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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정동 덕수궁돌담길 야로(夜路)

정동`덕수궁돌담길 야로(夜路. Walk-friendly Night)

 

 

봄밤에 우리 손잡고 그 길을 달과 함께 걸으실래요?

길을 걷다 마주친 그곳의 낯섦을 느껴보세요.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정동에서 당신만의 역사가 또 한줄기 기록됩니다.

오월의 봄밤에 꽃처럼 아름다운 20개의 문화공간으로 초대합니다.“

2015.5.29.()~5.30()이틀간 펼쳐지는 <정동야행(夜行)>에의 초대 글입니다. 

- 덕수궁돌담길 -

 나는 오늘 오후 1시 반에 문화유산국민신탁에서 해설사와 함께하는 근대문화유산탐방 <다 같이 돌다! 정동 한바퀴>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정동극장 옆 중명전(重明殿)에 들어섰습니다. 이매일(전화신청)로 예약을 했었지요.

중명전은 1897년 황실도서관으로 탄생했으나 1904년 덕수궁화재로 고종이 여기로 거처를 옮기고, 이듬해1118일 새벽엔 을사늑약이 강제된 치욕의 장소지요.  헤이그평화회의 특사로 이준열사를 파견한 현장이고, 1963년에 영구 귀국한 영친왕과 이방자여사의 숙사로 사용된 장소였지요. 

 

                                       - 중명전에서 공연이 한창이다-

열대여섯 명씩 두 팀으로 나눠 해설사를 따라 정동길 일대에 모자이크처럼 박힌 역사의 내음을 맡으러 이슬비속을 걷습니다.

제일교회 앞 로터리에서 좌측으로 덕수궁돌담길 따라 잰걸음 친데 벌써 주한미국대사관저 앞엔 입장객들로 만원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미대사관저를 일반에 공개한다는 게 여간해선 드문 일 이걸랑요.

 

                                     -미대사관 정문-

이슬비우산 속의 손님들은 한껏 달떴습니다. 땡볕 대신 간만의 비에 젖은 오월의 낭창한 신록 속에서 하비브대사관저를 방문하는 진객이 됐으니 말입니다. 평소엔 삼엄한 경비로 대사관저 앞을 지나기도 쫌은 움찔했던 곳 이었으니까요.

근대 오늘은 그들이 우리 눈치를 살피나 싶은 게 어깨가 의쓱해집니다. 요소마다 부동자세로 로봇행셀 해야하는 그들이 힘들것 아니겠어요. 

      -하비브하우스;하비브대사 재임시 한옥을 살려 지은 숙사여서 붙은 이름-

1882년 한미수호통상조약 이듬해에 세워진 미국공사관은 미국의 (하비브하우스;하비브대사 재임시 한옥전통의 숙사를 지어 부르게 된 이름) 재외공관 중 젤 오래된 건물이고 우리나라의 최초 외국공관이기도 합니다. 또한 하비브대사관저는 외양을 주재국(한옥)전통양식으로 한 미국의 유일한 재외공관이기도 하답니다.

그 공관을 이틀간 개방한다니 손님이 많을 수밖에요. 촘촘히 선 경비 속이긴 하지만 사진촬영 등 자유롭게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대사관을 빠져나와 다시 덕수궁돌담길을 따라 구세군본관을 향합니다.

 

                               -돌담에 옷 입힌 담쟁이넝쿨-

오늘따라 물기 젖은 신록이 유난히 반들거려 서울도심 아닌 숲속의 성벽을 걷는 기분입니다. 서울 한복판에 이렇게 검푸름으로 뒤덮인 고색창연한 돌담길이 있을까? 싶게 말이지요. 십여m돌담을 담쟁이넝쿨이 초록 옷을 입히고 그 위에 선 거목들이 녹색의 터널을 이뤘습니다.

고개가 떨어져라 쳐다봐도 싫지 않는 풍정입니다. 이윽고 빨간 벽돌집의 구세군본붑니다. 세밑 거리에 구세군자선남비로 우리들에게 나눔의 행복바이러스를 전하는 거리의 천사들을 양성했던 장소지요.

