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눈꽃축제 파시
合沓盤根大岧嶢勢入雲
얽히고설킨 하 많은 뿌리며 높이 솟은 형세 구름 사이로 기웃대고
危峰千玉立絶壑萬雷聞
높은 봉우리는 천개의 옥이 선 듯 절벽에는 온갖 산울림이 들리네.
懮懮干戈世閑閑鳥獸群
소란하고 어지러운 세상에 한가롭게 새와 짐승 떼 지어 다니니
桃源定深處吾欲謝塵氛
무릉도원 깊은 곳에 자리 잡아 나의 속세마음 씻고자 하네.
-태백산 유람 후 홍우원(洪宇遠)이 읊은 시다 -
오전열시 반의 사길영은 영하의 날씨답잖게 푸근하다. 햇볕 쨍한데 태백정상에 상고대가 온전히 남아있을까? 걱정이 지핀다. 스패치와 아이젠을 착용하고 눈 쌓인 가파른 된비알을 오른다.
기왕이면 빨리 올라야 눈물 짜지 않는 눈꽃을 볼가 싶어 서두르는데 많은 산님들이 외줄밧줄마냥 늘어져있어 차고 오를 수도 없다. 빡센 오르막에 맘까지 바빠 땀이 삐지지 솟는다.
신령각에서 한 숨 돌리고 완만한 능선을 젠 걸음치지만 산님들 탓에 맘뿐이다. 어쩌다가 앞치기 할 수 있는 기회도 유일사쪽에서 올라오는 산님들과 합세하면서는 장탄식으로 변해야했다.
그쪽무리가 이쪽 떼거릴 압도하나 싶었다. 눈 팍팍 빠지는데도 나처럼 성깔 급한 산님은 대열에서 빠져나와 앞치길 시도하지만 결국엔 피장파장이다.
지 깜냥에 기고 날아봤자 종내는 몇 분차이란 걸 혀 빠지게 헉헉대고 난 뒤에야 실감할 때가 많다. 우리들 인생살이란 게 대게 그 꼴일 테니 기왕이면 좀 느긋하니 여유 부려가며 살아가도 됨이다.
그게 현명한 생활의 달인이리라. 몇 분 먼저 올라가서 상고대를 볼 수 있단 보장도 없고, 또 본들 이 날씨에 온전하기나 하겠나? 하는 생각에 해찰피우기로 했다. 그리 맘먹으니 한결 편하다.
그나저나 이 무슨 엑서더스냐 말이다. 태백산만 빼곤 방방곡곡에 전쟁이라도 났단 말인가? 이러다 몇 년 후의 겨울태백산은 상고대가 아니라 인무송(人霧淞,사람서리꽃)으로 상고대는 초토화되겠단 생각을 해봤다.
정오쯤 장군봉에 닿았다. 잔챙이 관목이 눈에 파묻힌 하얀 설산에 초록주목과 기괴한 시목(屍木)이 부자연스런 조화를 이뤄 개미떼 같은 산님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살아서 천년, 죽어 천년을 살고 있다는 주목은 푸른 하늘을 차일치고 우리에게 무얼 말하고 있을까? 아름답게 살아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그 길 또한 수 없이 많아 제 스스로 개척해야 할 몫일테다.
허나 죽어 천년만년을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은 간단하고 단순하다. 제 생각 나름일 뿐이다. 라고 시목은 말하고 있음 같았다.
죽어서도 쓰러지지 않고 백골인 채 세월의 대장간에서 아름다움으로 거듭거듭나듯, 사람도 죽어 사회에 시신을 기증하여 문명의 발전에 기여하라고 우리들에게 퍼포먼스를 하는 성싶었다.
죽으면 소각장에서 화장 아니면 땅 속에 묻히어 버러지 밥이 될 바엔 누군가의 재생에 일부가 되고, 의학과 법의학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되는 길을 유언(遺言)만하면 된다는 것을 외치는 게 아닐까.
“내 죽으면 나의 시신을 사회에 기증한다.” 라고 가족들에게 유언하면 되는 것이다. 시신기증으로 죽은 자의 영혼안치가 아쉽다면 기증하면서 1~2년 후 시신 내지 화장한 재(분골)를 반환받아 유가족 뜻대로 하면 됨이다.
내가 시신을 기증한 W의대는 유가족이 시신반환을 요청하지 않았을 때는 자체적으로 화장하여 학교영묘원에 20년간 안치하여 유가족이 항상 참배하게 한다. 또한 일 년에 한 번씩 합동 차례도 올린다.
좀 어패가 있을지 모르지만 고인의 명예를 회자케 하고 유가족들의 수고를 덜어주는 꿩 먹고 알 먹는 장례문화이기도 한 셈이다.
- 주목뒤로 함백산이 보인다 -
어찌 쓰다보니 산행기가 좀 이상해졌다. 허나 난 태백산만 오면 시목을 보며 주검을 아름답게 하는 길을 자문하는 거였다. 천재단을 오른다. 내내 우리가, 우리의 후예들이 아름답게 살아가길 기원하는 거국적인 기도처인 것이다.
