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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북한산 의상봉능선에서 비봉능선의 비경

의상`용출`나한`문수`승가``향로봉을 잇는 북한산성

 

-비봉의 기도-

 

주말, 구파발역2번 출구는 등산객들의 탈출구다. 거기서 송추방면버스도 엑서더스전용일 듯싶다. 모두가 북한산자락으로 빨려드는데 북한산이 없었다면 아니다, 등산 붐 일기 이전엔 모두 어딜 향했을까나도 열시가 못 돼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를 통과한다.

 

의상봉을 기점으로 한 의상봉능선을 따라 즐비한 연봉들과 문수봉을 잇는 북한산성을 다시 비봉, 향로봉까지 밟는다는 자못 깜냥 넘친 욕심에 도전하기로 했다.

 

-의상봉스핑크스-

 

무더위가 여름끝자락을 물고 늘어져도 산성계곡녹음터널은 싱그러웠다. 백운대와 의상봉갈림길에서 의상봉을 향한다.

 

진초록수풀 속에서도 연신 땀을 훔쳐낸다. 반시간쯤 오르니 온통바위고 의지의 소나무는 차마 대머리바윌 떠나질 못하고 공생하고 있다.

의상봉능선이 그리 만만한 코스가 아니란다. 오르기 쉬우면 이렇게 좋은 절경을 외면하겠느냐? 고 내가 의상봉코스에 대해 묻자 성큼성큼 바윌 오르는 어떤 산님이 일러줬다.

 

-의상봉에서 본 백운대-

 

아닌 게 아니라 그 많던 산님들이 뜸했다. 산님은 촌놈이 첨 길이라는 나의 말에 도전해보겠다는 그 용기만큼은 재미가 쏠쏠할 거란다. 그 산님의 재미는 뭘 말할까?

 

의상봉(義湘峰)은 제법 넓은 마당바윌 깔고 있었다. 좌측 멀리 백운대가 연초봉,노적봉,만경대를 거느린 누르스럼한 원경은 겸재선생의 금강산전도를 연상케 한다.

 

 

첩첩바윌 쌓아 놓은 용출봉 뒤로 무수한 바위능선과 우측으로 비봉, 향로봉의 황갈색하늘 금이 장관이다. 더구나 바위가 기기묘묘한 바윌 엎거나 무등태운 채 소나무와 연애하고 있는 풍정은 보면 볼수록 감탄케 한다.

 

벼랑에서 고송을 수문장으로 삼은 북한산성도 예서부터 시작한다. 아마 조선조 때 축성한 바위 같다. 용출봉을 향한다.

 

-의상봉의 산성기점-

 

좌측골짝 숲에 국녕사가 거대한 좌불을 안고 숨어있다. 조선조 숙종 때 창건하기 이전 신라 때의 고승 의상이 참선을 하던 참선도량으로, 유정(惟政)스님이 수도 하던 터였단다.

 

1713년 북한산성을 축성할 때 팔도의 사찰에 영을 내려 의승(義僧)을 뽑았다. 그 의승들이 산성 안에 머물며 성문과 수문·창고 등을 지키면서 21개 사찰을 창건 또는 보수하였단다.

현존하는 사찰로는 국녕사를 비롯 중흥사·태고사·진관사·노적사·승가사·운사 등이 있다.

 

-악어새끼의 탄생-

 

용출봉을 즐기고 민머리용혈봉에 섰다. 몇 년 전에 산님 네 분이 벼락에 희생된 정상이다. 바위가 모질어 소나무와 연애질도 못한 탓에 산정은 벼락을 피할 나무 한그루도 없어서였다. 해서 지금도 낙뇌주의푯말이 있다. 어쨌거나 뭐든 홀로는 허점투성이기 쉽다.

 

백제 때의 성벽일까? 고려 아님 조선조 때의 성곽일까?                   이끼 끼고 바스러진 채 무너진 성벽은 줄곧 이어진다. 바위산정을 내려와 다시 바위층층인 증취봉을 올라서며 조망하는 풍광과 밟고 내려서면서 조망하는 풍정은 감탄의 연발이다. 좌우 어딜 눈길 줘도 탄성이다.

 

 

일상의 나를 잊은 지 까마득하다. 풀벌레 우는소리나 새소리 없이 바람 한 자락이 이따금 얼굴을 스치는데도 감로수가 따로 없다. 쉬고 싶음 암 데나 궁뎅이를 내밀고 바위에 걸치기만 하면 천상의 휴게처가 된다

소나무 그늘에서 빙 둘러 전시된 산수와의 진경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리게 되는데 몽땅 공짜다.

