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최초로 살롱문학을 연 산(山)님 김금원
180여 년 전의 조선의 여성들은 ‘울안 규방에 갇힌 규수’에 안주해야 했다.
오직 ‘담장 안’에서 삶을 꾸리는 일생이 여자의 운명 이였는데, 14세의 소녀가 그 ‘울안’을 뛰쳐나와 꿈과 이상을 향해 견고한 인습에 도전하게 된다. 신분과 성차별을 뛰어넘어 자기혁신을 도모하는 길을 찾고 싶었다.
1830년 봄, 원주태생의 14살 김금원은 ‘울 밖 세상’을 체험하기 위해 남장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유명한 학자들이 쓴 ‘금강산예찬기’를 접하고 특히 겸재 정선의 금강산그림에 심취해 금강산답사`유람을 하기 위해서였다.
집을 나선 소녀는 제천 의림지를 들러보고 단양팔경을 유람하곤 금강산에 올라 몇 달을 답사했다..
다시남하하여 관동팔경을 거쳐 설악산을 등정하고 한양과 개성까지 유람하는 등꿈과 이상을 실천하려는 담대한 용기의‘통 큰 여자’였다.
본시 양반가의 서녀였던 그녀는 기생인 홀어머니의 신분을 따라 관습대로 기적에 올랐는데 그녀의 출중한 문예를 알아 본 김덕희(추사 김정희의 6촌형제)가 소실로 맞아들인다.
양반가 소실 중에 문예에 소질 있는 운초, 경산, 죽서, 동생 경춘 같은 기녀들과 교우하면서 용산에 있는 김덕희의 별장 삼호정에서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서로의 시문학을 교감하니 이름 하여 ‘삼호정시사’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살롱문학을 연 셈이다.
또한 그녀를 금강산과 설악산을올라 답사한 최초의 여성 산악인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다.
그때의 유람기를 그녀가 서른네 살쯤에 썼으니 유명한 산수문학이 된 호동서락기(湖東西洛記)이다.
호동서락기 중 금강산 천일대에 올라,
“천일대에 오르자 만 이천 봉, 옥으로 깎은 듯 아름다운 봉우리들이 모두 눈 앞에 죽 늘어서 기이한 모습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층층이, 겹겹이, 먼 것, 가까운 것, 큰 것, 작은 것, 뾰쪽한 것, 둥근 것, 달려 나가는 것, 머무는 듯한 것들이 푸르게 솟고 희게 둘러싸 모두 눈 안에 다 들어온다. 여기가 진실로 아름다움이 모인 곳이니 도로서 말한다면 우리 유가의 이른바 집대성이요, 선문에서 말하는 하루아침에 깨달아 활연히 대통한 자의 경지이다.”라고 썼다. 또한
“아아! 천하의 강산은 크기도 하다. 한 모퉁이 좁은 국토를 보고 온천지를 다 보았다고 여기기에 부족하고, 고금의 일월은 빠짐없으니 백년사는 뜬 인생으로 만족스럽게 여기기에 부족하다. 아! 하루를 기준으로 보면 하루가 꿈이요, 일년을 기준으로 보면 일년 역시 꿈이니 백년천년이나 과거나 현재나 꿈 아닌 것이 없다. 나 역시 꿈속의 사람으로 꿈속의 일을 기록하려 하는 사람이니 이 또한 어찌 꿈속의 일이 아니리.” 라고 기록했다.
꿈과 이상을 향한 그녀의 용기와 문예적인 소질의 DNA는 오늘날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면면히 흘러 ‘담장 밖’에서 훌륭한 문학·예술 활동을 하고 있으며 많은 산 사랑의 산님들을 태어나게 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금원은 우리에게 여성최초의 문학카페를 열어 동호인들의 교감을 주선했으며 역시 최초의 여성 산악인으로써의 절절한 산행후기를 남겨 꿈과 용기를 물려줌이라 하겠다.
2011. 06
'느낌~ 그 여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슴벌레와 초코릿 (0) | 2011.08.16 |
---|---|
베르사유궁전에서의 배설 (0) | 2011.08.08 |
100만 그루를 심은 나무꾼 (0) | 2011.06.15 |
스캔들로 요절한 어우동 (0) | 2011.06.08 |
조합원은 호구가 아니다 (0) | 2011.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