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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감-그 미지?

미쳐서 살고 정신 들어 죽다

미쳐서 살고 정신 들어 죽다 - 사랑

 

 미쳐서 살고 정신 들어 죽다는 세르반테스의 묘비명이다.

또라이 돈키호테는 스페인의 시골마을 라만차에서 밤낮으로 소설을 읽다가 기사소설에 미쳐버려 머릿속이 헷가닥 해버린 50대의 홀아비남성이다.

기사소설의 광기에 절인 그는 청태가 낀 투구를 쓰고, 녹슨 칼과 창을 든 채 비루먹을 말 로시난테를 타고 7월의 뙤약볕을 향해 집을 나선다. 짝사랑했던 로렌소를 찾아 나선 거였다.

 

 

 

또라이 돈키호테는 가는 곳마다 말썽을 일으켜 몽둥이찜질 아니면 돌팔매질 당하기 일쑤인데 그런 거지발싸게 만도 못한 수모를 당하면서도 마법의 광기에서 헤어나질 못한다.

불쌍한 건 시종 산초다. 오살 맞게 순진한 탓에 주인이 나중에 섬 하나를 때어주며 영주로 임명하겠다고 대박제안을 하자 혹해서 꽁무니를 바짝 따라붙어 따른다.

 

                        -돈키호테 & 산초 -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사랑얘기가 진동한다. 한 순둥이 청년에게 사랑하는 처녀가 있었다. 근데 그의 바람둥이 친구가 처녀에게 눈독을 들이더니 어찌하여 배를 맞추곤 달아나 결혼을 해버렸다.

순둥인 배신의 쓴잔을 거푸 마시다 지랄발광을 떨고 있는 풍경이 더위만큼 왕짜증난다. 차라리 미쳐버려라. 맨정신으로 어디---.

또 한 동네엔 또라이 돈키호테만큼 호기심이 많은 사내가 있었다. 사내는 지 아내의 정조가 얼마나 철옹성인지를 확인하고 싶어 미치고 환장하다 못해 우울증이 도질 판이었다. 하여 절친에게 지 아내를 한 번만 꼬셔보라고 통사정을 했었다.

 

 

마지못해 응한 친구 녀석, 친구아내와 눈이 마주치자 불꽃이 튀어 보듬고 삼십육계를 쳐버렸다. 찾아나선 청년은 마침내 절친과 아내를 찾아 사생결단을 내다가 셋 다 저승길에 들어 정신 들었다.

그렇게 에로스사랑에 미친 대책 없는 사랑이 있는가 하면, 아름다운 목동처녀 마르셀라의 순수한 사랑도 목도한다

미모의 부잣집 외동딸인 마르셀라는 수많은 남성들이 침을 질질 흘리며 쫓아다녀도 눈 하나 깜박 않는다. 하여 어떤 사내는 상사병으로 죽어 파묻히며 정신을 차린다. 매장의 순간 거기 바위위에 나타난 마르셀로는 외친다.

 

 

나는 자유롭게 태어났고, 자유롭게 살고파서 이 산과 들의 고독을 선택했으며, 나무를 친구로, 시냇물을 거울로 삼았다. 그들과 대화하며, 자유와 고독, 자연과 교감하며 사유함을 사랑한다.” .

영원치 못한 사랑, 희망이 안 보이는 사랑에 몸부림치다 죽는 건 참을 수 없는 나의 부정이다. 라고도 외친다.

미친 사랑의 난장판은 객줏집에서의 하룻밤도 이어진다. 돈키호테와 산초와 수레꾼이 한 방에 투숙했는데, 밤이 으쓱하자 수레꾼과 눈 맞은 객줏집처녀가 캄캄방을 더듬더듬 기어오다가 돈키호테의 두 팔에 닿았다.

 

 

또라이 키호텐 냅다 처녀를 덮쳐 침대에 눕힌다. 잔뜩 몸 달아 있던 수레꾼이 돈키호테를 향해 돌진 눈탱이, , 갈비뼈 할 것 없이 사정없이 난타를 하자 처녀는 얼른 산초의 침대로 숨어들었다.

