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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이쁜단풍 속의 맛깔나는 우화 - 청량산

이쁜단풍 속의 맛깔나는 우화 - 청량산

 

"우리나라의 명산을 묻는다면 반드시 저 다섯 산을 이를 것이니,

북은 묘향산, 서는 구월산, 동은 금강산, 가운데는 삼각산, 남은 지리산이다.

그러나 적으면서 선경의 산을 묻는다면 반드시 청량산을 꼽을 것이다."

 -신재 주세붕-

  청량교를 지나 매표소를 통과한 후 1020분쯤 곧장 좌측청량산비탈을 오른다. 여간 가파르다. 그 가파름이 갈지자로 끝나질 않는다.

 

 

익히 알려진 코스엔 산님들이 넘 많을 것 같아 택한 등산로는 한적해 좋긴 한데 된비알은 초장부터 땀을 쏟게 한다.

20분쯤 헐떡대며 단애 밑을 기다시피 하니 전망대가 있다. 누런 단풍잎 사이로 낙동강상류 물길과 하얀 신작로가 스킨십을 하며 달리고 있다.

 

 

수건을 꺼내 땀을 훔치려는데 뜬금없이 퇴계선생이 나타나 심드렁한 표정으로 내게 묻는 거였다.

그댄 뭣 땜에 이 고생을 하는가?”

청량산 단풍을 보려구요.”

누가 이 산 단풍이 좋다고 하던가?”

신재선생님과 선생님께서 극찬하지 않으셨습니까!?”

나는 그 선배 유청량산록에 발문 하나 쓰고난 후 오늘의 이런 사태가 일어날 줄 알고 입소문 내지 말라고 신신당부 했다네. 신재선배께서 80여편의 예찬시가를 써서 낸 책 땜이야!”

 

 

“선생님께서도 50여 편이나 쓰시고도 혼자만 즐기시려 입소문 내지말라 했습니까?”

이 사람, 나를 잘 모르는구먼. 산을 사랑한다는 사람이~ 애끼 이사람, 왔으니께 구경이나 하고 가게나홀연히 선생은 사라졌다.

난 또 가파른 계단과 빡센 씨름을 계속한다. 경사도가 60~80도는 될 성싶게 급살 맞은 오름길은 한 시간쯤 이어지다 723.5m에 전망대를 펼친다.

 

 

앞을 바짝 가로막던 그 지긋지긋한 수풀과 바위와 계단이 사라지고 탁 트인다. 심호흡으로 답답함을 토해낸다.

저만치 버티고 있는 바위산이 장인봉인가? 디카를 꺼내 원경을 담으려는데 느닷없이 신재선생이 막아서곤 하신다는 말씀이,

 

 

아까 퇴계선생이 뭐라시든가?”

두 선생님의 청량산예찬을 접하고 왔다고 했더니 신재선생님 탓이라고 하시던데요.”

그 친구 꼭 그런 식으로 발뺌하려든다네. ‘오가(吾家)의 산이라며 소문내지 말라고 하시니, 세상 사람들은 숨길수록 더 까발려 보고 싶어 한다는 걸 간과함이야. 참 순진한 양반이지. 안 그런가?”

 

 

그럼 청량산이 탐방객들로 북새통 된 건 퇴계선생님 탓이란 말입니까?”

그게 아니라 그 양반 탓이 더 크다고도 할 수 있다는 말일세. 사람들이 내 유람기 읽고는 그러려니 하며 별로 관심 갖지 않겠지만, 입소문내지 말라고 단속하니 무슨 신비경이 있나싶어 안달하지 않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나?”

 

 

신재선생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난 장인봉을 향한다. 좁은 바위협곡의 가파른 철계단은 끝이 안 보인다.

팍팍하다보이는 건 나를 깔아뭉개 버릴 것 같은 거대한 회갈색현무암 뿐이다. 그나마 파란하늘이 답답함을 씻어줘 계단을 오른다. 

반시간쯤 비지땀 짰을까? 저쪽에서 넘어온 산님들이 무리를 지어 내려간다.

