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감-그 미지?

잃어버린 자화상 - 손글씨

잃어버린 자화상 - 손글씨

 

 

엊그제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펜으로 편지 라기도 뭣한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육필로 편지를 쓴지가 언제였던가? 란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으며 묘한 상실감에 젖어들었다.

당분간 서울에 머물고 있는 참이라 거래처인 I시 농협창구 직원에게 만기가 되는 정기예금을 연장(며칠 전 귀가 때 얘기가 됐었다)하는데 통장을 등기우송하면서 첨부하는 글을 쓰면서였다.

휴대한 노트북에 프린트기가 없어 어쩔 수없이 펜글씨를 써야했는데 너무 오랜만에 쓰는 펜 이래서였던지 또박또박 정성 드린 글체가 아닌 뭔가에 쫓기며 사인하듯 한 날림으로 편질 쓰고 있음에 스스로 당황하며 멋쩍어했었다.

생각해보니 그런 난필이 내 글씨체가 된지 꽤 오래된 성 싶다. 아마 워드프로세서가 일반화돼 글쓰기를 프린트기가 대신하고 있었기에 내가 손글씨를 쓰는 건 고작 간단한 메모나 서류에 사인할 때였으니, 글씨 쓰는 일을 점점 잊어간 탓이기도 하다.

컴퓨터가 생기기 전엔 내 글씨체에 대해 어느 만큼은 자긍심을 갖고 있었다. 선친을 닮았던지 글자 한자를 써도 정성을 들였고, 그런 버릇이 멋있고 좀 튄 글씨였던지 초등학교 5~6년 땐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철판글씨(가리방)를 썼는가 하면, 중학교 땐 나이 드신 국사선생님께서 줄곧 나더러 강의노트를 칠판에 대필하라곤 했었다.

그렇다보니 난 글씨를 제법 멋있게 잘 쓴다는 소문이 나서 중3년 이후엔 몇몇 친구들의 연애편지를 대필해주기도 했었다. 당시만 해도 잉크로 쓰는 펜글씨가 주류여서 필체가 좋으면 사람들로부터 여간 부러움을 샀다. 그래서 글씨를 잘 쓰려고 펜글씨나 붓글씨학원을 다니는 사람도 많았었고, 그런 글씨교본 한두 권은 누구나 갖고 있었다.

내가 글씨를 좀 잘 쓸 수 있었던 것은 선친 덕일 것이다. 선친님 필체를 닮기도 했겠지만 대여섯 살 때부터 붓글씨를 또박또박 정성들여 쓰는 필법을 배웠던 탓일 테다. 암튼 선친님은 글씨를 쓸 때의 몸가짐과 마음자세부터 단정히 하는 버릇을 내게 가르치셨다. 글씨가 삐뚤빼뚤하면 마음도 삐딱한 사람이라고 하셨다.

글씨는 그 사람의 얼굴이란 거였다. 그런 가르침은 내가 고학년이 되면서 정설이 됐는데 역사적인 명망가 내지 학자들이 대게 명필가였던 땜 이였다. 조선조의 대학자들이나 명필가들의 글씨는 곧 그분의 인격이고 학식 이였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한석봉의 일화는 한두 개가 아닌데, 한석봉을 향한 허균의 흠모는 자못 비장하기까지 한거였다.

허균이 황해도 어느 고을의 수령으로 있을 때였다. 허균은 먹을 한 말이나 갈아놓고 비싼 명주를 사서 대령한 채 한석봉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가 오면 맘껏 붓글씨를 쓰게 하려는 배려였다. 허균은 일찍이 한석봉으로부터 ‘천풍해도(天風海濤)’란 글을 받아 벽에 걸어놓고 삼일 동안이나 옴짝달싹 않은 채 글 아래 머물 정도로 심취했던 바였다. 그런 한석봉이, 가을에 온다던 사람이 느닷없이 죽자 허균은 망연자실 통곡하면서 눈물의 제문을 지어 바치기도 했었다.

허균이 누군가. 자유분방하고 개성강한 당대의 문장가가 아니던가. 홍길동전을 쓴 허균의 한석봉을 향한 경외심은 명필가의 고매한 인품과 학문의 깊이를 숭모한 경탄의 소이일 터다.

글씨는 마음의 연마와 수련의 표증이라 생각한 땜이라. 근데 오늘날 누가 손으로 직접 펜글씨를 쓰는 사람이 있을까? 지금은 컴퓨터자판기가 대신하다보니 글쓴이의 인품을 헤아릴 수가 없다.

더구나 요즘은 스마트폰의 액정을 터치만 하면 되니 젊은이들의 손가락놀림은 현란하다 못해 신기에 가깝다. 가볍고 빠름이 대세인 세상이다 보니 정성이 끼어들 자리가 없고, 깊은 사유를 할 참이 없는 졸속의 문장이라 상말에 국적불명의 천박함이 인품마저 망가뜨리는 세상이 됐다.

가볍고 빠름이 좋을 때도 많겠지만 깊은 사유와 글을 쓰는 공력에서 오는 인격수양엔 폐해가 된다는 사실을 자성해 봐야함이다.

마음수련은 자기의 인격함양이고 기품 있는 사람이 되려는 명제는 천년의 세월이 흘러도 변할 수 없는 진리일 터다. 글쓰기는 결코 큰돈이 필요 없는 지성인으로의 길이다. 멋있고 폼 새나는 글씨를 쓰려고 공력을 쏟다보면 그게 곧 자기수양이 아닐가.

스마트폰 액정만 터치하다가, 컴퓨터자판기만 두들기다보면 나의 심성을 황폐화시키고 내 얼굴마저 잃어버리는 건 아닌지 자문해 본다. 아름다운 글씨를 남기는 건 기품있는 자화상을 남기는 행위다.

편지란 나의 따뜻한 마음을 글에 담아 보내는 정성일진데 혹시 농협 U씨에게 결례되는 편지를 쓴 건 아닌지 민망하다.

2014. 03. 13

'교감-그 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쳐서 살고 정신 들어 죽다  (0) 2014.07.30
어느 참 여선생  (0) 2014.06.30
행운과 불운 사이  (1) 2014.01.04
'13입춘이 빚은 설국의 서울  (0) 2013.02.05
100205  (0) 2010.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