피투성이 된 주인을 본 산초가 처녀를 밀치며 때리자 처녀가 발길로 산초의 사타구니를 차버렸다. 돈키오테와 산초와 수레꾼과 처녀는 엉켜 육박전을 치루니 사랑의 비극인가? 희극인가?

 

                                  - 박연폭포 -

같은 무렵, 조선의 개경에선 재색 겸비한 기녀(妓女)가 인구에 희자 돼 사랑의 진면목을 수놓는다.

맹인의 딸 진랑(眞琅.황진이)은 거문고의 귀재에다 절창 이였다. 미모에 시문에 능하고 활달하기까지 하여 뭍 남성들의 애를 태웠다. 그녀가 허락만 하면 치마폭에 얼굴쳐박지 않을 위인이 없었다.

30년 동안 면벽수행하며 생불 소리를 들은 지족선사(知足禪師)도 그녀의 고쟁이 속에선 힘을 못 폈다. 다만 한 사람, 화담 서경덕(徐敬德.1489~1546)을 빼곤 말이다.

 

 

그녀는 화담과 몇 년을 교우하면서도 살을 섞지 못했다. 그래 그를 성인(聖人)이라고 부르며, 박연폭포와 자신을 포함 일컬어 송도삼절(松都三絶)이라 했잖던가!

화담은 그녀보다도 자연을 더 사랑했다. 벼슬을 사양한 채 자연과 독대하며 학문에 매진한 청빈한 철학자였다. 조선조 사대 당파싸움 한 가운데를 관통한 생애는 불편부당, 오로지 국태민안을 위해 상소하고 후학에 터득한 학문전수에 일생을 바쳤다.

그의 농민과 자연사랑은 왕실의 과도한 묘역조성을 비판하기도 했다. ‘왕실의 넓은 묘지로 농민들의 경작지가 줄어들어 살 땅이 없어짐을경계함' 이었다자연을 사랑할 때 인간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 테다.

 

                                -사마천의 묘와 사당-

후세 사람들이 옛 사랑을 보는 시선도 사랑의 얼굴만큼 카멜레온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사마상여열전사랑얘기도 각양각색이다. 고대 임공의 현령인 왕길(王吉)의 초청으로 잔치에 참석한 사마상여(司馬相如)는 왕길의 간청으로 거문고연주를 한다.

그 자리엔 그곳 부호인 탁왕손과 그의 딸이 있었는데 거문고연주에 딸은 홀딱 빠져들었다. 그녀 - 탁문군(卓文君)은 결혼하자마자 생과부가 돼 친정에 와 있었던 참이다.

 

미녀인 탁문군에 사마상여도 쏙 빠져 그날 밤 두 남녀는 쪽지를 건 내 만나서 배를 맞춰보곤 야반도주를 했다탁왕손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지만 과부딸을 어찌 하겠는가? 닭 쫓듯 먼 산만 봤다.

몸뚱이만 서로 보둠고 성도로 도망한 그들에겐 살길이 팍팍했다. 살을 태울 만치 태우고 다시 임공으로 돌아와 말과 수레를 팔아 술집을 오픈한다.

여자는 술화로 옆에서 술을 팔고, 남자는 쇠코잠방을 입고 허드렛일을 했다.  딱한 소문을 들은 탁왕손은 노복100명과 돈100, 많은 패물을 주니 그들은 다시 성도로 가서 많은 전답을 사 부자가 됐다.

그래 참새 입방아 찧는 소리가 자자했다. 야반도주가 진정한 사랑땜이라니, 남자가 탁문군의 재산을 노린 거라니. 하고 말이다. 누가 누굴 꼬셨던지 간에 사랑은 카멜레온얼굴로 비춰지기 쉽다.

다만 보는 사람의 시선이 카멜레온일 땐 전설의 덮개를 더 걸치게 된다. 영원한 사랑은 없다. 거의 죽음과 함께 파묻힌다. 

아무도 사랑의 전도를 알 순 없다. 장애물은 수없이 나타나고, 그것을 극복해가야 사랑했단 소릴 쬠은 할 수가 있을 테다.

2014.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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