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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그 여적

언론이 깨어있어야

불신 트라우마

  - <태극기와 싱가포르국기 아래 미래의 주인공인 세 아이, 싱가포르는 부정부패  없는 모범국가여서 대조된다. 가운데 큰애가 윤이 > -

정오 무렵, 서대문로타리 ㅎ이비인후과 프런트,

“어제 왔었던 **윤인데요. 내일부터 연휴라 약이 더 필요해 처방전 끊으러 왔습니다.”

“네?”

“연휴에 여행갈 예정인데 애는 지금 수업중이고, 병원점심시간은 2시 반까지여서요.”

“환자를 대리고 와야 처방전을 끊을 수 있습니다.”

“예에, 제가 오후엔 시간이 없어서 그러니 의사선생님께 말씀드려 선처 좀 부탁합니다.”

“이런 일이 가끔 있는데 환자 없이 처방전은 안됩니다.”

윤이를 데리고 한 달여를 들락거린 병원이고, 더구나 어제오후에 와서 진찰받았기에 편의를 봐 줄 수 있다고 생각한 나는 단호히 거절하는 간호사가 얄미웠다.

윤이가 축농증초기란 걸 빤히 알고 있는 간호사가 내가 더 사정한다고 들어줄리 만무할 것 같아 그만 되돌아서 나와야했다. 윤이는 잠잘 땐 이따금 코막힘으로 숨길이 고르질 못해 보채기 일쑤여서 집에서나 학교에서 가까운  ㅎ병원을 택했었다.

50살 전후쯤 될 것 같은 의사는 초진 때 축농증초기니까 십여 일 치료하며 약을 복용하면 나을 거라고 했었다. 그러나 사흘터울로 진찰받으러 온 게 이젠 한 달을 넘겼는데도 의사는 계속 더 치료를 받으라는 거였다.

그동안의 치료 덕에 숨쉬기도 좋아졌고 간혹 하던 코멍이소리도 안하지만 꾸준히 치료를 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해, 윤이가 수업이 끝나길 기다려 사흘 걸려 꼬박꼬박 병원을 대리고 왔었던 바였다.

어제, 내가 좀만 생각이 깊었다면 아까 같은 헛발질도 안했을 터다. 모래부터 연휴동안 애들 데리고 여행한다는 걸 빤히 알면서도, 어제 병원에서 약 처방전을 3일치만 끊어주는대로 타가지고 왔으니 아내한테 치사(?) 받고 오늘 간호사한테 찌질이 돼 싼 것이다.

결코 오늘 헛걸음질 해서가 아니라 나는 그 의사를 좀 못마땅해 하고있다. 병세의 진전상황을 자세히 말해주지 않을뿐더러 친절미도 없고, 더욱 답답한 것은 언제까지 치료를 해야 된다는 언질을 주지 않고 얼렁뚱땅 시일만 끌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다.

하여 나는 요즘은 불순한 생각이 스멀스멀 생기는 거였다. 축농증이란 고질병이 어린이에게 발병했고, 올 때마다 진료비로 7천원정도 지불하니 부러 치료기간을 늘려 잇속챙기기 급급한 건 아닌가? 하는 불신이 지피는 거였다.

근처에 다른 이비인후과 병원이 있담 진즉 옮겼을 나였다. 나는 미동초등학교로 발길을 옮겼다. 1시40분에 수업이 끝나면 데리고 올수 밖에 없어서다. 최소한 3일분의 약은 더 처방 받아야 6일간의 연휴를 보내게 된다.

윤이의 수업 끝나기를 기다리며 스마트폰으로 근처 다른 이비인후과를 탐색해보니 영천시장입구쯤에 두 군데 있었다. 어차피 2시 반까지 기다려야 하니 애를 데리고 찾아보기로 했다. ㅎ병원를 지나쳐 100m쯤 가니 ㅂ병원간판이 보였다. 꾀쬐쬐한 적산가옥2층 가파른 나무계단을 올라가니 70대쯤 보이는 노인 한분이 우릴 맞았다. 난 목례를 하고

“애가 축농증이 있어 왔습니다.”라고 단아한 노인께 용건을 말했다.

“충농증 이라고 했소?”

“예, 이 애가요.”

“여긴 비뇨기과인데요.”

“아~? 제가 깜박 헷갈렸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참으로 무안했다. 어찌 ‘비뇨기’를 ‘이비인후’로 착각할 수가 있나 말이다. 윤이를 데리고 되돌아 계단을 내려서다 불현듯 생각나는 게 있어 다시 사무실로 들어섰다. 노인은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병원인지 사무실인지 노인이 앉아있는 책상 앞에 긴 소파의자가 눈에 띌 뿐 오래된 목조건물에서 나는 매캐한 냄새가 병원특유의 소독 냄새를 대신하는 거였다.

내가 윤이의 책가방을 소파에 놓고 앉으려 하자 윤이가 냄새가 역겹다고 코를 잡고 밖으로 나갔다. 녀석은 유독 철딱서니 없는 짓을 잘 해 조금만 냄새나는 곳은 투덜대며 코를 막고 외면하곤 하여 우릴 난처하게 만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제가 비뇨기과를 찾을 일이 있었는데-, 마침 잘 됐습니다.”

“어디가 아픈데요?”

“제 고환 한 쪽이 좀 부은 것 같고 만지면 하찮습니다.”

“얼마나 됐소?”

“일주일쯤 됐습니다.”

