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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재한유엔기념공원' 에서

'재한유엔기념공원' 에서

“남북한 주민이 서로 악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 부각돼야 합니다”

나는 부산에 ‘재한유엔기념공원’이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왠지 탐방할 기회가 없었다. 아니 그럴 기회를 안 만들었다. 근데 오늘 호국의 달 6월을 맞아 불현 듯이 생각이 났다. 해운대에서 반시간쯤이면 찾아갈 거리여서 전철에 올랐다. 부산 남구 대연동에 있는 재한유엔기념공원은 부산박물관, 평화공원, 유엔조각공원, 부산문화회관 등과 서로 이웃하고 있는 문화역사의 공원이었다. 재한유엔기념공원엔 전투병과 장비 등을 지원한 전투지원 16개국과 각종 물자지원 5개국 등 총 63개국의 헌신적인 희생을 기리는 신성한 전당이다.

공원입구의 '재한유엔기념공원' 영문표지석
유엔기 하강식(오후4시)
6.25전쟁 추모관, 12분쯤 상영하는 동영상을 내 혼자 보긴 낭비이지 싶어 도중에 끄고 나왔다. 그실 다큐멘터리 내용도 대게 알고 있는 영상이었다

재한유엔기념공원에 들어선 나는 아담하면서도 정갈한 꽃동산에 든 기분에 영령들에 대한 경외심 보단 경이감이 앞섰다. 묘비나 묘석도 극히 절제되어 얼른 눈에 띄지 않아 묘역 같지가 않는 아름다운 꽃과 숲의 정원은 하도 정교하고 깔끔하여 별천지란 생각이 들었다. 지구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묘역도 있을까? 이리도 잘 유지관리 하는 공원도 있을까! 2,300여명 영령들의 안식처여서 경건함 내지 신성한 성역이라기 보단 너무나 아름다운 유토피아 같아 그냥 원 없이 머물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전몰장병추모명비

지극정성이 물씬 배인 꽃과 숲의 공원이라 풀 한포기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을 경각심이 앞섰다. 사실 공원관리원은 무시로 공원을 순찰하며 인도 외의 잔디지역에 한발자국의 월경도 허용하지 안했다. 그런 철저함 내지 자부심은 당연하단 생각이 들었다. 지구상에 국가가 아닌 국가연합체(유엔)의 성역은 이곳이 유일무이한 땅이다. 대한민국 땅도 아니다. 어찌 생각하면 방문객들은 신성불가침의 치외법권지역을 활보하는 특전을 누리고 있음이다. 유엔기념공원에 입장한 사람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약80억 명 중 선택받은 행운아다.

도은트수로 ; 최연소 안장자인 호주병사 J, P, DAUNT(17세)의 성을 따서 명명한 물길이다
영국군묘역

 

 

 

 

 

 

 

 

 

 

 

이 신성한 공원묘지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이듬해인 1951년 1월 전사자 매장을 위하여 유엔군 사령부가 조성하여 4월 완공되었고, 1955년 11월7일 대한민국 국회는 유엔에 이곳 토지를 영구히 기증하고 묘지를 성지로 지정할 것을 유엔에 건의했다. 12월15일 유엔총회는 결의문 제977(X)호를 통과시켜 묘지를 유엔 기념 묘지(United Nations Memorial Cemetery)로 공식조성하고, 묘지를 유엔이 영구적으로 관리하며 토지에 불가침권을 부여하기로 결의했다. 관리업무는 11개국으로 구성된 유엔기념공원 국제관리위원회(Commission for the UNMCK)에 위임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내 평생 이처럼 단아하고 깨끗이 잘 관리된 공원을 본적이 없다. 유엔기념공원을 산책코스로 애용하는 시민들, 특히 근처에 사시는 분들은 유토피아에 무시로 드나들고 있는 셈이다. 진정 행복한 분들이다. 이 신성불가침공원에 잠든 2,300여명의 영령들 중 영국인892명, 튀르키에462명, 캐나다381명, 호주281명, 네덜란드123명 순으로 13개국의 청춘들이다. 형설의 꿈을 꽃피워보기도 전에 산화한 청춘들의 넋을 위무하려 영국군의 이야기를 발굴 기록한 마틴 데이비드 우든 전 주한 영국대사의 헌신이 새삼스러워진다.

