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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설악산흘림`주전골의 잔치는 끝나고

설악산흘림`주전골의 잔치는 끝나고

새벽5시, 아름다운버스는 지 몸을 태워 어둠을 가르느라 바튼숨을 내쉰다. 이윽고 여명의 빛이 원주(原州)를 일깨우자 아름다운버스의 아름다운기사는 아름다운 우리산천이 품고 있는 아름다운얘길 들려주는데 싫지가 않았다.  

아~! 안무 뒤집어 쓴 설악산세가 몽환인양 차창을 기웃대는 데 잔치가 끝났다는 걸까? 한계령 넘기가 그리 수월할 수가 없다.

 

10시40분, 44번국도 흘림골입구에서 설악을 밟는다. 잔칫집이 썰렁하다. 안무면사포를 쓴 설악은 몸살끼가 있는 걸까?  흘림골짝도 잔치에 소진했던지 물기 없는 부시시한 맨살이다.

5년 전, 10월 중순에 여길 찾았을 땐 설악이 '색의 잔치'를 한 게 아니라 찾아 온 손님들이  울긋불긋한 꽃뱀으로  변신하여 이색볼거리가 됐었다. 

그때의 나를 기억해 주는 건 가파른길목의 거대한 주목 한 그루라. 빡셋던 된비알은 나무데크계단으로 변했다. 반 시간쯤 올랐을까? 여심폭포가 수줍게 숨어있다.

 

 

왠지 예전 같잖고 스산하다. 세월 탓인가? 아닐 것이다. 얄팍한 인심 땜일 테다. 아들 낳길 기도했던 여인네들의 발걸음이 뚝 끊겨서다.

해선지 분비물이 적어 매말라가는 성싶어 딱하다. 여인천국이 멀잖음을 경고해야 함이다.

 

 

바위사이를 뚫고 깔닥고개를 넘는다. 왼편 등선대를 향한다. 5년 전, 내가 꽃뱀이 됐을 땐 이 고갤 밟는데 2시간이 걸렸고, 등선대행은 꿈도 꿀 수가 없었다.

오늘은 수월하다. 잘 하면 나도 선인(仙人)이 되어 만물상위를 비상할 지도 모른다. 등선대가 발아래 깔렸다.

안무 위에 난 선인이 됐다. 만물상과 서북능선이 장대한 수묵화로 태어났다. 선계가 따로 없을 테다.

 

선계에서 두 여인을 해후한다. 다래&낭만이라.

낭만&다래를 선계에 세웠다. 난 이때부터 여명의 빛에 나의 늙다리 누런 빛일망정 끼우곤 했다.

한 물 간 퇴색한 황혼빛을 한사코 여명빛에 끼어 준 미동(여명회장 미래동자님을 점심자리에서 알아뵜다)의 손짓에 낯짝 좋은 난 끼곤 했던 거였다.  

 

흩어졌던 여명의 빛들이 미동의 손짓에 여명을 빛내곤 했는데 누런빛이 어떻게 녹아들었을지?가 자못 민망하다.

선계를 내려선다. 비상할 수가 없으니 걸어서라도 안무 속을 더듬어 만물상들을 대하고 싶었다.

하강 할수록 안무는 한꺼풀씩 벗으며 또 다른 협곡의 선계를 선 뵌다. 

 

 

골짝의 설악은 흑과 백의 콘트라스트다. 그 단순한 1차원의 세계는 신비의 창조 아이콘이다. '빛의 잔치'도 예서 비롯된다. 

그 흑과 백의 단순미가 절정을 이룬 바위너덜에서 정오를 맞고, 산님들은 점심자릴 폈다.

쑥송편과 육포와 과자부스러기가  홀로산행을 하는 내 입풀칠 메뉴인지라 끼고 싶질 않했는데 엉겁결에 배낭을 풀었다.

 

 

다래&낭만이 따로 자릴 잡자 나도 끼어들었다. 근데 아뿔사! 이럴수가? 낭만이 꺼낸 점심, 다래가 풀어재킨 보자기가 검푸른송편이 아닌가!  

우연치곤 기가 막혔다. 굳이 다르다면 낭만&다래의 송편은 모싯잎, 내 껀 쑥송편이란 점 이였다.

우린, 밥점심자리엘 끼기 뭣한 자격지심(?) 스스로를 왕따시킨 별종들일까? 기이한 점심자리였다.

 

 

다래&낭만은 이 주 전에 청량산행이 끝날 때 스무고개하듯 몇 마디 인삿말 나눈, 그래 오늘 두번째의 해후다. 

그때의 채 몇 분도 안되는 촌음 속에 격의가 없었던 점은 댓글에서 익힌 벼루(닉네임) 탓이리라. 

송편점심 3인방이 된 난 이후 여명의 빛들에 끼기시작했다. 낭만&다래가 여명의 빛이어서였다. 게다 미동의 친절은 결정적 계기가 된 셈이다.

 

 

나목들이 울울한 산세와 바위와 돌과 안무가 우주의 주인인 흘림골의 안무베일을 한꺼풀씩 젓히며 등선폭포를 향하는 길에서, 난 눈도 마음도 바빠졌다.

