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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눈꽃 만발한 달마산의 천 개의 얼굴

눈꽃 만발한 달마산의 천 개의 얼굴

 

남쪽을 향하는 서해안고속도로는 설국을 향하나 싶다. 남쪽이기에 눈이 없겠지? 했던 나의 짐작은 겨울의 변덕 앞에 무참해 지는 거였다. 11시쯤 미황사주차장에 발 디뎠을 땐 군데군데 눈두덩이 부스럼처럼 도져있고, 눈발이 한량하게 나붓대고 있었다.

500m도 채 안 되는 달마산에 눈이 내린다니? 아이젠과 스패치를 챙길까 말까로 잠시 주춤했었던 나의 빈곤한 상상력은 겨울을 모르는 오만이었다. 미황사를 에둘러 불썬봉을 향한다.

 

동백, 광나무, 시누대와 사스레피나무 등의 사철나무들이 짙푸른 녹음을 이룬 가파른 길목은 열대와 한대(寒帶)가 크로스오버를 이룬다. 눈두덩 속에 발을 담군 동백은 무예 그리 절박하여 봉우리 체 낙화 했을까. 부나비처럼 달라붙는 눈발, 그까짓 게 무서워 낙화 했담 동백을 능멸함이라.

더는 이깟 추위 탓이라면 애초 꽃 피우지도 안했을 테니 그 사연이 궁금하다. 내 어릴 적에 누이들 결혼식장을 장식 헸던 동백꽃, 아무리 추은 겨울에도 사랑을 피워 그 사랑을 멈출 땐 같이 하란 뜻이라고 비약해 봤다.

 

달마십기암도(達磨十奇巖圖)가 상록수림 사이로 기웃댄다. 저놈들을 가까이서 보러 시작하는 산행이기도 하다,  눈발 흩날리는 달마산등정은 나를 한껏 기대 부풀게 하는 거였다. 산님들 발길에 진창 된 눈들이 된비알돌길을 만들어 한 시간 남짓 땀을 쏟게 하더니 불썬봉(489m)이 돌탑을 앞세워 반긴다.

어지럽게 날리는 눈발이 설무(雪舞)를 이뤄 시계를 삼켜버렸다. 가물가물한 만() 위에 등을 내밀고 있는 섬 뒤로 완도는 해무 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오늘 여길 오고 팠던 첫 번째 이유는 깊숙이 파고 들어 완도를 만든 만과 그 검푸른 만에 등걸 내민 섬들을 애무하고 달려 온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고 싶었었다. 그 만이 시원찮다. 대신 눈발이 그 아쉬움을 달랜다.

문바위를 향한다. 바위 아님 돌너덜길은 눈까지 더해 여간 힘들게 한. 6년 전, 이맘때 여길 왔을 땐 눈발자도 없었다.

 

검푸른 만과 올망졸망한 섬들과 그들을 훑은 싸한 바닷바람이 귓전을 윙윙 거리고, 거대한 바위들이 시니컬하게 맞서던 그 쓸쓸한 풍광이 좋았었다.

내가 달마산에 반했던 건 꽤 오래 전이다. 완도가 처가여서 오가며 마주했던, 남쪽으로 달리는 긴 톱날바위가 서쪽하늘을 잘라먹는, 햇볕 속의 장쾌한 능선이 그리 아름다웠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뭐가 그리 바빴던지 눈요기만 하다가 어느 해 처가에서 일찍 나서 귀가 길에 올랐었다. 아내를 꼬셔 미황사를 찾았다. 절 탐방 후에 불썬봉을 오른다는 음모를 숨기면서였다.

경내를 한 바퀴 흝고 산에 진입했다. 등산엔 젬병인 아내가 돌아설 때마다 나는 미황사에 얽힌 전설을 한껏 부풀려 침 튀겨가며 이끌었었. 정상엔 오르지도 못하고 결국 중도에 포기했지만---.

 

그 후 6년 전, 엄지인들을 따라 이 능선을 걸었던 것이니 이제 두 번째다. 문바위에 닿았다. 그땐 그냥 지나쳐 오늘은 문바윈지 달나라바윈지를 알고 싶었다.

