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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그 여적

'지리산이라고 하시오'

'지리산이라고 하시오'

-봉수대누각마루의 눈&금강-

어제 오후부터 산발적으로 내린 눈이 밤새 제법 쌓여

커튼을 열자 밀려오는 풍치가 하얗게 눈부시다

서설(瑞雪)치곤 하느님은 인심 한 번 후하게 쓴 편인가

좀이 쑤신 난 얼른 등산채비를 했다

몇 분이나 선행 했는지 등산로는 벌써 낙엽들이 허리를 펴고 일어나

눈을 털고 산님 맞을 채빌 확연히 했다

시가지에선 마주할 수 없는 설국의 맛베기를 톡톡히 해주는

겨울산의 속살과  처음으로 스킨십한다

차갑질 않다

되려 푸근하고 따뜻한 기분이 든다

10시쯤 이였다

잔챙이 푸나무에 살포시 내려앉은 눈발이 어쩜

상고대 못잖아 폰카에 담고 있었다

언제 나타났는지 두 분이 그런 나를 빤히 처다보다

"지리산이라고 하시오"

"예, 지리산요?"

"누가 알간디. 지리산이라고 하면 지리산인 줄 알지"

내가 웃으며 길목을 비켜서자

"맞아, 글쓰는 양반이구만"

"제가 글을 써요?"

"산행기 써서 안 올려요. 이름이 뭔디?

오늘 지리산 갔다왔다고 쓰시오."

"그렇게해도 될까요?"

"아, 지리산 어딘지 알기나하간디"

난 웃음으로 답하고

두 분은 등산로에 누운 낙엽을 발끝으로 세우며 사라진다

 

지리산이 대수냐?  생각키 나름이다

상고대가 별거냐? 눈꽃일 뿐이다

야산도 운좋아 때만 잘 만나면 상상 밖이라

자연이 경이로운 건 늘 변화무쌍하다는 점이다

눈에 보이는 것 말고 대상이 안고 있는 것까지 볼 수 있담

시인, 화가, 소설가일 테다

꼭 글로 안 써도 말이다

 

우리들이 푸나무의 눈을 눈꽃이라 불러주기 전엔,

강치에 얼어붙은 얼갱이를 상고대라 불러주기 전엔,

그들은 한갓 푸나무 위의 눈일 뿐이였다

지리산도 산이고 함라산도 산이다

태초에 산은 산일 뿐인데 경계짓길 좋아하는  

마음의 벽이 그리 부른 탓일 것이다

 

봉수대 누각 마루에 내려앉은 눈,

금강에 내려녹은 눈은 같은 눈이다

봉수대 누각마루 눈이 물이 듯

금강물이 눈 녹은 물이란 걸,

그래 물빛과 눈빛은 다르지 않음이다

2014.12.02

 

                -잠시 후 어떤 아주머니가 나타나 누각의 눈과 금강을 경계긋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