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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감-그 미지?

행운과 불운 사이

행운과 불운 사이

내가 웰니스 길 트레킹을 마치고 귀가하여 늦은 아침식사를 끝내자 아내와 첫째와 막내는 정오까지 체크아웃하기 위해 짐을 챙기고, s훈이와 m주, 둘째와 세 꼬맹이들은 밖에서 눈싸움하는 재미에 푹 빠져들었다.

엊그제 내린 눈은 강치 속에서 푸석푸석한 가루눈으로 남아 쉽게 뭉쳐지질 않아 눈사람 만드는 역사도, 눈 싸움질에도 최적은 아니었지만 모처럼의 눈 장난재미에 땀까지 훔치는 거였다. 더구나 상하의 나라 싱가포르에서 온 큰애네 식구들에겐 오랫만에 맞는 별천지 신명난 놀이일 테다.

 

 

영하10도를 넘나드는 추위 속에서 세 꼬맹이들은 한 시간 남짓 눈 범벅이 됐다. 체크아웃하기 위해 렌터카(12인승 카니발)에 짐을 싣고 가족사진 한 컷을 남기며 우린 승차했다. 아마 내가 제일 늦게 조수석에 승차하며 문을 닫는 순간이었다.

내 뒤에 앉아있던 큰애가 “아빠, 내 손- 내 손-”하며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렀지만 영문을 모르는 난 뒤에 있는 식구들이 기겁소릴 질러 본능적으로 차문을 열었었다. 내가 조수석 문을 닫는 순간 큰애가 창틀을 잡고 있던 손을 미처 꺼내지 않아 문틈에 중지가 끼었던 거였다. 어쩌다가?

 

 

약간의 외상에 손가락이 좀 휜 채 통증만 날뿐 감각은 살아있는 것 같다는 큰애의 말에 철렁 내려앉은 가슴은 좀 진정은 됐지만 우리모두는 손가락뼈가 골절 아니기를 빌며 당직병원을 수소문하며 질주를 한다.

일요일 당직병원이라야 한 시간을 달려 원주까지 가야한다. 문득 스키장의무실 생각이 나서 몇 분 만에 도착 응급처칠 받았다. 두 간호사는 부목을 대어 고정시킨 중지를 움직이지 말고 지금 원주당직병원으로 가라는 거였다. 골절유무는 엑스레이촬영 후에 알 수 있단다.

 

우린 원주냐? 서울이냐? 로 설왕설래하다가 어차피 귀가할 참이니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서울로 직행키로 했다. 지금 당직병원을 찾아봤자 엑스레이촬영 외에 특별한 처치를 기대할 순 없을 것 같기도 해서였다.

여태 내 앞에선 점잖게 운전했던 s훈이는 ‘운전의 달인’답게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단 몇 분·초라도 빨리 병원엘 가기 위해서다.

 

그는 이번의 가족여행을 위해서 부러 한국출장을 왔을 테고, 12인승 렌터카에 유니클로에서 가족단체셔츠도 마련하지 안했던가! 이래저래 난 좌불안석이 됐다. 큰애가 골절이라도 됐음 어쩐다?

(관세사)수험준비 한답시고 애들 데리고 싱가포르에서 날아와 쉬는 날도 없이 학원과 도서관에서 시간과의 싸움질 하는참에, 고의는 아닐지언정 내가 중상을 입힌 거나 진배없어 시간을 뺏기게 했으니 말이다.

 

해서 이번 동해안여행도 큰애는 빠지려했었다. ‘일주일 공부 안 해 떨어질 시험이라면 지금 포기한 게 났다’는 s훈이의 촌철일침에 마지못해 동행한 여행인지라 s훈이와 큰애에게 더더욱 미안한 나였다.

더는 지가 강권하여 떠난 큰애이기에 s훈인 나름 더 마음 아파할 테다. 내 뒷좌석에 앉아서 왜 손을 밖의 조수석창틀을 잡았었고, 난 그냥 닫아야 했을까? 단 몇 초만 빨리 손을 빼던지, 내가 문을 늦게 닫던지 했음 우린 즐거운 여행을 이어가고 있을 테다.

 

오후3시쯤 분당 (당직)정형외과에 도착하여 오른손중지가 골절(사진판독)됐고, 치료는 한 달여가 걸리 거란다. 문제는 어떻게 필기를 하며 수험공부를 하느냐? 다.