큰 바위 숲을 헤치고 조금 오르니 끝이다. 덩치 큰 바위들이 사철나무들을 계수나무마냥 키워 절경을 만들었다. 내려와 선행자들의 발자국을 찾아 돌너덜을 밟는다.

 

거대한 바위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앞을 막으며 눈발을 삼킨다. 잔챙이 나뭇가지에 내린 눈이 상고대마냥 아름답다. 높지 않은 달마산능선을 밟으면 밟을수록 겨울의 변덕이 얼마나 오두방정을 떠는지를 실감케 한다.

톱날바위 능선 동쪽은 설국에 눈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서쪽은 앙상한 나목들이 눈바람에 윙윙대며 황량하기만하다. 설산과 민둥산의 경계를 이렇게 확실하게 긋기도 겨울만의 장기일 테다.

 

설국 뒤로 어쩌다가 완도가 어렴풋이 모습을 보이곤 한다. 오늘 달마산을 찾은 이유가 멀리서나마 처가냄새를 맡는 거였는데 그 처가였던 완도엔 지금 처가가 없다.

있어도 폐허된 빈 처갓집이라. 처가란 장모님의 죽음과 괘를 같이한다. 장모님의 사위사랑은 그만큼 각별나단 얘기다. 난 아내 못잖게 장모님을 사랑했었다. 그 장모님 없는 빈 처갓집에서 금년여름 태풍나크리 속에서 23일 보냈었는데 처가는 태풍 후처럼 삭막했다.

 

요새 나는 사랑하는 아내의 울을 뛰쳐나와 돈`키오테처럼 좌충우돌한다. 잃어가는 가장의 위신을 되찾겠다는 꿍꿍이 속이지만 꿩 저만 춥지?’ 뻘 될까하는 시름이 든다.

너덜길이 여간 심난하다. 또 바위숲속으로 기어든다. 선행자들이 바윌 가림막삼아 점심자릴 폈다. 눈은 하염없이 흩날린다.

 

나도 바위틈에 옹색한 자릴 잡았다. 육포와 다이제시티브가 점심이다. 어느 여자 산님이 지나가다 그런 나를 보고 불쌍해라라고 한 말씀 적선하고 간다. 적선할 바엔 맛있는 것이나 좀 주고 가실 일이지.

아까부터 갈뫼는 라면국물 끓이기만 하고 있다. 각시오기만 기다려 물만 끓이고 있는 품새가 나만큼 불쌍하다. 각시는 진즉 빠꾸했는데~. 난 일어섰다.

 

해찰 많은 나인지라 가다보면 갈뫼는 다시 만나리라. 대밭삼거리에 닿았다. 하얀 설국에 앙증맞은 돌문이 그림 같다. 부도전가는 팻말이 보인다. 하산시에 답사할 곳이다.

숲길이 좀 편하다. 남서쪽하늘이 별안간 밝아졌다. 트인 시계 속에 춤추는 눈발은 환상적이다.

바람 잔잔한 허공에 눈발의 군무는 달마산의 칼능선을 숨기고 있었다.

 

그 눈 춤 속에 떡봉 모습이 자못 의연하다. 하숙골재에서 산님 네 분을 만났다. 곧장 미황사로 갈 참이었다. 갈뫼는 코뺑귀도 안 보인다. 하얀 설국의 눈꽃 위로 달마능선이, 아래론 북평면일대가 거대한 묵화가 됐다.

헤어진 지 두 시간 반이 지나도, 해찰 오지게 했어도 갈뫼는 머리털도 안 보인다. 혼자란 게 오늘은 왠지 편치를 않다. 길이 하도 험악해서일 것이다.

 

더구나 6년 전에 왔던 도솔암은 왜 이렇게 먼 걸까? 팍팍해지기 시작했다. 3시 반을 지나서 도솔암에 올라섰다. 내가 오늘 달마산에 온 두 번째 이유가 도솔암이라.

천길 바위벼랑 위 무인암자에서 조망하는 사위의 주상절리는 언어도단이다. 게다가 오늘은 눈까지 휘날린다. 손바닥만한 공간에 웅크린 암자는 죽순처럼 솟은 바위들을 향해 거목 한그루로 수신호를 하고 있다.

