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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지리산 피아골의 피빛단풍

지리산 피아골의 피빛단풍

 

사람이 붉은 물결 이루니 인파풍(人波楓)이요

인풍이 숲길을 넘쳐흐르니 임도풍(林道楓)이며

임풍이 노고단정상을 향하니 노고풍(老姑楓)이라

 

 열시쯤 성삼재에 가까스로 발 내딛은 난 거대한 단풍물결에 휩쓸렸다.

노고단을 향한 신작로는 울긋불긋 단장한 사람단풍이 물결치듯 넘실댄다.

 

 

갈수기로 말라비틀어진 흑갈색이파리들은 부신 가을햇살 받기도 힘 부친지 오그라든 채 낙엽이 됐다.

이 볼품없는 노고단 가을풍경을 단풍구경 온 산님들은 스스로 단풍이 됐다.

 

근데 나는, 너무나 억울하고 비통한 억하심정을 잠꼬대하듯 떨치질 못하고 있을 노고단이 몰려드는 인파에 60년 전의 트라우마가 도질까 짠하다.

그때 그날의 인파는 온통 국방색(카키색)일색 이였다.

 

남루한 빨치산이 숨어들 때만도 괜찮았다.

빨치산을 소탕한다고 노고단턱밑까지 신작로를 내고 지리산을 두 토막 내더니만, 국방색군경들이 새까맣게 몰려와 불 지르고 토벌작전을 펴면서 울창한 천오백미터 노고단은 벌거숭이가 됐다.

 

오늘 단풍놀이 나온 산님들이 그날의 비극을 위무하려 민둥산 노고단을 울굿불긋 푸닥거리하고 있는 성싶기도 했다.

난 나비아타커플과 노고단고개마당에 배낭을 풀고 잠시 쉬면서 그런 정황을 상상하다가, 또 엉뚱하게 십여 년 전 화왕산억새 숲에서의 헤프닝을 떠올리고 혼자 푸시시 웃었다.

"강샘, 우리 스와핑 합시다."라고 나비아타신랑이 뚱딴지제안을 하여 박장대소 했던, 그 웃음이 억새파도를 타고 구릉을 넘던, 그 은빛 산릉이 흡사 노고단 같아서였다.

나비아타와 아이두 두 커플은 내가 산을 오르는 때까진 결코 잊을 수 없는 멋쟁이 산님 커플들이다.

 

나비아타가 꺼낸 간식을 잘도 챙겨먹고 난 돼지령을 향한다.

쪼그라든 갈색이파리들이 가는 나목가지에 박쥐처럼 매달린 채 찬바람맞을 각오를 하는가!  박재가 됐다.

파란 하늘에 손짓하는 무수한  나목들의 절규가 스산한 가을풍정의 우수로 남는다.

갈수에 타는 목마름으로 이파리가장자릴 탈색시킨 산죽들이 유일한 원색으로 나의 발끝에 인사를 하고있다.

 

편편한 돼지령코스는 트레킹하기 가을 날씨만큼 상쾌하다.

이따금 거인처럼 나타나는 참나무거목들의 위용은 또 한편의 감동이라.

 60년 전의 화마에 용케도 살아남아 그날의 비극을 온몸에 새까맣게 새기고 부질없는 세월을 붙잡고 뭔가를 웅변하고 있는 성싶어서다.

기괴한 모습만큼 형극의 삶을 살아왔을 거목들은 지리산의 영혼일지도 모른다.

 

그 뜨거운 불길 속을, 참혹한 전쟁터에서 살아남아 지리(智異)산의 지혜를 고고하게 간직한 채 오늘에 존재해서 말이다.

한 시간을 트레킹맛과 멋에 빠져들었다고사목이 된 거대한 주목 두 그루를 수문장으로 세우고 갈뫼산님들이 점심자릴 폈다.

정오였다끼어들라는 그들의 손짓을 한사코 사양하며 숲길을 향하는데 황장군(총무)이 나서서 버스위치를 설명해준다.

