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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송도해안볼레길

송도해안볼레길

딱 2년 만에 송도해안볼레길 트레킹에 나섰다. 이번엔 남항대교 내륙의 자갈치시장에서 공동어시장을 지나 송도해수욕장에 진입하는 코스를 택했다. 공동어시장을 살짝 엿보고 싶었다. 몇 년 전 고인이 된 지기(知己)Y가 공동어시장에서 생선도소매를 했었는데, 그가 한창 잘나가던 40대중반 때 공동어시장을 찾았던 기억이 잊혀 지질 안해서다. 30여 년이 흘러간 시장 안은 내부구조가 바뀌어 Y의 가게자리가 어딘지 어림짐작할 뿐이다. 그는 새벽에 출근하여 경매입찰과 도매를 하고 점심때까지 가게부스에서 소매를 하다가 퇴근하는 순박한 상인이었다.

젊은 어부와 용왕의 딸 인룡(人龍)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담은 청동조각상

어시장사람들의 작업복 차림새에 세수도 제대로 하지 않고 나온 그의 외양은 본시 덩치 크고 수더분한 체질과 잘 매치됐었다. 그는 짭짤하게 수입을 올리던 중`도매업자인데도 외양에 그닥 신경 쓰지 않는 낙천적이고 인심 좋은 사나이였다. 사실 새벽3~4시에 출근해서 점심때까지 장사하다보면 딴 곳에 정신 쓸 시간이 없다면서 씩 웃었다. 그런 작업복의 Y가 아른댔다. Y가 저쪽 가게 어디서 오른손을 높이 들고 나를 향해 손짓하나 싶었다. 그 환영(幻影)에 풀죽은 나는 발걸음을 되돌렸다. 죽음의 가장 무서운 현상이라.

▲거북섬 구름산책로▼
봉래산과 남항대교가 보인다
남항만 정박지

낙천적인 그가 4년 전 이기대해안길을 선도할 때 활달해보이지 않더니 영면했다. 뭐가 그리 바빴는지? 거북섬 구름산책로에 올랐다. 송도해수욕장은 텅 빈 채 구름다리 산책객만 어슬렁댄다. 머리위엔 해상케이블카 릴레이가 간단없이 이어진다. 편하게 즐기는 관광이 젊은이들의 대세여서, 트레킹은 더구나 여름철에 그다지 매력적인 관광트렌드는 아닐 테다. 거북섬 등짝을 휘젓는 구름다리는 애초엔 수정(水亭)이라는 휴게소가 있던 곳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송도를 개발하면서 수정을 세워 우리나라 최초의 해수욕장이자 관광지로 유명해졌다.

▲거북섬과 동섬을 잇는 케이블카▼
케이블카 탑승장 뒤 고층빌딩은 힐스테이트 주상건물

그 정자가 태풍으로 허물어진 자리가 거북모양이라 거북섬이라 부른다. 길이 365m, 폭 2.3m의 구름다리는 일부 투명유리라 바다를 걷는 스릴에다 머리 위에선 케이블카가 왔다갔다 정신을 빼앗는 일상탈출의 바로미터다. 거북섬 구름다리에서 조망하는 송도만의 절경은 최첨단도시의 풍경을 여과 없이 연출한다. 한 가지 아쉬운 건 태풍으로 망가진 해안절애의 데크로드가 지금도 보수공사로 출입금지였다. 송도해안볼레길의 오션뷰를 즐기는 트레킹을 포기해야 하는 아쉬움을 몇 년째 삭혀야 되는가?

▲거북섬 위의 구름산책길▼

송도해안볼레길은 데크산책길만이 아닌 차도와 병행하는 인도라도 울창한 숲속길인지라 여느 트레킹코스 못잖은 힐링코스다. 원시 숲 사이로 숨바꼭질하는 푸른 바다와 그 망망대해에 장난감처럼 떠 있는 크고 작은 선박들은 송도볼레길만이 선물하는 그림 같은 풍광이다. 남항만 묘박지(錨泊地)에 붙박여 있는 배들은 뭔가 그리움의 상징이기도 하다. 선원들은 오랜 배멀미를 저기서 달래고 모처럼 평안을 얻는 어머니 품 같은 쉼터다. 나아가 그들을 기다리며 그리는 가족들의 간절한 기도가 응축된 희망처이기도 하다.