 

                                -구세군본관-

구세군은 1928년에 여기에 건물을 지어 구세군사관학교문을 엽니다. 지금 구세군박물관이 됐는데 까마득한 골동품들이 우릴 잠시 붙들고 아련한 추억과 향수에 취하게 하지요.

바로 앞이 선원전(璿源殿) 텁니다. 조선조역대국왕의 영전을 뫼시고 재향을 올리던 곳 이였는데 일제에 의해 강제분할 되면서 창덕궁으로 옮기고 경기여고자리가 됐었지요. 경기여고가 이사가고 지금은 무슨 공사를 하는지 땅파기 작업이 한창입니다.

 

                             -선원전 뒤 금호아시아나빌딩 숲-

선원전 뒤 의주로엔 금호아시아나빌딩을 비롯 최신빌딩숲이 성벽처럼 휘둘렀습니다. 옛 러시아공사관을 찾아 언덕배기를 오릅니다. 명성황후시해로 위협을 느낀 고종이 피신했던 아관파천(俄館播遷)의 현장은 6.25때 파괴돼 망루만 유령처럼 존재합니다.

이곳 망루에 서서보면 당시의 러시아의 거드름을 상상할 수가 있습니다. 가장 높은 언덕배기에서 우리왕실과 재외공관들을 내려다보며 상전노릇하려다 노일전쟁으로 코 쑥 빠져버렸던 그때의 로스케들 위세를 생각해 보는 게지요.

 

      -구 러시아공사관 망루;높은 언덕배기에 공사관이 있었는데 6.25때 폭격 파손 돼 망루만 남았다. 여기 공사관으로 고종이 아관파천을 했었다-

명성황후도 왜놈들이 징그러워 힘깨나 쓸 줄 알고 아(러시)놈한테 손 내밀다 무참히 시해당한 것 아닙니까? 고종도 겨우 1년 남짓 머물다가 덕수궁으로 옮겨야했으니 약소국왕의 설음을 가늠케 합니다.

지금 러시아공관은 제일교회 뒤에 현대식 건물로 옮겼고 주위엔 네덜란드, 뉴질랜드, 캐나다대사관 등이 즐비하니 들어서 정동공원일대는 외교가를 이뤘습니다. 그 외교가를 나와 옛 신아일보별관을 봅니다.

 

                                  -구 신아일보 별관-

1930년대 당시 획기적인 철근콘크리트에 상하이서 수입한 적벽돌로 외벽을 쌓은 건물은 대한제국세무총국(관세청)으로 사용하다 신아일보에 팔렸답니다.

세월의 때가 질질 묻어나는 이 건물은 배재학당앞의 또 다른 신아일보건물과 때깔이 같습니다. 빨강벽돌을 초록담쟁이넝쿨이 4층 꼭대기까지 치렁치렁 휘감아 고풍스런 멋으로 눈길을 홀립니다.

 

                    -구 신아일보사옥, 담쟁이넝쿨로 고색창연하다-

신아일보별관 건너에 이화학당박물관이 있습니다. 심슨기념관이라고도 하는 이 조그만 박물관엔 이화학당의 자랑거리들이 빛바랜 사진으로 가슴에 밀려들지요.

유관순을 비롯란 이화의 빛나는 얼굴들, 무엇보다도 초창기의 학생들의 모습은 우릴 타임머신여행에 빠지게 합니다. 이화여고와 이화백주년기념관을 훑다가 쬐그만 표지석에 눈길이 멈칫합니다.

 

                                    -이화학댱백주년기념관 문-

손탁호텔 입니다. 1902년 개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2층 호텔은 프랑스태생 독일인 앙트와네트 손탁의 작품 이였다죠. 여기서 열강의 외교 각축전이 벌어졌고 우린 구경꾼으로 전락 행세했지 싶은 씁쓸한 곳이지요.

다시 정동길로 나와 로타리 우측에 정동제일교회로 들어섭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선교교회였지요. 1885.4월 아펜젤러목사가 선교사로 와서 189712월에 새운 교회랍니다.

