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에서 젖가슴 찾아 다섯 시간 - 마이산
얼핏 깬 잠자리가 천둥이 요란하게 울어대는 통에 오줌길만 밝힌 채 뜬 밤을 새우고 아침일찍 20번 고속국도를 탔다. 무진장이 가까워지자 누리는 하얗게 단장을 했다. 차창에 밀려드는 눈꽃은 산님들을 감탄케 하고 탄성은 차창을 뿌옇게 흐려놓는다.
진안휴게소에서 오줌누고나온 세상은 눈부신 설국이라. 아~! 간밤의 천둥은 설국을 만드느라 그렇게 울어댔던 모양이다. 근데 하늘이 없다. 천둥이 울고 번갯불이 튀자 놀란 하늘은 도망을 치고 잿빛허공만 남았나싶다.
그 뿌연 허공에 어렴풋이 솟은 봉우리, 봉긋 솟은 우윳빛 봉우리는 여인의 젖가슴이라. 그 엷은 가슴선이 몽환적이다. 만지고 싶다. 애무하고프다. 후딱 차에 올라 여인을 찾아 진안 쪽으로 달린다.
기막힌 눈꽃세상은 탐스런 여인의 가슴까지 내보이며 흥분케 한다. 설국골짝을 파고드는데 그 젖가슴이 사라졌다. 무작정 달릴게 아니란 생각에 합미산성(合米山城)을 찾았다. 백제 때의 쌀 곳간에 혹여 여인이 숨어들었을지 몰라서였다.
허탕이라. 흰 눈 뒤집어쓴 잔챙이수풀이 발길을 붙들고, 헉헉대는 발길질에 놀란 소복차림 나무들이 눈 폭탄을 쏟아 붓는다. 눈 세례 맞은 어느 산님이 투덜대며 이죽댄다.
“금년 들어 첫눈이 많이도 내렸다”라고.
며칠 전에 설 쇘으니 설국 만드느라 천둥은 또 울고 번개불꽃을 몇 번 더 튀길 것이다. 춘삼월인데도 말이다. 그나저나 여인이, 젖가슴이 안 보인다.
이 골짝 이 산을 봄에는 쌍돛대 같다 해서 돛대봉이라 하고, 여름에는 녹음 속에 솟은 용의 뿔 같다 해서 용각봉(龍角峰), 가을에는 말의 귀 같다 해서 마이봉(馬耳峰)이고 겨울엔 하얀 설국 속에 솟은 봉이 검은 붓 같다 하여 문필봉(文筆峰)이라 한단다. 허나 오늘 난 하얀 설국 속의 문필봉을 유방봉(乳房峰)으로 부르기로 했다.
저렇게 큰 붓이 있을 리 만무한데다 통실하게 솟은 우윳빛 봉우리는 영락없는 젖가슴이며 검은 꼭지가 유두여서 말이다. 그 젖무덤도 탱탱한 처녀 아님 농숙한 여인의 유방이라. 그 젖가슴을 찾으러 설산을 후빈다.
- 비룡대와 유방봉-
이성계(고려 우왕 6년,1380)는 전라도 운봉의 황산싸움에서 왜구를 무찌르고 귀경하다 마이산 아래를 지나다 깜짝 놀랐다. 꿈에 신선으로부터 금자(金尺)를 받던 곳이 마이산과 똑같아서였다. 그래서 산 이름이 속금산(束金山)이라 했다.
근데 아버지(태조 이성계)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들 태종이 말의 귀를 닮았다고 해서 마이산이라 부르게 됐고, 그러게 일부러 격을 낮춰 부른 마이산이 오늘날까지 사용됐단다.
어쨌거나 나는 아까 휴게소에서 본 봉긋한 쌍봉 -젖무덤을 찾아 설산을 기어들었다.
온갖 눈꽃들이 나의 시선을 붙들려하지만 봉긋한 유방에 홀린 나의 눈엔 오직 아까 살짝 뵌 젖가슴만 아른거릴 뿐이다. 우둘투둘한 거대한 바위덩이 광대봉(698.3m)이 발밑에 깔렸다. 저만치 회색허공 속에 희미한 선이 유방하나를 만들어 엷은 안무로 베일 친다.
나의 발걸음이 빨라지지만 이내 그 유방은 또 사라졌다. 이때부터 나는 줄곧 유방과 숨바꼭질을 하며 설산을 헤매는데 그 유방의 모습이 나타날 때마다 쬠씩 다르다.
아주 멀리서 복숭아처럼 하얗게 솟다가, 안무 속에 제법 또렷하게 나타나 주변에 많은 유들유들한 돌기를 돋기도 했다. 어떤 땐 뒤에 다른 유방을 살짝 숨긴 챈데 회색안무로 살짝 가릴 때의 몽환적인 성감대는 숨 멎게끔 멋지다.
마이산 아니, 유방산은 겨울 설국일 때 가장 아름답고 유혹적인 산일 것 같다. 눈꽃 만발한 겨울철 유방산을 보지 않고 마이산을 아는 척 하지 말라. 무릇 미적이고 매혹적인 것은 실체를 보일락 말락 할 때가 절정이고, 여인의 아름다움은 미궁에서 오묘한 신비감을 자아낸다.
나옹선사가 유방산의 아름다움이 신비경인 이곳 암자금당사 자리, 고금당 나옹암에 정좌하고 선에 든 까닭을 헤아려본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허나 속물인 내가 실체가 묘연한 젖가슴만 보고도 갈피를 못 잡는데 모든 걸 내려놓고 바람같이 살라니, 그럼 무슨 재미로 뭣 땜에 살지? 답이 안 떠오른다.
