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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설국-덕유산의 눈꽃아트페어

설국-덕유산의 눈꽃아트페어

 

어제 밤 내내 겨울가랑비가 내리자 나는 오금이 저였다. 덕유산상고대의 데자뷰에 달뜨고 있었던 것이다. 설산-덕유의 눈꽃아트페어가 미치도록 궁금해지는 거였다. 얼른 한솔에 전활 넣고 아침에 무주리조트를 향한다.

 

곤도라를 이용한 덕유산코스를 밟으려는 거였다. 9시 반의 설천지구는 안무에 절여있고 가뭇없이 내리는 눈발은 누리를 설국으로 단장해 놨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들 왔는지 벌써 리프트주차장엔 차와 인파로 법석댄다. 일진이 빡빡할 땐 곤도라 타는데 한두 시간 줄서야한다는 귀띔은 들은지라 냅다 직진한다. 다행이 얼른 탑승했다.

 

탑승장에 내렸을 땐 눈발은 멈췄다. 하얀 설국이 안무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면 갈수록 진풍경을 연출한다. 온 누리는 연회색 아님 순백의 무채색이다. 죽어 천년을 살고 있다는 주목시신만이 여기가 덕유산이란 걸 상징할 뿐이다.

 

향적봉을 향한다. 여기가 고도 1400m쯤 될 터인데, 푹푹 빠지는 눈에 미끄러지며 시린 겨울공기와 맞서며 향적봉을 오르는 사람이 이리도 많은 것은, 별 고생안고 덕유산의 상고대를 즐길 수 있어서일 테다. 하여 나이 지긋한 분도, 어린애들도 많아 줄서기는 계속된다.

하긴 곤도라 타고 와서 상고대의 신비에 취몽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춥고 배고프면 곤도라로 하산하면 되니 누군들 이 별난 여행을 망설일 건가.

몰라서 안 올 뿐이라. 땜에 무주리조트는 리프트 타러오는 알파인보다 어중이떠중이 탐방객들이 진객이 된 성싶었다.

 

향적봉을 오르는 설국의 눈꽃세상은 언어도단이라. 내 짧은 세치 혀로 표현할 말이 생가나질 않아 답답할 뿐이다. 그저 오늘 이곳에 오길 천만번의 행복이라고 옹골찬 기쁨뿐 이였다. 덕유산의 나무들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라면 나무들로부터 뺨 맞을 소릴까?

눈과 바람과 기온이란 삼박자가 조화로워야 상고대와 눈꽃을 피울 수가 있을 테니 이곳의 나무들만이 흰 눈꽃 만들 수가 있어서다. 눈꽃단장을 아무나무나 하며, 겨울이라고 무시로 할 수 있나?

 

향적봉(1614m)엔 산님들로 만원이라. 날씨한지 푸근하니 떠날 줄을 모른다. 시계가 안무에 가려 몽유에 빠지기라도 한 걸까? 오후엔 갠다고 했는데 운무가 넘 두텁다.

만약 안무 속으로 햇살이 빗살치고, 안개가 한 꺼풀씩 벗겨지다 파란하늘이 기웃댄다면, 그래 쨍한 햇살이 설국을 눈부시게 역광 한다면 설산덕유의 눈꽃전시는 우주의 신비가 빚는 예술일 게다.

 

나는 눈꽃아트페어에 초청장 없이 입장한 억세게 운 좋은, 대박친 인생인 게다. 그렇게나 나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다. 지금 이렇게 흐드러진 눈꽃아트페어에 눈 시리고, 감당할 가슴이 좁아 터지는데도 더 멋있는, 더 황홀한 아트페어를 꿈꾸는 욕심이 똥창까지 베긴 놈인 것이다.

절제하는, 버리는, 내려놓는, 나아가서 베푸는 삶이란 게 얼마나 지고지순한 인생인지를 씹고만 있는 것이다. 무상으로 주는 자연의 신비한 황홀경을 나태하거나 겁나서 즐기지 못하는 분들은 얼마나 불쌍한 사람들일까.

 

여건은 갖췄으면서 몰라서 못하는 사람은 얼마나 짠한 인생인가. 산님이 된 것만으로 행운인 셈이다. 향적봉에서 중봉까지 설토에 파묻혀 허우적대는 땅딸이 나무들이 애처롭다. 포도시 나지 몇 개 내놓고 손짓하다 그마져 눈덩이 꽃을 피웠다.

안무는 몇 십 미터 앞까지 다가서 아트페어를 삼키고 있다. 송계삼거리에서 동업령으로 이어지는 눈꽃은 산호초다. 산호초터널을 거니는 스릴은 경이로움이라.

 

피란하늘이 있담 영락없는 심해를 유영함이라. 그 탐스런 산호초 숲을 뚱돼지 같은 내가 인어처럼 맘껏 헤엄친다고 생각하니 정말 바다 속인 듯싶은 거였다.

