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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삼각산의 숨은벽 - 악어능선, 백운대

       삼각산의 숨은벽-악어능선, 백운대,

 

어있던 악어 한 마리 숲 나와 승천하네

빛 갑각 꿈틀대며 하늘바다로 기어드니

도성도 아닌 것이 악어능선 이뤘다네

                     -‘숨은벽을 삼행시로 읊어 본 숨은악어능선-

 

고양시 효자2통에서 하차, 밤골공원지킴터를 향했을 땐 열시 반을 넘었었다. 평일이어선지 산님들이 뜸하다.

초행에다, 웹상에서 칼바위능선을 오르는 숨은벽의 위용에 잔뜩 긴장한 탓에 산님들이 가물에 콩 나듯한 것도 내깐엔 걱정이 됐다.

 

 

사기막골짝의 푸른 숲길은 지나가는 솔 바람결이 상큼한 산정에 빠져들게 하고, 이따금 후드득 떨어지는 상수리가 긴장을 털어냈다.

 ~! 벌써 가을인가?

반시간을 골짝 숲길을 헤치니 갈림길이 나타난다. 정규등산로 외에 산비탈을 오르는 산길이 선명한 게, 또 예감이 그 쪽인가 싶은데 자신 없어 멈칫대고 있었다.

 

 

한참 지나 네 분이 나타나 물었던바, 비탈길을 탄다며 앞장을 선다근데 비탈길이 여간 된비알이다. 무심한 바람은 기미도 없다.

뙤약볕 쨍 내리꽂지 않는 것만으로도 위안이라. 땀으로 멱을 감는다.

반시간쯤 고생하니 능선에 올랐다. 대머리인수봉이 하얗게 숲 속에서 솟는다.

 

 

인수봉우측에서 하얀 바위가 허물 벗듯 꿈틀대며 얼마나 늘어지더니 하늘로 기어오르는 게 얼핏얼핏 보인다. 꿈틀대는 바위 장딴지쯤 될까? 번들번들한 바위위로 올라섰다.

! 이게 웬 일? 백여 명이 쉬어도 될 너럭바위가 아닌가. 밋밋한 너럭바윈 역시나 소나무 몇 그루를 키우고 있다.

 

 

근데 그 소나무들은 땅딸이 신세로 나이도 잊었을 것 같다. 너럭바윈 그래도 소나무 갈증 해소시키려고 밑에 해골을 만들어서 빗물을 가득 받아 놨다.

해골바위가 무단이 있는 게 아니라. 소나무의 생명수를 보관한 그릇이라.

 

정오가 막 지났다배낭을 풀었다.

그 너른 너럭바위 가장자리의 땅딸이소나무아래서 점심을 들며, 삼각산이라는 이름이 왜 생겼는지? 숨은벽이란 말이 왜 회자 되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인수봉과 백운대와 노적봉의 우뚝한 영봉이 삼각을 이뤘고, 내가 앉아있는 바위능선은 인수봉과 백운대 사이골에 숨어있어서다.

 

 

하지만 찬찬히 보니 숨은벽이 아니라 숨어있는 악어능선이라고 해야 옳다. 푸른 숲을 기어 나온 거대한 악어 한 마리가 은빛갑옷을 번쩍거리며 푸른 하늘바다를 향하는 모습이라.

난 이 멋진 풍광과 정취에 빠져 숨은벽’의 첫 음을 따서 삼행시 한 편을 읊조려봤다.

 

 

어있던 악어 한 마리 숲 나와 승천하네

빛 갑각 꿈틀대며 하늘바다로 기어드니

도성도 아닌 것이 악어능선 이뤘다네

 

나는 지금부턴 숨은벽을 숨은악어능선이라고 부를 테다. 하늘로 빨려들어 가는 듯싶은 놈은 정말 대단한 괴물이다.

그 빛나는 하얀 갑옷이 넘 자랑스럽다. 저 빛나는 갑옷을 밟고 백운대를 오른다는 건 무지의 소치(?)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완벽한 장치를 갖춘 클라이머들이나 할 짓이라)숨은 악어골반잔등에서 내러와 호랑이굴을 통과하여 사기막골짝을 향한다. 내리막이 워낙 급살 맞다.

하늘로 사라지는 숨은 악어능선옆구린 거대한 수직의 흰 바위다. 골짝에 닿자마자 깔딱고개를 올라야한다. 반시간쯤 헉헉댔을까?

석간수 샘이다. 실컷 마시고 빈병을 채웠다.

 

바람소리도, 물소리도, 풀벌레우는 소리도 없는 무성의 협곡을 숨 딸깍딸깍 몰아쉬며 오른다.

반시간을 징글맞게 오르니 하늘금 끝의 거대한 바위사이로 빛이 쏟아져든다. 인수봉과 백운대 협곡을 통과하는 깔딱 고갯길이다.

