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 국가정원 - 은월봉
태화강 국가정원은 태화지구(48만4998㎡)와 삼호지구(35만454㎡)등 총 83만5452㎡ 규모로 조성된 도심지 중앙 녹지공간을 순천만국가정원에 이어 2019년 7월 대한민국 2호 국가정원으로 지정받았다. 시민들이 직접 발 벗고 나선 의지의 결과였다. 옛날엔 바다였던 울산이 태화강의 지속적인 퇴적작용과 20세기 이후의 간척으로 육지가 된 저지대 남구는 태화강변의 충적지로 침수에 취약하여, 강가둔치에 십리대숲을 조성하고 위락시설을 설치하여 흔히 '태화강 대공원'이라고 불려왔었다.
태화강역에서 내려 시내버스를 타고 반시간 남짓 시내를 유람(?)하면서 절감한 깨달음은 울산은 - 태화강유역은 죽음의 땅이 아닌 신천지의 정갈한 계획도시라는 경이(驚異)였다. 불결한 태화강가 공업도시라는 우 좌측중충한 나의 구각의 관념에서의 탈피가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나는 태화루(太和樓)에서 태화강국가정원 산책을 시작했다. 도도히 흐르는 넓은 태화강은 파란하늘을 등 떠밀고 가는 구름의 숨결까지도 그대로 비출 것 같았다. 5월의 신록 속에 솟은 아파트 숲들 또한 보석처럼 희고 멋진 디자인이다.
나는 사실 태화강 국가정원에 관해 무식쟁이였다.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에 SK이노베이션이 섬유에서 석유화학(유공)까지 들어선 산업화도시로 울산광역시를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 중공업과 화학단지는 울산을 환경오염도시화 하여 태화강수질을 6급수의 ‘죽음의 강’으로 전락했다는 고정관념을 나는 갖고 있었다. 그런 태화강이 시민들과 각기관과 기업체가 생태복원에 나서 2007년부터 태화강물을 1급수로 회복시켰단다. 태화강변을 생태관광지화 하여 거대한 도시 근린공원으로 변혁시킨 태화강은 '생명의 강'으로 복원함이다.
태화루에서 강변을 따라 10분쯤 걸려 닿은 십리대숲 벤치에 앉아 약밥과 육포와 과일로 알량한 점심을 때운다. 아까부터 심상치 않던 바람이 대숲을 너울파도 치듯 요동을 치는데 정작 대밭 속은 안온하다. 키 큰 대나무 상층부 잎들은 속절없이 휘둘리면서 바람결 따라 부채질한다. 어쩌려고? 사각사각 댓잎들끼리 비벼대는 소리가 스산하다. ‘딱딱-톡 딱-우지직-’ 대나무 몸통 부딪치는 소리는 화톳불에 생나무 타는 소릴 낸다. 저리도 몸살 나게 몸부림치듯 하는 대나무가 촘촘하게 들어서서 하늘로만 향하는 까닭을 알만도 하다.
빼곡하게 들어서야 서로를 기대서서 찰과상을 줄일 수가 있고, 그래 키를 키우느라 속은 텅 비우나 싶다. 속을 비운 대나무가 스킨십하면서 내는 비명 아닌 공명(共鳴)은 생존의 신호이고 역경을 넘긴 환희의 절규인지도 모른다. 나는 여태 대나무의 숨소리나 성장통의 아픔도 생각해 본적이 없다. 태화강 국가정원 대숲십리 속에서 그들 곁에 조금은 다가갈 수가 있었다. 그들이 왜 푸르고 곧은지? 속은 왜 비워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했다. 빈약한 가지의 대나무들이 빼곡찬 채 하늘을 향한 홀로서기 하는 까닭을 알 것도 같았다.
속빈 대나무들은 조금만 부딪쳐도 공명의 울림이 크다. 바로 네 옆에 내가 있다는, 서로들 조심하자는 공존의 시그널인 셈이다. 해선지 그 비좁은 공간에 팔목만한 죽순이 쭈빗쭈빗 솟는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의 표상인가! 자연은 한 순간도 허투루 지나치는 법이 없나 싶다. 바람에 휘둘리는 대나무 숲의 공명이 결코 불협화음이 아닌 그들의 치열한 생존의 노래란 것을 헤아리게 한다. 바람 부는 날 대숲에 들라. 대숲 속엔 평안할 만큼 바람이 없다. 울림만 존재한다. 거기서서 하늘을 우러러보면 대숲의 너울춤을 보게 된다.