 

                                                -정동교회-

이 예배당을 벧엘예배당이라 하는데 커다란 파이프오르간이 있고 송풍구가 지하에 있답니다. 그 파이프오르간 송풍구는 이필주목사와 박동완전도사(두 분은 33인의 인물)가 등사판으로 3.1독립선언문을 인쇄한 장소랍니다.

난 그 파이프오르간 앞에서 한참을 기웃거려 봤습니다. 지하에 있는 오르간 송풍구를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말입니다. 제일교회 뒤에 러시아대사관이 있는데 출금지역 이였습니다.

 

    -밷엘예배당의 파이프오르간 ; 오르간 지하 송풍구에서 독립선언문등사됐다-

이화학당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남자학당인 배재학당역사박물관을 찾았습니다. 때마침 89회동문회갑연을 하고 있었는데 고택 앞 향나무가 지팡이 세 개에 의지한 채250여년을 수호수로 버텨온 역사의 풍상을 증명하나 싶었습니다.

 

                                      -제일교회-

길 건너 초록담쟁이넝쿨 옷을 때깔 나게 입은 옛 신아일보건물 뒤로 서울시립미슬관엘 듭니다. 구대법원건물이었지요. 정부수립이후 대법원청사였다 서초동으로 이전하고 건물을 개조 2002년 서울시립미술관으로 개장합니다.

미술관 앞 소공원은 돌담길을 걷는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랑받는데 애초엔 옛 독립신문자리였답니다. 독일공사와 육영재단도 여기에 있었다는군요.

 

        -서울립미술관; 옛 대법원청사, 고린트식 전면만 놔두고 전부를 개조했다-

지금 덕수궁돌담길엔 상설거리공연과 예술장터를 연 각종 체험부스들이 즐비하니 들어서 절정에 이른 눈부신 5월의 봄을 만끽하는 시민들로 북새통입니다. 덕수궁돌담길은 일제의 강제분할에 의해 생겼답니다.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고종은 신변의 위험을 느껴 아관파천을 합니다. 그러나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이기자 다시 경운궁(덕수궁)으로 거처를 옮기지요.

 

         -독립신문사, 독일공사,육영공사 터를 소공원으로 조성했다-

경운궁이 덕수궁이라고 부르게 된 건 고종이 왕위를 순종에게 내주고는 경운궁에서 말년을 보낸 1907년입니다. 친일파에 휘둘리던 순종이 조용히 덕을 쌓으며 남은여생을 보내시라는 의미의 덕수로 궁궐의 이름을 바꾸는 것을 승인했습니다.

지금 학계와 문화재 관련 인사들이 덕수궁을 경운궁으로 바꿔야 할지 말지를 치열하게 토론하는 소이라는 군요.

 

                                       -정동돌담길-

서울시민들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도심 한 복판에서 짙은 녹음속을 거닐며 긴박했던 근대사 스토리텔링을 간직한 고풍스런 건물들을 속속들이 엿볼수가 있어서입니다.

돌담길에 넘치는 봄기운으로 온 몸을 샤워하며 어슬렁어슬렁 산책하다 시립미술관, 이화박물관, 배재박물관, 구세군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경찰박물관, 농협박물관등을 관람하다 뻐근해지면 그늘 아래 암데나 엉덩이 걸칠 수도 있어서 말입니다.

 

-정동극장-

나는 정동길을 되짚어 갑니다. 정동극장 앞에서 560여년을 수문장노릇하고 있는 회화나무 옆에서 휴식을 취합니다. 신록의 차일을 비집고 든 햇살이 넝마처럼 춤추는 정동 길에서 성프란치스코회관을 훑고 경향신문사를 얼쩡거리다 앞의 중국인 최초교회인 한성교회를 기웃댑니다. 한성교회 뒤편엔 문화일보지요.

 

-정동극장 앞의 520여 살 된 회화나무-

근대사의 하이라이트들이 촘촘히 모자이크 박힌 정동일대를 해설사, 그리고 나 홀로 다시 되짚어 두 바퀴째 돌다보니 네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다리도 뻐근해졌습니다. 그래도 아쉬움이 절절했습니다.