 

 내가 맨 선두라 걱정이 된 게다. 미안코 고마웠다.

아까 나비아타가 준 간식으로 아직 시장길 느끼질 안했고, 내 점심이래야 쑥갯떡과 다이제스트이브라 같이 하기 뭣한데다, 홀로트레킹을 좀 더 즐기고 싶었고, 피아골삼거리까진 반시간정도 걸릴 것 같아서였다.

자릴 펼 만하다싶은 곳은 어김없이 산님들의 식탐의 요람이 됐다.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스산한 나목들의 풍경에 식도락이라도 만끽해야 했을 테다.

 

피아골삼거리에 닿아 배낭을 풀었다.

토종다람쥐 한 마리가 불쑥 나타나 , 낙엽 밟는 소리가 좋냐?”고 쫑긋 서서 묻는다. 지 허락 없이 자릴 폈으니 세금이라도 내라는 투다.

난 외면했다. 전엔 고스래 하듯 했는데 이젠 몰인정한 손님노릇 하기로 작심한지 오래됐다.

 

피아골로 들었다

돌너덜길을 덮은 활엽수들이 푸른 하늘 속에 노란 한탄을 뿜어댔던지 노란색 일색이다. 그  번짐은 계곡에 내려설수록 붉어지고, 진노랑과 진홍으로 파란하늘에 추상화를 그리고 있다.

피아골대피소까지의 한 시간여를 난 호사(豪奢)를 즐기다 못해 내가 호사스런 옷을 입고 있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사계 중 가을이 가장 아름답다고 한 말이 실감나는 색의 잔치였다.

 

색의 잔치, 피아골의 호사에 취해 허둥대는데 황장군일행이 나타났다. 나더러 "연곡사까지 가는 건 무리라"고 걱정지핀 당부를 한다.

아까 내가 앞서는 건 연곡사를 탐방하기 위해서라고 한 말에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버스가 한 참 상류에 있어 연곡사엘 갔다가 오면 늦어 저녁식사도 못한다는 게다.

 

난 웃으며 "단풍황홀경에 포식해 저녁밥 안 먹어도 배부르다"고 응수하며 걱정 내려놓으라 했다. 난 슬그머니 뒤처졌다.

연곡사를 단념하는 대신 피아골단풍에 만취하기로 했다.

본격 나도 단풍옷 걸치고 피아골로 숨어들었다. 남매폭포에 빠졌다가 삼홍소 앞 바위에 배낭을 내려놓고 다릴 뻗고 누웠다.

 

"피아골 단풍을 보지 않은 사람은 단풍을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고 했다는 남명(조식)선생 말이 실감났다.

온 산이 붉게 타서 산홍(山紅)이고, 그 단풍이 맑은 담소에 비춰서 수홍(水紅)이며, 그곳에 안긴 사람도 붉게 물들어 보인다 해서 인홍(人紅)이라 했다는 것이다.

피빛보다 붉다는 피아골 단풍은 연곡사부터 40여 리 계곡을 수놓지만, 연주담통일소삼홍소까지가 특히 빼어나단다.

 

난 오늘처럼 내 눈을 호사케 한 적이 별로 기억에 없다.

눈이 호사하니 마음도 황홀하다. 늙다리 되기까지 혹사만 시킨 눈을 호사시킨다는 알량한 인심이 실은 눈을 더 혹사시키는데 말이다.

해서 눈을 지그시 감아본다. 황홀한 단풍을 눈감고 보는 게다. 아마 맹인이 상상하는 세상의 아름다움은 이보다 더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맹인이 세상의 추잡을 목격했겠는가?

 

피아골단풍이 핏빛인 까닭은 지리산이 안은 질곡의 피눈물 탓이기도 할 테다.

이 골짝 위 불무장등(1446m)넘어 토끼봉아래 너덜지대에서 배신의 총탄에 절명한 이상현을 생각해 봤다.

