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대 - 황칠나무숲길, 등대,신선대,자갈마당
게릴라성 장마전선은 부산영남지방은 건성건성 넘기고 서남중북부지방에 국지성 비를 뿌린다는 기상청예보다. 지난번 봉래산자락만 트레킹하고 미뤘던 태종대일원 트레킹에 나섰다. 봉래산 가슴까지 감싼 안개시스루가 태종대를 향한다. 달빛오름길에 내디딘 발은 다누비열차 승강장을 향하다 좌측 숲에서 튕겨(?)나온 커플 한 쌍에 발길을 멈췄다. 생각 못한 숲길이다. 촘촘히 들어선 푸나무들이 안개시스루에 축축한 알몸을 가린 채 적요를 즐긴다. 나도 그들의 고요에 말려든다. 오직 시스루자락만 생동하는 듯 하는 태곳적 분위기를 나는 즐긴다.
좀은 생뚱맞은 이 길은 작년에 오픈한 ‘황칠나무숲길’이란다. 12년 전에 식재한 1,200여 그루의 황칠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뤄 태종사까지 1km 남짓의 숲 터널을 조성했고, 태종사 뒷산에 주둔한 군부대의 이전에 따라 해안길과 연결하여 태종대의 또 하나의 명품 트레킹코스 십 여리가 탄생(?)할 예정이란다. 축축한 안개시스루를 체감하면서 인적 없는 황칠나무숲길을 온 몸으로 호흡한다. 황칠나무는 나무결이 고와 공예품으로, 수액은 황금색으로 궁궐이나 공예품의 도색용으로 백제시대 때부터 각광을 받았단다.
한번 도색했다면 멋진 황금색깔에 내구성까지 갖춘 데다 수형이 아름답고 맛이 독하여 구충약이나 낙태약 등으로 쓰이는, 서남해안지대에 자생하는 상서로운 나무이다. 이 숲길엔 도처에 방화수조가 있는데 황칠나무보호에 신경 쓴 부산시설공단의 애정을 짐작케 한다. 이런 숲길은 진종일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치유의 숲길이다. 태종사는 황홀한 수국으로 단장하고 안개시스루를 베일처럼 걸쳐 몽환적인 불토를 이뤘다.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찰로 유명하다. 관광객들이 문전성시다.
근디 그들은 황칠나무숲길은 모르는 건지, 외면한 건지 이해가 안됐다. 하긴 수국에 취해도 힐링일 텐데 수고로운 트레킹은 뭐 하러? 영도유격대기념비 앞에 섰다. 6.25전쟁 때 미 중앙정보국 소속 제8241부대(JACK)가 창설한 유격대로 1951년3월~1952년12월까지 존재한 군번도 신분증도 없는 용사들이었다. 자원자 1,200여명은 함경도와 강원도 출신 피난민청년들로, 3~4개월 특수훈련을 받고 강원도 북부와 함경도 개마고원일대에 공중과 해상으로 침투해 비정규전 임무를 수행했다. 최초자원자 1,200 숫자는 황칠나무 최초식재 숫자와 일치한다는 게 우연일까?
유격대는 적지에서 적군4,800여 명을 사살하고, 무기류 노획 1,100여 건, 군통신 시설파괴 855곳 등의 전과를 올렸으나 1952년 12월 정전협상이 시작되자 CIA는 부대를 해체해버렸다. 철저히 비밀시 된 부대는 2007년 CIA가 기밀문서(29쪽)를 통해 한국 민간인들을 군사훈련 시켜 북한에 투입해서 각종 비정규전을 수행한 사실을 공개했다. 2000년대에 영도유격대의 실상을 인지하여 태종대 부대기념비, 전우회 모임이 활성화되고, 2016년에는 영화제작을 시도하다 무산됐다.
1951년 2월, 약150여명이 일본에 가서 주일미군 기지에서 약 1개월간 비정규전 교육을 받고 돌아와 부대 교관, 기간병이 되자 4월엔 약1,400명으로 늘어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그들이 머문 영도는 일종의 치외법권 지역이 되어 일반인이 두들겨 맞고 쫓겨나기도 했으며, 태백산이나 지리산으로 보내져서 빨치산 토벌에 투입되기도 했다. 유격대원들은 육해공으로 침투활약 하는 등 비공식이었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UDT 훈련병의 전초이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은 휴전 후 아무보장도 없이 용도 폐기 해 버려 영도유격대원들은 버림받은 희생자가 된다.
희미한 숲길을 헤쳐 영도등대를 향한다. 영도등대는 천길 단애(斷崖)틈새에 각종문화공간과 어울려 지은 멋진 구조물이다. 영도등대는 100여 년 동안 한 번도 등대불이 꺼진 적이 없는 부산 앞바다의 불침번이다. 나는 등대를 찾아 내려가는 가파른 계단에서 느끼는 스릴과 바위를 후려치는 파도의 격동과 파열음소리에 홀린다. 글고 신선대서 왜구에 끌려간 지아비 그리다 망부석(望夫石)이 된 어느 열부의 사랑에 넋을 놓고 바라보는 지지리도 못난 사내가 되기도 한다. 이젠 망부석 외의 그 누구의 입장도 불허하는 신선바위!
