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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홍길동전의 별천지 찾아 1박2일 - 위도

홍길동전의 별천지 찾아 1박2일 – 위도

 

                            -논금해수욕장의 석양-

하얀 터널을 이룬 벚꽃 길은 별천지를 향하는 ‘모인’님들을 전송이나 하려는 듯 꽃비를 내린다. 격포항에 닿을 때까지 간헐적으로 퍼붓는 꽃비에 흠뻑 젖은 나는 벌써부터 별천지를 향한 꿈에 한껏 가슴 부풀리고 있었다.

열시 반, 카페리 호에 승선했다. 검푸른 창해를 가르는 선상의 바닷바람은 외투후드로도 감당키 뭣한 한기를 품고 있다. 검푸른 바다에 흰 포말을 일상의 하품인 듯 꼬리남기며 떠나는 여정은 도회인의 로망이기도 하다.

 

 

11시쯤 고슴도치섬 파장금항에 첫발을 내디뎠다. 카페리호가 쏟아낸 수백 명의 여객들이 흡사 반세기 전의 파장금만시를 재현케 하려나 싶은 거였다.

서해훼리호위령탑을 향하여 해안길을 걷다가 곧장 파장봉산도를 오른다. 파장봉과 망월봉을 잇는 파란다리에 올라 망월봉을 오르면서 본격 위도종주산행을 시작하는 거였다.

 

 

한숨 차게 오르니 파장금항이 한눈에, 좀 전에 내렸던 선착장너머로 위도방파제가 갑문을 이루고 딴정금과 새끼섬들이 해무 속에, 더 멀리 식도가 어슴푸레한데 해무 가득안고 있는 저 바다가 반세기 전엔 조기잡이 배들이 안개처럼 해면을 뒤덮였단다.

조기잡이 황금어장인 칠산어장, 동지나해에서 겨울을 보낸 조기떼가 봄이 되면 북상하며 산란길에 오른다. 3월엔 흑산도, 4월은 칠산 앞바다. 5월은 태안격렬비열도를 지나 연평도와 황해도 장산곶에 이르러 알을 낳는단다.

 

                                   -위도 방파제-

지금 이때 저기앞바다엔 1000여척의 고깃배가 몰려들어 불야성을 이뤄 장관을 펼쳤을 테다. 다시 망월봉을 향한다. 섬모양이 고슴도치처럼 생겼다 해서 붙은 이름이 위도라. 섬의 등줄기를 타고 북서진하면 망월봉, 도재봉, 망금봉을 거쳐 진막에 이르는 약7km 섬 종주코스인데, 동쪽의 리아스식 해안과 올망졸망한 섬들이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고, 서쪽으론 망망대해가 상상의 나랠 펴게 한다.

 

                                         -파장금만-

섬산행의 옹골참은 탁 트인 대해에 일상의 체증을 맘껏 걸러낸 채 창해를 날갯짓하며 푸른 시원을 향해 상상의 로망을 편다는 점이다.

바닷바람이 차가워서인지 산골밭뙤기에 유채꽃만 흐드러질 뿐 진달래도 벚꽃도 이제 꽃망울 터트렸다. 민들레, 바람꽃, 춘란을 비롯한 야생화들이 떼 지어 웃고 있고, 고사리가 앙증맞게 여린 주먹손을 내밀고 있다. 짬나면 고사리 꺾는단 말 나오게 됐다.

 

                                         -망월봉에서 본 파장금-

정오를 훨씬 넘겨 망월봉에 올랐다. 망월정이 낭만적인 식당이 됐다. 쑥 개떡을 싸가지고 온 나는 잔디에 앉아 다리 쭉 뻗었는데 발부리에 고사리 두 개가 주먹을 내민 채 조심하란다.

난 두 놈과 대활 해보고 싶은데 그들의 언어를 모른다. 따스한 햇살이 등짝을 애무하고, 시원한 바닷바람과 짭조름한 향이 식욕을 돋우는 산상의 점심자린 산님들만의 레스토랑이다.