10대에 항일전선에 뛰어들어 10년간 감옥살이 하며 해방과 한민족혁명의 꿈으로 청춘을 불살랐던 고독한 영웅의 삶은 결코 우리가 생각하는 빨갱이 이현상과는 거리가 멀다.

 

남부군대장 이현상은 빨치산 모두가 존경해 맞이했던 혁명의 아이콘, 선생님 이였다. 그는 '싸우지 안할 땐 적이라도 죽이지 말라'고 했었다.

그는 미군정과 우익과 공산당 모두로부터 외면당해야만 했던 민족주의자였고, 중미의 체`개바라보다 20년 앞선 혁명가였다.

이데오르기전쟁이 뭔지도 모르고 그를 따랐던 대부분의 민중들이 빨치산이란 올가미를 걸치고 군경과 격전을 벌려 지리산에서 동족 2만 명이나 선혈을 뿌리며 죽어갔던 것이다.

 

그 핏자국이, 고혼들이 가을이 되면 우릴 깨우치기 위해 단풍으로 곱게 물드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가 엊그제(1017)비명 했었는데, 이 지리산의 예쁜 가을을 얼마나 사랑했을까?

의 발자국이 피아골짝에 무수히 찍혔을 거고 나도 오늘 그 발짝을 밟았을 테다.

 

피아골짝을 흐르는 물소리가 고요를 흔들고 그 파장이 고운단풍이파리에 이르자 가을햇살을 엎은 홍엽은 경련하며 미풍으로 번져 온 산골이 붉은 손수건을 흔드는 것 같다.

그 불타는 산이 명경지수 담소에 내려앉으니 물도 빨갛게 물들고 나까지 홍당무가 된성싶다.

통일소를 들여다보다 연주암을 향한다.

 

절정을 이뤘던 단풍이 하류계곡으로 내려올수록 청록색에 머물며 계절의 여름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다.

빛을 씻어내는 물길소리는 황홀한 피아골의 파반느로 뭉클하게 울려온다.

지리산은 가난하고 소외되고 패배한 아웃사이더들만을 안아주는 단순한 모산(母山)이 아니다.

 

모두에게 지혜와 변혁의 꿈을 심어주며 보다나은 세상을 만들게 하는 영험의 산임을 피아골은 눈부신 아름다움으로 우릴 초대함이다.

피밭(직전)마을에 닿았다.

오후4시가 됐으니 삼홍(三紅)의 피아골에서 어지간히 뭉그적댄 셈이다.

 

명성황후시해사건과 한일합방에 분노하여 항일운동을 하던 의병장 고광순(高光洵·18481907)이 일본군에 쫓겨 피밭 골 연곡사에서 사살됐다.

그날(1019)이 바로 오늘인 것이다. 그도 지리산 피밭골에서 항전의 의기를 살리고 싶었을 것이다.

피밭사람들이 그를 불쌍히 여겨 멍석에 싸서 채소밭에 장사지냈다.

 

천봉우리 연곡은 푸른빛이 가득한데 (千峰燕谷鬱蒼蒼)

작은 전투 충사도 국상인 것이라네 (小劫虫沙也國殤)

전마는 흩어져 논둑 따라 누웠고 (戰馬散從禾徿臥)

까마귀 떼 내려와 나무그늘에서 노네 (神烏齋下樹陰翔)”

 

매천 황현선생이 고광순을 기리며 정미고(丁未稿)’에 애틋한 시 한수를 남겼기로 나는 오늘 그 비석이 있는 연곡사를 찾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7시간에 가까운 트레킹, 참으로 황홀했고 산뜻했던 단풍놀이였다.

 

집나간 미친년처럼 일여 년을 떠돌아다니다 들른 나를 갈뫼는 친정 같이 품어줬다.

산귀신(山鬼神)들의 갈뫼, 산처럼 가슴이 넓다. 해서 난 오입질을 무탈하게 즐긴.

2014. 10.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