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바지 여름의 꿈


징그럽달 만큼 끈질기게 달라붙던 폭염이 누그러질 기미를 보인다. 처서가 지나고 8월 끝자락이 낼모레다. 해도 한낮엔 하도 뜨거 아침과 저녁에 산책을 나간다. 폭염 탓에 원거리트레킹은 접고 와우산 달맞이 길이나 동백섬 둘레길을 소요하면서 늘 마주쳐 낯익은 놈들과 눈인사하는 재미가 솔찬 해졌다. 풀과 화초들은 밤새 훌쩍 변하여 생의 절정을 구가한다.



동백섬의 동백꽃은 7월까지도 두터운 초록숲속에 숨어있다 갑자기 싱싱한 채로 떨어지고, 척박한 자갈길가의 민들레는 노란꽃잎 따가운 햇볕에 태워 지나가는 바람등걸에 올라타 정처 없이 떠난다. 그러던 날밤 홍건하게 비가 내리면 수국은 떼거리 자리다툼하며 작은 꽃잎 하나씩 모둠 피워 불두화(佛頭花)를 만들어 어느 절 퇴마루서 기도를 하고, 담장 위로 빼곰히 얼굴 내민 능소화는 기다림에 지쳐 금방이라도 고개 떨어질 듯싶다. 어찌 8월을 넘길려나?




“가던 길 멈춰 서서
잠시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다면
그런 인생은 불쌍한 인생” 이라고 영국의 시인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는 말했다.


눈 날릴 때부터 핀 동백은 여지껏 동박새만 기다리다 고갤 꺾고 통째 떨군 꽃자리에 이름모를 버섯이 났다. 몇개월째 동백섬에서 나와 눈을 맞춘 꽃이던가! 그래도 초목들은 제자리를 지킨다. 나만 초랭이처럼 왔다리 갔다리 변덕을 떨지 놈들은 일편담심이다. 그들 자연의 질서는 엄격하여 7~8월 작열하는 태양을 탐하다 가을로 이어지는 어정쩡한 계절의 몸부림 속에서도 자신의 본분을 여지 없이 해낸다. 결코 실망하지 않고 동료들과 상부상조한다.



그들의 일생이 경이롭다. 나도 그들처럼 암소리 않고, 날씨 탓 안하며, 눈치 볼 것 없는 순수한 사랑을, 세상이 잊은 듯하다가 어느 날 동백꽃이나 능소화처럼 한순간에 뚝 떨어져 숲이 되고 싶다. 동백이나 능소화는 넘 크고 화사하며 독특한가? 사람발길만 피할 수 있다면 암 데나 피는 민들레로 태어나도 좋겠다. 밝고 앙증맞게 도도히 미소 짓다 태양에 몸뚱이 불살라 하얀 재 사방천지로 흩날리는 민들레홀씨여행을 하고 싶다. 떨어진 곳에 뿌릴 내려 꽃 피우고 다시 홀씨로 세계여행하리.




아직 여름이 펄쩍펄쩍 뛰면서 태양을 붙잡고 불길을 뿜어내고 있는데 코스모스가 방긋 웃으며 하늘 눈치를 보고 있다. 젊은 날 시골 신작로갓길에 도열하여 파란하늘 뭉게구름이 몰고 온 바람결에 하늘거리던 코스모스 냄새가 느껴진다. 같이 걷던 친구의 머리카락 냄새였을까? 소슬한 갈바람 향이었을까. 꽃 위에서 부서지는 아름다운 빛의 산란과 느낌이 아직도 내 가슴에 살아있다. 그는 지금 어디서 뭘할까? 지금 갈 수 없는 그 코스모스 길을 걸으며 노스텔지어에 빠진다. 2025. 0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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