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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그 여적

타임머신조선여행 - 민속촌

타임머신조선여행 - 한국민속촌

 

꼬맹이 셋을 동반한 우리가족의 민속촌나들이는 시큰둥했던 출발과는 달리 참으로 잘 했단 생각이 들었다.

명분이야 꼬마들을 위해서였지만, 정작 타임머신여행을 즐긴 건 나와 아내였던 땜이다.

실로 한국 민속촌을 찾은 건 나에겐 오랜만이었다. 강산이 변한다는 십년도 훨씬 넘었으니 상전벽해가 될 만도 했다.

 

1974년 창설 된 후 전통문화를 체험하며 한민족문화를 소개하는 관광단지로 장족의 발전을 했지 싶었다.

민속마을나들이를 대충 마치고 나룻배체험장 앞 정자에서 김밥으로 점심을 때운 후 우린 두 편으로 갈라서기로 했다.

둘째와 셋째는 꼬맹이 셋을 데리고 놀이마을어트랙션을, 우리내왼 미처 못 본 전통문화가 탐방에 나서기로 말이다.

 

민속촌 가운데를 흐르는 개울은 푸나무숲으로 우거져 초여름의 햇살을 온 몸으로 받아 강바람을 만들어 탐방객을 유혹한다.

그 바람이 성에 차질 않했던지 나룻배를 타고 오리떼를 좇는 나들객들이 한 없이 부럽기도한 오후였다.

 

푸른 강물위로 부유하는 개구리밥은 도장밥처럼 번지는데 윤이가 "정말 개구리가 저 풀을 먹는거예요?" 라고 묻는다.

확신이 없는 나는 기어드는 소리로 "그래서 개구리밥이라 했겠지"라고 얼머부렸다.

현이가 대뜸 "할아버지, 개구리가 많겠네. 잡으러 가요?" 라며 내 팔을 잡아끌었다.

 

꼬맹이를 동반한 나들이는 놈들의 느닷없는 질문에 난처해 질 때가 많은데 '모른다'라고 대답하기보다 집에가서 컴퓨터로 알아보자고 궁색을 모면하기 다반사다.

요즘 애들은 하도 영악하여 머리칼 만큼 머리통이 하해가지곤 할애비 노릇하기도 쉽잖다.

궁금한 건 다 묻는 통에 수박겉핥기라도 백과사전 흉내는 낼 줄 알아야 어른인 채 할 수가 있을 것 같다.

 

내겐 큰 상전인 윤이, 현이, 은이를 지 애미,이모에게 떠 앉기고 우리 내왼 해방이라도 된 듯 놀이공원에서 나왔다.

우측에 솟을대문을 들어서 양반가에 발을 디뎠다. 

단촐한 기와집 몇 체가 마당이란 공간을  짜임새 있게 거느리고 있었는데, 나의 시선을 붙든 건 앙증맞게 작은 연못에 굽어 휜 소나무와 맞대면 하고 있는 초가사랑체와 후원 그리고 서고였다.

 

서고 안의 책장의 배치와 창문과의 환기를 유추해봤지만 봉사 문고리 만지기라.

그 선비집의 장독대는 규모도 엄청났지만 가지런한 배치의 기하학적 선(線)의 미학에 빠져들게 한다.

더구나 전문가들이 실지로 간장 된장을 담그고 있고, 년도별로 각기 제조년도별 명찰을 달고 있으며 구수한 냄새까지 진동하니 전통장 체험장소로도 손색이 없겠다 싶었다.

 

                    -<수많은 장독대는 내용물과 제조년도 명찰을 달고 있다>-

 

  -<뒤란으로 가는 쪽문과 정원의 초가정자를 초록터널로 잇는 멋진 정원수>-

 

                                               -<선비집의 솟을 중문>-

 

                                                 -<선비집 대문>-

오후2시의 농악놀이는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내 고향에선 유일한 마을의 공동풍류였다.

정월대보름 때는 농악을 울리며 집집마다 찾아 액때움 짚신밟기에 이어 동구 정자 옆 당산나무에서 마을의 안녕을 비는 기원궂판을 벌렸었다.