성난 파도가 해일처럼 대숲을 씻어간다. 태화강가 십리대숲을 따라 국가정원을 어슬렁댄다. 무지한이 넓다. 강물이 퇴적시킨 드넓은 비옥토에 버베나와 양귀비, 작약과 국화, 안개초와 금영화로 꽃 천지를 만들었고, 라벤더, 체리세이지, 로즈마리 등의 허브식물 향기가 기분을 업그레이드 시킨다. 유명한 자연생태 숲의 마술사 피트 아우돌프의 자연주의정원에서 자연의 풋풋한 향기에 취해보고 팠다. 거기 치유의 정원은 학생들의 뜰이 됐다. 도심 한 복판에서 자연생태공원에 빠져 멱 감을 수 있는 그들은 행운아다.
대숲파도가 십리 길을 동행하는 태화강물은 산책길과 황톳길도 공존한다. 맨발의 황톳길 밟기는 최상의 건강관리 트랜드로 각광이다. 은하수다리 건너편 십리대숲 길은 트레킹코스와 자전거전용 길을 동반한다. 태화강바람을 등에 업고 대숲그늘을 달리는 바이커들의 질주와 낭만은 보기만 해도 상쾌하다. 5월의 햇빛과 소슬바람이 일구는 태화강의 윤슬은 은하수처럼 명멸한다. 십리대숲엔 은하수 길도 있다. 사방이 어둑어둑해질 무렵부터 대숲속의 불빛은 은하계에 입장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단다. 언젠가 꼭 태화강의 은하세계를 노크할 테다.
어둠을 쫓는 조명과 빛의 파장에 수만 개의 별들이 쏟아지는 은하수로 변모한 '십리대숲'은 연인들이 즐겨 찾는 데이트 코스로, 대밭속의 구불구불한 미로를 더듬는 밤하늘 은하수 길을 소요하는 몽환적인 분위기는 상상만으로도 낭만이스트가 된다. 그 밤으로의 긴 여정을 언젠가 꼭 해보고 싶다. 동굴피아를 찾아간다. 동굴피아계곡 벼랑 위의 비래정(飛來亭)과 은월봉(隱月峯)이 숲 위로 한 뼘 남짓한 지붕을 내민 채 아까 태화루에 발 디딜 때부터 나를 사로잡았던 거다. 몇 사람한테 묻고 물어 정자의 이름과 등산로도 있단 걸 알았다.
동굴피아는 인공분수대를 앞세운 채 비좁은 뒷마당 바위벼랑에 비래정(飛來亭)을 오르는 산길을 내줬다. 인적이 뜸한지 흐지부지한 바윗길은 가파르기 짝이 없다. 트레킹화에 스틱도 없는 나는 망설이다 그리 높지 않다는 짐작으로 산행을 속행했다. 반시간도 채 안 걸렸을 테다. 바위벼랑에 장난감 같은 정자가 고루하게 서 있잖은가! 한 평 남짓할 정자 안에서 조망하는 태화강국가정원과 울산시가지는 파노라마 치듯 펼쳐졌다. 울산광역시전체가 거대한 정원처럼 다가선다. 멋지다. 이 조그만 정자에 뉘가 날아온다는 건지! ‘飛來’라 명명한 사연이 궁금했다.
지자체는 비래정 오르는 등정코스를 닦아 태화강국가정원과 연계하면 금상첨화가 될 판이다. 높지 않은 등산로 바위에 철봉을 박고 가이드라인을 연결하는 친자연 등산길은 설치비용도 절감될 게다. 자연훼손 시키는 철판이나 데크계단은 국가정원과 언바란스 된다. 거의 평지인 태화강 국가정원에서의 소요와 반 시간쯤의 빡센 비래정 등반코스는 천혜의 치유공원으로 거듭날 것이다. 나는 비래정에서 조우한 어느 노익장께서 은월봉(隱月峯)코스를 택했으면 등정하기가 훨씬 수월했을 거라는 조언을 들었다. 산행거리는 좀 더 멀망정 위험하지 않은 은월봉코스를 추천받아 그쪽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은월봉은 자리도 넓고 정자도 큼지막해 많은 사람을 수용할만했다. 사위전망도 아까 비래정 못잖게 좋았다. 비래정~은월봉코스는 한 여시간이면 충분해 이 등산코스까지를 연계한 태화강국가정원은 산과 들판과 강을 아우르는 자연정원의 진수를 절감케 할 것이었다. 네 시간 남짓 소요한 태화강국가정원과 은월봉과 비래정 등산은 중공업도시 울산광역시에 대한 불결(?)한 선입견을 일신 시켜줬다. 자연생태 친화도시로, 국가정원으로 거듭 난 행운의 도시로써 나를 감동시켰다. 불원간에 지상의 은하계를 탐험하러 십리대숲을 다시 찾아올 테다! 2024. 0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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