그 기도처가 참배객들로 인사인해다. 망경사로 하산키로 했다. 질펀하게 쌓인 가파른 눈길엔 인파로 뒤덮여 꽃길이 됐고, 미끄럼에 아우성치는 소란길이 됐다. 얼마쯤 미끄럼타면 우측에 단촐하게 자리한 사당 – 단종비각이 초연하다.
숙부(세조)한테 왕위를 뺏기고 쫓겨난 어린 단종은 영월 청령포(淸怜浦 ; 莊陵)에 유리안치 되다 결국 사사 당한다. 단종의 고혼(孤魂)은 태백산을 배회하다 1955년에야 망경사 박묵암스님에 의해 탄허스님이 조선국태백산단종대왕지비(朝鮮國太白山端宗大王之碑)라고 친필을 쓴 비각을 세워 제(祭;음9/3)를 올리게 됨이다.
11살에 등극하여 16세에 쫓겨난 단종은 어질기에 앞서 순수했다. 단종이 보위에 오르자마자 궁중엔 방자(房子;심부름하는 궁녀) 세 명과 소천시(15~16세의 어린별감) 세 명의 연애편지 스캔들이 의금부에 발각돼 부대시(不待時)참형에 처해질 판인데, 단종의 1등급감형이란 특명에 의해 여섯 명의 소년`녀의 목숨이 살아났다.
조선조에서 궁녀의 간통(연애질)은 속대전이란 국법에 의해 예외 없이 참형에 처했었다. 나는 오늘 단종비각 앞 우람한 거제수 아래 눈 위에 자릴 펴고, 어설픈 끼닐 때우며 그 풋풋한 소년`녀들의 애련(哀戀)사를 떠올라 봤던 것이다.(블로그 pepuppy.tistory.com<조선궁녀의 사랑과 비극> 참조)
열한 살의 소년 왕이 형과 누이뻘일 사춘기의 연애질을 이해해서가 아닌, 목숨의 지고지순 성을 감히 재단할 수 없었을 테다.
근데 5년 후에 자신이 열여섯 살 되어 숙부로터 사약을 받고 목숨을 끊어야 했던 비극을 상상이나 했을 것인가? 잘못이란 게 있담 숙부께 왕위를 물러준 죄(?) 밖에 없는데~.
- 단종비각 -
어떻게 살고 죽느냐는 태백산의 시목들이 눈 아프게 시연하고 있음인지 모른다.
다시 망월사를 향한다. 자장율사는 평생을 문수보살을 연모하며 살았다. 어느 핸가 문수보살이 오신다는 소식을 접하고 산정에서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는데, 웬 거지가 삼태기에 강아지 한 마리를 넣어 짊어지고 나타나자 쫓아버렸었다. 그 산정이 문수봉이다
거지가 문수보살이었단 걸 깨닫고 대성통곡을 하며 다시 기다렸지만 끝내 뵙지를 못하고, 저기 앞 함백산 정암사에 침거하고 있었다.
얼마 후 문수보살 석상이 태백산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받고 달려와 석상을 모실 절을 세우니 망경사다. 신라 진덕여왕 때(652년)의 일이라.
- 망경사 -
그 망경사가 하얀 설국 속에서 울긋불긋 치장한 산님들에 에워싸여 때 아닌 꽃을 피웠다.
겨울햇살이 모처럼 두텁다. 망경사 앞 눈덮힌 뜰은 걸판진 오찬장이 됐다. 문수보살님 삼태기의 강아지도 냄새맡고나와 얼쩡거릴 것 같았다.
자작나문지 거제수나문지 햇볕에 하얀피부 마사지하느라 외피 벗어던지며 나체쇼를 하고 있다. 분비나무도 얼룩덜룩 화장하느라 바쁘다.
삼나무떼거리가 꼿꼿하게 서서 푸른 하늘을 막 쑤셔댄다. 마른하늘에서 비라도 내리게 하렴인가? 촉촉이 물기 머금어야 싹눈을 틔울 테다. 당골짝 전나무숲 이파리가 추위에 멍들어 시푸덩덩하다. 두터운 적설아래 바위 밑을 흐르는 물소리가 봄의 전령인지 모르겠다.
테백의 눈꽃은, 상고대는 이젠 바이바이련가. 당골날머리에 설국의 아트페어잔치도 파장의 쓸쓸함이 여실하다. 눈으로 빚은 설치작품들이 노망든 할망구처럼 볼품없는데 사람들은 기웃대며 아쉬워한다.
그나저나 어디서, 어떻게, 무슨 일로, 이 깊은 태백산골에서 뭘 얻겠다고, 이리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난장을 피우는지?
아쉬움이 많은 태백산의 오늘 이였다. 그래도 만 원짜리 두 개 반으로 떠나온 머나먼 여행, 눈이 시린 호사, 순도100의 자연 속 힐링, 걸으며 얻는 지식과 행복은 산님이나 됐기에 가능한 호강인 것이다. 오년 만에 찾은 엄지가 자릴 마련해 줌이라.
2015. 02. 01
- 함백산능선-
- 천재단 -
- 망월사전경 -
- 거재수 뒤로 보이는 문수봉 -
- 자작나무가 낚은 겨우살이 -
- 단군성전 -
- 눈꽃축제 -
- 장군봉 -
- 거제수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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