 

왼편에 대머리인수봉이 살짝 보이고, 우측은 하늘을 빠갠 거대한 바위산이라. 흙 한 톨 없는 바윌 휘도니 백운대암문이 나타난다.  선착한 많은 산님들이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동영상과 그림으로만 봤던 백운대 오르는 암벽길은 쇠말뚝에 매단 쇠줄에 의지하여 일열 종대로 서야한다.

 

남녀노소빈부신분이 필요 없는 선착자우선의 평등사회가 백운대에 있다. 병정개미보다 더 질서정연하게 외줄로 오르내려야 한다.

하늘에 닿은 백운바위를 오르는 산님들이 개미처럼 아득하다. 아득하기로 말하자면 옆의 인수봉을 오르는 클라이머들은 한 점으로 남았다.

 

 

자연에 도전하는 인간의 왜소함이 새삼 미물이란 걸 절감케 한다. 지그재그 암벽 타기를 한참하면 상상을 절한 바위마당이 나타난다.

산님들이 삼삼오오 휴식하며 정상에 오른 감회와 사위의 풍광에 매료돼 넋 놓고 있다.

 

바로 위가 백운대정성(836.5m)이라. 태극기 휘날린다.

북쪽 인수봉(810.5m)이 지척간인데 정상을 오르는 클라이머들은 개미새끼만하다.

그 뒤로 도봉산의 오봉과 자운봉이 하늘을 떠받들고 있다.

 

동쪽엔 만경대가 멋진 폼을 뽐내고, 남으론 노적봉의 꼬리를 이어 염초봉과 원효봉이 능선을 이뤄 북한산의 장엄함을 실감케 한다.

멀리 시가지빌딩은 이 거대한 바위산이 융기하면서 떨어진 흰 바위조각들을 모아놓은 것인가?

 

서울은, 서울사람들은 참으로 복 받은 도회인이다.

일천 명도 수용한다는 이 바위마당은 주말엔 산님들로 인해(人海)를 이뤄 백운대에 울긋불긋 꽃이 만발한단다.

그 인화(人花) 중에서 난 진정한 백운대의 꽃을 만났다. 꽃중의 꽃은 사람꽃이란 말은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정상에서 하산하는데 쇠말뚝박힌 패인 자리에 빈 페트병이 있는 걸 나는 그냥 지나쳤다. 근데 바로 내 뒤에서 그걸 줍는 손길이 보였다.

키 큰 산님이 허릴 구부리고 페트병을 주어 비닐봉지에 담는 게 아닌가. 순간 나는 민망하고 좀은 부끄러웠다.

 

하산길도 외길이라 그분과 난 동행 아닌 동행을 해야 했다. 뒤를 따르는 그 분께 나는 낯 두꺼운 말을 건냈다.

선생님이 계시기에 백운산은 이리도 깨끗하다.

뭘요, 쓰레기를 그냥 지나칠 순 없잖아요. 바위산이기에 다행이지요.”라고 선생이 답했다. 난 또 되물었다.

자주 오르십니까?” 라고.

 

사나흘 간격으로 옵니다.” 육십 대 후반은 넘기셨을 선생이 답했다. 가파른 바윗길을 몸 간수하기도 힘 부칠 테니 타고난 정성 아니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봉사정신인 것이다.

난 할 말이 없었다. 아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몰랐다.

선생을 헤아리느라 하산하면서의 조망 즐기는 걸 잊었다.

 

암문에 다시 닿았다내가 모기소리로 청원을 했다.

선생님 사진 한 장 찍어도 괜찮겠습니까?”

선생이 의외로 선선히 응했다. 포즈를 취하면서 선생이 말했다.

암문에서 커피 한 잔 합시다.” 라고.

 

사진을 찍으면서

어디 커피 파는 곳이 있습니까?”라고 내가 묻자

제가 가지고 온 게 남았을 겁니다.”라고 선생이 대답했다.

우린 암문에 서서 선생은 커피를, 나는 사과 하나를 꺼내 나눠먹었다.

선생은 북한산탐방지원센터 쪽으로 나는 우이능선 쪽을 향해야 해 여기서 갈라섰다.

 

악수하며 헤어지면서 난 또 뚱딴지같은 인사말을 건냈다.

“혹시 웹상에 드시면 한국의 산하란 사이트를 찾아 산행기란을 한 번 검색해 보시지요?”라고.

선생이 한 손을 들고 “네, 그러지요”하며 사라진다.

 

선생 같은 분들은 자기가 하는 선행이 누굴 의식해서가 아니란 걸 나는 알기에 어떤 말도 결례가 될까싶어 주저했다.

하여 성함 묻는 것도 단념했다.

