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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감-그 미지?

'13입춘이 빚은 설국의 서울

’13立春이 빚은 雪國의 서울

 눈을 떴습니다.

오늘이 입춘이지요.

커튼을 살짝 젖히면 부드러운 햇살이 바람을 안고

창으로 쏟아져 들어올 것만 같았습니다.

창을 열면 햇살과 바람은 게으른 내 심신에 에든벌룬을 달겠다싶었지요.

근데 아니었습니다.

햇살도 바람도 없습니다.

간밤 햇살도 바람도 잠든 사이 우주는 깜짝 놀랄 만한, 경이로운 세상을 만들어 놨더군요.

하얀 세상!

커튼 밖은 눈부신 설국이었습니다.

후딱 승강기에 몸을 던져 하강했습니다.

 

서소문공원에서 본 세상입니다.

설화 만발한 겨울나무 속으로 내 거처가 멋진 스냅사진이 됐습니다.

주거공간을 (내 생각으론)가장 비효율적으로 요리한 브라운스톤 서울이  9.11때 사라진 쌍둥이빌딩의 현신인양 자태를 뽐내고 있더군요.

 

노숙자천지여서 그들만의 공원이 된 서소문공원.

설국에선 눈부신 공원-겨울옷을 입고서 모두를 포용하려듭니다.

남색유리벽 옆의 종로학원이 설화에 파묻혔습니다.

머리 싸맨체 계절을 잊은 학생들아, 얼른 공원으로 나서라.

'13년 입춘이 빚어놓은 기막힌 순수로  세수를 하고 꿈을 심호흡하라. 고 외치고 싶었습니다.

라마다르네상스호텔과 중앙메스컴도 설국에서 다시 태어나려나 봅니 다.

그들의 세계는 이 공원과는 다소 이질적인 기름때 였든가 싶었는데 '13입춘은 그들도 다소곧이 공원의 품에 들어서게 하는가 봅니다.

그들도 가장 밑바닥 세상 - 노숙자의 심정에 눈 파는 봄날이 오길 기대해봅니다.

번갯불에 콩 볶듯 아내를 닥달하여 북한산에 파고 들었습니다.

햇살도 바람도 없습니다.

강산이 몇 번 변하도록 죽자살자 싸우다 지처 이제 마지못해 지내는 아내와 그런 우릴 푹푹 빨아들이는 눈만이 있는 세상-눈부신 설국여행을, 잠시동안일망정 하기로 했지요.

 

한 부부가 먼저 였습니다. 그들도 서로의 살 파먹는 싸움 포기하고 '13입춘 맞아 설국에 온지 모릅다.

반세기만에 왔다는 기막힌 서울의 봄기운을 심호흡 하러 말입니다. 

북한산둘레길 7구간의 탕춘대성벽 타는 길은, 북한산둘레길 중 쬠  사랑 받는다는 길이 눈카펫을 깔아, 아내와 내가 밟는 눈의 아픈 신음소리만 냅니다.

 

탕춘대성은 서울도성과 북한산성을 보완하기 위해 숙종 44년(1718) 에 쌓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성한 것으로, 명칭은 세검정 부근에 있던 탕춘대(蕩春臺)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눈폭탄을 뒤집어 쓴 탕춘대 암문을 통과해 봅니다. 우리보다 더 치열하게 세상과 싸운 사람들이 벌써 국에 발자국을 남긴채였구요.

회색구름사이로 햇살이 쏟아집니다. 설국은 갑자기 은빛파도를 일구고 한 떼의 바람이 나무를 간지럼펴 은가루를 햇살속에 알알이 박습니다.

 

구기동 고급빌라촌이 집채만한 하얀 벽돌들을 쌓아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려는 기초공사를 하는 걸가요.

 아님, 또 하나의 내성을 쌓을려는 걸까요?

저 공사의 꿍꿍이 속은 간밤 역사를 도모했을 별과 바람과 눈만이 알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이 만든 아무리 위대한 구조물도 자연의 힘 앞에선 초라한  장난감이기 다름아님을 깨닫게 해 주기 위해 입춘 전야는 세상을 온통 희게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설화 속에 아스라이 불광동시가지가 장난감이 됐습니다.

어디선가 바람 한 자락이 달려와 소나무 침엽에 올라타 심술부리자 간만에 소담한 설화를 피운 소나무가 하얀 꽃 한 덩이를 놓치는 겁니다.

아차!  꽃덩인 억만 개의 입자로 부서져 순간 일대는 뿌옇게 雪霧 연막을 쳤습니다.

순간은 영원으로 통한다지요.

 

탕춘대공원지킴이 터와 안내판도 하얀 수국다발을 이고 산님을 영접하는군요.

비봉과 향로봉도 수국꽃다발 뒤로 숨었습니다.

아낸 오늘따라 삼매경에 빠지길 수없이 하는군요.

지금 아내의 눈길을, 맘을 앗아가는 범인은 무엇일가요?

난데없이 햇살 한 덩이가 수국밭에 떨어저 딍굽니다.

햇살이 문안을 왔군요. 오늘이 입춘일 걸요.

족두리봉은, 족두릴 쓴 대머리도 오랜만에 화장을 했군요.

억겁풍상에 페인 주름살을 분탕 칠 했습니다.

예뻐지려는 욕망은 바위라고 돌 가슴 일순 없겠지요.

우주의 섭리는 자연의 아픔을 치유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가 싶습니다.

 굵은 주름 없는 이마에 하얀 족두리가 오늘은 그만입니다.

비봉에 눈도장 찍고 아지트로 돌아왔습니다.

햇살에 쫓기는 빌딩사이의 바람은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바람을 쫓는 햇살이 한경(한국경제신문)창에서 부서지고, 달아나던 바람은 빌딩숲 공간을 막아 선 브라운스톤 서울에 부딪처 회오리가 됩니다.

햇살이 바람 한 떼를 몰며 빌딩가를 비까번쩍 서울답게 합니다.

입춘은 두터운 외투 단추 구멍 하나를 이제 막 풀었을 뿐입니다.

인간이 만든 도회도 자연이란 마이다스의 손길이 없인 결코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은 햇살과 바람의 창조물인 것이지요.

입춘이 빚은 탐미나들이를 끝낸 난 브라운스톤 서울로 기어듭니다.

어릴 적, ‘立春大吉 建陽多慶’이라고 써서 대문에 붙이시던 先考의 모습이 아련하게 그리움으로 떠오르는군요.

오늘의 아름다운 입춘은 반세기만의 걸작이라고 티브이는 호들갑을 떨고 있습니다.

바람과  햇살이 술레잡이를 하다 빠르게 코발트 허공 속으로 빨려드는  - 입춘은 무겁고  침울한 겨울에서 생명의 봄을  한 번 그리는 쉼표의 재출발의 맘 추스림의 날인 게지요.

2013. 02.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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