▲송도해수욕장, 우리나라 최초의 해수욕장이었다▼
인공폭포

선적한 물건들은 누군가가 간절히 기다리는 선물이며 행복을 기약하는 보물일 것이다. 안도감과 향수가 녹녹히 배어있는 묘박지는 선원들의 고향 같은 곳이다. 크고 작은 배들이 고향의 품안에서 오수(午睡)에 빠지고,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향수(鄕愁)에 나는 힐링의 순간에 든다. 그리움은 사랑이다. 사랑은 생존의 원천이다. 그리움을 달랠 길 없는 세상은 삭막하다. 희망마저 증발해 버린 사하라사막일 것 같다. 배에게, 뱃사람들에게 묘박지는 고향의 어머니다. 더불어 고장 난 곳 고치고, 쇠진된 기운 보충하여 다시 항해에 오르는 곳이 묘박지다.

▲송도 해안포구의 어선들▼
남항대교 뒤로 남항만의 자갈치시장 일대가 조망된다, 왼쪽은 거북섬의 힐스테이드 복합건물

뉴질랜드 한국전 참전 기념석 앞에 섰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뉴질랜드군 제16포병연대가 승선한 군함 SS올몬드호의 도착지가 이곳이다. 1950년 12월 31일 설 전날, 우리나라에 최초로 상륙한 유엔군 뉴질랜드병사들이 캠프를 친 곳을 기념하려 세운 비석이다. 기념석은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직접 공수된 바위란다. 제16포병연대는 1951년 중공군의 신정공세 후 실시된 영연방 제27여단의 진격작전, 가평전투, 코맨도작전, 고왕산전투, 휴전을 앞두고 벌어진 마지막 전투였던 후크고지전투 등에서 전사 23명(해군 1명), 부상 79명, 실종 1명으로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그들이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이역만리 낯선 타국에서 왜 죽어야 했나?

남항만 정박지. 울나라 어디에도 이렇게 평안하게 쉴 배들의 어머니 품안은 없지 싶다
송도해안볼레길은 해안데크길만 빼곤 울창한 원시숲길이다
뉴질랜드 참전기념석, 오석은 뉴질랜드 오클랜드 원석이란다

3.8휴전선에선 다시 전운이 감돈단다. 누굴 위한 전쟁노름을 벌리고 있는가? 풍선에 전단지 보내서 오물 받고, 확성기로 서로를 비망하고, 9.19남북군사합의 파기하면서 진지 구축하는 긴장의 시간은 오로지 젊은 병사들의 몫이다. 황금의 시간을 그렇게 강탈(?)당한다. 졸병이야 어찌 죽던 간에 지휘관 장성한텐 입도 뻥긋 말라는 대통령이고, 그의 격노에 전쟁치루 듯 하는 불행한 나라가 우리다. 애국자인 척 역설하는 위정자들은 거의가 알량한 권력욕에 취한 네오콘들이다. 강한 건 언젠가 부러지게 마련이다. 전쟁의 희생자는 젊은이들과 국민들이다. 고위직들이 감투 쓰면 국군묘지를 참배하는데 그때마다 철면피 얼굴들 보기 역겨워 외면할 때가 많다. 

암남공원주차장, 둑방은 강태공들의 요람터다
보수 중인 해안데크길은 2년 전엔 저기 모퉁이까지 월경했는데 이젠 철저하게 막아놨다

암남공원 휴게광장에 내려섰다. 2년 전엔 방파제좌측에서 보수 중인 해안데크길을 월경하여 오션뷰를 사진으로 담았는데 출입금지를 확실하게 해놓아 실의했다. 방파제에선 강태공의 침묵이 낚시 줄을 팽팽하게 긴장시키고, 시위하듯 늘어선 맛집들은 강태공의 동정에 목을 매고 있다. 2년 전에도 이곳 솔밭 의자에서 끼니를 때웠는데 오늘도 배낭을 풀었다. 바다를 애무하고 솔향을 묻힌 바람결이 상긋하다. 소나무로 살짝 가린 하늘은 캡슐카를 띄워 나를 낚을 셈인가? 사라졌나 싶으면 다시 나타나 내려다본다.