바위너덜 길 우이계곡도 가팔랐다. 산세가 울창 녹음이 짙은데도 골짝물길이 말랐다.

 

                     

이십 분쯤 내려오니 연초록조끼를 걸친 산꾼이 큰 비닐봉지에 긴 집개를 들고 주윌 두리번거리며 하산하고 있었다.

난 보폭을 낮춰 그분의 뒤를 따랐다. 역시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오늘은 아주 기분 좋은 날이다. 천사를 두 분이나 만나니 말이다.

인수봉지킴터를 지나 하루재에서 도선사로 드는 길목에서 그 분은 숲속의 폐비닐을 주으러 들어가고 나는 그대로 직진하려다 물었다.

"선생님 자주 오십니까?"

"대중 없어요. 할일 없으면 운동삼아 옵니다"라고 대답하며 숲으로 든다.

그 분을 뒤따르면서 말 한자리도 건너지를 않고 몰래 뒷모습을 도둑질 해 카메라에 담았던 게 마음에 걸렸다.

북한산을, 자연을, 우리강산을 가장 사랑하는 숨은 천사양반들이란 생각에 뿌듯하면서도 왠지 나 자신은 자괴감이 돋는 거였다.

우리산하의 참주인은 그 분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난 쓰레기만 양산하는 그렇고 그런 놈일 테고.

헌신과 봉사는 타고난 성품도 있어야 할 것 같단 생각을 했다.

 

도선사 경내에서 사진 찍으려 발길 옮기는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아낙이 있었다. 그 아낙은 발걸음 옮기는 장소마다 합장을 하는 거였다.

참으로 간절하게 몇 번씩이나. 허나 다음 행동이 이해가 안됐다. 열심히 도토리를 줍고 있었던 거였다.

간절한 기도는 뭐였을까?

 해도 그 아낙의 행윈 산짐승의 먹이를 쬠 실례할 뿐이다.

모든 건 자기책임이라면서 정작 책임은 떠넘기며 불신 쓰레기를 양산하는 푸른집 아낙보다는 백번 선량하고 착하다.

도토리 줍는 아낙은 사회를 병들게 하진 않지만, 거짓 남발하는 푸른집 아낙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불신이란 상처의 트라우마를 안겨줘 나라기강을 훼손한다.

공약, 공언이 공염불이 되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표상이 푸른집 아낙이어선 나라의 불행이라.

 

도선사 가람은 부티가 넘치는 것 같았다.

도선선사와 청담스님의 발자취만으로도 복 받은 명당이 아니겠는가!

도선사경내를 빠져나온 나는 우이분소까지의 2km를 우이계곡물노래를 들으며 한가한 산보를 즐겼다.

 

나무데크 위에 폐타이어를 깐 인도는 계단 없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울창한 숲 아래 계곡물은 가녀린 속삭임으로 귀를 쫑긋케 했다.

소리 없이 떨어지는 실비는 푸나무를 더욱 푸르게 하고, 갓길에 이따금 나타나 영접하는 복숭아나무는 예가 흡사 무릉도원에 이르는 길일까? 하는 착각을 하게 했다.

 

우이분소에 닿은 시각은 오후4시반이 넘었으니 6시간 가까운 산행인 셈이다.

숨은악어능선의 승천모습, 깔딱고개의 숨넘어가는 고행, 대머리 인수봉과 사람이라는 점, 북한산 최고봉인 백운대정상에서의 감격, 사방을 휘도는 하얀 바위능선들 속의 융기, 장난감 같은 도회지, 대자연에 도전하는 개미 만한 인간, 그 미물 속의 참된 사람-두 분의 삼각산천사를 만남만으로도 황홀한 오늘 이였다.

 

두 분, 삼각산수호천사들의 건승을 기원해봤다.

                                                  2014. 09.

 

                                      -백운정상에서 만난 수호천사-

-우이계곡에서 만난 수호천사-

 

- 바다물범 모자 -

 

 

 

                                    - 소나무 사이로 엿 본 숨은악어능선 -

 

 

                                                  - 해골바위 -

 

                                      - 숨은 악어의 허벅지께 -

                                        -  숨은악어 궁뎅이 -

                                                 - 숨은악어 꼬리 -

 

 

- 인수봉릿지와 숨은악어-

 

-도봉산 오봉 -

- 숨은악어등걸을 미끄럼 타며 -

 

- 숨은악어 잔등 -

 

- 호랑이굴 -

- 토끼굴 -

 

 

 

- 오리바위 -

 

 

 

 

 

- 백운대정상의 태극기 -

- 만경대 -

 

- 백운대를 오르는 산님들 -

- 거위바위

 

 

 

-도선사 마애불상 -

 

 

 

 

 

 

- 인수봉지킴터에서 본 인수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