 

-잊을만 함 이어지는 철봉은 구명줄이다-

 

옛날 성벽 쌓느라 동원된 불쌍한 백성들이 유일하게 고역을 잊을 수

있는 순간이라면 여기 바위에 걸터얹아 쉬는 짬 이였지 싶었다.       부왕동암문터에서 부턴 여장발굴과 성벽보수작업이 군데군데 벌어지고 있었다.

그 통에 나월봉과 나한봉은 출입금지구역이라 에둘러야 했다. 언제나 마무리 되련지? 문화재보수란 게 세월죽이기라.

 

 -성난 코뿔소의 대시-

 

백제가 도읍인 위례성(慰禮城.경기도 하남)을 방어하기 위해 132

(개루왕 5)에 쌓았던 도성이 북한산성의 시초이다. 당시엔 고구려와 신라가 접경을 이뤄 첨예하게 대립했던 탓이다.

고려 땐 글안과 몽골침입에, 조선 땐 왜란에 대비한답시고 쌓은 북한산성은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었다.                                      힘없고 불쌍한 민초들만 죽을 고생한 셈이다. 해도 역사는 권세부린 자들만의 기록이기 쉽다.

 

-맹탕녀석과 갈증녀-

 

고로 전쟁이란 지배계층이 권세를 유지키 위해 강경파를 부채질하

, 매파나 군수산업자는 부화뇌동하여 이익을 챙기는 싸움질에서 크게 빗나가지 안했다.

그들의 허울 좋은 명분싸움에 백성들만 죽어났던 것이다. 지금 남북이 서로 포격전을 벌이며 으르렁대는 건 뭘까? 기득권 움켜쥐기 아닌가 헷갈린다.

 

-아름다운 암송커플-

 

칼에는 칼로 대항하자는 매파의 전쟁에 쏟아 붓는 천문학적인 전쟁비용을 화해비용으로 쓰면 안 될까? 그럼 퍼주기 논란이 일까?           ‘통일은 대이라면서 싸움으로 초토화시킨 후 통일하고 난 후 퍼부어야할 통일비용은 상상이나 할까?

 

못나고 가난한 철부지이웃에게 좀 베풀어 배부르게 하며 화해손짓을 줄 차게 하다 어느 때 통일되면 통일비용은 어찌 될까? 자식같고 늦동생 같은 애숭이의 철딱서니에 일희일비하며 대작해봐야 똑 같이 못난이 되는 게 아닌가 모르겠다.

 

-지나온 용혈`용출봉-

 

하긴 그렇게 화기애애하면 군수업자가 배고프고, 싸움질이 직업인 일부장성들이 영활 못 누릴 것이며, 권부의 이너서클이 탄탄한 권세를 오래도록 향유 못할 것이다.

백성들이야 적당한 코너로 몰아세우면 따르게 마련이니까? 고금의 지배층은 도저히 그 향수를 안 버릴 테다. 권력이란 게 얼마나 달디 단 마약같은 것인데? 

 

-돌아서 생각해봐도 아찔하다-

 

문수봉에 올랐다. 펑퍼짐한 바위정상엔 산님들로 성시다. 금방 밟았던

나한,나월,증취,용혈,용출,의상봉이 차례대로 나열한 채 읊조리고 있나싶다.

만경,노적,인수봉과 백운대가 멀리 묵화로 변했다. 보현봉에서 형제봉을 잇는 형제능선 뒤로 칼바위능선이 쪼개진 사금파리마냥 창공에 처박혀 하늘을 찢어놨다. 

 

-승가봉의 똥바위는 누가 쌌을까?-

 

그 칼바위능선이 유혹한다. 애초엔 형제봉능선을 타고 하산하려 했었다. 난 옆 어느 산님에게 뚱딴지 같이 물었다. “칼바위능선이 탈 만하

?” .

이것저것 묻던 그는 네 시간정도 산을 탄 내게 다음기회로 미루란다. 체력이 소진 돼 위험하단 거다.  한 번에 다 욕심부리지 말란다. 산님다웠다.

 

-사모바위-

 

글고 형제봉능선을 타는 것 보단 비봉능선을 타고 하산하는 게 더 아기자기한 맛에 취할 거란다. 전에 비봉과 향로,족두리봉을 등정했다는

내게 하산하며 즐기는 멋도 형제봉 타는 것 못잖다는 거였다.

나는 비봉능선을 하산코스로 택했다. 두시간반쯤 소요 될 하산을 만약을 위해 조금은 알고 있는 코스가 안심도 돼서다.

여기 산성은 제법 훼손이 덜 된 상태로 풍상을 덕덕지 껴입고 있었다.

