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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그 여적

참으로 소중한 유산들

참으로 소중한 유산들

 

 

 

임종을 눈앞에 둔 어머님병상 앞에 삼남매가 모였다. 떠나는 자와 보

내는 자의 애통하고 엄숙한 마지막순간이 어쩜 그리 담담할 수가 있을까 싶었다. 엄마와 자식들이 마지막일 생전의 순간을 진정 무슨 대화를 할 수가 있을 것인가? 엄마의 고통스런 그 각박한 죽음의 순간에 참담한 눈빛으로 지켜보는 외 도대체 뭘 당부(유언)하는 자리일 수 있을까. 이때 큰딸이 엄마에게 가까스로 묻는다.

엄마, 우리 궁금한 게 하나 있다, 말해줄래?”

무언데?” 엄마가 안간힘을 다해 말문을 열고 있었다.

다락방 보자기에 싼 상자엔 뭐가 들어있어요?”

아참, 깜박했구나. 지금 그걸 꺼내와 줄래?” 큰딸은 막내를 대리고 다락방에 올라가 그 보자기를 꺼내옵니다. 보자기는 부피보단 의외로 가벼웠어요.

어느 해 우연히 큰애가 남동생과 놀다 다락방에 올라가 발견했던 보자기를 엄마에게 물었을 때, 엄마는 약간은 놀란 표정에 눈을 지그시 감고 잠시,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생각에 잠기시더니

응 그건 엄마의 소중한 보물이야, 나중에 보여줄 테니 궁금해도 기다려줄래?”라고 말씀하셔 삼남매는 어떤 건데 그리 소중한 물건일까? 하고 그 비밀을 밝혀줄 날만을 기다렸던 거였다. 그 비밀스런 보자기를 앞에 둔 엄마는 태연하게,

그 보자기를 끌러보렴엄마가 초롱초롱한 삼남매의 눈길을 주시하며 당부합니다. 큰딸의 조심스런 손길이 보자기를 풀고 다시 상자를 열었는데 거기엔 흰 종이에 싸인 본차이나접시가 하나 있지 뭡니까! 전혀 고급스러워보이지도 않는, 더구나 한쪽 가장자리가 조금 떨어져나간 채 금이 간 깨진 큰 접시를 보는 순간 모두가 어안이 벙벙해 집니다.
너희들에겐 깨진 접시일 뿐이겠지만 내겐 소중한 거란다. 이 접시엔 잊을 수 없는, 어쩜 너희들을 이 자리에 있게 한 추억이 깃들어져 있는 접시란다.”라고 엄마는 가물가물한 기억을 퍼즐 맞추듯 떨리는 목소리로 애길 합니다.

 

 

그러니까 엄마가 스물한 살 때, 밖에서 일을 하시던 아빠가 일꾼을 대

리고 점심식사를 하려 주방으로 들어섭니다. 식탁에 음식을 나르던 처녀는 아빠의 뒤를 따라오는 일꾼과 눈이 마주치자 순간 멈칫하다 접시를 떨어뜨렸지요. 건장하고 수려한 외모에 강열한 필이 꽂혔던 거지. 첫눈에 반한 처녀는 그날 이후 청년과 격정의 연애를 하였고, 이내 결혼으로 맺혀져 삼남매를 두는 잔잔하고 행복한 일생을 마무리하게 된 거지요. 몇 년 전 먼저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 아무도 몰래 꺼내 그날의 기억을 더듬던, 일생에서 가장 극적이고 소중한 순간이 생생이

담긴, 추억의 깨진 접시는 그래서 처녀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 이며 순정이 배인 접시였지요.

 

-어느날 자형님의 의자에 앉은 아내.

이 글을 쓰기 전에 사진 한 장 남길텐데 하고 아쉬워했다.-

 

이 얘길 오래 전에 책에서 읽은 내가, 책 이름을 기억 못하면서도 나이가 들수록 심금에 닿는 건 보물이라 여기는 것들의 진정한 값어치는 뭘까? 를 여미게 해서다. 또한 우리가 진정으로 자식에게 남겨줄 유산이 어떤 것 이어야할까? 를 생각하게 했었다.

요즘 나는 이삿짐 꾸리느라 여간 바쁘다. 아내와 이 집을 지어 세 딸을 낳아 키우고 삼십년을 살아오면서 버리기보단 모으기만 열심 했던 탓에 온갖 살림살이들이 집안 구석구석 빼곡하다. 그것들을 꺼내 정리하면서 기억의 편린들을 더듬는 순간순간의 아련함을 즐기다가도 폐기해야 한다는 아쉬움에 멈칫거리는 나날이기도 하다.

60아파트로 이살 해야 돼 웬만한 것은 다 버려야 한다. 더구나 막내가 중국주재원으로 년 말에 나가기에 그들의 가재도구들을 죄다 인계받아 쓰는 게 좋겠다싶어 거의 모든 가구를 폐기하는 고생(?)깨나 하고 있다.

아직 쓸 만한 것들(어떤 건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을 버려야한다는 사실에 우리네도 미국인들처럼 집밖에 재활용안내문을 써서 붙이면 좋으련만 하는 생각에 잠겨봤다. 우린 헌 것들에 대한 비호감에다, 또 집이 협소하여 생각뿐이었기에, 폐기할 물건들을 밖에 모아 전시하여 재활용할 사람에게 다시 쓰여 지는 장을 (지자체가)마련하면 좋겠단 생각을 수없이 했다.

