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물소리길 낙수(穗)

 

 

경기도 양평군은 수도권 상수원인 팔당댐 상류에 있어 개발을 못한 탓에 물과 공기가 맑고 깨끗하기 그지없다.

그런 청정 골에 제주올레길에 버금할 트레일 <물소리길>을 개척한 건 작년인데 나는 오늘 그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중앙선양수역에 내린 건 11시 반경 이였다

엷은 안개가 피어오르는 녹색캔버스에 검푸른 두물머리 강폭이 아련하다그 두 강폭-남한강을 따라 산야를 파고들어 나를 내려놓는 길이 물소리길이란다.

 

 

가정천을 끼고 월계산촌에 드는데 아낙 두 분이 어린뽕잎을 따고 있다. 누에고치용먹이가 아닌 나물 무쳐 먹는단다. 쌉싸름하니 영양도 좋고 약용효과도 있다는 게다. 뽕잎나물이라. 처음 듣는 얘기였다.

 

요즘은 웰빙 식품이라 해서 내 어릴 때 외면했던 것들이 별식이 됐다. 어떤 할배가 무논을 만들곤 논두렁손질을 하고 있다. 그 정경에 눈 팔려 갈림길 이정표를 못 보고 한참을 걷다가 낌새가 뭣해 빠꾸하여 그 할배께 물어 길을 되찾았었다.

 

 

이맘때 모내기철이 되면 논에 물을 넣고 소로 써레질 하던 농촌풍경이 정겨운 누이처럼 떠올랐다. 저 할배의 손에 소 대신 기계로 바뀌었을 뿐 정감은 시공을 넘나든다. 변한 건 써레질뿐만이 아닌 산촌의 풍경이다.

모두가 전원주택 아님 호화별장인 듯하게 멋있다. 덩달아 부용교회도 꽃동산 속에 별장처럼 우뚝하다. 외모라도 호사스러워야 졸부들이 교회 올 맘이 생길지 모른다.

 

 

사자골로 향하는 경사로산길은 오름매트를 깔았는데 본격 푸나무 숲이고 조붓하다. 리기다소나무가 군락을 이룬 산길은 이따금 달려오는 바람에 스킨십 하느라 소살되고, 아카시아꽃대는 향수 뿌리듯 꽃잎을 날린다.

푹신한 낙엽은 간밤의 빗발에 촉촉이 젖어 은근한 질감을 발바닥에 전한다. 간혹 새소리만 들릴 뿐인 고요는 이 숲길의 미궁처럼 이어진다. 내 숨소리마져 적요를 깨뜨리는 성싶어 스틱도 들었다. 그 적막이 그리 좋을 수가 없다.

 

 

이따금 한 무리의 햇빛이 그림자를 길라잡이 하여 소나무사이로 빠져나가곤 한다.  그 햇살의 온기 맛을 맛본 풀이파리가 부르르 떨며 진저릴 친다. 습기 젖은 낙엽도 부시시 이슬을 털고 꼼지락 댄다.

 

적막산간을 빠져나오자 정창손묘역이라. 조선 초기 문신 정창손(1402,태종2~1487,성종18)을 비롯해 정승을 지낸 인물의 묘소가 많아 이 지역을 구정승골로도 불린다.

 

 

선생은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등의 여섯 왕을 뫼시는 동안 벼슬이 영의정 까지 올랐고, 고려사, 세종실록, 치평요람 편찬에 참여했다. 85세까지 천수를 다하며  영화를 누렸었다.

 

그러나 선생은 사후에 폐비윤씨 문제로 갑자사화(1504)때 윤필상, 권주, 이극균, 성준, 이세좌는 목숨을 잃었고 이미 죽은 한치영,한명회,어세겸,심회,김승겸,이파와 함께 정창손은 12간으로 몰려 부관참시 됐

었다.

 

                                     -정창손 묘역-

물소리길은 부침했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수 놓았던 인물들의 스토리텔링이 많아 여길 찾는 우리들에게 마음추스리게 할 장소로도 손색이 없겠단 생각을 해본다.

 

부용2리 앞 들길은 수양버들과 느티나무 밑을 흐르는 개천과 동행한다. 노란 애기똥풀꽃이 길섶에 흐드러지고, 흐르는 물소리에 그림처럼 멋진 산촌이 다사롭다. 상전벽해란 말은 여길 두고 말하는지 모르겠

. 별장지대가 따로 없음이라.

 

재수생들이 예까지 와 기숙하는 정진학원 앞을 지난다. 번잡한 도회를 피해 청정골에서 공부를 하면 훨씬 능률리 오를거다.  