 

 

그나저나 허균도 여길 올라왔을까? 400년 전의 그의 이곳 행적이 궁금해졌다. 장성출신 홍길동을 활빈당두목으로 앞세워 호민세상을 이루고자했던 그는 그런 별천지로 위도를 생각했단 속설 탓이라.

한양과 중국남경사이의 율도국이란 유토피아는 고슴도치섬이라는 말이 다분히 현실성이 있어서다. 허균이 부안 반계에서 홍길동전을 쓸 때 위도는 조기파시로 각광받던 섬이라.

 

 

그 소문 땜이라도 그는 목선을 타고 틀림없이 이 섬을 샅샅이 여행하며 별천지로망의 섬으로 생각했음 직한 거였다. 그래 허균도 이 섬의 가장 높은 망월봉에 올랐지 싶은 거다.

400년 전에 차별이 없는, 백성이 주인인 참민주주의 세상 - 율도국을 꿈꿨었는데, 아직도 우린 온갖 차별로 갈기갈기 찢어놓으려 드는 위정자들의 권모술수에 이용당하고 있지 싶어 슬프다.

 

                                 -위도 서쪽해안도로-

단 돈 몇 만원이 없어 죽은 3모녀의 비극이 엊그젠데, 몇 십억 원을 뿌리고 성에 차질 않아 죽은 자와, 그 부정한 돈 몇 억 원씩 먹고 오리발 내밀며 망자를 욕하는 위정자들이 활보하니 역겹단 생각에 자릴 털었다.

도재봉을 향하는 하강이 가파르다. 풀속의 야생화와 연두색 싹 튀우는 잡목들 훔쳐보는 재미에 빠지다, 서쪽바다물이 빠지고 큰딴치도와 작은딴치도를 잇는 모새의 기적이 펼쳐지고 있는 거였다. 난 모새의 기적을 찾아 하산한다.

 

                                      -큰딴지`작은딴지 갯벌-

노란유채꽃을 깐 치도마을이 고샅을 내주고 물 빠진 갯벌을 펼쳐주는데 섣불리 발 디딜 수가 없었다. 한가한, 넘 한적한 것 같은 어촌의 평온한 갯벌이 나를 평정시키는 거였다. 방파제 뒤에서 한 노파가 바지락을 캐고 있었다.

그 넓은 갯벌에 오직 한 노파. 기침하며 다가섰다. 굼뜬 노파가 놀란 듯 날 쳐다봤다. 목례를 하고 자갈갯벌에 나도 쭈그리고 앉았다. 마을아낙들이 모새의 길을 건너 딴지섬으로 조개를 캐러 나갔으나 다리가 불편하여 혼자 남아 자갈갯벌을 호미질 하고 있었다.

 

                                    -치도마을 앞 모새의 기적-

갖고 있는 과자를 꺼내 노파와 나눠씹으며 잠시 한담을 했다. 노인의 슬픔은 나이 먹는 게 아니라 몸 성칠 못한 것과 할 일이 없다는 것일 것이다.

불편한 다리지만 여기라도 나와 조갤 캘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족하는 노파의 얼굴이 보기 좋았다. 끼욱끼욱 우는 갈매기가 노파의 치구인가 싶은 갯벌을, 방파제를 거닐며 노파의 모습에 나를 오버랩 시켜봤다.

 

                                  -큰딴지와 작은딴지섬 사이-

나도 더 늙어서 조개라도 캘 수 있음 행복할 것 같았다. 갯벌을 빠져나와 깊은금길을 따라 내원암을 향했다. 도재봉과 만금봉계곡을 가르는 상수로가 깊은금길인데 한시간남짓 걸어도 인적도, 이정표도 없어 초조했다.

