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월사전나무 부음(訃音)
-해탈문계단-
한가위 담날 울 식구 셋(아내와 둘째)은 산행에 나섰다. 어제 늦은 오후 군산처남내외와 막내처제가족의 예방으로 얘기꽃 피웠던 우린, 둘째가 늦잠으로 뭉그적대는 통에 산행출발도 늦었다. 붐비는 망월역사를 빠져나와 쌍용사를 곁눈질 훔치고 원도봉계곡에 들었을 땐 11시가 넘었다. 시간도, 몸 상태도 썩 좋은 편이 아니라서 망월사에 가서 포대능선을 올라 하산코스를 결정하자고 했다.
땡볕에 푸나무들의 녹음이 축 처졌나싶었는데 연유는 골짝의 하얀 바위들이 맨몸 들어낸 갈수(渴水)를 앓고 있어서였다. 깊은 도봉계곡이 물 한 방울 없는 된 가뭄이란 걸 실감케 했다.
물 없는 골짝은 앙꼬 없는 찐빵이라. 게다가 밤새움컨디션까지 안 좋아선지 모처럼의 울 식구만의 산행인데 신바람이 안 났다.
-두꺼비바위-
폭포가 눌러 붙은 오줌자국마냥 하얀 바위에 찌질 맞은 시늉을 내고 있다. 골짝을 한참 오르니 엄홍길씨의 생가 터라. 그가 산악인으로 대성할 수 있었던 연원을 짐작케 한다. 우린 바위에 걸터앉아 물 한 모금씩으로 갈증을 쫓으며 엄대장 얘길 했다. 그가 오버행어한 두꺼비바위가 짙은 녹음 속에서 불볕하늘을 째려보고 있다.
‘날 죽일 작정이냐?’ 이냔 투다. 두꺼비의 원망 섞인 눈길 저만치에 소요산도 힐거니 응수하고 있다.
매월당이 계신다면 진즉 기우제라도 올렸을지 모른다. 가뭄에 결코 상쾌하달 순 없는 골짝산행을 땀 훔쳐내며 명절연휴를 보내려는 현대인들의 산행이 줄 차게 이어져 우릴 놀래 켰다. 덕제샘(부적합판정 표찰을 달았다)에서 입술을 적시고 정오를 한참 지나 망월사 높은 담벼락아래 닿았다.
-2015.8.16 낙뇌사부고를 단 전나무-
근데 이게 웬 일이냐? 수문장 전나무가 무참히 두 동강이나 방치된 채였다. 깎아지른 망월사요람을 지렛대마냥 이백여 년 버티어내며 하늘을 뚫던 거목의 기세가 사지절단에 몇 토막 났으니 이 무슨 변고인고?
그의 죽음에 넋 나간 망월사는 “2015.8.16일 낙뇌로 쓰러졌다”고 간단히 부음을 적어 놨다.
-무위당-
이백여 년을 동거한 문지기의 죽음에 너무 홀대한 치상인가 싶어 마음이 언짢았다. 하긴 생과사가 다름아닌 여일함이니 전나무의 벼락에 유난떨 일도 아닌성싶었다. 해도 한 가닥 아쉼은 지금 망월사스님들은 어떤 분들일까? 양기가 펄펄 넘친다는 망월사의 정기를 잘 다스리는 기센 스님이 상주하심 전나무의 벼락은 피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낙가보전 앞의 울 식구-
예부터 망월사엔 양기 넘치는 스님이 상주해 도량을 융성시켰던 사찰 이였다. 칼날처럼 예리한 화강암바위들이 즐비하게 연봉을 두른 화채산의 도봉산명당에 자리한 망월사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의 사찰이라 했다.
북한`도봉산자락의 마흔 한 개의 사찰을 굽어보는 명찰로 신라 선덕여왕(639년)때 해호가 창건했단다.
1066년 혜거국사가 중창하였으나 열네 번이나 전란과 화마로 소실 될정도로 양기가 드센 절 이였다. 마의태자가 머물다 금강산으로 향했고, 육두문자설법으로 세인들을 주눅 들게 했던 양기의 화신 무애도사춘성스님이 주지로 머물렀다. 망월사는 사위를 조망하면 할수록 멋있고 가슴 확 트이게 하는 사찰이다. 난 아니, 아내와 둘짼 이처럼 자연과 혼연일체가 돼 운치 넘치는 빼어난 사찰은 여태 마주한 적이 없다고 연 탄성이었다.
포대능선과 나락능선의 협곡천길 단애에 층층요새처럼 기품 있게 안좌한 사찰들은 선인들의 풍수학과 심미안이 어느 경지였을까? 하고 상상의 나랠 펴게 한다.
영산전,낙가보전,약사전,범종각,독성가,설법루,무위암,천중선원,문수굴,해탈문 등등 빼어난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낙가보전-
혜거국사의 부도탑은 수직단애 위의 영선원 뒤 골짝에 은밀하게 자리했는데 참으로 안온한 천당 같았다. 산짐승이나 새들만이 내왕할 세인들의 시선에 절대 띄지 않을 명상의 자리란 생각이 절로 났다.
천중선원을 에둘러 가파른 계단의 해탈문을 다시 통과 문수굴 밑 천봉선사와 태흘선사부도비를 훑고 문수굴을 참배 나서면 짙푸른 전나무의 기세와 맞닥뜨렸었다.
