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숲 추석맞이


오전에 가랑비가 한마당 뿌려 아파트정원 숲이 한결 싱그럽다. 인왕산행 대신 불현 듯 떠오른 게 서울숲 이었다. 가을맞이 하느라 속살댈 푸나무들이 흠뻑 젖은 채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미끄러운 바위산일 인왕산행과는 다른 다양한 식생들이 더 매력적일 추색(秋色)으로 나를 영접할 것이다. 추색으로 물들일 숲의 비밀과 가을 냄새를 음미하는 소요에 빠져들고 싶었다. 자연 생태숲과 습지원의 적요가 자못 궁금증을 더 돋운다. 벚나무는 이미 단풍취객이 됐을 테고 은행나무들은 화장하느라 나를 본 채 만 채할 것 같다.



서울숲(48만994㎡)은 중랑천이 한강에 몸을 섞는 지점으로 태조 때부터 임금의 사냥터 겸 군검열장 이였다. 임금이 사냥하러올 땐 대장군의 기(旗)인 독기를 세워 알린 성역(聖域)이었다. 한국전쟁 직후 신설동에 있던 경마장이 이곳에 이전하여 88서울올림픽 직후까지 체육공원과 경마장으로 쓰였고, 뚝섬은 최초의 상수원 수원지와 골프장으로 사용했다. 2005년 6월18일에 18만평의 ‘서울숲’은 5개 테마공원으로 개장한다. 문화예술공원에는 군마상과 숲속 놀이터, 자연생태숲엔 야생동물과 야생식물이 공생한다.



호연지기가 넘치던 태종은 왕자 때부터 옥수동에서 뚝섬에 걸친 동교(東郊)를 좋아했다. 자양동 대산(臺山)에 올라 툭 트인 강을 조망하곤 했다. 왕이 된 후에도 중랑천 냇가에서 자주 술자리를 가졌다. 세자·종친과 여러 재상을 대동해 풍악 연주 속에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태종실록). 태조가 세종에게 전위하고 ‘군관(軍官)신분에서 벗어나자 다시 사냥에 나섰다(세종실록). 이 일대 응봉·매봉산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강의 물고기를 먹이로 삼았을 매가 많이 서식했다.



왕실 종친 등 사냥 참가자들은 매를 좇아 말을 달리며 활시위를 당겨 많은 화살이 들판에 꽂혔다. ‘살곶이(箭串)’ 유래다. 더는 태종이 정안군 시절에 왕자의 난을 일으켜 형제들을 죽이자 태조는 정종에게 왕위를 넘기고 한양을 떠난다. 한 세월을 함흥에 칩거하다가 무학대사의 간청으로 1402년 12월 상경했는데 마중 나온 태종을 보자 화살을 쏘았다. 그 화살이 빗나가 땅에 박힌 곳을 ‘살곶이’라 했다(서울지명사전). 태종은 대산에 낙천정을 짓고 세종도 낙천정 북쪽 언덕에 화양정을 지어 자주 거둥해 매사냥을 구경했다.



살곶이는 토지 길이가 10여 리 평지로 뭇 산이 빙 둘러싸고 내와 못이 얽혀 있어 풍류를 즐기기에 좋아 ‘한도십영(漢都十詠)’이라 불렸다. 돗자리 같은 살곶이 풀밭에서 훈풍을 맞으며 봄놀이’를 즐긴 곳이다(동국여지지). 김종직은 이곳에서 천렵을 하고 모래톱에서 잠잤다. 태조 때부터 전마(戰馬)를 방목하며 승마 훈련장을 두었고, 병자호란 때는 청(淸)군이 남한산성을 공략하려 주둔했다. 청계천과 합류지점이라 물고기가 많아 궁중 사옹원에서 나와 붕어잡이를 했단다.



살곶이 다리는 세종이 부왕을 기쁘게 하려 공사하다가 태종이 죽고 난공사인데다 하천 제방공사가 많아 교각 받침돌만 놓은 채 중단했다. 성종때 백성들이 불편을 호소하여 공사를 재개해 63년 만에 완공했다(성종실록). 성종은 개통식에서 ‘땅을 밟는 것처럼 평평하다’며 ‘제반교(濟盤橋)’라 명명하고 어필을 내렸으며 사람들은 ‘살곶이 다리’나 ‘전곶교(箭串橋)’라 불렀다. 단종이 전곶교를 통해 영월로 유배를 가고, 신사임당이 친정 강릉에 갔던 다리다. 왕들이 한강 남쪽의 헌릉과 선정릉을 오갈 때도 다녔던 ‘경성 10리의 남쪽 한계’여서 먼 길 떠나는 사람과 작별하던 곳이기도 했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이 다리의 절반을 옮겨 쓴 탓에 100년 동안 부서진 채 있다가 1973년 문화재청이 예전 모습으로 복원했다. 하천의 폭이 넓어져 뒷부분은 콘크리트로 잇댔다(국가보물유형문화재). 조선왕들이 군대를 사열하는 살곶이 열무식은 세조 때는 ‘기병 7800명에 보병 2400명이 대각(大角)을 세 번 불자 포를 쏘아 두드리며 아우성치고, 진을 변경해 도전하며 서로 싸우는 전세를 다섯 번 하고 파했다. 그런 대규모 열병식은 정조 때까지 행해졌다. 바람의 언덕 다리를 소요하며 살곶이 열무식을 상상해 봤다. 우리가 쓰는 서사의 흔적은 세월이 쌓여 역사를 이룬다.



자연체험학습원 지킴이 숲과 곤충식물원 등이 있으며, 습지생태원은 환경놀이터와 야외 자연교실 등 푸른 숲 웰빙 공간이다. 또한 한강수변공원은 젊음과 낭만을 만끽할 엑티비티 체험장으로 남한강까지 질주하는 자전거 도로와 한강유람선 선착장이 있다. 최상의 쉼터인 중앙호수 숲길을 지나 바람의 언덕에 오르면 한강을 잇는 나무다리가 일직선의 점이 된다. 다리 위에서의 파노라마`뷰를 즐기는 소요(逍遙)는 환상적인 낭만에 젖게 한다. 시원한 강바람과 한강에 떠있는 성수대교위의 강남고층빌딩`뷰 또한 서울의 다른 얼굴 - 아름다움을 실감하게 된다.



49만㎡의 광대한 서울숲은 뉴욕의 센트럴파크 못잖다. 중앙 분수공원의 수변벤치와 쉼터는 적요에 이르는 치유의 요람이요, 습지생태원을 잇는 숲속의 한적한 길은 산책의 정취에 취하게 한다. 습지 위를 소요할 덱`부교에서의 느림의 시간을 향유하라. 한갓진 습지 위에서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나(我)를 찾는 내공의 시간은 좀체 얻기 어려운 일상속의 특권이 아닌가! 소요와 고독의 진수를 만끽할 시간이 서울숲 습지생태원에 있다. 이슬비에 적신 서울숲은 한결 싱그럽다. 낼 모래 한가위엔 가족들의 명절나들이로, 가을영접 탄성으로 부산할 테다. 2025. 10. 04




















# 성수대교가 옛 살곶이다리 역할을 할 테고, 한강 안 뚝섬 평지는 살곶이 열무식이 거행 됐으며, 배산 응봉산은 매떼의 보금자리였을 테다.




















# 위 글 중에서 일부 문장은 안상윤씨의 <구보의 산보, 그때 그 곳>에서 인용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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