▲강태공들과 동섬과 용궁구름다리와 회맛집 풍경이 그럴싸 한 암남공원 쉼터▼
용궁구름다리

놈들의 눈총에서 약간 벗어나면 용궁구름다리다. 용궁구름다리는 암남공원과 무인도인 동섬을 연결한 127.1m의 현수교로 동섬 8부 능선을 휘도는 뷰`포인트다. 영도봉래산과 송도진정산이 가둬놓은 남항만의 정박지를 샅샅이 조망할 수 있다. 하여 해상케이블카와 바다 위 산책로와 함께 해안볼레길의 3대보물이다. 해안볼레길 또 하나의 진면목도 안남공원산책길에 있다. 울창한 원시숲속에 조붓하게 트인 해안산책로는 자갈바위에 적당이 가팔라 트레킹의 천국이라 할만하다. 숲속으로 넘나드는 푸른 바다와 상선들이 이젠 아는 챌 한다.

강태공은 낚시줄에 , 횟집들은 강태공의 동정에 눈총을 한시도 떼지 않는다
숲속의 카페
용궁구름다리 매표소 앞 풍경

절애에 도전하다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물보라, 그 해조음(海潮音)을 싣고 나무사이로 달려오는 바닷바람의 상쾌함은 잔잔한 희열 외의 어떤 감정도 삭혀버린다. 하루 종일 걸어도 거뜬할 것만 같다. 흔들다리 옆에 흐지부지한 숲길은 해안초소길인데 전망이 뛰어나다. 대 간첩선 감시토치카에서 시간과의 싸움에 골몰했을 초병을 상상해 봤다. 휴대폰도 없는 초병에게 바다와의 대면은 어땠을까? 능선을 하나 넘으면 화산활동과 퇴적지층으로 생긴 다양한 암석들이 거대한 단애로 압도하는 ‘부산국가지질공원’의 표상이 나타난다.

▲동섬과 용굴구름다리▼

천길 단애 밑은 퇴적바위군상으로 낚시꾼들의 아지트다. 바위군상에서 마주하는 절애는 다양한 색깔 층을 이룬 거대한 시루떡바위 전시장이다. 깊숙이 파인 바위틈에선 모든 게 정지된다. 어떻게 이 웅덩이를 찾아온 파도가 바튼 숨을 내쉬는 거품소리가 유일하다. 저 멀리 돌출한 바위에서 낚시꾼 두 명의 슬로모션이 흑백영화 한 컷이라! 2년 전엔 밀물 때였던지 여기까진 안 왔었다. 동백나무길 전망대에 올랐다. 아치형으로 휜 팽나무가지 사이로 조망하는 묘박지의 풍광이 환장하게 멋지다.

출렁다리
출렁다리 건너 쉼터에서 잠시 쉬는 순간도 기꺼이 휴대폰 노예가 되는 젊음들

두도(頭島)를 향하는 암남공원숲길은 혼자 탐닉하기가 넘 아깝달 정도로 트레킹의 천국길이다. 아니 호젓해 좋아서 하는 헛소리(?)다. 적막해서, 울창한 태곳적 숲의 향기로 관장을 하는 흡족감이 어떤지를 아무나 공감하진 못할 것이다. 멋지게 폼 잡고 있는 팽나무가 베푼 쉼터에 닿았다. 샘물(수도)이 있는 쉼터는 나무꾼들이, 초병들이 감로수 찾아와 쉬었던 곳이다. 산촌 아낙네들은 흰 천과 붉은 천 조각을 팽나무가지에 걸어놓고 정화수(샘물) 한 종지를 떠올려 고기잡이 나간 남편이 무사히 도착하길 기도하던 곳이기도 하다.