굽이굽이 포갠 하얀능선 뒤로 비룡대가 우뚝 솟아 손짓한다. 싻 수 노오란 주책덩이가 나옹선사 붙들고 씨름해봐야?니 빨랑 달려오라는 거다. 여인의 젖가슴은 이쪽이란 거다. 스님께 인살 하는 둥 마는 둥 눈 덮인 바윌 내달린다.
비룡대에서 마주친 젖가슴은 매혹적이다. 풍만한 유방은 눈을 뗄 수 없게 고혹적이다. 오동통한 돌기들 속에 봉긋 솟은 우윳빛유방은 살아 숨쉬는 것 같다. 만질 수가 없어 디카에 수없이 가뒀다. 풍만한 유방에 맘과 시선 뺏긴 채 봉두봉을 향한다.
눈꽃사이로 이따금 들이미는 거대한 유방은 나를 압도한다. 스킨십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애무는 어디서부터 할지?를 기죽어 눈만 말똥말똥해질 뿐이다. 아까부턴 우윳빛유방의 뽀오얀 살갗은 사라지고 움푹움푹 파여 우둘투둘한 피부는 설굳은 거대한시멘트 암산을 이뤘다.
타포니(Taffoni)란 역암층인데 땅속에 잠긴 부분까지 합하면 1,500m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덩어리란다. 1억 년 전 중생대 백악기쯤, 호수였던 곳이 마그마로 분출하며 솟아올라 바위산을 이뤘고, 정상이 V자로 갈라져 열곡(裂谷)이란 골짜기가 생긴 게 마이산이란다.
그 암마이산과 숫마이산의 열곡에 약 80여 개의 돌탑들이 제각기 자리를 잡고 서있다. 3, 4층 높이에 이르는 탑도 100년 넘게 폭풍우 견디며 세월을 삭혀, 신기하다 못해 신성하기까지 하여 탐방객들은 탑신을 돌며 기도 하다. 구한 말 이곳에서 수도하던 이갑룡(1860~1957년) 처사가 계시를 받고 30년 동안 홀로 108탑을 쌓은 치성의 위대함이라.
그 돌탑 밑 샘물은 약수로 섬진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난 조롱박으로 그 약수를 퍼 꿀꺽꿀꺽 마셔 오장육부를 관장했다. 태조 이성계가 이곳 물을 마시고 물이 은같이 맑다 하여 유래한다는 은수사를 향한다.
탐스럽다기보단 탱탱하게 솟은 유방-숫마이봉 아래 은수사 삼신각마당에 거대한 용처럼 꿈틀대는 적송에 기대어 마이봉골짝을 일별하는 풍광은 별천지라.
1억년전의 마그마의 분출로 빚은 열곡에서 600년 전의 이성계가 마신 물맛을 보고, 100년 전 어느 처사가 30년을 수도하듯 쌓은 돌탑을 돌아 조망하며, 젖가슴 더듬으려 설국을 내달렸던 오늘의 나를 돌아봤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두 젖가슴 사이 열곡에 나무데크로 계단을 만들어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을 영원히 포옹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들의 뽀오얀 피부가 거칠게 숭숭파이고 우둘툴 한 까닭은 포옹할 수 없는 상사병앓이 땜일 것 같다.
어느 여산님이(절대 이름 밝히지 말라며, 팔이 길어야 한댔지만 내 생각엔 팔이 짧아야 찐하게 할 것 같다) 요즘은 포옹샷 하지 않으면 맹물이라 했고, 나라에서도 간통죄는 죄가 아니라고 했다.
내 몸뚱아리로 내 재미 보겠다는 데, 그렇게 즐기다 누군가 섭한 사람 생기면 내알아서 처신할 텐데, 나라님이 벌주고 벌금 물리는 짓은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한 것이란 걸 이제 깨우쳤나보다. 이스람국가도 아니었잖아~!
야동 즐기던 어느 여자가 마이산에 저지른 잘못 하나도 우릴 슬프게 한다. 여기서 간절하게 수도를 한 산신부부는 승천할 날이 되었다. 승천 장면을 사람들이 보면 부정을 타니 한밤중에 떠나자는 남편신과 새벽에 떠나자는 부인신이 고민 고민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여신의 말대로 새벽을 택했다.
근데 새벽에 물 길러 나왔던 야동 아낙네가 승천장면을 보고 “아니 산이 붙어 하늘로 올라가네” 라고 놀라는 바람에 부정을 타 승천이 무산되었다. 화가 난 남신은 여신에게서 아기를 빼앗아 곁에 애기봉을 만들었고, 여신은 삐져 외면한 채 고개를 떨구고 있단다.
고작 백년 남짓 살아가는 인간의 애욕과 심술이 그럴진데 억년을 스킨십한 암수마이산에 나무계단을 만들어 딱 갈라놓았으니 그 원망을 누가 받을 텐가?
곱고 매력적인 유방산이 겨울눈발 속에서도 구멍 숭숭 뚫리고 까칠해진 건 순전히 우리네의 이기심 탓이 아닐까? 생각해보며 열곡을 넘어 북부주차장을 향한다. 나는 오늘도 꼴찌일 테다. 족쇄 채운 암마이산 젖봉우린 손도 드밀어보지 못하고 말이다.
나야 이해한다 치자. 숫마이산이 밤중에 암마이산을 찾아 포옹샷 하고파도 족쇄를 채워놨으니 이 무슨 심술인고?
2015. 03. 01
-합미산성-
- 은수사대적광전과 숫마이봉 -
- 고금당 나옹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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