태국묘역
한국군(38명)묘역

마틴 데이비드 우든 전 주한영국대사는 1977년~2015년까지 영국 외교부에서 근무 중 한국에서 세 차례 총 10년간 근무한 지한파였다. 그는 한국에서 근무할 당시 유엔기념공원 국제관리위원회 일도 맡았기에 유엔기념공원을 수십 번 방문했을 테다. 그가 은퇴 후 런던 자택에서 2020년 12월 우연히 SNS에 올라온 한 게시글을 보다가 영국군 안장자 이야기 수집 작업을 시작했다. 재한유엔기념공원 관리처가 안장자 이야기를 발굴한다는 내용을 접했던 게다. 그 이야기 한 편 중 앤토니 팩 중위에 대한 소회를 옮겨본다

“1920년 영국에서 태어난 앤토니 팩 중위 이야기였다. 팩 중위는 영국 왕립 슈롭셔 경보병대 소속이었다. 이 부대가 한국전쟁에 파병됐고 자연스럽게 그도 한국으로 향했다. 팩 중위는 1952710일 한국의 한 전쟁터에서 적진으로 돌진하던 중 전사했다.”

튀르키에묘역

 이 이야기에서 신기했던 것은 그의 집안 배경이었어요. 그의 어머니가 영국 비밀정보부(SIS)에서 일했던 베티 솔프라는 비밀요원입니다. 베티는 미인계로 영국에 이득이 되는 정보를 빼내는 것으로 영국에서 유명했습니다. 팩 중위의 아버지가 외교관이었는데, 미국 워싱턴에서 근무하면서 베티를 만났고 결혼해 낳은 자식이 팩 중위에요.”

SIS비밀요원 베티 솔프라와 외교관이던 안토니 팩 부친의 첩보영화 같았을 로맨스의 해피엔딩으로 얻은 아들이 갓 20대에 한국전쟁에 파견되어 산화한 비극은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누구의 전쟁이었을까? 안토니 팩의 죽음을 우리들은 여미어야 될까? 우든 전 주한영국대사는 한반도의 평화와 자유에 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추모관 ; 건축가 김중업씨 작품, 다인종, 다종교의 추상성과 영원성을 강조하는 기하학적 삼각형태의 스테인드그라스 건물
나 혼자여서 사양했는데 직원의 권유로 5분쯤 동영상을 감상하다 퇴장했다.

남북한 주민이 서로 악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 부각돼야 합니다. 또 한국전쟁 때 유엔군으로 참전한 국가들이 더 이상 전쟁을 바라지 않는다는 점도 최대한 활용해야죠. 무엇보다 폐쇄적인 북한을 전 세계에 노출하면 평화와 자유에 조금 더 가까워질 겁니다.”

메타쉐콰이아 산책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새롭다. 아무리 나쁜 화해도 전쟁보다는 낫다. 남북한 대치로 얻을 수 있는 건 청춘들의 희생이고 천문학적인 혈세의 낭비일 뿐이다. 중동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실증하고 있잖은가? 국방예산의 한 봉지만 때어 사회복지(저출산정책)에 투자한다면 외국학자들이 뱉는 ‘대한민국 폭망’ 소리는 안 듣게 될 것이다. 5월은 짙푸름을 6월에 넘기면서 평화와 희망을 구가한다. 재한유엔기념공원의 평안이 온 누리에 펼쳐지길 염원해 본다.           2024. 06. 01

▲무명용사의 길; 길 양쪽에 11개의 물계단, 11개의 분수, 11그루의 소나무가 있다. 11의 숫자는 전몰장병이 안치된 11개국을 표현한다▼
유엔군위령탑
'유엔군위령탑' 글씬 박정희대통령 친필
묘역방문기념석 ; 이승만,이명박,윤보선,박근혜,박정희,윤석열 (좌측부터)
해자 속의 동산, 백로서식지이기도 했다
해자는 물고기와 남생이의 유토피아
끝이 막힌 대나무길, 죽순을 넣은 사진을 찍으려고 내려서자 직원이 어디선지 득달같이 쫓아와 제지했다
공원 울타리 밖엔 황톳길 걷는 맨발의 시민들이~? 유엔기념공원 주위에 거주하시는 시민들은 행운아들이다
유엔기 게양식은 오전10시, 하강식은 오후4시에 한다
추모관과 정문
후문
태산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