 

-하마트면 헤어질뻔 했던 고라니와 동판시계-

 

참으로 아깝고 미련 남는 건 덩치 크지 않고 특별한 추억이 깃든 물건들을 버려야한다는 애석함이다. 정읍자형님이 생전에 애용했던 흔들

의자도 아까운 거였다. 칠년 전, 자형님 발인 후 고인의 유품을 소각할 때 나는 그 흔들의자를 기꺼이 챙겨왔었다. 아낸 불쾌해 했지만 아직 쓸 만한데다 뭣보다도 자형님의 손때가 덕지덕지 배인 애장품을 사남매자식들은 별생각 없이 불태우려 했다.

의자는 곧 자형님 이였다. 당뇨로 하체가 부실했던 자형님은 명퇴 후 거의 그 흔들의자에 계셨다. 그래 조카들이 언젠간 유품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 누나의 동의를 얻어 보관 겸 재활용한 거였다. 그래서 며칠 전엔 큰조카(의사며 최근에 시골에 멋있는 큰집을 지었다)에게 의자얘길 했더니 그냥 버리라는 대답 이였다. 참으로 실망스러웠다. 부모의 애장품을 곁에 두고 간혹 부모님을 회억하는 순간의 소중함을 모를까?

나에겐 장인님의 손때가 묻은 목 조각품이 다섯 개가 있다. 그것들을 작은 고라니 한 마리만 남기곤 군산처남한테 넘겨줬다. 아내가 귀찮다고 버리자고 해 처남한테 연락해 인계시켜서 맘이 놓였다. 버려진 나무뿌리나 괴목을 장인어른께선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여 다듬어 그럴듯한 조각품을 만들어 선물하시곤 했다.

당신의 혼백이 오롯이 배인 물건인 셈이다. 근데 그걸 버리자는 아내의 심저를 굳이 이해하려들거나 반대하고 싶지도 안 했다. 내가 넘 고루하고 찌질한가? 하는 생각이 들고, 그것들로 아내와 잠시나마 시비하고 싶질 안 해서였다.

애들이 우리의 결혼 삼십 주년을 기념하는 자릴 하얏트호텔에 마련하며 선물했던 동판주문제작한 시계('같이 하신 결혼30주년을 축하합니다' 라고 쓰여있다)도 고장이란 이유로 버리자는 아내 앞에 그것만은 챙겼다.

보물의 정의를 돈으로만 매기려는 아내를 이해할 순 있지만 용납할 순 없었다. 돈보다는 손때와 정성이 깃든 추억()이 물씬한 물건이 보물

이라고 강변하고 싶은 나다. 추억이 배인 물건을 애지중지 사용하며 그때의 향수에 젖어보는 삶이 더 윤택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함이다. 자형님의 흔들의자는 밤중에 남몰래 주택가갓길에 내 놓았었는데 이틀째 날 누군가가 가져갔다. 그분한테 편한 안락의자로 애용되길 빈.

 

-결혼30주년기념 시계.

'함께하신 30년을 축하합니다'라고 새겨저있다.-

 

우리는 보물에 대한, 자식들에게 물려줄 귀중품에 대한 보다 정서적인 값을 중요시하는, 가치변화를 시도하는 삶을 살았음 하고 이삿짐을 꾸

리며 절절하게 생각해봤다. 헌 것에 대한 무작정한 냉소주의는 생활의

여유 탓인지 요즘엔 빈티지물건을 찾는 세태와 크로스오버 된다.

온고지신이란 말도 헌것에 대한 가치를 말함일 것이다.

우리가 진정 소중히 하고 아낄 것은 값비싼 물건이 아니라 애지중지했

, 손때 절절이 배어 혼이 묻어나는 물건이 아닐까.

과거는 오늘의 거울이다. 추억은 오늘을 사는 자양분이고 내일을 꿈꾸는 샘물이라 생각한다. 이삿짐을 꾸리며 허투로 산 삶이 결코 깡그리 부정만할 것들이 아니란 걸 깨닫기도 했다.

성공한 삶은 추억거리가 많이 밴 살림살이가 많음에 있다고 억지 자윌 하며, 이제 나이가 들어 그 소중한 기억들도 하나씩 내려놓아야 한다

는 사실에 눈뜨는 거였다.

나이 들어 힘이 부치는 삶은 가진 걸 내려놓을수록, 소유의 애착에서 벗어날수록 행복감에 자주 취할 수가 있을 것 같다.

오늘은 찬장과 책상과 책장을 부셨다. 우리내외 손때는 홍건이 묻었지만 막내거가 더 새롭고 편리해서다. 아직 막내거가 들어오려면 두 달

이나 있어야 하는데도 말이다.

그것들이 들어와도 걱정이다. 막내 것들은 거의가 다 규모가 커서다. 어린애 하나와 달랑 셋이 살면서 아파트부터 시작해 뭐든지 커야만 좋다는 요즘의 젊은이들의 가치관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살 다녀봐라. 그리고 뭣보다도 나이가 들어봐라. 큰 것이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란 걸 깨닫게 될 테다.

2015. 10.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