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암 - 슬도(瑟島) 솔바람길
태화강역에서 대왕암공원까지 운행하는 울산시티투어(ULSAN CITY TOUR)버스는 한 시간 남짓 울산시내를 누비지만, 쾌적한 실내와 기사님의 친절에 지루함은 저리가라였다. 고작 세 네 시간의 당일치기 트레킹을 두 번한 나지만 울산시내 풍정은 늘 신선감과 평안함을 자아냈다. 오늘 세 번째 울산행은 출렁다리 - 대왕암 - 슬도를 잇는 트레킹로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대왕암소요는 생각만으로도 가슴 설렌다. 주차장에서 출렁다리를 잇는 해송산책로는 끝도 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신록의 장원이 단박에 나를 매료시킨다.
낙화암(洛花岩)은 미포만 백사장 해송림 속 기암절경의 바위석대에 명사들이 각석한 한시(漢詩)바위다. 옛날 이곳 수령이 관기들을 품고 가렴주구에 빠져 주민원성이 자자하자 어린 기생이 수령에게 경종을 울리려 붉은 치마를 뒤집어쓰고 수중고혼이 됐다. 며칠 후 붉은치마가 파도에 떠밀려 미포바위섬에 걸리니 이 바위를 홍상도(紅裳島)라 불렀고, 녹라채(綠羅彩)의 소매(袖)자락이 밀려온 포구를 녹수금(綠袖襟)이라 불렀다. 현대조선소 건설로 낙화암이 헐렸는데 그 낙화암 쌍바위를 찾아 대왕암공원에 안치했다.
드넓은 평지에 빼곡히 늘어선 곰솔들의 사열을 받는 솔숲행진은 몇 백 미터쯤 될까? 수령백년을 넘긴 소나무가 태반이란 데 갓길에 드문드문 안치된 벤치에서 쉼을 즐기는 손님이 멋지게 앙상블을 이룬다. 완전한 치유의 숲은 이를 말함일까! 도시락 싸들고 와서 진종일 뭉개고 싶었다. 출렁다리에 들어섰다. 300여m 다리 끝은 숲으로 기어들고 하늘다리에 올라탄 사람들은 멋진 뷰와 스릴에 오금을 절인다. 중년 여인들이 서로를 붙잡고 발을 때지 못한 채 괴성 아닌 신음을 즐기나? 진한 추억 한 장 가슴속에 찍었지 싶었다.
무인도 세 미인섬(민섬)이 현대중공업의 안내양처럼 수루방을 향해 헤엄쳐오고 있다. 시티투어 안내서에 예약신청을 받는다고 고지해 놨다. 수루방암봉 밑에 절벽에 용굴이 있다. 내려갈 수 없고 전망대에서 고개 빼고 봐도 얼마나 길고 수심이 깊은지 물색마저 새까맣다. 동해안은 백악기의 화강암이 물러 터졌던지 파도에 깊게 파인 피오르가 수십 군데로 기이하고 멋진 해금강을 만들어 관광객을 현혹시킨다. 천의 얼굴을 뽐내는 피오르에 미쳐 나는 발길을 옮기지 못한다. 눈 따로, 발 따로 여서 마음갈등이 심하다.
울산 대왕암해변의 리아스식 피오르의 장관은 탄성 이외 어불성설이라! 넙디기 - 할미바위(남근석) - 탕건암 - 고이 - 사근방 - 용다이목 - 용추수로 - 용두 - 대왕암바위군 - 북시미 - 샛구직 등등 놈들을 알현(?)하느라 바윗길 오르내리길 수 없이 해야 했다. 신묘한 자연의 황홀경에 더 홀딱 취하게 하는 추임새로 바닷바람만한 게 없다. 바다냄새에 솔향기를 얹은 해풍은 그 자리에서 오래오래 머물고 싶어진다. 바다와 바람과 푸나무향과 동행하는 이 길은 해파랑 길1~4코스이기도 하다. 강추 하고프다.
