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산 & 감천문화마을
장마전선의 국지성폭우로 전국이 난리인데 부산지방은 찌푸린 채 비 올 생각은 접고 꾸무럭대기만 한다. 땡볕 걱정은 안 해도 될 성싶어 천마산행에 나섰다. 사흘 전 감천문화마을 소요 때 검푸른 천마산이 허리춤에 걸친 알록달록한 카드섹션치마 속살이 궁금했었다. 토성역을 나서 까치고개 감천문화마을을 향하다 아미초등학교 옆 구멍가게 주인장께 천마산등산 지름길을 물었다. 바로 옆 골목길로 쭉 올라가란다. 보아하니 골목 같지도 않다. 두 사람이 겨우 비켜갈 만한 가파른 시멘트계단을 뱀처럼 기어올라야 했다.
감천문화마을 골목길은 어떻게든 이어진다는 요지경 아닌 기똥참을 이미 터득한 탓에 숨 헐떡거리며 여수같이 헤맸다. 훤한 임도가 나왔지만 급살 맞게 경사진 골짝물길 좇는 숲속산길을 헤쳐 올랐다. 천마산십리길이 나타났다. 긴장이 풀렸다. 고요하고 산뜻한 숲길이 보상하듯 이어진다. 울창한 삼나무 숲속에 탱자나무길, 담장 길, 쥐똥나무길 등 명찰을 달아 놨다. 음습해선지 초소도 있다. 환장하게 멋지다. 이 멋진 숲길에, 치유의 숲길에 왜 인적이 없을까? 고것이 궁금하기도 했다. 전나무가 하늘을 찌를까봐 회색구름이 장막을 쳤다.
전나무 사이로 바다가 기웃댄다. 나무들의 숨결인지, 안개의 장난인지 숲 바닥은 축축하다. 한 시간쯤 숲의 요정들과 동행하니 조각공원이정표가 나타났다. 근디 이 길은 인적이 묘연한, 수풀이 웃자라고 있어 신경이 곤두섰다. 여태 한사람도 마주치질 못했다. 반시간쯤 헉헉대니 얄궂게도 조각공원은 철조망을 치고 출입금지 표찰을 달았다. 2년 전부터 보수공사로 폐쇄된 셈이었지만 철조망 한 칸은 뚫린 채다. 조각공원과 정상을 어찌 가나? 서성대고 있는데 공원보수공사를 하는 트럭이 나타나 하소연 했다. 들어와서 반대편철조망 밖에서 우측 산길을 오르란다.
출입금지는 요식행위였다. 홀로산행에 이골이 난 나는 배짱도 커졌다. 도전(?)이 때론 낭패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나아갈 방향만 알고 있음 길은 뚫려있단 게 체험의 소산이다. 정상은 가파르고 오밀조밀한 숲길 끝에 돌탑을 세워 사위를 조망하고 있었다. 부산시가지와 바다와 섬들을 거의 관망할 요지였다. 천마산(天馬山 324m)봉수대는 황령산과다대포로 이어지는 남해방어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는 연변봉수(沿邊烽燧)란다. 또한 넓은 초원은 말이 서식할 천혜의 자연조건을 지녀 목마장을 조성해 천마산이라고 했단다.
정상에선 감천문화마을과 비석마을, 송도해수욕장, 다대포와 낙동강, 대마도까지도 볼 수가 있다. 그저께 탐방했던 감천문화마을이 좌측 산골짝에서 카드섹션을 벌리고 있다. 하산하면서 천마산이 허리춤까지 두르고 있는 울긋불긋한 원색치마 속을 들여다보며 감천문화마을로 빠져들 참이다. 감천문화마을에서 가장 높은 영동힐타운을 향하는 하산 길은 허발 나게 깔크막졌다. 카페천해로207가 있는 산복도로에 섰다. 그 아래 산비탈 골목길이 감천문화마을로 이어질 터여서 비좁고 급살 맞게 경사진 골목계단을 내려 밟는다.
