 공룡재벌들이 톰킨스의 그림자라도 밟았음 싶다.

 

 

난 싱가포르여행 중에 톰킨스의 자연귀의소식을 접했다.

베테랑 카야커이기도 했던 그는 지난 8일 지인들과 함께 한 파타고니아 헤네랄카레라호 투어 도중 돌풍에 보트가 전복되면서 저체온증으로 숨졌단다.

별 볼일 없는 섬, 싱가포르를 톰킨스 못잖은 신념과 의지로 경제선진국의 비전을 세우고 매진한 독선가이자 도시녹색운동가 이기도 했던 리콴유총리도 금년 323일 영면했다.

두 위대한 비전가는 탐욕과 실천에 대한 의지는 여느 사업가도 따를 수 없는 독보적이고 저돌적 이였다. 다만 그렇게 해서 일군 위대한 결과를 흔쾌히 인류를 위해 기증한 탓에 장사꾼 재벌들과 차별된다 할 것이다.

톰킨스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는 훗날 사람들이 이 땅을 걸을 것이다. 무덤보단 이게 더 아름답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우리의 재벌들은 사유화한 땅에 철조망을 치고 지들만 걸으려 한다.

하면서 우리만 걸으니 얼마나 좋으냐?”라고 의시 댈 것이다. 선지자이며 인류 앞에 겸손한 두 자연주의자의 숭고한 삶을 거듭 되씹는다.

2015. 12. 20             


-최윤필기자의 글<더글러스 톰킨스>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