-혜거선사부도탑-
전나무가 음용하며 양기 팍팍 쏟을 수 있었던 거암석간수를 한바가지 들이키고 그를 쳐다보며 경내를 내려서는 발걸음은 자못 경외감 이였다. 근데 하늘이 뻥 뚫렸다. 그 위풍당당한 거목이 쓰러져버린 탓이다. 사라진 전나무의 허허함이 망월사를 허탈하게 해버린 그 뭔가를 안타깝게 했다. 그를 앞세웠던 낙가보전과 적광전의 2층 누각도 쓸쓸해 보인다.
-수직단애 위의 영선전-
나무 한 그루가 명찰(名刹)의 기상을 부유케 함인가! 지상에 영원한 건 없다. 실체는 언젠가 멸한다. 다만 혼(魂.생각)만이 영생할 뿐이란 걸 전나무가 말하고 있나싶었다. 설마 기센 춘성스님이 계셨다면 전나무는 오늘도 낙낙장송할까? 스님의 양기가 낙뇌를 커버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니 말이다.
-작년 식목일 때 졉견했던 전나무-
화채산양기 온 몸에 휘감고
드센 절간 수문장으로
이백년을 버텨온 그대
생사여일타고 홀연히 가심
허허한 자리 어찌하며
구멍뚫린 천공
누구 팔로 우산 할거나
골수 짜내던 바위도
감로수 음복할 님이 안 계셔
석정이 바닥나니
불심도 발원도
허허로이 맴도누나
수좌 하나 키우시지 않고
<망월사전나무>
-작년 문수굴 앞에서 본 전나무-
“죽었다가 살아난 예수 믿어야 천당 간다, 고? 그래 예수가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그건 거짓말이다. 죽었다가 새벽에 살아난 건 내 좆이다. 그러니 차라리 내 좆을 믿어라.”라고 춘성스님이 일갈하자 세인들은 포복절도 까무러졌단다.
퍼스트레이디 육여사 생신에 잔뜩 뜸들여 한다는 법문이 “오늘은 육영수 보살이 지 에미 보×에서 응아~하고 나온 날이다!”라는 파격에 연회장은 일순 숨이 멎었다던 그 스님이 그립다.
-뻥 뚫린 천공,좌측애 전나무가 있었다-
대여섯 살 먹은 손주에게 수백 억 주식을 증여하는 재벌의 세상, 적십자회비 안 내야 장차관자리 넘 볼 수 있고, 온갖 비리에 오리발 잘 내밀어야 고위직인사철에 오르는 정부라 춘성스님이 생각나는 게다.
젊은이들이 ‘삼무인생’과 ‘헐조선’을 염불(?)하는 세상이니 말이다.
ㄱ
-해탈문-
스님은 뭐라고 한 말씀 내 뱉으실까? 한 때 중동으로 내 보내라고 득
달이더니 이젠 기업체에 일자리창출 하라고 독촉하는 판이다.
조변석개 말뿐이니 젊은이들이 ‘헐조선’을 씨부렁대다 산에나 오르자하고 이렇게 도봉산엘 꾸역꾸역 모여드는지 모르겠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하라는 명절연휴에 말이다.
춘천시가엘 간 막내가 출발했다는 전화다. 그래 하산해야 된다고 아내가 보챈다. 집까지 두 시간 남짓 걸릴 테니 지금 하산해야 된단다. 명절에 가고 싶은 곳이 도봉산망월사였는데 쓰러진 전나무가 ‘헬조선’을, 춘성스님을 생가나게 하는 거였다. 그나저나 비가 좀 와야 할 텐데~
-천봉선사뷰도비와 문수굴-
생기 잃은 푸나무들이 낙엽 아닌 낙엽을 가을 한 가운데처럼 매달고 있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부(富)도 권세(權勢)도 한 순간이다. 영원한 건 사람의 마음을 얻는 길이다. 전나무마냥 누군가의 버팀목 아니면 우산이 되는 삶이여야 할 것이다.
나아가선 사찰에 내리친 벼락을 온 몸으로 맞아 쓰러지며 망월사의 수호신 노릇한 일생을 채 받던지 말이다.
-범종각=
“세상의 높은 집 다 내주고
넓은 땅 부자들에게 다 퍼 주고
바위 틈새에 제 목숨 하나 붙일 흙 마련한
진달래 향기 천 리를 불붙이듯
사방이 온통 막혔는데도
막혔던 가슴 훤히 뚫리니 웬일이냐”
–후략- <박몽구의 시>
-계총선사 부도비-
구차스런 부와 권위 따윈 빨리 내려놓아야 평안할 것이다.
부와 권위란 놈의 노예로 평생을 문드러질 거라면 몰라도 말이다.
2015.09.28.
http://pepuppy.tistory.com/591
http://daewha.tistory.com/ 에서 춘성스님을 뵐 수 있습니다.
-석천, 아래 전나무의 부음 탓인지 갈수였다-
-문수굴내에서의 필자. 작년-
-적광전뒤의 포대암능선-
-용굴-
-엄홍길생가 터-
-쌍용사-
-도봉골짝서 본 소요산-
-마른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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