길은 요리저리 얽혀 한참을 미로 찾기 한다. 6.25피난민들이 피곤한 삭신을 붙인 움막들이 기차 칸처럼 붙어있다. 비탈에 바짝 엎드린 집들은 70여년의 애환의 세월을 관통한 유대감을 과시하듯 고만고만 엇비슷하다. 그들은 설음과 기쁨을 원색 칠로 표현하며 위안 삼았지 싶었다. 나 역시 북아현동 달동네에서 70년대를 뭉그적댔던 애환이 반추됐다. 한밤중에만 찔끔찔끔 나온 수돗물, 두세대식구가 공동변소 사용할 눈치싸움 끝의 배설의 쾌감(?)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그때가 결코 불행하단 생각을 안 했다.
아니, 그럴 짬도 없었지 싶다. 그런 기억은 오히려 진한 추억 한 토막으로 살아있다. 감천마을 사람들도 먹을 게 없어 양조장 술 찌개를 죽 끓여먹고, 우물물 깃느라 밤새워 줄서 기다려 무거운 물동이 나르면서도 결코 절망하진 안했을 테다. 깔크막진 산비탈을 10여분씩 올라와 포도시 응뎅이 붙일만한 움막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뿌듯했을지 모른다. 모두가 같은 처지기에 협동해야 내일을 기약할 수가 있어 기꺼이 상부상조하며 애환을 공유했으리라. 불행은 누군가와 비교하는 마음의 싹이다. 서로 비슷한 삶은 비교할 게 없어 다행(?)이었을 테다.
가난이 결코 불행이 아니 단걸 감천마을 주민들이 실증한다. 네팔과 부탄사람들의 행복지수가 세계에서 젤 높다는 건 팩트다. 감천문화마을 관광객들 대게가 젊은 청춘들이다. 그들은 미처 상상도 못한 삶의 현장이 신기하여 찾는지 모르겠다. 젊은이들 눈에 불편해 보일 환경을 극복해 가는 삶의 지혜가 신기루처럼 느껴질 만하다. 그들이 행복은 결코 외형으론 가늠할 수 없단 걸 체감했음 싶다. 그들은 무한도전의 기상천외한 컨셉에 흥미를 느끼듯 감천문화마을 탐방에서 신선한 생존의 비결을 체감했음 싶다.
문득 고 이어령교수의 책<축소지향의 일본인>이 떠올랐다. 일본인들이 전자제품을 비롯한 생활용품과 산업용기계까지도 최소로 만들어 성공한 문화를 통찰했다. 축소문화의 행복과 비전이 확대지향으로 변화할 땐 무너질 수도 있단 뉴앙스를 알아채야 한다. 꼴뚜기가 뛰니 망둥이도 뛰는 우를 우린 범하지 안해야 한다. 감천문화마을은 다양하고 흥미로운 발상을 하게 한다. 오늘날 유행을 선도하는 컨셉(concept)들도 우리들의 일상의 삶에서 낚아 올린 거란다. 그래 젊은이들이 감천문화마을에 푹 빠져드는 건가? 알 듯 모를 듯하다.
암튼 꼰대인 나는 70년대 달동네시절로 타임머신여행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풋풋했다. 삶이 무미건조하걸랑 감천문화마을을 찾아가 봐라. 축복의 세레머니를 받고 싶걸랑 감천문화마을 골목 끝에 서봐라. 온 산골짝 마을이 신나게 카드섹션을 벌려 환호하는 신기루에 빠지게 한다. 뭔 축제장인가! 당신이 히어로일지 모른다. 마추픽추는 저리가라다. 거기서 발걸음을 천마산으로 향하면 온 우주를 축소한 듯한 아름다운 부산을 품안에 품을 수 있다. 멋진 뷰에 탄성하고 무진장 뿜어내는 피톤치드에 피곤이 치유된다. 2024. 0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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