행운과 불운의 거리는 찰나의 거리다. 눈 한 번 깜박할 사이다. 순전히 열 명의 피붙이끼리만 나선 오붓한 가족여행이, 이틀간 너무 뿌듯했었는데, 누구의 부주의라고도 할 수 없는 순간에 재앙의 웅덩이에  빠짐이다.

 

5년 전 제주도로 여행 갔을 땐 꼬마 두 명은 태어나지도 안했었다. 더구나 지금은 큰애네가 싱가포르로 이주한 뒤라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게 그리 쉬운일이 아닌 것이다. 해서 s훈이는 이 자리를 만들었고, 빠지려는 큰애를 못내 동행시켰을 것이다.

승합차조수석문짝이 닫히면 틈새가 좀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골절은 됐다지만 여자의 가는 손가락이어서 으깨지거나 박살이 난 상태는 용케 모면할 수 있었던가 싶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송골이 섬찟해온다. 차창문틈에 손가락 끼어 비명 지르는 큰애의 아픔 말이다. 난 오늘 몇 번이나 그 정황을 상상하며 전기에 감염된 듯 으스스 전율했는지 모른다.

오늘의 불행은 주의한다고 모면할 순간이 아니었다. 어쩌다가 순간 문틀을 잡았는데 그 순간에 문짝을 닫아서 야기된 극히 찰나의 불운이었다. 진통제 탓인지 큰애는 아파하질 않은 채여서 다시 분위기는 담소로 바뀌고 있었다.

 

 

꽃매마을 막내네 아파트에 들려 못 다한 여정을 한풀이 하잔다. 어제 오후 낙산사 앞 푸른 동해바다, 싸할 뿐 잔잔한 바람인데도 바다는 끊임없이 뒤척이고 있었다. 스스로 몸부림치다 바위와 해안절벽에 부딪쳐 검푸르게 멍드는 바다, 멍들도록 곤두박질이라도 처야 정신 바짝 추스릴 수 있다는 바다, 그 바닷물포말을 입에 대보았다.

짭짜름하다. 바다는 썩지 않으려고 스스로 간질 하는 지혜를 품은 채 하얀포말로 부서지는 거였다. 우리부부는 그 검푸른 바다를 안고, 꼬맹이들은 곤충박물관에 들어가 곤충의 신비에 함몰됐었다.

 

 

청평군 봉평의 이효석의 ‘메밀꽃 필 때’의 무대는 오지 중 오지 -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골짝이어선지 밤도 빠르고 추위도 맹위라! 그 살얼음의 밤, s훈이와 m주는 혹한의 추위 속 베란다에서 LA갈비와 한우 스테이크를 숯불구이 하여 대령하느라 꽁꽁 동태가 되고, 우린 실내에서 식도락을 즐겼던 조촐한 파티가 그리운 걸까?

하긴 그들도 숯불구일 하면서 한 잔씩 들이키는 맛에 추위를 녹일 수가 있었다고, 오히려 우리부부 눈치안보고 마실 수 있어 흐뭇했었다고 농반진반 실토 했었다. 피날래를 하자고 기꺼이 웃으며 찬동하는 큰애와 순대 국밥집을 향했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진다. 땅거미는 도회의 골목을 차지하고 누런 가로등불빛은 흩날리는 함박눈을 춤추는 나비로 만들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꼬맹이들이 나비잡이 술래놀이에 빠져든다. 우린 모두 변신의 천재처럼 좀 전의 무거운 시름에서 벗어나 나비의 군무를 즐기는 거였다.

하긴 슬픔에 빠져있기엔 세상은 너무 빨리 달아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은 종이 한 장의 두께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두께란 것도 가늠할 수도 없는 마음 추스름일 테다.

 

마지못한 웃음일망정 큰애의 밝아 보이려는 표정이 고마웠다.

s훈이와 m주 - 두 사위의 헌신이 무엇보다 고마웠고-.  삼일간의 여행은 행복-불운-일상이 퓨전 된 마음의 여정이었다. 행불행의 틈새는 마음이란 걸 되씹기도 하고.  난 참으로 마음 무거웠다. 큰애의 시험날(7월 중)까지 참한 도우미노릇 하는 수 밖엔 없을것 같다.

2013.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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