 

-지나온 비봉,향로봉-

 

문수봉에서 전망하는 승가봉과 사모바위의 모습은 한마디로 ‘꼭 찍어 죽여준그 바윌 오르는 개미인간의 왜소함이 자연의 위대함을 새삼 절감케 한다.

서울사람들은 행운아란 생각을 근교 산을 오를 때마다 하게 된다.

이토록 멋있는 산들을 한 시간여면 접근 할수 있고, 또한 바위산이기에 닳지도 않고, 먼지도 안 난다는 천혜의 조건 땜에 말이다.

 

-문수봉의 눈깔과 승가봉똥바위-

 

북한산성은 비봉,향로봉,족두리봉으로 이어진다. 비봉정상엔 진흥왕순수비(가짜)가 있다.

 475년 고구려장수왕은 북한산성을 포위`함락시켜 백제의 개로왕을 죽이자 백제는 웅진성(熊津城)으로 도읍을 옮기고서 신라와 동맹하여 고구려의 남진을 막았다.

 

-의상봉정상에서-

 

허나 얼마 후 신라 진흥왕은(553) 백제의 한성(漢城)일대를 점령하고, 비봉에 순수비(巡狩碑)를 세웠다. 이에 고구려는 603(영양왕 14) 8월에 북한산성을 포위하였고, 장군 뇌음신(惱音信)이 북한산성을 20일 동안 포위하며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이 때 성주(城主) 동타천(冬陀川)은 군민(軍民) 2,800인과 함께 필사적으로 방어하였다. 진흥왕순수비의 배경인 셈이나 부질없는 땅따먹기 싸움으로 병졸들만 아까운 목숨 절단 났고, 땅덩이는 그대로 변함

없이 고려-코리아인 것이다.

 

-비봉-

 

다란 바윌 노적봉 쌓듯 포개 논 비봉은 향로봉에서 볼 때 웅장하고 멋있다. 어느 산님은 고백한다. ‘주말마다 북한산을 오르지 않곤 담 주를 온전히 날수가 없다,’ .

연인을 만나듯 주말에 만나 스킨십을 해야 한주일의 일을 신나게 시작한다, 는 거였다. 멋있는 애인을 둔 산님이라.

 

 

애인 하난 제대로 선택한 현명한 산님이라. 죽는 날까지 변할 걱정 없는 연인은 만날 때마다 새로운 단장을 하고 산님을 맞을 테니 말이다. 북한산 같은 애인이 암하고나 맺어질거나하고싶다고 누구나 북한산을 애인으로 할 수나 있을까?

그러나 쓰레기봉지를 갖고 쓰레게 줍는 산님이 종종 뵈 북한산도 마냥 손해 본단 생각은 아니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자길 그렇게 사랑해 주는 산님들이 있으니께~!

 

-지나온 의상,용출,혈,증취,나월,나한봉-

 

북한산 같은 연인이 있음 좋겠다. 내가 북한산 같은 애인으로 거듭 낳을 수 있음 좋겠다. 매사에 촐삭대며 카멜레온 삶을 사는 내가 언제나 북한산처럼 묵직한 애인이 될 거나?

족두리봉을 에두르고 구기터널 앞에 내려섰다. 장장 여섯 시간 반을 북한산에서 노닥거린 나는 그 멋에 잠시 취하기만 했어도 행운아라.

물 두 병을 진즉 비워 갈증에 헐떡거린 내게 아주머니들이 해갈을 시켜줬다. 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절감케 했다.

205. 08. 22

 

  -백운대 원경-

 

 

 

-의상봉능선-

 

-사모바위-

-의상봉오르는 바위경사로-

 

 

 

-지겨운 계단-

 

-오르고 내리는 의상봉능선-

-국녕사-

-암송의 포르노-

 

 

 

 

 

 

 

-망향석-

-바위 하나씩 이고 있어야 용혈봉암석-

 

 

-민낯 용혈봉-

 

 

 

 

-바위의 문신-

 

 

 

 

 

-석로-

 

-석로를 통과하다 본 하늘-

 

-문수봉밑의 북한산성-

 

 

 

-지나온 의상봉칼능선-

 

-문수봉에서-

 

 

 

-비봉-

 

-승가봉의 똥바위-

 

-통천문-

 

 

 

-의상봉능선과 겹친 백운대준령들-

 

-족두리봉-

 

-향로봉에소 본 북악산과 서울-

 

- 오늘 의상.문수.향로봉을 잇은 등정로선-

 

-여장발굴현장-

 

-산성보수현장-

 

-보수 된 성-

 

 

  -구기터널 도착 전에 갈증을 해소시켜 준 아짐씨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