 

그 나지의 손짓, 뾰쪽 바위 순들, 나비처럼 춤추는 눈발, 희뿌연 하늘은 수도원치곤 기막힌 절경인지라 꿈속에 있는 성싶다. 이 신비경을 프로사진가들은 한 장에 담을 수가 없어 눈만 호사하고 갈 테다.

나도 눈 호사를 하곤 있는데 걱정은 사람이 안 보이는 거였다. 세 시간째 말이다. 근데 저 단애 밑에서 두 사람이 올라왔다.

 

그들이 땅끝으로 가는 산님들일지라도 그들이 온 길이 미황사로 가는 편한 길이란 걸 확신할 수 있어 좀 안심이 됐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며 절경에 취해 뭉그적대고 있는데 세 분이 나타났다. 갈뫼신`구회장과 강00씨였다. 얼마나 반갑던지! 그들은 전망대까지 올라갔다 오는 길이란다. 용케도 내가 운이 있는 셈이다.

 

날은 어둑해지고, 초행길인데 이제가지 좀 험악한 길인지라 사뭇 애 닳은 편이었다. 그들 뒤따라 급살 맞은 도솔암 단애 밑은 내려온다.

어떻게 내려왔을까? 저 까마득한 수직벼랑을 말이다. 삼나무 숲에서 한숨 돌리며 두 발이란 건 참으로 부지런한 거다, 고 감사해했었다. 삼나무 숲이 그간의 고생을 모두 앗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실제 길도 평탄했다.

 

눈발이 다시 흩날린다. 사방이 어둑해진다. 발걸음이 빨라졌다. ‘미황사 천년의 길은 미황사에서 땅끝까지 이어진 모양인데 숲을 관통하는 편한 트레킹코스였다.

너덜지댈 통과할 땐 폭설로 사진 찍을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예측불허, 변화무쌍의 달마산의 겨울은 카멜레온이다. 밤중인 듯 싶다가 또 하늘 한쪽이 훤히 트이는, 그래 햇볕이 산자락을 훑고 가다가 다시 눈발이 산잔등을 삼키는 거였다.

 

한시간만에 부도전 앞 갈림길에 섰다. 5시를 넘겼다. 난 또 부도전을 답사하겠다고 방향을 틀었다. 미안했다. 모두들 나를 기다릴 텐데 내 욕심대로여서 말이다.

오늘 여길 온 세 번째 이유였는데 시간 없어 부도전은 사진만이라도 한 장 찍고 싶었다. 부도전은 두터운 적설로 하얀 못 속에 있는 성 싶었다. 후다닥 사진 몇 장 건졌다.

 

석대의 문양은 쌓인 눈땜에 식별도 할 수가 없었다. 달리다시피하며 주차장을 향한다. 뒤풀이도 파장에 들었다.

각시 오기 기다리며 라면국물 끓이던 갈뫼, 그 갈뫼를 언제 올랑가, 언제 올랑가?’를 염불하며 기다렸던 나에게 뒤풀이마당에서 막걸리 한 잔을 따라놓고 자릴 내 준다. 그 막걸리 한잔이 그리 시원할 수가 없다.

 

돼지찌게도 환장하게 맛있다. 그래 산님들은 뒤풀이를 고대하나? 갈증과 시장기는 최상의 요리다. 참 대단한 산행 이였다.

아마 내가 꼴찌는 분명한 것 같았고, 나 이외 완주한 산님은 여섯 분이 있었단다. 미끄럽고 험악한 칼바위능선을 홀로 세 시간동안 밟으며 얼마나 긴장했던지, 를 되새김질하며 의자에 누워 다릴 뻗었다.

 

그래도 난 또 다음에 홀로산행을 할 수 밖에 없을 테다. 해찰하다보면 어느새 혼자다. 누구 동행꾼 없을까?

천개의 얼굴로 다가선 오늘의 달마산은 잊을 수 없을 테고~! 차장밖엔 폭설이 쏟아지고 있다.

2014.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