신선들이 재림(再臨)하려도 거절할 텐가? 출입금지구역이 된 건 2016년의 경주지진과 이듬해 포항지진에 신선대에 균열이 생긴 탓이라니 신선들한텐 다릴 놔주겠지. 암튼 난 지질공원에서 특단의 대책을 내놓기까진 신선대에 오르는 기쁨은 꿈속에서만 가능하리라. 시선바위 색깔이 붉은 건 호수에 쌓인 퇴적층이 해수면의 상승으로 파도에 의해 침식 돼 생성된 파식대지, 해식애가 장구한 세월동안 기이하게 발달하면서 햇빛과 비바람에 아름답게 변색된 거란다. 암벽해안의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은 감동 그 자체다.
태종대 등대자갈마당 등 해안가 부근과 신선바위, 곤포선착장 등지는 군사작전지역으로 분류되어 오후8시 이후엔 민간인 출입이 통제된다. 또한 공룡 발자국화석이 신선바위 주변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데, 1999년10월 부산대학교 지질학과 김항묵 교수팀이 초식 공룡발자국 90여 개를 발견하였고, 2006년 초에는 부산지역대학 공동조사단이 길이21~49cm, 보폭70~80c, 깊이10cm 정도 파인 발자국 155개를 발견하여 공룡발자국으로 밝혀졌다. 신선대로 가는 벼랑의 오솔길에서 12개의 발자국이 있다는데 가볼 수 없다.
태종대의 암석은 호온펠스암석으로 엄청 단단해 망치로 두드리면 금속성소리가 나는데 깨지면 예리한 칼날처럼 바위칼이 된다. 전망대에서의 절벽 밑은 하도 아득해 보이지 않는데 단애에 부딪히는 파도소리가 들리고, 청명한 날엔 대마도까지 조망되어 시인과 한량들이 즐겨 찾던 명소로 예부터 시인, 묵객들이 많이 찾았던 곳이다. 여기 단애전망대에서 조망한 풍경이 넘 멋있어 자살자가 많아지자 모자상을 세웠다. 자살바위의 유래다. 모자상은 한복을 입은 어머니가 아들과 딸을 품에 안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젊은 사람은 온화한 표정의 어머니 얼굴에 마음을 돌리게 하고, 나이 든 사람은 자식 생각에 목숨을 지키도록 하자”는 의도였다고 제작자인 홍대교수 겸 조각가인 전뢰진씨의 변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은 모성이다. 모성을 조각에 담으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통한다.” 자살직전 어머니를 한번 떠올리게 할 순간을 위해서다. 그나저나 오늘은 농무(濃霧)가 나를 안개의 포로로 만들어 당달봉사가 됐다. 특히 오늘 같이 안개 짙은 날엔 자살자가 많았단다. 그래도 나는 안개속의 갓길숲길을 따라 구명사(救命寺)를 향한다.
1959년 자살바위에서 관광객에게 음식을 팔며 남편의 병이 회복되기를 기도하던 정영숙이란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기도하러 오가던 중에 자살하려는 분을 종종 마주쳐 진심으로 만류하곤 했다. 그렇게 3년이 흘러 남편이 병상에서 회복되자 보은하는 마음으로 10년 걸려 벼랑위에 작은 암자를 지었다. 자살바위 부근에 자리 잡은 암자 이름은 구명사(救命寺)로 암자 간판 뒤 게시판엔 ‘죽음은 비겁하다 잠간(잠깐)만 참자’라는 글귀가 음각됐다. 모자상은 한복을 입은 어머니가 아들과 딸을 품에 안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젊은 사람은 온화한 표정의 어머니 얼굴에 마음을 돌리게 하고, 나이 든 사람은 자식 생각에 목숨을 지키도록 하자”는 의도였다고 제작자인 홍대교수 겸 조각가인 전뢰진씨의 변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은 모성이다. 모성을 조각에 담으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통한다.” 한참 후 태종대 관광지구 정비사업에 따라 구명사는 지금의 자리로 옮겼고, 정영숙의 아들인 호은스님이 암자를 지켜가고 있단다. 안개에 묻힌 구명사는 스산했다. 인기척해도 안개만 너울댔다. 행복은 마음의 행로와 늘 겹친다.
태원 자갈마당으로 하강한다. 계단도 급살 맞게끔 생겼다. 게다가 농무가 아가리 벌리고 달려들어 냉큼 벗어나고 싶었다. 자갈마당 해변을 오지게 소요하고 싶었는데 꿈을(?)접었다. 안개 탓인지 태종대순화도로 갓길 트레킹족도 오늘같이 안개 날의 햇빛마냥 귀하다. 태종대(太宗臺)는 조선시대 실학자 안정복의 동사강목에 태종 무열왕이 일본 대마도를 공격해 토벌했을 때 주필(駐蹕)한 곳으로 활쏘기와 연회를 개최했던 곳이라는 기록에서 따온 이름이란다. 태종이 1419년 큰 가뭄에 기우제(祈雨祭)를 지내 비가 내렸다.
그 후 동래 부사도 태종을 본받아 가뭄이 들 때마다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었고, 신선대서 남편을 기다리던 여인이 돌덩이로 굳어 망부석이 된 어여쁜 얘기가 유래한다. 푸른 바다의 파도와 절애의 기암괴석의 씻김 궂은 울창한 숲 바람과 교향악을 연주한다. 나는 안개 낀 오늘의 소슬함이 좋다. 몽환적인 분위기에 흠뻑 빠져 소요의 진수를 만끽하는 낭만의 한 여름날을 품어서다. 오롯이 나만의 시간! 고요가 안개처럼 뚝뚝 묻어나는 숲속 길! 아! 자연이란 오케스트라 전당에서의 기웃거리는 폼도 즐긴다. 2024. 07.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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