아니 무한정 행복했다. 흘림골의 절재된 단순미 탓이 아니라 여명의 빛들이 쏟아내는 달콤한 말과 상큼한 젊음의 한 가운데에 서 있어서였다.

 

 

해라(해바라기)가 댓쉬해 왔다. 내가 무척 궁금했단다. 듣기좋으라고 뱉은 사탕말이 아니란다. 아무렴 어떠랴. 좋게 봐주고 있다는데 기분 나빠할 사람은 죽어가면서도 예왼 아닐테다.

해라는 7월의 선플라워였다. 큰 키에다 큰 렌즈의 선글라스를 걸친   해라의 밝은 웃음은 영낙없는 절정의 해바라기였다. 

 

 

해라와 맞짱하람 서운타 할 키쏭(키다리~쏭)과 인살 나눈다. 난 키쏭을 보자마자 BB(브리짓 바르도)를 연상했다.  BB는 내가 고딩초 때 숨어 본 영화 'BB자유부인'에서 홀딱 빠진 관능녀였다.

키쏭이 BB같은 팔등신미녀인데 정작 키쏭은 BB를 모른단다.

50~70대 사람치고 BB와 MM(마리린 먼로),CC(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를 모른다면 문화인에 낄 자격도 없었다. 그런 키쏭과 촌음을 같이 함이 흐뭇함 아니겠나!

 

 

폭포가 가냘프다. 갈수기라 폭폰 비실비실했다. 정작 내가 반한 건 폭포가 발 담그고 있는 명경지수 담(潭)이였다. 담은 흘림골의 우주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골짝산과 나목과 바위와 돌멩이와 파란하늘을 압축하여 또 하나의 설악을 창조했는데, 신기하게도 산마루에서 쏟아지는 편광은 그 설악을 지우고 영롱한 옥소(玉沼)를 만들어 빛의 황홀한 스팩트럼을 연출함이였다.

 

 

거기에 길게 늘어뜨린 나의 실루엣이라니~!  담이 빚은 소우주에 아찔했을까?  아님 여명의 빛들에 뿌듯해서였을까?  난 달떠 있었다.

그런 기분보다는 한 치도 안 되는 심미안을 갖고 월경하여 금단의 지역을 밟은 죄값이려니.  데크길에 들어서려고 바윌 올라타 월담하려다 뒤로 자빠졌다.

 

자빠진 게 아니라 범법자라고 뒷 바위가 내 등을 잡아당겨 뒤로 나자빠졌고, 그 바위는 내 뒤통수에 알밤까지 한 대 쥐어박아줬다. 얼마나 미웠으면~?

미동과 동료들이 돌발상황에 놀라 나를 도와서 길에 들어서게 하느라 소란을 피웠다.  그들이 무척 고마웠다. 아니다, 고마운 생각은 그들 보기가 미안해 숨고 싶은 다음에 생겼다.

 

산행기에 '자연보호 운운-'하며 이빨까는 주제에 깨 홀랑 벗은 나의 몸뚱이를 보여준 것 같아서 도망치고 싶었다. 욕심은 늘 불행을 낳는다.

바위한테 뒷통수 한 대 맞은 것과 성문다리 까진 것 만으로도 천만다행 이였다.

욕심 내려놓고 살자고, 짐이 가벼워야 수월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다고, 다짐하면서도 늘 공염불이다.

 

 

원하기만 하면 굴러들어왔을 명리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지팡이 하나, 짚신 한 짝을 챙긴 채 유유자적했던 천재시인, 외로운 방랑자, 이상을 꿈꾸다 죽은 늙은이 - 매월당(김시습)이 얼른 떠 올랐다.

매월당이 오세암에 머물 때 여기 주전`흘림골짝을 거닐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말이다.

 

 

그가 자신처럼 깨 홀랑벗은 산천과 파란하늘에 구름 한 점 떠가는 이맘 때쯤의 이 골짜기를 걸었을 테다.

모든 걸 다 내려놓은 벌거숭이들 만의 자연에 흡취했을 터다.

살기등등한 세조를 피해 분노를 달래며, 불의에 맞서 이상을 꿈꿨던, 때론 우울해 자연 속에서 평안을 찾던 그가 느닷없이 골짝을 향해 광인처럼 외쳤다.

"두둑시리 봤다"고.

 

 

그 외침은 골짜기에서 "두둑시리 봤다"고 메아리치고,  메아리는 다시 깊은 골짝에  신비스런 울림으로 맥놀아 두서너 번 반복하여 외쳐댔다.  

이때 갑자기 돌 구르는 소리와 함께 더벅머리산적 떼 한 무리가 나타났다. 산삼을 뺏으려 허겁지겁 나타난 산적들이 달려온 거였다

 

 

 '두둑시리 봤다'는 설악산심마니들이 지들끼리 쓰는 '무더기 산삼 봤다'는 은어였다.

매월당을 훑어째려본 산적들이 멜짱 헛탕인 걸 알고 눈깔을 부라리는 데, 성깔 급한 한 놈이 칼을 빼내어 매월당머리를 향해 휘들렀다.

