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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감-그 미지?

어느 참 여선생

어느 방과후교실 여쌤

 

 

내가 중림사회복지관 방과후교실을 알게 된진 작년 10월말 이였으니 반년이 훨씬 넘었다.
외국에 살던 외손자가 미동초등학교로 전학와 방과 후의 시간활용을 고심하다가 이곳을 선택하면서다.
이제 갓 입학한 1년짜리를 어떻게 오후시간을 보내게 하느냐? 와 집에서 가까운 곳을 물색한다는 두 문제가 가장 우선순위였다.              그실 애에게 방과후의 공부는 기대밖이었다.   
시설도 깨끗하고 인원 수도 단출한 것 같아 맘에 닿았다.
좀 더 들락거리면서 중림동과 불교에서 여간 마음쓰고 있는 것 같음도 여간 좋았다,
나는 애가 학교수업이 끝나는대로 데리고 왔다가 오후 6시에 다시 데려가는 땜에 하루에 두 번씩은 복지관5층을 래왕한다.
그렇게 들락거리며 방과후교실의 여선생님의 친절이 각별하여, 어린애를 맡기면서 늙은 내가 학부모노릇을 잘 할 수 없음에 여간 미안하기도 했다.
 더는 사무실에서 애의 보호자를 호출할 때는 더욱 송구하기도 했었다.
애가  다른애에 비해 성숙치도 못한데다 좀은 내성적인 성품으로 낯선 환경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함을 간파한 선생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친구들과의 소통을  주선하는 것 같아 참으로 기쁘고 고마웠다.
개구쟁이들 하나 하나를 챙기며 마음쓴다는 건 그일이 천직이라 여기지 않음 어려운 일일 것이다.
여선생님은 항상 미소로 인사를 하고, 애의 동정에 대해 성의껏 메시질 띄워 알려주며, 어떤 문제점을 상의하는 자상함과 칭찬을 잊지않는  세심한 배려는 나를 감동케 하는 거였다.
그런데 며칠 전 퇴근 때에 나는 선생에게서 딱 반할 만한 애국(향)심을 발견하고 이 두서없는 글을 올리게 됨이다.
애 두명(나를 따라온 애의 동생)이 컴퓨터를 계속 하자 선생님은 "할아버지 기다리신다. 그만 끄고 선생님이랑 같이 가자.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야지. 따로 타면 되겠니?" 라고 하며 애들을 최촉하는 거였다.
그렇게하여 우리 네명은 한 대의 엘리베이터로 1층까지 내려와 헤어졌던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한 번 덜 사용하여 절약하는 삶의 지혜는 아무나 무시로 하기 쉽잖다.
더구나 그런 절약이 공공의 재화일 때는 더욱 그렇다.
되려 공물이기에 함부로 낭비하는 게 버릇인이 된 사람도 부지기 수다.
선생은 한 번 사용한 용지를 이면지로 재사용함도 난 이미 알고 있었다.
참 선생님이기에 앞서 참된 공무원상을 뵈는 나는 그 여선생님이 존경스러웠다. 
사회복지관 아니 중림동사무소에서 사용하는 한방울의 물, 1볼트의 전기, 한장의 이면지도 우리가 낸 돈 - 세금인 것이다.
참 공무원상의 방과후교실여선생님을 매일 뵙게 된 나는  행운아인 셈이다.
성함도 모르는 그 여선생님, 더위에 건강 유념하십시요.
하긴 선생님처럼 깡마른 체격이 여름을 잘 날 수도 있다하니 제 걱정은 기우겠습니다.
 2014. 06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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