 

                                             -한음 이덕형의 비각-

부용4교를 건너 산비탈로 들어서면 한음이덕형신도비가 단촐 하게 맞는다.

 

세상일은 비바람처럼 변하고(事與風雲變)

강은 세월과 같이 흘러간다(江同歲月流)

고금 영웅의 뜻을(英雄今古意)

모두 한 척의 배에 부친다(都付一虛舟)      -한음의 시-

 

 

한음신도비를 지나면 야트막한 산 비탈길을 계속 걷는데, 우측에 가슴 높이의 철조망이 쳐져 있다. 장뇌삼 밭이라나?. 풋풋한 풀섶길에 야생화들이 나를 향해 요염하게 웃고 있지만 번짓수를 잘 못 짚었다. 난 매파가 아닐뿐더러 그럴 시간도 없다.

그런 싱그러운 신록의 비탈진 숲길 걷기가 좋다왼편엔 실개천에 온갖 풀과 야생화가 융단처럼 깔렸고, 그 너머로 부유한 산촌이 자리한다.

근데 꾀 높고 짙푸른 산 하나를 쪼개 파내어 벌거숭이를 만들고 택지조성이 한참이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

 

                                    -어느 건설사의 난개발이 보인다-

부용산(해발 366m)자락 산꼭대기까지 계단식 전원주택을 만드는 모양인데 그걸 허가해준 양평군수의 심보가 의심스럽다. 물소리길 내느라 군비 6억이 들었다더니 거기서 국물이라도 짜낼 요량인가?

부용산 약수터 물을 받아 해갈하고 전나무 숲을 거닌다. 면적이 얼마나 될까? 울울창창한 힐링숲은 물소리길의 또 하나의 명물이라.

 

 

청계산과 부용산의 안부쯤 될 경계표지에서 일단의 산님들을 조우했다물소리길 걸으며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였다. 여태 사람그림자도 스치질 않은 호젓한 트레킹에 사람을 만나다는 건 가벼운 기쁨이라.

그들이 나더러 쉬었다가란다. 사양하는 내게 껌 두 개를 쥐어준다. 산행 중의 산님들끼리 주전버리 나눠먹는 건 이쁜 산행문화라 할 것이다. 사회에서 누가 그래봐라. 봉변당하기 십상일 테다.  산 속의 순수문화가 아니겠는가!

 

                                                        -몽양 생가-

자연에 귀의한 삶이, 순수한 심정들이 어떤 문화를 만들어가며 살아갈지를 상상하며 몽양생가를 향한다. 허나 몽양여운영선생기념관을 그냥 통과했다. 시간이 어찌 될지 몰라서였다.

빨간 시그널을 촘촘히 달아놔 길 찾기는 쉬운데도 나는 세 번이나 딴

길로 들어서 한참 후에 되돌아서야 했다. 홀로 분위기에 취해 가다보면 엉뚱한 길이어서 되돌아 와 시간 까먹음에 조바심 나기도 했던 것이다.

 

                                                -몽양 기념관-

몽양선생은 근대사인물이라 쬠은 알고 있는데다 국수역까지는 아직 반도 못 왔나 싶어서였다. 

이곳 함양 여씨 집안에는 조선 정조 무렵 시인으로 이름난 정초부(鄭樵夫)라는 노비도 있었다. 그는 ()씨 성을 쓰는 나무꾼(樵夫)’이라고 그렇게 불렀었다.

서당개 십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노비는 어릴 적부터 주인의 책읽는 소리를 어깨너머로 외며 자랐다. 그렇게 그는 스스로 글을 깨쳐 시인이 됐다바로 그 정초부가 시를 읊으며 나무를 하러 다니던 길이 몽양 생가에 이르는 부용산 산길이었다.

 

 

신원역에 닿았다. 여기서부터 국수역까진 옛날 경춘선을 자전거길로 탈바꿈시킨 남한강변을 따라가는 코스란 걸 짐작하고 있긴 했다.

검푸른 남한강은 도도하다. 넘칠 듯 흐르면서도 침묵한다. 아까 산골개울물이나 하천들은 잘잘 졸졸 소릴 읊조렸는데 큰 강물은 죽은 듯이 위엄하다. 나무도 울울창창 우거지고 크면 클수록 묵직하고 고요하다. 웬만한 폭풍우에도 끄덕없다.

 

 

근데 사람들은 모이면 모일수록 시끄럽고 어른이 되면 위엄 있어야 하는데 천박해지는 농간꾼들이 많다. 특히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거짓말과 간교한 술수로 세상을 시끄럽게 하곤 한다.

