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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그 여적

소피아 & 레오의 사랑

소피아 & 레오의 사랑

 

 

1910년, 우리의 국권을 강탈당한 날(경술국치.庚戌國恥)로부터 2개월 후인  1027일 새벽 레오는 아내 몰래 집을 떠나며 아내가 곤히 잠들어 있는 대저택을 향해 엎드려 작별인사를 한다.

어제 밤 남편의 일기를 잠시 훑어보다(저작권 및 재산 상속을 사회에 하려는) 격노해 권총을 쏘아댔던 아내의 광기에 황급하게 떠나는 가출 이였다.

여든두 살 백작노인의 가출은 누구의 초청도, 목적지도 없는 무작정한, 비서와 막내딸과 시종만 아는 그야말로 뜬금없이 밤 보따리 싼 기차여행 이였다.

레오는 아내를 사랑했다. 사랑한 만큼 경원도 했다. 부와 명예를 걸머진 노인의 사랑은 아내와 사회로 양분 된다. 레오의 이상주의에 대한 사랑은 가난한 농민들에 대한 연민과 후원으로 천착한다.

남편보다 18세 아래인 소피아는 결혼생활48년 동안 13남매를 낳아 다섯을 여의고 8남매를 키우며 남편의 성공에 지대한 내조를 한 조강지처로 오직 가정만을 사랑하는 현실주의자였다.

평온한 가정지상주의를 꿈꾸는 소피아는 남편의 이상주의와 갈등을 빚어 노년을 애증의 삶으로 고뇌하게 되는데 그런 노부부의 갈등은 끝내 레오의 가출을 낳고 만 것이다.

남편의 가출을 알게 된 소피아는 저택 안 호수에 몸을 던졌다 구사일생하게 되고, 레오는 시베리아 남쪽을 향한 기차여행 중 아스타보고역 역장실에 임시로 머물게 된다.

노부부 마지막 애증의 - 가출한 남편을 향한 소피아의 사랑의 집착, 아내의 울을 떠난 후 아내에 대한 그리움 속에 가출 10일을  역사에서 머물다 폐렴으로 운명하는 레오의 격정 - 숨 막히는 순간은 부부의 삶이, 애정이 어떤 것인지를 그의 비서가 쓴 책 <마지막 정거장>에서 통감케 한다.

레오는 <전쟁과 평화><안나 카레니나>의 러시아 대문호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이고, 소피아는 그의 아내 소피아 안드레예브나 이슬레네프이다.

그 위대한 문호의 아내에 대한 사랑과 경멸이 점철된 일생도 범부인 우리네와 별반 다를 게 없단 인간성에 난 얼마나 공감했는지 모른다.

팔십 노인이 무너져가는 가장의 권위에 삐딱하여 아내의 울안을 떠나 가출하는, 가출 십일 동안 아내를 그리워하는 대문호의 임종의 순간은 인간이란 결단코 사랑의 원죄를 탈피할 순 없다고 해야 함일 것 같았다.

위대한 사상가이자 문호인 톨스토이에 비견한다는 자체가 커다란 모순일지 모르지만, 지금 나의 홀남생활의 소이의 한 단면을 읽는 것 같아서 말이다.

떠나고 싶다. 오란데도, 딱히 갈 곳도 막막하지만 떠나고 싶다. 정해진 곳도, 머물 곳도 없어도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누구하나 반겨줄 이도 없는 낯선 곳으로 무작정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떠나 어딘가로 가고 싶다는 충동은 나이가 들면 삭혀질 만한데 늙어갈수록 더 강렬해지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런 충동은 강해지는데 나이 들어감에 용기가 없어 포기하는 탓에 덜 나타나지 않을 뿐이다.

할 일이 적어지고, 적어지는 만큼 지위가 허물어지고, 허물어지는 권위는 가정에서도 통감하기에 가출을 꿈꾸는성싶다.

부부의 사랑은 배려이다. 소소한 애정표현은 노부부가 살아가는 엔돌핀일 것이다. 톨스토이는 그의 책<전쟁과 평화>에서 말한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은 오직 사랑에서 비롯됐다.”

2015.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