사이클여행 중인 한 가족을 만나 내원암 가는 길을 확신하기 전까진 말이다. 암자에 들어서며 태양의전설(총무)과 일행을 조우했다. 내 깐엔 반가웠다.

 

 

단체를 이탈한 나의 행적을 알 리 없는 그는 저기 언덕에 빤히 보이는 펜션을 가리키며 우리들의 숙소라고 일러줬다. 서(영일)샘이 말했던 묵은 배롱나무 한 그루가 암자를 대신할 만큼 볼품없는 내원암을 뒤로하고 펜션을 향했다.

총무에게 청했다. “유명한 논금해수욕장석양을 보고 싶은데 방법이 없겠느냐?” . “갖고 온 차를 이용하자는 총무님의 흔쾌한 대답이 얼마나 고마웠다.

 

                                   -숙소인 깊은금펜션-

다만 나 땜에 바쁜 총무님의 시간과 차까지 차출해야 한다는 사실이 미안키는 했지만 말이다. 그 미안함을 좀이라도 덜까하고 노을구경꾼 일행으로 한여사사총사를 섭외하여 저녁식사 후 섬끝 석금을 향했다.

미영금해수욕장 물개바위와 단애사이로 떨어지는 낙조는 일품 이였다.(이 사진과 조개 캐는 노파사진을 비롯한 십여 컷을 잘 못 포맷하여 사라져버려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른다) 이윽고 논금해수욕장에서의 낙조는 엷은 구름으로 아쉬웠다.

 

                                              -논금 일몰-

저녁식사를 하는둥 마는둥 길라잡이 한 총무님에게 미안코 고마웠다. 나는 초저녁 모여섬을 뒷발굽치 끝에 달고 해안을 답사했다. 하늘과 바다와 뭍이 온통 암흑인데, 한줄기의 여린 빛이 어슴프레 역광하는 어둠이 이리 멋있단 걸 새삼 느끼는 산보였다. 모인임원님들의 수고로움 속에 깊은금펜션의 하룻밤은 캄캄한 바닷물처럼 깊어갔다.

12일 새벽6, 선잠으로 지샌 난 간단히 샤워를 하고 일출 맞으러 펜션을 나섰다. 고슴도치 뒷발하나가 튀어나온 형국의 어딘가에서 일출을 맞을까 싶어서였다.

 

 

짙은 구름 탓에 해돋이는 접고 해안바위를 건너뛰며 새벽의 바닷바람에 몸뚱일 맡겼다. 차갑고 풋 비린내 나는 청옥바다는 나처럼 설 잠을 깨는지 슬며시 달려와 검붉은 바위에 얼굴을 문지르며 거품을 일으킨다.

그 세안(洗眼)소리가 감미롭다. 망망대해, 해무 속으로 사라지는 해안가, 시꺼먼 산자락 어디든 사람그림자 하나 없는 고적한 새벽의 나 홀로는 얼마 만에 갖는 낭만의 시간인가!

 

                                 -모여도를 바라보는 펜션-

사르르~ 찰싹 사르르~찰싹 하며 말 걸어오는 창해의 밀어를 바위만 알아듣는가? 풀벌레도, 가까이 잠든 산짐승들도, 물고기도 알아들을 테다. 미련한 나만 빼곤 말이다.

내가 시인이라면 저 속삭임을 시어(詩語)로 옮길 수도 있을 텐데~? 션에 돌아와 아침을 들고 일행 모두들 해안도로 일주버스투어를 떠났는데 나 혼자 고슴도치발부리 동쪽해안가를 트레킹하기로 했다.

 

 

카페리호 출항시간 11시 반까지 파장금항에 도착하면 되니 세 시간 남짓의 시간인 셈이다.

어제 오후 내내 걸었는데도 몸은 가벼웠다. 고슴도치 네 발과 뱃살 해안가를 훑는데 세 시간이면 될 것 같아 총무와 몇몇 일행에게 알리고 동남쪽해안 길을 따라나섰다.