대통령을 비롯해서 거짓말쟁이들은 강산을 찾아 발 부릎 트게 거닐며 물과 나무를 닮아갔음 싶다. 자전거길로 들어섰다. 역시 나 홀로다. 포장길이라 안 좋다. 우측은 깎아지른 산자락에 중앙선철로, 좌측은 남한강을 끼고 달리는 37번 국도다.

 

                                        -도라지 & 양파농장이 많다-

남한강이야 침묵하지만 쌩쌩 달리는 차량들로 물소리길이 찻소리길이 됐다. 이 길은 신원역서 자전거를 빌려타고 달려야했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다.

300~500m가 넘는 터널을 5개나 통과하는 5km쯤 되는 길을 홀로 걷도록 마주치는 사람 하나 없다. 아니 자전거족 한 팀이 터널 속에서 번개같이 스쳐갔을 뿐이다.

걸어서 터널 다섯 개를 통과해보는 경험도 내 평생의 추억창고에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아니 그 트레킹이 아무나 하진 않을 테다.

 

                                                   -도곡터널-

참으로 단조로운 찻소리길(?)이라. 바이크족들이 쉬어갈 수 있는 쉼터에서 목을 축이고 다시 지겨운 포장도로를 걸었다. 부러 갓길의 풀을 밟느라 무료함을 달랠 순 있었으나 발은 쉽게 피곤해진다.

42.195km포장도로를 달리는 마라토너들의 발 고생을 난 상상할 수가 없다. 마지막아트터널은 제법 이색적으로 꾸며놔 그나마 무료함을 덜 수 있었다. 국수역근방엔 남한강지류들이 합류하며 호반을 이뤄 물소리길 달려온 트레킹족들의 피로를 위무해준다.

 

                                           -아트인터널-

목가적인 풍광이 얼마나 평안케 하는지, 무탈했던 완주를 뿌듯하게 하는 거였다품이 크면 자비심과 포용심도 심대하고, 침묵의 위엄을 풍긴다. 울창한 숲과 깊은 강과 넓은 바다가 그걸 웅변한다.

간교한 사람일수록 거짓과 술수로 사욕 채우기에 오리무중이다. 그들의 침묵이 결코 금일 순 없단 걸 시간은 증명해 준다. 거짓이 잠시는 살 수 있을지 몰라도 언젠간 자멸한다.

 

                                             -트레일 쉼터-

물소리길은 그런 진리를 알아채게 해주는지도 모른다.

양수역에서 국수역까지가 1코스(13.8), 국수역에서부터 양평시장까지가 2코스(16.4)로 모두 30.2㎞의 물소리길이 열렸다.  제2코스 트레킹은 담 기회로 미루고 국수역 플랫폼 긴 나무의자에 몸을 걸쳤다.  

다섯시간을 오지게 오지의 숲과 하천과 들판을 누비며 나로부터의 해방의 맛을 만끽했다. 눈을 감는다.

 

 

                              -남한강위의 37번국도-

야트막한 산을 오르내리며 새소리에 귀기울리고, 굽이친 하천을 따라 물 속삭임을 알아채며 제방길을 걸으며  바람의 애길 듣는다.

 

간이 쉼터에서 사람들의 숨결을 느껴보고, 작은 마을을 지나며 질박한 삶의 정취를 감지한다. 그런 오붓한 길들이 주변에 많이 생겼음 좋겠다.양평군은 앞으로 꾸준히 물소리길을 늘려 양평의 청아한 속내를 죄다연결할 계획이란다.

오늘 하루를 한가하게, 오지게 해찰하며 잠시 나를 잊었던 행복한 시간 이였다.

2015.05. 12

                                          -바이클족 쉼터-

 

 

 

 

 

                                                       -부용교회-

 

                                        -물소리길 안내판-

 

 

 

 

 

 

 

 

-정진학원-

 

-전원 & 주택들-

 

-약수터-

 

-왕골밭& 숲-

 

 

-연리지-

-청계산-

-전원일기마실-

 

 

 

 

-쌍느티나무-

 

-정창손 사당-

-두물머리-

 

-첨이자 마지막인 산님들과의 조우-

 

 

 

-주택업자의 난개발모습-

 

-남한강과 37번국도와 바이클로드와 물소리길-

 

-바위벼랑 위의 양봉-

 

-남한강-

 

 

 

 

 

 

 

 

-유일하게 마주 친 바이클족들-

 

-바이클족들의 쉼터-

 

 

 

-물소리길&중앙선-

 

 

 

양수역사-

 

 

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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