대왕암공원에 이렇게 멋지고 맛깔난 트레킹코스가 있단 걸 체감하는 오늘이다. 대왕암입구 용추수로는 엉뚱하게 파라솔 퍼레이드를 펼친다. 어선 한 척이 다가서니 파라솔아래서 아낙들이 나와 부산을 떤다. 파라솔아래 횟집`맛집들의 활어공급선 인가싶다. 하긴 이 좋은 관광지 해안에 맛집이 빠질 순 없으리라. 용다이목을 밟고 대왕암 찾는 미로에 들어섰다. 괴이하면서도 아름답고 불가사이 한 바위들을 누가 이곳에 모아 놓았을까? 기똥차고 환장하게 멋있어 내 짧은 혀로 표현할 말이 궁하다.
신라여자들은 여장부라더니 자의왕후(문무왕부인)은 어찌 여기에다 묘를 쓰면 신라가 융성할 걸 알았을까! 경주앞바다에는 문무왕이, 울산 대왕암엔 자의왕후 영가가 파수꾼이 되어 신라 호국신을 자처한다. 결코 웅장하지 않고 섬세한 피오르 섬들은 신묘하게 생겨 대왕암을 환상적분이기에 자리매김 했다. 자의왕후는 문무왕보다 풍수지리에 밝았나 싶다. 오늘따라 햇살은 눈부시고 윤슬들이 옥빛바다를 선뵌다. 해파랑 배터지게 품고 용다이목에 섰다. 꺾다리 소나무 두 그루가 슬도를 가리키며 용다이 몽돌해안을 안내한다.
불현듯 시장기가 가슴을 후빈다. 몽돌밭 소나무그늘에 다릴 폈다. 삼삼오오 관광객들은 대왕암에서 죄다 사라졌는지 그림자 하나도 없다. 바닷 속에서 물질하는 해녀 한분만 움직일 뿐이다. 이곳 몽돌은 동해물이 깨끗해선지 먼지 한 톨 없이 반질반질하다. 수석 욕심낼만한 게 부지기수다. 고동섬과 짜잘한 소바위의 강태공들과 갈매기가 생동할 뿐 세상이 모두 정지된 듯싶다. 방어진에 목맨 화물선들이 바다 한 가운데서 오수(午睡)에 빠지고, 해안가 해당화도 정오의 햇살에 잔뜩 풀죽어있다.
용다이목에서 슬도까지의 대왕암둘레길 십 여리가 관광객이 없는 까닭을 짐작할만했다. 드뎌 성끝 벽화마을에 들어서서 방어진방파제를 발 디뎠다. 소리 내어 반기는 놈은 갈매기뿐이다. 슬도등대가 수국화환을 걸치고 맹숭맹숭 서있다. 방어진방파제엔 낚시꾼들이 대회시합 중인가 싶게 볼만한데 물고기도 낮잠 자는지 한 마리도 낚이질 않는다. 강태공들은 고기 낚시보단 자신과 시간과의 싸움을 즐기는지 모른다. 난 엉덩이가 절여 낚시꾼은 못될 것이다. 방어진항구도 꽤 크다. 수협직판장과 어시장이 있단 데 외면했다.
일산해수욕장을 일별하고 싶은데다 거기까지 다시 시오리길을 되짚어가야 해서다. 해당화오리길을 잰걸음 질 했다. 죄다 열매 익히느라 새빨간 꽃잎이 없다. 몽돌해안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쉰다. 아까 물질하던 아낙도 어디로 꼭꼭 숨었다. 문득 가수 박상규의 노래 <조약돌>생각이 났다. 바리톤음색이 윤슬에 튀기면서 아련한 연정 한 페이지를 소환시킨다. 행복한 시간이다. 아득히 뱃고동소리가 들린다. 길은 미지를 향해 떠나는 자들을 위해 존재한다. 그 길 위에 새로움과 기쁨이 녹아있다. 인생을 누가 항해라 했던가! 2024. 06. 28
“꽃잎이 한 잎 두 잎 바람에 떨어지고
짝 잃은 기러기는 슬피 울며 어디 가나
이슬이 눈물처럼 꽃잎에 맺혀 있고
모르는 사람들은 제 갈 길로 가는구나
여름 가고 가을이 유리창에 물들고
가을날에 사랑이 눈물에 어리네
내 마음은 조약돌 비바람에 시달려도
둥글게 살아가리 아무도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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