그렇게 보름밤엔 밤새워 풍악을 울리고, 부인들과 처녀들은 휘엉청 달빛 아래서 강강수월래를 부르며 밤이 깊어지면 닭죽이나 팥죽을 쒀 먹는 잔치였다. 

                                      -<99간 양반집>-

생각해보면 농부들은 고단했던 한해의 삶의 등짐을 그렇게 내려놓으며 위안과 올해의 풍년을 기원했을 테고,

녀자들은 여자란 운명-억눌린 삶의 인습의 한과 스트레스를 농악속에 훨훨 씻어낸 축제의 마당이였지 싶다. 

 

여름방학이 무르익을 무렵엔 벼논의 마지막 김매기를 한다. 김매기가 거의 끝날 때쯤엔 농부들은 농악을 치며 벼가 무탈하게 잘 영그러 풍작이 되길 기원하는 축제들놀이가 펼처진다.

어린이들은 죄다 모여 그 논두렁 현장으로 달려가 농악꾼들의 뒤를 따라 흥에겨워 논주인댁에 들어서곤 했었다.

 

 

그날 밤엔 왠만한 동리사람들은 다 모여 저녁식사를 하고 마당에선 농악춤사위가 밤이 깊도록 이어졌다. 농사의 고됨을 그렇게 치유하며 상부상조 하는 협동심을 고양하여 품앗이로 풍년을 거뒀던 것이다.   

사극촬영현장의 레디 고!  관광객들을 위해 배우들은 리어설 아닌 연기를 하느라 더위에 진땀을 펄펄 흐르는 고역을 몇 번이고 반복해야했다.

관광객들이 스냅사진으로 담으려 '레디~고' 를 연발하는 탓이었다.

그렇게 스탭들은 한바탕 액션을 끝내고 관객과 어울려 파안대소로 땀을 훔친다.

                    ㅡ< 마상곡예는 인산인해를 이룰만치 인기였다>-

오후3시에 열리는 마상무예는 인산인해를 이룰만치 인기몰이를 하고 있었다.

특히 무예사들의 동작 하나하나는 어린이들의 꿈일 만큼 열띤 호흥을 받고 있었다.

 마상무예는 이젠 관광지엔 필수 아이템의 하나로 자리매김 한 인기놀이마당이 됐다.

                               -<99간 양반집의 정원>-

 

                           -< 신부입장>-

전통혼례복을 입고 백년가약을 맺는 '전통혼례식'은 나를 반세기 전으로 타임머신여행을 해줬다.

내 어릴적의 혼례식은 대게가 신부집마당에 차일을 치고 신랑신부가 처음 대면하는 상견례로 시작된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만 당시엔 결혼이 매파에 의해 성사되기 일쑤여서 생면부지의 남녀가 첫대면하는 자리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래서도 혼례식은 엄숙하게 치뤄질 수 밖에 없었을 테고, 초면의 어색함을 털어내기 위해서도 식 후엔 신부집 안방에서 뒤풀이란 놀이로 신랑신부의 얼굴을 대면케 했었다.

그렇게라도 서로를 익혀야 초야를 무탈하게 맞을 수 있잖겠는가! 

나는 중학교 3년무렵 동네 결혼식 땐 대게 축사를 읽곤 했는데 어떻게 하여 그 거룩한(?) 식순에 끼어들게 됐는지는 기억에 없다.

아마 내 누이 결혼식 때 해본 게 어른들 맘에 (글내용이)들어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암튼 난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친족들 누군가 결혼식이 있음 축사 할 일로 들떴다. 그 떨림과 흥분과 자랑스럼이란 이루 말 할 수 없는 행복 이었다. 

 

                                         -<한약방>-

내 어릴적 아니, 고등학교엘 다닐 때까지도 한약방엘 가보질 안해 민속촌에 있는 한약방은 내게 낯선 풍광이었다. 

 

         -<물건과 절구통>-

한약방입구에 있는 이 괴상한, 젓무덤 같은 새알 두개를 발판 삼아 불끈 치솟은 유들유들한 몽둥이는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이 잘 생긴 물건은 인간의 생존이 지속 되는 한 먹고 잠자리만 있음 무시로 치솟는 원초적인 현상이라 한약방인들 도저히 간과할 순 없었을 테다.