 

                            

잊을만하면 나타나 웃는 들꽃들, 새순 싹 뚝 잘려난 두릅나무의 눈물의 열병, 알아들을 수 없는 밀어를 속삭여대는 포말, 해무 속에 깊은 잠에 빠진 섬들과 창해의 뿌연 장막이 유일한 길동무다.

고슴도치발하나를 무질러 위도해수욕장에 들어섰다. 동구언덕배기에서 거대한 팽나무가 마중했다. 제법 큰 마을 해수욕장은 파시로 썰렁하고 쪽배 몇 척만이 모래사장에 영광의 순간을 점치고 있나싶었다.

 

                              -동쪽해안도로의 범선조형물-

면사무소와 파출소, 초등학교가 있으나 스치는 건 차량 몇 대뿐, 인적이 없는 해안모정에서 배낭을 풀고 목을 축였다. 이제부턴 앞발 길게 뻗은 벌금항을 향한다.

인터넷서핑에서 논금일몰과 벌금항 용벌풍광이 비경이란 걸 알고 꼭 찾아보고 싶었던 곳이다. 언덕빼기를 한참 올라 당재를 훑고 벌금리삼거리에 들어서면 어촌 아닌 한적한 도회 한 귀퉁이에 들어선 기분이 든다.

 

 

주민도 몇 분 만나 벌금리 볼 만한 곳을 묻고 안내를 받기도 했는데 모처럼 사람 사는 냄새를 맡는 거였다. 벌금항은 쭉 뻗은 해안가 끝에 패항이 돼 을씨년스럽게 있었는데, 비경은 시멘트 길로 잇은 바위섬의 단애와 앞의 섬들을 그림처럼 안은 바다풍광 이였다.

특히 해무 속에 정금도를 비롯한 섬들이 한 폭의 수묵화를 그렸다. 옛날 여기가 유명한 소금생산으로 소금벌이라 했던 게 벌금의 어원이란다.

 

                                        -용벌앞 섬들-

다시 되짚어 나와 정금도를 향했다. 시멘트다리로 연결한 섬은 제법 큰데 어쩌다 마주친 사람에게 볼거릴 묻자 한사코 발품 할 만한 곳이 없단다. 여간 맥 빠지게 했다.

벌금리를 비롯한 위도의 마을을 걸으며 확신한 점은 위도는 별천지답게 희망이 용솟고 있다는 거였다. 육지농촌은 이농으로 폐허가 돼 가는데 위도는 마을마다 펜션과 민박이 성황이고 곳곳에서 펜션신축이 진행되고 있어서였다.

 

                                                  -용벌-

홍길동전의 유토피아-이상향이란 곳이 여기란 확신이 드는 거였다. 한때 1000여척의 고깃배가 매일 4천만마리의 조기를 잡아오고(영광굴비) 5천여 명의 어부와 주민이 북적댔던 황금시대가 사라진가 싶은 오늘날 관광산업으로 호황을 구가하고 있어서다.

청정해역인 섬 어디든 낚싯대를 드리우면 도미, 우럭, 농어, 광어 등이 낚이고, 경관이 수려한 위도 팔경에 맑은 물과 은빛모래, 수심이 얕은 천혜의 도장금 해수욕장, 섬 곳곳에 빨간 동백이 만개하여 장관을 이룬단다.

 

                                 -벌금항 단애-

음력 정초초이튿날 저녁에 벌금마을에선 뒷산 산지터에서 원당제라는 제사를 모시는데, 여러 군데에서 행하여져 위도의 자랑스런 풍속이 됐.

서해훼리호위령탑을 향한다. 1993, 정원은 221명인데 141명을 초과 승선시켜 침몰한 서해훼리호는 생존자 70, 사망자는 292명의 대형조난사고 였다.