언제 산호초(상고대) 우거진 청명한 날을 벼르고 잡아 헤엄을 쳐야지! 날씨가 오살 맞게 춥고 햇살이 쏟아지는 청명한 덕유-남덕유산를 여시처럼 엿보고 있어야지.

 

칠연계곡을 달린다. 내리막에 두텁게 눈까지 쌓였으니 아이젠신발도 무딜만하다. 숲이 울창하다. 덩치 큰 놈들도 몸뚱이만 놔두곤 눈망태꽃을 피웠다.

눈꽃이 그리 좋아선지 어떤 소나무는 눈망태이고 옆으로 넘어진다. 넘어지는 놈을 의지하여 배낭을 내리고 물 한 모금을 마셨다. 초코와 육포, 커피로 선 채 시장길 때우고 농무(濃霧)를 헤치며 눈꽃터널 속을 거닌다.

 

거대한 적송이 이따금 나타나 안무 속을 후비고 골짝의 숨구멍을 뚫고 있다. 그 숨구멍 탓에 빙하를 흐르는 물소리가 계곡을 울린다. 물의 속삭임이 깊은 칠연계곡의 농무를 타고 골짝을 울린다.

적송들이 세를 이뤄 눈 차일을 쳤다. 노구서어나무 옆에 연리목이 사랑의 영원성을 시연하고 있다. 칠연폭포에서 멱 감던 선녀가 몰래 훔쳐보던 사내(심마니)를 피해 여기까지 달아나다 덩치 큰 서어나무 뒤에 숨었으나 뒷 쫓아온 사내에게 들키고 말았다.

 

반나(半裸)의 선녀 앞에 선 사내. 이내 사내의 이글대는 불꽃에 녹아든 선녀는 마침내 부둥켜안고 정염을 태우다 그대로 나무가 돼버린, 심마니(홍송)와 선녀(서어)의 뒤엉킨 연리목(連理木)을 바라본다.

남녀의 사랑에 대한 로망은 영원불멸이라. 그 사랑 또한 시공간을 뛰어ㅣ넘는다. 심마니가 목욕중인 선녀를 몰래 훔쳐보다 지핀 욕정은 순수한 사랑의 원형일 테다. 본능에 따른 갈구 이외의 어떤 잡념도 끼어들진 않은 순수성이다.

 

그래 그들이 벌거벗고 뒤엉켜있어도 추하지 않다. 어쩌다 갈구로 이어진 사랑도 곧 이해타산을 까는 변질 된 사랑으로 아웅다웅하는 오늘날의 우리에겐 로망으로만 남을까?

한참을 내려가 다리를 건너 칠연폭포를 향한다, 두 남녀의 사랑의 시발점을 보기위해서다. 근데 그 많은 산님들의 발자국은 칠연폭폴 찾지는 안했나 싶었다. 발자국 몇 개 만이 선명하다.

 

 

두 쌍의 커플을 만났을 뿐이다. 그들 사랑의 로망이 눈 위의 발자국마냥 선명할지어다. 칠연연폭포는 골짝의 겨울만큼 켜켜이 고드름으로 길게 쌓여 소에 담구고 가픈 숨을 쉬고 있었다.

그 숨소리가 제법 낭창하다. 숨소리에 뚫린 소는 다시 빙하로 연결됐다. 빙하를 흐르는 속삭임이 사랑의 세레나데라.

하얀 눈꽃의 무대, 연무까지 자욱하게 휘감은 골짝에서 세레나데를 듣는 연인의 가슴은 어떤 황홀경일까! 아까 두 쌍의 커플모습이 떠 올랐다.

 

 

배낭을 내려놓고 그 세레나데에, 숨소리에, 선녀와 심마니의 티 없이 맑은 사랑의 모습을 소(沼)를 들여다보며 그려보았다. 한참을 얼쩡대도 누구하나 인기척 없다. 모두가 사랑에 푹 빠진 땜이일까.

나만 사랑에 목말라 있는가!? 그랬음 싶다. 모두가 진솔한 사랑에 빠졌슴 좋겠다. 안성계곡을 향하는 사랑의 세레나데는 하류로 갈수록 열창한다. 하얀 설국에 눈꽃 만발시켜 아트페어를 일군 덕유산은 사랑의 노래로 피날레를 장식하고 있었다.

 

빙하는 점점 더 숨구멍을 크게 넓히면서 노래소리는 더 고창되고 있었다.

커튼콜을 기대해도 될까?

다시 찾고 싶은 무대, 덕유산 설화`아트페어를~!

2015. 01. 22

 

 

 

 

 

 

 

 

 

 

 

 

 

 

 

 

 

 

 

 

 

                               -홍송과 서어 연리목-

 

 

 

 

 

 

 

 

 

 

 

 

 

 

 

-서어가 목욕했던 선녀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