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명 생태공원 수변오솔길의 노을
불현 듯이 황혼녘이 떠올랐다. 지난 늦가을에 소요했던 화명생태공원의 석양을 어느 웹상에서 공감했던 도벽(盜癖)의 흥분이 문득 스쳤다. 그래 노을에 닿고 싶다는 욕망을 주체할 수 없어 불나게 낙동강을 향했다. 아내가 봤으면 ‘개 넋은 어쩔 수 있간디!’라고 참기름 발랐을 터다. 구포역사를 빠져나오자 서쪽하늘에 구름떼가 몰리고 있었다. 어스름해지는 낙동강둔치는 갈대머리를 흔들어 구름을 쫓기라도 할 텐가! 앙칼진 강바람이 하얀 갈대머릴 세차게 나붓대어 서쪽하늘로 상승하나 싶었다.
지난 가을, 부풀대로 부풀어 오른 팜파스그라스는 그 고운 백발을 다 어찌 했을꼬? 말라비틀어진 놈들이 바람결에 맨몸을 비벼대느라 사각사각 울어댄다. 그 신음(?)소리가 난 좋았다. 햇살 한 줄기가 신음소리를 파고들었다. 구름사이로 비친 햇살이 강물에 물비늘 파장을 일으킨다. 숲가에 쉬고 있던 청둥오리들도 으스름 호수물윌 아장걸음 헤엄친다. 죽었다가 다시 깨어나려고 숲을 찾아 밤으로의 여정에 드나 싶다. 땅거미 내릴 때가 삼라만상들은 제일 바쁜가보다. 단단히 맘 챙겨야 할 각오일 것이다.
마무리를 잘 해야 미련 없이 죽을 수가 있고, 걸림이 없이 떠나야 어둠속의 불소시게 불로 소생하는 섭리를 체화해서일 테다. 근데 나는 별로 깊은 생각 없이 노을빛에 몸뚱이 멱 감고 싶어 강변둔치에 섰다. 내가 정녕 황혼녘에 든 나이 탓일까? 아님 부질 없이 보낸 한 해의 세밑이 턱밑이어서 일까? 솜털구름이 갈라진다. 누군가가 구름떼를 찢어 헤치고 있다. 노란빛이 구름사이를 헤집어 틈새사이로 태양이 밤으로의 여정을 트나 싶다.
하루 종일 불태워 사그라진 하얀 몸뚱이가 된 햇님은 구름불소시게를 안아야 어둠에서의 잉태를 할 테다. 서쪽 산릉을 발갛게 물들이는 태양은 고혹적일만치 아름답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곱고 알찬 잉태의 씨앗이다. 열정과 휴식! 태양은 오늘을 그렇게 수놓았다. 우리가, 내가 곱게 죽어야할 소이를 노을이 밝힘이다. 아름다운 죽음은 여한이 없는 임종일 터! 그게 말 같이 쉽당가? 사람의 복 중에 최상의 복은 ‘죽음 복’일 것이다. 멋들어진 황혼을 대비하는 삶이 그나마 이룰 수 있는 복이라 했다.
곱디곱게, 형용할 수 없을 아름다움으로 어둠에 싸이는 노을에 나는 한참을, 그냥 멍 때린 듯이 장승처럼 서 있었다. 한 시간을 반으로 딱 잘라 넘도록 나는 노을 앞에서 서성댔다. 어둠이 그려내는 밤의 그림이 그렇게 고울 수가 없었다. 대기의 불순한 것들을 죄다 어둠이 묻혀버린 탓일까! 아! 아름다운 밤의 여정! 밤엔 삼라만상이 다 곱고 곱다. 단순함이 아름다운 건 절제의 미학일 터! 밤의 세계가, 절제된 밤의 자연이 몽환적일 만치 아름답다는 걸 절감한 초저녁 노을빛의 낙동강 화명생태공원에 나는 살찌우고 있었다. 2024. 12. 20
화명생태공원은 구포동 제2낙동강대교에서 금곡동 대동화명대교까지의 낙동강하구 둔치에 길이 약8km에 면적91만평의 습지생태공원이다. 낙동강 둔치에 깊숙이 발목 담군 습지와 갈대밭은 휴식과 치유의 자연학습장이요 해양레포츠(요트계류장), 야외수영장, 야구장, 축구장, 테니스장, 농구장, 인라인스케이트장 등의 다양한 레포츠시설을 갖추고 있어 화명신도시 시민들의 파라다이스다.
^*^ <죽음이 주검보다 더 가벼운 어둠이라 좋다> ^*^ -깡 쌤-
“온 누리를 살리느라 불덩이 몸
진종일 태워
하얗게 사그라지는 태양
서산에 걸친 구름불소시게에
발갛게 불 달궈
밤으로의 여정에 든다
어둠속의 쉼은 뜨거운 잉태다
밤새워 데우고 끓여
이글이글 타는 여명
붉은 햇살은 눈부시게 찬란하다
칠흑을 걷어내어
만물을 소생시키는 빛깔
하루는 다시 시작된다
태양은 그렇게 오늘을 열고
나도 죽었다가 깨어난다
하루가 내 일생이다
허투루 살 수 없을 하루!
여명과 노을 사이가 내 생애다
난 저녁노을이 여명보다 더 좋다
푹 쉴 수가,
고통 없이 죽을 수 있어 좋다
죽음이 주검보다 가벼운 어둠이어 좋다
소생을 산고하는 칠흑이어 좋다
눈까풀 비벼 뜬 소생은 신비다
싱그럽고 찬란한 우주가
내 새가슴을 쿵쿵 울린다
삶이란 그 무엇으로 대체할 수 없는
신성한 의무다”
# 노을빛 앞에서 발걸음을 때지 못하고 어둠에 사그라든 나는 노을처럼 가물가물해 진 시혼(詩魂)의 그림자를 붙들었다.
그렇게 하여 <죽음이 주검보다 더 가벼운 어둠이라 좋다>란 낙수말을 긷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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