멍청한데다 이젠 늙어 해설사의 얘기를 대충 외우기가 하늘에 별 따깁니다. 천상 집에서 인터넷으로 공부할 수밖에요. 이슬비 아닌 소나기라도 한줄 쏟아졌음 한결 시원해졌을 텐데 태양은 초록이파리 위에서 은빛으로 부서지고 있습니다. 다릴 쭉 뻗고 싶었습니다.

 

                                    -배재학당박물관-

내일이면 계절의 여왕 5월도 꼬릴 내려야하고 시간의 두께는 역사를 한 꺼풀 더 묻혀버리는 건가요. 아내도 우리 애들도 이 발길이 심드렁하기만 하나 봅니다. 바쁜 세상에 결코 자랑스럽지도 못한 과거에 신명날 리도, 신경 쓸 여력이 있기나 하냐?는 게지요.

젊을 때 하나라도 더 챙기라는 나의 주문에 요즘은 젊음만큼 할 일이 많아서랍니다어쩜 내가 참 부질없단 생각이 듭니다. 해도 정동야행 축제를 위해 열정을 쏟는 젊은이들이 곳곳에 넘치는 건 뿌듯했습니다.

 

                     -손탁호텔 자리에 이화백주년기념관이 섰다-

어떤 일에나 신명이 나야 성취할 수가 있을 테지요.

2015. 05. 30

 

 


 

 

                                  -성프란치스코  교육기관-

                                           -정동극장-

               -구 신아일보별관; 한말의 세무서와 묄렌도르프 사무실도 있었다-

                           -중명전에 보관 전시 된 을사늑약서-

                        -미대사관 방문인파들, 이틀간 개방했다-

                                         -하비브하우스-

                        -미대사관 뜰과 내방객들의 망중한-

                           

                              -덕수궁돌담의 담쟁이 실크옷 -

                                             -구세군 본영-

                                -구세군박물관의 구세군복장 인형-

                                  -구세군박물관의 지구의-

                                   -구 러시아공사관의 망루-

                                          -정동소공원-

                             -망루탑 옆의 상림원빌라정문-

                 -상림원빌라는 서울서 최상의 고급빌라로 유명하다-

                               -덕수궁돌담길. 사시사철 낭만에 빠져드는 길-

 

                                 -정동공원에서 본 러시아망루-

                        -정동길을 찾는 손님들께 쉼터를 제공하는 회화나무-

    -1902년 문 연 손탁호텔은1909년팔레호텔로, 1917년 이화학당으로 주인이 바뀐다-

                                     -이화학생들의 인사-

                         -이화학생들. 내노라 하는 집안의 어린규수들이라-

     - 위는 근대식으로 준공 된 이화학당건물. 아래는 위 건물을 짖기 위해  학생들이 벽돌을 나르고 있는 모습이다. 낙낙해 보이지만 한 두번 이후엔 왕짜증 나는 학교일과 였으리라.-

-위 사진을 보며 필자도 초등학굘 짖기위해 점심시간 후 벽돌나르며 팔뚝에 도장 받아 할당량을 다 채워야 방과후가 됐던, 심난했던 추억이 깨소금마냥 떠 올렸다-

-이화학생들의 기숙사 취침-

-이화의 자랑 유관순&뒷줄 맨 우측-

-정동교회-

 

-250살을 넘긴 향나무-

-옛 古城 같은 구 신아일보사옥은 지나칠 때마다 눈길을 붙든다-

-시립미술관 앞의 소공원 향나무-

-손탁호텔 자리에 들어 선 이화백주년 기념관-

-중국인들 최초인 한성교회-

 

-정동길 끝의 경향신문사-

 

=덕수궁돌담길 난장-

-덕수궁돌담길 난장-

-제일교회앞  로타리-

 

-거리의 악사-

-서울미술관 앞 해태-

 

 

-이화백주년 기념관입구-

                      -5월29일 여명의 서울; 안산봉화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