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종다리 앞에서
바람은 형체를 보여주질 않고 오직 소리와 맛으로 상상의 세계를 선물한다. 바람의 맛은 매섭기가 칼날은 저리가라지만, 부드러울 땐 애인의 혀보다 섬세하고 달콤하다. 바람소리는 지구상의 어떤 언어로도 표현 불가능한 창조의 여신 같다. 소리는 인류문화의 원동력으로 순화(純化)의 궁극에 도전케 한다. 바람 없는 세상은 어떨까? 상상을 절한다. 바람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정작 바람의 고마움을 모른 채 아니 그냥 지낸다. 태풍 종다리가 온단다. 불볕더위에 녹초직전인 나는 은근히 놈을 기다린다.
기상청의 호들갑보단 창밖의 파도와 바닷소리에서 놈을 염탐한다. 포효하는 소리가 순한 편서풍이었으면 싶어서다. 놈은 성질머리가 아주 고약해 해코지하는 게 하도 많아 제발 순해지라고 여성이름으로 부른다. 서기 2000년, 세계기상기구(WMO)에선 태풍의 영향을 받는 14개국(한국, 북한, 미국, 중국, 일본, 캄보디아, 홍콩,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라오스, 마카오, 미크로네시아)이 태풍이름을 10개씩 작명하여 합친 140개의 이름을 국가이름 알파벳 순서로 차례차례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제안한 이름 개미, 제비, 나리, 너구리, 장미, 고니, 수달, 메기, 노루, 나비 10개와 북한이 제안한 이름 기러기, 소나무, 도라지, 버들, 갈매기, 봉선화, 매미, 민들레, 메아리, 날개 10개를 합하여 한글 태풍이름은 모두 20개가 인데 종다리는 북한이 작명했다. 매년 초에 WMO 태풍위원회에서는 부적합한 이름을 목록에서 빼고 새 이름을 채택한다. 우리기상청에서 제명 신청을 한 태풍으로는 2002년 루사, 2003년 매미, 2022년 힌남노로 총 3개가 있었는데 놈들이 우리에게 준 피해가 워낙 커서 혼쭐이 난 핑계의 수순이었다.
태풍(颱風,Typhoon)은 북서태평양에서 발생하는 열대저기압으로, 따뜻한 해류로부터 증발한 수증기가 상승기류를 강하게 받아 생성되는 자연현상으로 강한 비바람을 동반한다. 국지적 난기류인 태풍은 천둥, 번개, 용오름, 우박을 동반하는 적란운이 된다. 북태평양 서부의 열대성 저기압은 6월~9월 사이에 발생하여 북서진하다가 타이완`동중국해에서 편서풍을 타고 방향을 바꿔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일본이나 우리나라 방향으로 내습한다. 태풍은 적도의 열에너지를 극지방으로 옮겨주는 기후 메커니즘이라.
적도의 과열과 극지방의 극한환경을 막아 지구의 에너지 분포를 본래대로 맞춰주는 천혜(天惠)의 존재다. 만약 태풍이 없다면 지구는 대재앙의 쑥대밭이 됐을지도 모른다. 태풍전야의 숲길은 적막감이 들만큼 조용하다. 풀벌레 우는 가녀린 소리만 들린다. 짝짓기를 못하고 죽을지도 모를 매미들도 어떤 두려움에선지 끽 소리도 안하고 있어 괴이하다. 죽음보다 무서운 게 태풍일가? 바람이 죽어선지 소리가 없다. 후덥한 열기가 숲에 팽배해질 뿐이다. 바람 없는 세상은 자연으로부터 단절된 고립무원이라 애통터져 죽을 판일 것이다.
바람은 곧 소리이고 생명이다. 태풍도 바람을 타고 단발마의 괴성에다 포효소리로 요란을 떨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한다. 인류를 향한 경고요 메시지인지 모른다. 바람에 의해 우리는 온갖 소리를 듣고 창작활동도 한다. 음악이란 게 소리의 하모니를 바람에 얹은 현상일 테다. 지구 창조 이후 바람에 밀려오는 파도와 소리는 단 한 번도 똑 같지를 않다. 태풍 종다리 소식이 전파를 탈 때 나는 숲과 해변을 소요하며 바람에 한 발 다가서고 있었다. 바람은 나를 존재케 하는 살아있는 생명체 같았다. 바람 없는 세상이 존재하기나 할까? 종다리가 불볕 업고가면 좋겠다. 2024. 08. 20
'느낌~ 그 여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덕포의 아침햇살 (0) | 2024.08.27 |
---|---|
여름 꽃 협죽도 (0) | 2024.08.22 |
와우산 - 해마루 트레킹 (0) | 2024.08.18 |
능소화(凌霄花) - 여름날의 그리움 (0) | 2024.07.24 |
똥고집의 똥 전쟁 & 새똥전쟁 (0) | 2024.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