 

                                -소형배들만의 위도해수욕장-

그 비극이 1년 전, 416일 세월호침몰이란 참사가 되풀이 됐으나 정부는 무슨 꿍꿍이 속인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진상규명과 재발방지책을 흐지부지 세월흐름에 맡길까싶어? 의뭉스러운 것이다.    서해훼리호참사 때 제대로 된 볍령을 만들고 준수했음 세월호의 비극을 야기시키진 않았을 것 아닌가.

허균이 환생한다면 이 정부를 향해 어떤 풍자소설을 한 편 창작할지 상상의 나래를 펴본다. 11시쯤 파장금선착장에 닿았다. 너무 일찍 왔다.

 

                                        -칠산 앞바다-

착장 앞에 큰 볼거리 바위웅덩이가 있어 가봤다. 온갖 쓰레기장이었다. 청소하고 깨끗이 관리하여 관광지로 사용해도 멋진 장소였다.

이상향-율도국을 드나드는 관문 코앞에 쓰레기라니? 위도지자체의 정신머리가 어디에 있는지가 서글펐다. 그 바위웅덩이 뒤쪽을 감아올라 꼭지에 서봤다.

 

                                 -파장금항 코앞의 석혈-

파장금항 일대와 칠산 앞바다가 훤히 조망되는 명소였다. 아닌 게 아니라 바위위에 건물 두 동을 짓느라 기초공사를 해놓은  채 방치한 상태였다.

사오십년 전, 황금어장일 때 위도에선 정월초이튿날 도재를 지내고 초사흗날에 도깨비불을 보기위해 도재봉에 올랐다. 이때 도개비불이 나타나 하나가 둘, 넷, 여덟 개로 불어나 반짝반짝 명멸하면 산에 올라 산망(山望)을 하고 도깨비불이 있는 쪽을 봐두었다가 그 해에 그곳을 찾아가 어장으로 설정하여 풍어를 했었다.

 

                              -갑문안의 카페리호-

비록 높진 않지만 느닷없이 도깨비불이 나타났을 때에 산망자리로 이 바위꼭지도 한 몫 했지 싶었다. 그런 스토리텔링의 명소를 쓰레기장으로 방치한다니 얼빠진 친구들이란 생각이 드는 거였다.

11;50분발 카페리호에 탑승했다.  한시간 쯤 해무 속의 검푸른 바다를 가르고 격포항에 닻을 내리자마자 버스에 올라 부안댐으로 향한다.

 

 

시간도 여유가 있어 모인님들이 횟감점심을 들고 산회하잔다길가에, 댐 공원에 벚꽃이 눈 날리듯, 아니 이화우(梨花雨) 쏟아지듯 한다. 거 참 이상하다. ‘모인과의 인연이 말이다.

작년 말, ‘모인을 처음 찾았을 때도 눈 폭탄이 쏟아져 기녀매화를 초대해 산행기를 썼었는데 오늘도 벚꽃이 이회우처럼 휘날리니 말이다. 좋은 인연이려니!

 

 

모인 인들이 푸근하고 격의 없어 정감이 쏠린다. 특히 이틀간 제게 눈길 멈춰준 총무님께 감사드린다.

2015. 04. 11~12.

 

 

                                      -한여사&사총사-

 

*주황선=첫날 석식까지 *분홍선=석양에서 밤9시 *노랑선=둘쨋날코스

 

                               -작은딴지도 앞의 갯벌-

 

 

 

 

                                   -밤의 해안바위군-

-숙소인 펜션야경-

 

                              -벌금에서 용벌 잇는 길-

                                     -용벌의 채석강단애-

                           -용벌에서 본 정금도-

                                   -벌금항 단애와 소나무-

                             -위도고슴도치해수욕장의 팽나무-

 

                               -정금도에서 본 벌금리-

                                    -정금도 옆 군함섬-

 

-항만 바위웅덩이-

 

 

 

 

-미영금해수욕장의 일몰-

 

 

 

                       -쓰레기장 된 항만코 앞의 바위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