 

 

드뎌 정상(870.4m)에 올랐다. 인산(人山)이다. 무슨 변고라도 났나?

장인봉(丈人峰), 표지석 앞서 인증하길 포기했다. 근데 이 북새통 속에서 김생선생이 어리둥절해 주춤대고 서있다.

선생은 결코 丈人峰이란 글을 쓴 적이 없는데 글씨는 분명 자기필적이고, 사람 떼가 정신없이 구름처럼 달라붙어서 어이없단 표정이시다.

 

 

발디딜 자리도 없는 정상을 빠져나와 하늘다리를 향했다. 나무보다 사람이 더 많다. 단풍도 사람단풍이 더 요란스럽다.

주위 산 풍경이 오색단풍이라 하늘다리도 사람들을 떼로 불러들여 울긋불긋 치장을 하고픈 건가!

알록달록 다리단풍 치장도 좋지만 다리 끊어질까 조마조마 했다. 퇴계선생님의 '청량산이 손때 탈까 두렵다'는 노파심이 심각한 고민으로 이어질 판이다.

 

 

끝도 없는, 오뉴월 지렁이 꿈틀대듯 느려터진 산님들 꼬리를 보고 있느라면 신재선생과 퇴계선생이 서로를 트집할 만도 했다. 와도 너무 왔다. 나만 빼고~?

연적봉을 밟고 탁필봉 앞에 섰다. 아무리 쳐다봐도 붓 같질 않다. 신재선생님을 불러 따져보고 싶었다.

시꺼먼 몽둥이는 꼭 거시기 같고, 우듬지에 솟은 여린 소나무가지는 파란하늘바다를 향해 쏘는 오줌발 같다.

 

 

자소봉에 올라 전망대에 섰다가 냉큼 오작교로 하산한다. 노오란 단풍이 죽여준다. 발 아래 단애는 어느쯤인지 가늠도 할 수없다. 

김생굴에 들렀다. '예서 무슨 서예를?' 할 만한,  굴 같지 않은 굴이었다. 예서 10년을 버텼다니 지켜 본 봉녀의 가슴은 애닳았을 테다.

 

 

(김생)선생이 못마땅했다. 어설펐던 글씨를 서성(書聖)으로 만든 봉녀(縫女)의 공은 잊었단 말인가?

신재선생이 산봉우리 이름 지을 때 봉녀봉하나쯤은 생각게끔 챙겨줬어야 해서다. 한석봉은 어머니를 인구에 회자토록 했잖은가!

봉녀가 뭔가? 요새 젊은이들에겐 웃기도 뭣한 이름이라서 왕따이름으로 딱인게라.

 

응진전을 향하는 기막힌 단풍길은 조붓하기까지 해 낭만이 물컹물컹 베어나온다. 거기서 조망하는 청량가람 또한 선경이라.

아름다운 단풍물결을 이룬 66봉우리 속에 자리한 가람은 눈이 시리게 봐도 질리질 않을 풍광이다.

응진전에 숨어들었다. 응진전은 수문장 참나무 두 그루와 금관을 쓴 바위 아래 조촐하게 자리한 요사채라.

 

 

결코 야단법석은 아닌데도 사립문을 걸어 놨다. 담벼락에 올라 경내를 굽어보는데 (원효)대사님이 방안에서 큰기침을 하신다.

밖이 웬 소란인고?”

대사님도 뵙고 싶지만 노국대장공주님을 뵐까 해요.” 나는 깜짝 놀라 기소리로 아뢨다.

공주님은 뭣 땜시?”

강제정략결혼으로 고려에 오셔서 왕비의 길에 올인 하셨으니 오래오래 행복했어야 했는데 금실 좋다말다 곧 요절하셔서요.”

 

 

잘 계신다네. 걱정 말고 돌아들 가시게.”

대사님생애 다 훌륭하셔 귀감 삼사오나 요석공주 가슴에 사흘간 불 지펴놓고 빠져나온 점만은 이해 못합니다."

"내가 공주 어디다 불을 땠단 말인가?"