그놈을 어떻게 해야 건장하게 잘 보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곳이 한약방이 아니었을런지?  옆의 절구통이 의미심장하다,

 

                                   -<초가집과 남새밭>-

 

 

                

                                         -<초분>-

주검의 집, 사람이 죽으면 가야하는 장소의 하나인 초분은 내가 초등학교엘 다닐 때만 해도 있었다.

어쩜 가장 자연친화적인 장례인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자연에서 태어난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은 죽으면 자연으로 귀의하여 자연의 일부가 된다.

그 주검도 자연으로 돌아가 여태 받아온 수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썩을 몸을 훌륭한 자원이 되게 하는 것이다.

화장이나 매쟝은 자연을 훼손하는 반자연적인 장례문화가 아닐까? 나의 마지막이 누군가에게 거름이 된다는 건 행복한 장례의식이 아닐까.

-<모시실 잊기 길쌈>-

모시실을 뽑는 길쌈은 아낙네들의 전용 울력이다시피 했다. 모싯대를 물에 불려 껍질을 벗겨내고 다시 겉 껍질을 뻣겨 가늘게 쪼갠 실오리기를 매듭으로 묶는 모습이다.

아마 아낙네들이 꼭꼭 숨겨뒀던 허벅지살을 모시 품앗이 할 때 만은 보란듯이 내 보이는, 은근히 각선미를 자랑하는 때이리라.

                                  -<기우제>-

 

 

 

꼬맹이들은 놀이마당에서 나올줄을 몰랐다. 회전목마, 범퍼카,페밀리코스타,순환열차에 푹 빠져 시간 가는줄을 몰랐다는데, 바이킹의 스릴은 열 번쯤 반복 즐기고야 나왔단다.

             -<어린이 최고의 인기물-바이킹>-

또 하나의 명물은 호러존, 귀신이 득실대는 전설의 고향인데 귀신에 홀린 꼬맹이들이 귀가하여 사단이 났다.

넓지도 않은 집에서 화장실 가기도 무서워 어른들이 동반해야만 해서 무섬증을 어찌 못하는 낭패는 둘째치고 성가시기 한량 없었다.

특히 놈들이 화장실 갈 때마다 "할아버지-"하고 호명하는 통에 왕짜증이 났다. 그실 난 호러존 입구에도 가보지 안했기에 억울한 바도 없지 않았다.

 

놀이마당에 붙들린 애들 덕에 우리부부는 옆의 조각공원을 산책했다.

그 방면에 무식한 내가 조각품을 처다본다고 무슨 감상이 될까만 언덕배기에 설치한 야외조각공원을 한 시간여 서성댔다.

근데, 민속촌 구석구석을 매꾼 인파는 조각공원엔 얼씬도 안한다. 나처럼 미술쪽엔 문외한이어설까?

한 시간여 동안 딱 중년여인 한 분만 마주쳤을 뿐이었다.  그 분도 조각 몇 점 훑곤 냅다 도망쳤다. 

숲 속 한적한 공원에서 마주친 내가 이상 했었나? 난 은연 중에 나의 꼬락서니를 한 번 생각해 봤었다.

내, 훌륭한 남아상이란 것 미처 개닫지 못한 그녀였음이 분명하다. 고 자위 했다.

살아있는, 감정까지 풍부한 건실한 다비드상을 몰라보다니--!?

바로 아래 거창한 인곡폭포가 있고 그 뒤 숲 속을 흐르는 똘에 띄운 보트를 타고 선상유람을 하는 편이 훨씬 정서적이라 여기는 걸까?

 

                      -<선상유희 - 보트라이트>-

 

 

 

 

 

 

 

 

 

 

 

30여만 평의 넓은 부지, 배산임수 천혜의 풍수지리적 위치에 자리한 한국민속촌은 각 지방의 실물가옥을 이건해 조성한 조선시대의 촌락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각 지방의 남아있는 가옥을 조사하고 전문가의 깊은 고증을 거쳐 복원되었을 뿐 아니라, 꼼꼼하게 수집한 생활민속문화가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펼쳐지는 진짜조선시대 마을입니다. "         -팜플랫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