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人災)는 내 탓이다
1403(태종3년)년 5월5일, 경상도 조운선 34척이 공물인 쌀 1만 석과 사람 1000여 명을 싣고 출항하여 한양을 향하다가 바다에서 침몰했다.
이 전갈을 접한 태종은 수심에 찬 채 ‘이 모든 책임은 과인에게 있다’라고 장탄식을 했다.
‘쌀이야 아까울 것 없다손 처도 사람이 죽은 건 너무 불쌍하고 마음 아프다. 부모와 처자식들의 애통함을 어찌 하리오.’라고 자책을 했던 것이다.
사고 발생 3개월 후인 8월, 사간원은 '자질부족한 선장이 출항 시의 날씨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안했고, 짐도 너무 과적하여 조운선 침몰의 원인이 됐다' 고 밝혀내어 상소문에 적시했음을 실록은 적고 있다.
1414(태종14년)년엔 전라도에서 운반선 66척이 항해 중에 태풍을 만나 침몰파손 돼 200여 명이 익사했고, 쌀과 콩 5800석을 바다에 수장시키는 해양사고 났다.
7~8월은 태풍의 계절이라 공물운반은 4월에서 5월 중에 하도록 상례화 됐었다. 그런데 호조에서 전라도수군절제사 정 간에게 ‘7월 그믐에 공물을 싣고 8월초에 보내라‘고 지시를 내렸던 것이다.
바다의 생리를 모르는 호조판서의 무지가 무리한 지시를 한 것도 잘못이거니와 바다의 기상상태를 무시한 수군절제사 정 간의 무식과 오만이 빚은 인재였던 것이다.
이때도 태종은 연류 된 자들을 엄벌하며 책임전가에 앞서 ‘과인의 부덕한 탓이다.’라고 애석해 했다고 기록하고 있어 태종의 어심은 우릴 감동케 한다.
600여 년이 지나 달나라를 내왕하는 금세기 2014년 4월16일, 진도앞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하여 300여 명이 실종되는 순간 배가 완전 침수되기까지 1시간 반이란 황금시간에 단 한 명도 생환시키지 못했다는 건 참으로 한탄스런 치욕의 비극이다.
승선인원이 몇 명이고, 생존자가 몇 명이며, 화물은 얼마나 실었는지를 정확히 모르는 세월호가 침몰하는 순간 국가위기재난본부도 실종(?)됐었다.
청와대안보실장은 ‘청와대는 재난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발뺌하고, 대통령은 ‘세월호선장을 살인자’로 몰고, 행자부와 해경에 책임추궁을 하면서 이런 오늘의 비극을 과거의 적폐로 돌리고 있었다.
박대통령은 실종자수색을 한 달여간 하고 있으면서 진정으로 유가족을 보듬는 사과는 없이 ‘국가개조론‘을 들먹거리다가 5월19일에야 이른바 ’눈물의 사과‘를 하였다.
세월호 침몰이 역대정부의 적폐 탓이라면, 그 적폐를 모른 채 (한나라당 집권 때 여당대표였다)1년 반 동안 정부를 꾸려온 박대통령이 무능한 거고, 알면서도 유야무야했음 직무유기라 모든 책임은 박대통령한테 있음이라.
또한 다시는 이런 비극을 없애기 위해 국가개조를 하겠다는 데 국가기관개조에 앞서 인적개조부터 해야 함이 순서다.
기관이 없어 불행이 반복되는 게 아니라 불의와 부정을 눈감아 온 위정자들의 신자유주의 및 성공지상주의가 낳은 사회악과, 이명박근혜정부의 '규제가 악이다'라며 규제완화가 빚은 폐단에다 관피아를 더욱 만연시킨 탓이기에 말이다.
박대통령은 5월19일 사과를 하면서 ‘청와대는 재난관리처가 아니다.’라는 치매의 김장수안보실장과, 국가가 아닌 정권을 위한 국정원장 꼴통남재준을 사직케 하여 진정성을 좀은 엿보게 했다.
허나 정작 유신헌법기안으로 독재에 빌붙어 승승장구하면서 ‘우리가 남이가’를 부르며 지역갈등을 조장시킨 불의의 화신인 김기춘실장은 유임 시킨 건 눈물의 순수성을 의심케 했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독재를 찬양하고 요직에 앉기 위해지역감정까지 부채질한 위인을 중용하면서 국가개조를 부르짖는 대통령의 눈물이 공허해 보인다.
불의와 부정은 어디든 영원히 발붙일 수 없다는 인식을 공무원과 위정자들이 갖고 있을 때 국가개조도 가능하다. 인적개조 없는 국가개조는 구두선일 뿐이라.
부정`부조리한 부폐의 인사는 사회에서 매장되는 중벌에 처할 때 부정과 협잡이 기생할 수가 없고, 정의와 희망이 샘솟는 행복한 나라를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비리를 저질러 지탄받은 인사는 공직사회에서 영원히 추방시켜야 함이다.
김기춘실장 같은 인생이 성공한 삶이라면 우린 학생들에게 불의와 타협하고, 지역갈등을 조장하라고 가르처야 할 것이다.
따라서 박대통령은 국가개조를 말하기 전에 자신과 주위사람들부터 개조해야 비명에 간 삼백여 명의 영혼들에게도 진정한 사과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박대통령의 ‘눈물의 사과’가 600여 년 전의 태종의 ‘애통의 사과’를 본받아 자신부터 개조해야 훌륭한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음이다.
2014.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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