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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위암, 병상병기

암수술 4년차 - 자족의 삶

암수술 4년차 -자족의 삶

 

 

2014년6월27일, 삼성암센터 1, 외래환자접수처에 닿은 시각은 오전 105분전쯤이었다. 용케 지각은 안 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1년 전, 오늘의 암수술 4년차 내시경검사를 예약했을 때를 잊을 수 없고, 엊그젠 병원에서 예약을 알려주는 메시지도 두 번이나 접했기에 지각할 거란 생각지도 안했었다.

근데 아침에 돌변수가 생겨 아내는 윤이 담임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미동초등학교를 가야 했고, 845분에 유치원버스를 타는 현이를 아내 대신 내가 맡아 태워줘야 했다.

현이를 버스에 태워준 후부터 나의 애타는 병원행은 집 출발-충정로역-을지로3가역 환승-일원역에서 병원셔틀버스-암병원까지 초조와 긴장의 시간 이었.

다람쥐 챗바퀴돌듯한 생활도 때론 예상치 못한 변수에 당황해야 하고, 그 돌변수를 무사히 통과할 때의 안도감은 삶의 활력소가 되는가 싶다. 아침의 문제는 등교했던 윤이가 오늘 전교생이 현장학습을 가는데 준비물을 깜박한 탓 이였다

암튼 나는 가까스로 접수를 밟아 예정대로 위내시경검사와 채혈, X-레이촬영에 이어 정오에 CT검사까지 순조롭게 마쳤던 것이다. 아낸 내가 내시경검사를 마친 후에 도착하였고, 우린 찌질한 윤이 얘길 하며 씁쓸한 뒷맛을 다시곤 했다.

우리부부는 딸 셋을 키웠었는데 그땐 어떻게 살아냈을까? 하고 요즘 되씹어보곤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외손자 두 명을 7개월 차 뒷바라지하면서 애간장 태울 때면 하는 푸념인 거였다.

이젠 한 달도 못 남았다. 큰애가 내달 12일 시험을 치루면 20일엔 싱가폴로 귀가할 테니 그땐 또 다른 미안과 회한이 교차하며 그리움으로 남을 테다. 만남은 항상 떠남을 전제하고, 만나서 즐거움보단 부대끼며 살다 느끼는 서운함이 각인되기 쉬운 게 우리네의 상정인 것이다.

그렇게 헤어지면서도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못 다한 것은 이내 그리움으로 남아 가슴에 주름살로 새겨지는 게 혈육인지 모르겠다.

우린 윤이가 좀 더 똘똘한 애가 되어 큰애의 애간장을 덜 태우기를 기도한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애들이 천방지축일 때면 아내는 놈들을 건사할 큰애 걱정에 또 시름한다.

오늘도 윤이가 등교 때 체험학습준비를 잘 했거나 아님 얘기라도 했음 아내의 허겁지겁 마음 조임을 없었을 테다. 9시 출발하는 현장실습 행 버스를 타기위해 담임선생과 아내는 팽팽한 긴장의 달음질을 해야 했던 것이다.

 

우리부부는 정기검사를 마치고 74일 오전 10시 반에 손태성교수님의 면담을 예약한 후 죽전 막내네 집으로 향했다.

막낸 정성들여 죽을 쒀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위내시경 후식으로 영양죽을 들어야 한다나! 꽃매마을 힐스테이트아파트는 숲이 가까워선지 에어컨 없이도 시원해 좋다.

새벽엔 추워 이불을 덮어야 한다. 서울도심의 우리가 머물고 있는 곳과는 한 계절이 차이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 막내는 주말이면 우리더러 오라고 채근하지만 아낸 묵살하기 일쑤다. 사위 어렵다는 게다.

막내네 고명딸 여섯살배기 은이는 영악하고 너무 멋 부려 탈이다. 은이에게 나는 장난꾸러기 친구다를 지 맘대로 갖고 놀아난다. 난 그 짓거리가 싫지도, 또한 귀찮지도 않으니 아니 즐기는 편이니 모질대로 모진 나도 혈육의 정은 마르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또한 나는 현이의 만만한 샌드백이기도 하다. 놈은 유치원등하교 때 내 품에 안겨선 뺨을 때리고, 발로 차고, 꼬집고 하는데 나는 말로만 엄포를 놓는 통에 권위가 땅바닥이다. 그래도 나는 현이가 얄밉도록 귀여워 죽겠다.

윤이는 너무 착하고 여리다. 그리고 철 늦다보니 속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어쩌랴? 동물과 곤충엔 정신없이 빠져들고, 종이접기와 책 읽기엔 시간가는 줄을 모르니 우린 기대를 하고 있다.

나이 들어 재미 하나는 손주`녀들 재롱부리며 자라는 모습 지켜보는 시간이라. 어떤 땐 한 없이 귀찮아도 절대 밉지는 않다. 애들이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뒤처리를 꼭 나더러 해 달라고 하는 짓도 싫지가 않다. 그런 얄미운 귀찮음도 한 달쯤이면 끝나리라. 아니 그렇게라도 애들과 놀아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거다. 건강하니까 가능하지 않겠는가!

 오늘(74) 오전 10시 반에 예약한데로 손태성교수의 진단을 받았다. 6월27일 검사한 결과 모두 좋단다. 어쩜 나보다 손교수가 더 만족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것 같았다. 위내시경 때 식도용종 조직검사를 한 것도 이상 없으니 걱정하지 말란다.

1년 후에 대장검사,위내시경,x-레이검사,ct촬영,혈액검사 등의 종합검진을 해 보잔다. 예상은 한 바지만 기분 좋았다. 원무과에서 명년56일자 검사를 받기로 예약을 했다. 자만은 금물이지만 지금의 내 건강상태를 내 스스로 자족하고 있다.

어쩜 수술 전보다 건강타고 생각 되기도 한다. 그럴수 있었던 건 낙관적인 생각과 꾸준한 트레킹과 가진 걸 하나씩 내려놓는 생활을 하려 노력함의 결과라 여겨진다.

이삼일 간격으로 두시간이상 트레킹은 우선 심신을 단련시킨다. 더불어 소유물을 하나씩 정리하여 집착에서 벗어나는 삶에 매사를 낙천적으로 임하였던 바가 비결이라면 비결인가 싶다.

 

귀가길에 선릉`정릉에 들려 한 시간 반 남짓 산책을 했다.성종과 정현왕후, 중종의 능을 일별하며 죽음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주검()이 우리의 생활터전 속에 아름답게 자리하면서 지친 일상을 치유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현대인들은 죽어서 많은 땅(묘역)을 차지할 순 없기에 오욕 없는 삶을 살아 깨끗한 이름을 남겨야 함일 테다. 더러운 일생은 사회를, 인류에게 쓰레기를 남기는 꼴이다. 이렇게 건강한 하루를 보낼 수 있게 해 준 삼성의료진에게 감사한다.

2014.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