태곳적 분위기 물씬한 숲길을 소요하는 감동은 홀로산행의 매력(?)이기도 하다
시루떡바위군상들을 알현하는 바위광장의 가파른 하산로를 말끔하게 덱계단으로 조성했다

그 아줌마가, 나무꾼이, 초병의 발길에 닳고 닳은 숲길 저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누가 됐던지 이 쉼터를 찾는 이는 행복한 발길이라. 갈증을 해갈하고, 소식을 탐문하며, 간절한 기도를 올리면서 훈훈한 인정의 흔적까지 느낄 수 있는 신선한 숲속이어서다. 옛날 얘기가 아닌 반세기 전쯤의 실화다. 팽나무가 초록열매를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 수만큼 무수히 달고 있다. 두도를 향한다. 울창한 사철나무숲을 뚫는 자갈바위 길은 해풍까지 간질거려 신바람 나게 한다. 두도와 전망데크 사이는 점프해서 건널까 싶게 가깝다.

▲부산국가지질공원의 표상인 바위군상들▼

누군가가 저길 건너고 싶어 오금이 절었던지 다리를 놓다 말았다. 두도 쌍굴에서 튀어나온 귀신한테 혼찌검 나서 도망치다 익사했는지 어쨌는지 모른다. 재갈매기와 괭이갈매기가 새끼를 치고 살며, 민물가마우지와 해오라기가 해마다 찾아오는 귀빈이며, 바닷새들의 보금자리인 서식지를 어떤 창시 빠진 놈이 침범하려다 내뺀 흔적이다. 두도는 태초부터 바닷새들의 둥지다. 흉물스런 시멘트골조를 깨끗이 치우고 ‘낚시금지의 섬’이란 안내판을 세웠으면 좋겠다. 두도 해안바위에서 얼쩡대는 낚시꾼이 좋아보일 택이 없다.

▲움직이는 건 나뿐인 절애 고도 같은 바위동네에서 배낭을 풀고 20분쯤 파도소리에 홀렸다▼

안남공원 쉼터에서 국제수산물도매시장으로 하산하는 숲길은 가파른데다 비정규코스다. 다만 지름길이라 나 같은 얌체만이 이용하나 싶다. 국제수산물도매시장은 우리나라 굴지의 해수산물 가공공장의 메카다. 하도 청결해서 공장이 가동되나 싶었다. 송도해안볼레길과 안남공원길을 네 시간쯤 누볐으니 해찰 오지게 한 셈이다. 그래도 희망정은 외면했다. 2026년에 해안데크길 보수가 끝난다는데 2년 후가 아닌가? 오늘 이 상태의 송도해안볼레길도 트레킹코스의 백미를 절감케 한다. 행복한 하루였다.     2024. 06. 20

장수하늘소(?)도 마중을 나왔다
거북등일까 코끼리 피부일까? 아님 공룡발자국 표본일까?
묘박지의 어떤 배는 아는 챌 했다
나를 꼼짝 없게 붙들어 매는 사생화 액자
▲하루종일 걸어도 좋을 숲길▼
해안초소, 휴대폰도 없었을 그날의 초병도 묘박지가 어머니 품이었지 싶었다
두도
일난성 사형제의 팽나무는 폼나는 쉼터를 제공하고 수많은 애환들을 귀동냥하느라 이리저리 허리를 휘었을 테다
봉래산에서 뻗어나온 준령은 태종대를 품었다
두송반도와 감천항 방파재
▲두도, 시멘트구조물은 철거하여 새들의 낙원으로 영겁하길 염원한다▼
낚시꾼들의 출입통제도 철저히 하고~!
감천항 바다방파재
거북섬과 구름산책길과 남항대교
남항대교
Y가 손 흔들며 나타날 것만 같은 공동어시장

#  트레킹의 천국 - 송도해안 볼레길 (tistory.com)에서 2년 전의 여행기를 보실 수 있습니다

남색선이 오늘의 트레킹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