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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그 여적

100만 그루를 심은 나무꾼

100만 그루를 심은나무꾼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에서-

프랑스 플로방스의 어느 산간 촌엔 언젠가부터 황폐화되어 주민들은 모두 그 황무지를 떠났습니다.

양 몇 마리를 기르고 있는 엘자아르 부피에란 홀애비만 빼곤 말입니다.

외아들과 부인마저 잃은 그는 양을 치는 일 외엔 달리 할일도 없어 매일 도토리 100개씩을 심었습니다.

나무가 없기 때문에 땅이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한 그는 1910년부터 나무심기를 해 왔는데 30년 동안 100만 그루를 심었고 그 중에서 10만 그루가 살아남았지요.

중간에 어린 나무들을 위협하는 양을 네 마리만 남기고 100여개의 벌통을 치면서 수종도 너도밤나무와 단풍나무를 심었습니다.

한해 두해 세월이 흘러 바람도 풀꽃 씨앗들을 흩날려 뿌려주자 빽빽한 숲엔 푸른 초원이 살아나게 됐고 물길도 살아났으며 온갖 새들과 산토끼, 멧돼지를 비롯한 산짐승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천연의 숲’이 태어난 거지요.

떠났던 주민들도 하나씩 귀향을 하기 시작했지요.

“이 모든 것은 오로지 아무런 기술적인 장비도 지니지 못한 한 인간의 손과 영혼에서 나온 것임을 기억할 때마다 나는 인간이란 파괴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하느님처럼 유능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고 장 지오노는 썼습니다.

엘자아르 부피에는 아주 단순하게 자기의 생각을 꾸준하게 실천해가는 고집스런 생활 이였는데 자연은 그의 우직함 속에서 위대한 탄생으로 거듭나고 있었지요.

1935년엔 정부의 대표단이 이 ‘천연의 숲’을 시찰 나와 별로 쓸잘데없는 많은 말들을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결론은, 이 숲을 국가가 관리하며 사람들의 벌목만을 금지시킨 채 아무 일도 안한다는 거였습니다.

그들은 황무지가 ‘천연의 숲’이 된 건 그저 땅이 자연스럽게 부리는 변덕 탓이라고 여겼지요.

그 변덕은 엘자아르 부피에의 손과 영혼 땜에 가능했음을 몰랐던 게지요.

익산시 함라산 일대엔 둘레길을 만들었는데 봉수대가 있는 봉화산은 임도에서 8부능선까지의 일대 몇 백·천 평을 녹차밭으로 조성하다가 민둥산으로 남겨놓은 지가 벌써 수년쨉니다.

30여년 이상 된 울창한 숲을 간벌하고 ‘녹차북한대군락지’를 만든다고 익산시장은 세금을 허투로 퍼부으며 산림훼손한 거지요.

녹차자생북방한계선이란 것도 지구온난화로 별 의미가 없음인데 차밭 만들어 울타리치고 거대한 표지석 세우며 세금 낭비하여 민둥산으로 방치하는 그 무모함을 목도하며 <나무를 심은 사람>을 생각게 됩니다.

둘레길은 자연에 아무짓도 안한 채 군데군데 스토리텔링이 녹아 있을 때 사랑 받게 되지요.

한심하다 못해 슬퍼지는 지자체의 자연사랑(관리)을 말입니다.

2011.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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