바람이 잘렸다. 허공이 시~ㅇ 소릴 냈다. 머리카락 몇 올이 춤췄다.

 

 

산적의 칼 솜씨가 형편 없었던지, 매월당의 기민한 방어술 이였던지 칼날은 상투를 잘라 머리카락이 흩어져 내려 매월당의 얼굴을 덥쑤룩하게 덮는 거였다.

산발한 머릴 덮어 쓴 모습은 영판 낙타머리[頭陀髮]였다. 그 꼴을 본 산적들 왈,

 

 

 "이것 봐라!  이 늙다리가 또 뭔짓인가? 중도 아니구, 아닌 것도 아니구, 빨래도 아니구, 걸레도 아니구?"하며 침을 퇴퇴 밷으며 사라졌다.

그래서 설악산골에선 이 얘길 빗대 "빨래도 아니구 걸레도 아닌 이바구?"란 말이 전해 온다. <김주석의 '거꾸로 본 정만서세상'>                         

주전골삼거릴 통과한다. 용소폭폰 오늘도 나를 외면한다.

 

 

용소폭포쪽은 공사로 출입금지 팻말이 지키고 있어서다. 아까 바위에 한방 얻어터진 난 선녀탕은 욕심내지 않고 먼발치에서 본다.

다시 여명의 빛들속에 끼어들었다. 끼어들게 훈수하는 미동이 선남으로만 보인다.

난 여명카펠 도둑고양이처럼 기웃대곤 했다. 하여 그 빛들이 우리네 후미진 어두운 곳을 비추기도 한다는 걸 훔처보기도 했다.

해서 낭만&다래가 나를 향해 "도둑처럼 흔적만 잘도 남기드라"고 일침 놓을 땐 고숨도치가 됐다.

 

 

몇천 년을 살다 시목 되어 누운 주목이 안쓰러웠던지 여명의 빛들이 스스로 꽃가지가 되겠단다. 아노(피아노), 계령(한계령), 돌핀(엔돌핀)등이 여섯꽃가지를 만들고 있었다. 

 난 그 정경을 담았다. 색의 잔치가 끝난 주전골에 여명의 섹 잔치가 됐다. 아~! 보배의 보석 키쏭을 여명이라 해도 될랑가?

 

 

5년 전, 여길 지날 땐 캄캄한 밤중이어서 휴대폰불빛으로  길섶을 더듬었다.

누리는 온통 흑빛이었고, 저만치 냇의 하얀 돌멩이들이 반에 반쪽의 희미한 달빛을 받아 설악의 골짝이란걸 증명해 보여주나 싶었었다.

주전골설악의 '색의 잔치'는 끝났다. 나처럼 늦은 손님들을 위해 땅딸이와 애숭이들이 단풍잎 하나씩 들고 흔들며 피날레를 하고 있다. 

오직 하나, 냇가 바윌 붙잡고 서서 노오란 손수건을 흔들며 바이,바이를 하는 서어나무 한 그루만 빼고.

 나목들은 흑과 백의 원점에서 긴 궁리의 시간으로 침잠해드는가 싶었다.

명년엔 어떻게 해야 더 황홀한 '색의 잔치'를 꾸릴 수 있을까? 를 고민하겠지!  아니지, 멍청한 내 상상일 뿐이지.

 

그들의 일생은 천만 년을 여일하다. 내 마음의 간사한 눈 탓에 예쁘게도 더럽게도 보일 뿐이다. 오늘 무척 행복한 시간을 수 놓았던 설악골 이였다.

 아름다운버스 속에서 눈을 감았다. 아름다운기사가 아름다운꿈을 노래한다. 명년엔 2억5천만원짜리 아름다운버스로 모시겠단다. 근데 모아 논 돈이 3천5백만원이란다.

 

 

그의 행복한 꿈이 깨지지 않길 바래고 싶었다. 매월당은 맨손의 삶을 살고도 우리들에게 일생의 지표로 회자된다.

"春扶社稷(젊어서는 사직을 붙잡고) 白首臥江湖(늙어서는 강호에 묻힌다)"라고, 간신 한명회가 세조에 빌붙어 호가호위하며 읊었던 시다.

그 시를 접한 매월당이 배알이 꼬여 '扶'자를 '亡'자로, '臥'자를 '汚'자로 바꿔버리니, 

"젊어서는 나라 망치고, 늙어서는 세상을 더럽힌다"로 뜻이 바뀌었다.

 

매월당이 고처 쓴 한명회의 시는 5백여 년이 흐른 지금 푸른집에서 대원군인양  행세하는 노인께 어찌 그리 딱 잘 어울리는지 모르겠다.

(젊어서는 유신독재 향도하며 지역감정 부채질하고, 늙어서는 정실인사로 나라꼴을 더럽힌다)

#  허락없이 벼루를 멋대로 줄여 쓰고,  존칭을 생략했음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2014. 11. 09

 

                               - 위 사진은 미래동자님 제공 -

 

 

 

 

 

 

-위 사진은 미래동자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