"대사님이 불 안 땠는데 애가 생겨요.  암튼 대사님은 한 여인에게 넘 하셨어요해서 노국공주님 맘도 잘 모르실 것 같단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나무아비타불. 중생인 그대로썬 못 할 말은 아니지 싶네. 난 문무왕이 자릴 깔아줘 못이긴 척 생과부공주에게 삼일 간 보시[설총을 잉태]한 게네. 어이 돌아가게.”

최치원선생도 감로수처럼 마시고 공부했다는 석간수로 배 채우고 황홀한 단풍 숲 헤치며 청량사경내로 들었다.

 

 

삼각우송을 찾는데 인풍(人楓)이 경내를 가을꽃 피웠다. 유리보전(琉璃寶殿) 앞에 섰다.

무식의 소치일테지만 공민왕의 필적이나 김생의 글씨가 어느 쪽이 더 명필인지 알 수가 없다.

지불약사여래불을 보고 싶었으나 법당 안도 인파로 꽃 피워 장막을 휘둘렀다.

 

 

용모 수려한 전하(공민왕)께서 굽어보신다.

전하, 그때 그날, 전하께선 안하실 말씀을 하신 겁니다. 홍륜이만 거명했음 될 일을~!”

환관 최만생더러 너도 이 일을 알고 있으니 죽어줘야겠다’, 고 한 말말이지?”

예 전하, 그 말씀 땜에 그날 밤 전하께서 역린 당하신 게 아닙니까?  수하의 고자가 휘두른 칼에 시해당하다니요?  비통하다 못해 남새스럽습니다.”

 

 

내 충직한 밀직내시를 내 손으로 차마 죽이려 했겠는가. 내일 거사 비밀을 무덤까지 지닌 채 죽은 듯 살라는 뜻을 곡해한 게지. 알고 보면 참 불쌍한 내시야

고려의 사직으로선 참으로 애통한 비극 이였습니다. 그나 전하께서 하신 북방정책에 대한 묘안을 지금 캄캄한 청와대에 귀띔해 주시지요

 

 

이쁜 단풍과 건물의 조합, 가람을 빠져나오며 깊은 계곡을 울리는 물소리에 취하려는데 퇴계선생이 뒤통수에다 대고 일갈 하신다.

구경 잘 했는가?”

, 선생님, 예까지 살펴주시니 감개무량입니다.”

 

 

그대가 산을 좋아한다니 한마디 하겠네. 모든 산은 나의 산[吾家]이라고 여겨야 함이네. 내산이니 사랑할 밖에. 소문내어 북새통 만들까봐 노파심에 한 말로 이해하게나.”

"예, 선생님, 명심하겠습니다."

 

 

“근데 선생님, 저 말고 저기 앞에서 눈깔이 한자쯤 빠져나온 커다란 사진기 들고 가는 사람 있지요. 이름이 산이좋아서란 친구인데 풍광 좋다는 비경은 다 저 사진기에 담아 카페에 올려 전시하니까 사람들이 보고 환장, 난리치는 게지요. 저야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릴 하니 몇 사람이나 보겠어요?”

 

 

이름이 산이좋아서라고. 이름 값 할 테지. 내 한 번 기회 만들어 만나봄시.”

그렇게 선생님들의 가호 속에 오늘도 여섯 시간의 단풍산행을 행복하게 마무리했다. 오늘 보석 같은 산님들이 보배스런 자릴 만들어 날 끼워준 덕이라.

 

보석산님들, 모든 산은 내산[吾山]이고, 하여 보석인 게지요.

2014. 10. 26

 

 

 

                                         -굴 같잖은 김생 굴-

 

 

 

 

 

 

 

 

 

 

 

 

 

 

 

 

                                      -은진전의 두 수문장목-

 

 

                                                       -삼각우송-

 

 

 

 

 

 

 

 

 

 

 

-유리보전 글씨는 공민왕친필-

                               -장인봉 글자는 김생의 글자를 한자씩 모은 것-

 

 

                            

 

 

                               - 여기 인물(본인)사진은 산이좋아님 제공-

 

 

 

 

 

 

 

 

 

 

 

 

-은진전의 12나한상엔 노국공주도 봉안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