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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그 여적

갈갈이 찢긴 피아노를 향한 고사(告祀)

갈갈이 찢긴 피아노를 향한 고사(告祀)

 

 

 

-유일하게 남아있는 피아노가 찍힌사진-

 

아주머니세요. 앞집인데요, 고물장수가 피아노를 박살내고 있어요.”

? 무슨 말씀이신지?”

어떤 고물장수가 피아노를 때려 부셔 해체하고 있는데요.” 아까 이사 나온 우리 앞집아주머니께서 아내한테 걸려온 전화의 두서없는 통화였다.

 

서너 시간 전에 우리가 아파트로 이살 오면서 3층에서 내려놓은 피아노와 냉장고, 티브이 두 대, 전기오븐은 집 앞 길가에 버리고 왔다고 해야 맞다.

전자제품은 중고가전에서 가져가기로 약조가 됐고, 피아노는 지금 이삿짐을 운반올리고 있는 동양익스프레스 최재옥사장님이 가져가기로 약속한 터여서 길가에 자식 버리듯 내려놓고만 왔던 우리내외였다.

 

그래 가점제품은 중고가전에서 챙겼을 테지만, 피아노는 덜렁 (일부

해체된 채)홀로 남겨져 있어 고물수집상의 횡재물이 된 모양 이였다.

아내는 저편 아주머니더러 전활 끊지 말 것을 당부하며 얼른 전화를 최재옥사장께 돌려줬고, 최사장은 아주머니를 통해 피아노가 거의 폐품이 된 정황을 실황중계 받고 있었다.

 

그리고 고물장사와 전화 연결해 달래서 기왕 부셔버린 거 쓰레기 한 톨 남기지 말고 처치할 것을 당부 약속하는 거였다.

그 정황을 묵묵히 듣고 있던 난 그 비극적인 피아노의 운명을 상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피아노는 우리집의 귀중품1호나 진배없는 소중한 물건 이였다.

 

큰애의 유치원입학 때 큰맘 먹고, 정말 큰 돈 들여 선물한 애장품 이였

던 것이다. 딸만 셋인 우리부부는 애들이 일찍부터 피아노를 만지며 음악에 눈떠 정서적으로 풍요해지길 염원하는 심정에서 거금을 들여 마련했었다. 해서 세 아이 모두 피아노학원을 보냈고 기초를 익히게 했던 것이다세 딸 중 누군가 소질이 있고 의욕이 있으면 피아노전공을 해도 좋겠다는 희망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기대치일 뿐 이였다.

 

애들에게 피아노를 선물한 또 하나의 저의는 피아노에 대한 나의 한()이였다. 농촌서 풍금소리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내가 광주서중입학실기시험에서 피아노반주의 노래를 듣고 문제풀기였는데 처음 듣는

웅웅대는 소리에 귀벙어리 된 기억을 떨칠 수가 없어서였다.

피아노실기시험 땜에 낙방한 건 아니지만 웅장한(?)그랜드피아노소리 앞서 주눅 들었던 참담함은 두고두고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건(?)이후 난 음악에 대한 콤플렉스, 빈한한 촌놈의 충족 될 수가 없는 음악에의 갈증을 나의 애들에게만큼은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비원의 발로이기도 했다. 해서 난 그 무렵 오디오도 구입하여 짬만 나면 고전음악LP를 틀어 집 천장이 터질 만큼 보륨을 높여 명곡의 전당(?)을 만들곤 했다.

 

음악에 접할 기회가 전무했다시피했던 내가 고전명곡을 이해할 턱도 없었다. 다만 자꾸 반복해 듣다보면 나도, 애들도 뭔가 귀가 열리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에서였다. 고전LP음악은 볼륨을 키워야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음원에 가까이 접한다. 그럴 땐 아낸 시끄러워 이웃집에 미안타고 죽을 쌍을 지으며 손사래 쳤다. 그래 우리집 일요일은 어쩌다 아내가 외출하면 집안이 쿵쿵 울리는 오케스트라의 전당이 되곤 했었다.

 

그런 시간들이 흘러 내가 진정으로 뿌듯했던 건 애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아침조회나 운동회 때 학교에서 틀어주는 행진곡을 듣고 와서 아는 채 하며 신명나던 모습 이였다.

그런 사연이 녹아 든 우리 집 첫 악기였던 피아노가 오늘 소형아파트로 이살 하는 통에 헤어져야 했다. 삼십여 년을 동거한 피아노를 서울외손녀한테 물려주고 싶었지만, 넘 크고 무거워 운반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워낙 구닥다리라 언감생심하다 반겨줄 친구에게 짝 지워 주기로 했었다.

 

근데 마침 우리이삿짐운반을 계약한 최사장이 쓰겠다고 해서 그분의 누군가의 애장품으로 애용되길 바랐는데, 길가에서 고물상의 망치에 두들겨 맞으며 쇳소리 단발마치다 산산이 찢겨진 채 고철덩이가 된다는 거였다.

그 참혹한 현장을 보지 않음이 차라리 마음 편할 것 같았다. 더는 버려 내동이친 자식이나 진배 없어 개죽음당해도 암 소리도 하고 싶질 안했다. 아니 모른 채 해야 만했다. 애들은 이 소식을 접하면 뭐라 할까?

 

이 세상에 영원한 물건은 없다. 존재한 건 어젠가는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거기에 얽힌 영혼은 불멸한다. 피아노에 얽힌 추억 영혼은 우리 애들 대까지는 살아있을 테다.

큰애가 피아노에 입문하여 처음으로 울려 준 엘리제를 위하여의 선율이 아련하다.

피아노야 미안하다.

2015. 1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