“일로 오세요.” 라며 노인은 앉아있던 의자에서 일어서며 바로 뒤편의 커튼을 제키고 내게 손짓을 하였다. 커튼 뒤엔 하얀 시트의 기다란 침대가 하나 놓여 있다.

내가 침대 앞에서 머뭇대자 노인은 바지를 벗으란다. 바지와 팬티를 무릎까지 내린 내게 노인은 쭈구리고 앉아 오른손을 뻗어 내 고환을 만지는 거였다. 왼쪽 고환이 좀 부었고, 만지면 약간 거북했지만 아프달 것 까진 아니었다.

노인의 손끝은 내 고환을 어루만지듯 하다가 허리를 펴곤 나더러 바지를 입으라고 손짓을 했다. 노인은 맞은편 구석으로 가서 수도꼭지에 서 손을 씻고 와서 책상 앞에 선채.

“음낭수종이라고 별 걱정할 것 없소. 고환에 물이 차는 병인데 목숨하곤 아무 관계없는 병이오. 그나 성함이 어떻게 되오. 생년월일하고?”

노인은 책상 위에 백지메모지 한 장을 놓고 볼펜을 들고서 내게 묻는 거였다.

난 이름과 생년월일을 띄엄띄엄 말하고 노인은 메모지에 그걸 받아 적는다. 나는 뭔가 미심쩍어 “선생님, 음낭--뭐라 하셨습니까?” 라고 되물었다.

“음낭수종이라고 음낭 안에 고환을 둘러싸고 있는 엷은 초막이 있는데 거기에 물이 고이는 질환입니다. 액체가 들어있는 고환은 부은 것 같이 부풀어 만지면 좀 아프기도 하지만 주사기로 액체를 빼낸다든지, 심하면 수술을 해야 되는데 별 것 아니니 걱정 안 해도 됩니다.”

“그럼 약을 먹으면 됩니까?”

“약은 무슨 약? 삼각빤스 있지요. 새것을 사서 음낭을 위로 향하게 하여 딱 달라붙게 조이는 빤스를 입으세요. 초기라 그리하면 물이 빠지는 수도 있습니다. 설사 물이 계속차면 주사바늘로 뽑아내면 되고, 나중엔 수술하기도 하는데 목숨하곤 상관없으니 걱정 마세요.”

“약도 필요 없습니까? 그럼 진료비는?”

“천오백 원만 주시오?”

나는 카드쓰긴 뭣해 천 원짜리 지폐와 동전을 꺼내 드렸다. 노인은 작달막한 체구에 민머리를 숫 적은 백발로 단정하게 빚어 넘겨 고운얼굴을 더욱 인자하게 보이는 거였다.

간호사 한 명도 없이, 노인만큼 오래 된 목조건물에서 퀘퀘한 냄새를 맡으며 홀로 소일꺼리 삼는 성 싶은 진찰을 나는 왠지모를 흠모의 눈빛으로 부러워했다.

죽는 날까지 누군가를 위해 자기를 쓸 수 있다는 삶은 정녕 행복한 일생이 아닌가! 노인은 자신감이 흘러넘치는 것 같이 정정해보였다.

문을 열고 문밖에 서있는 윤이를 보며 내가 무언의 꾸지람을 하는데 노인이 물었다.

“충농증이 심한가요?”

“아니요. 저 아래 ㅎ의원에서 치료중인데 한 달이 지났으나 별로인 것 같아 딴 병원을 찾다 여길 오게 됐습니다.”

“영천시장 쪽으로 올라가면 두 군데 이빈후과가 있지만 충농증이 쉽게 낫질 않는 고질병이 아니던가요.”

“네~에,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윤이를 데리고 삐닥소리나는 나무계단을 내려오면서 참을성 있어야지 냄새 좀 역겹다고 문열어놓고 서있음 못쓴다.고 주의를 주었다.

영천시장 쪽의 딴 병원을 단념하고 50여m쯤 후진하는 ㅎ의원을 향했다. 시간이 없기도 하거니와 며칠분의 약만 받으면 되기에 새삼 딴 병원을 찾아가기 망설여졌던 것이다.

'음낭수종'이라. 그런 질환도 있다는 것 보단, 별 것 아니란 얘기에 며칠간 혼자 번민하며 심드렁하니 저기압됐던 내 스스로에 고소를 지었다. 그렇지 않아도 풀죽어버린 물건이 아내의 거절로 용도폐기 직전인데 고환까지 이상하여 이젠 사내짓 다 한 건가?하는 자조감에 불안해 했던 요즘이었다.

누가 뭐라든 물건이 제 구실을 아쉬운데로나마 해줘야 사내놈이랄 수 있을 것이다. 노인 돼가는 불안은 물건 폐기처분해야 한다는 상실감과 함께 죽음에 이르는 슬픔일 테다. 이럴때 아내마져 폐문해 섹스 없는 부부는 문드러진 과거의 기억이란 쓰레기장이나 헤집으며, 채념이란 허탈감에 무슨 재미로 사는지 상상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지금은, 어쩌다 새벽에 잠꼬대하다 몽롱한 의식을 찾으면 놈이 빳빳해져있어 오줌인가? 생각하다 그건 아닌성싶어 옆의 아내를 건들라치면 손발짓에 구시렁까지 얻어차이다보니, 놈은 기죽기를 상당한 시일이 지난바다. 그런 불쌍한 놈한테 병이라니? 라고 화장실 갈때마다 처다보며 무척 의기소침했던 요즘이다. 

4층의 ㅎ의원엘 들어가자 세 명의 손님이 대기하고 있었다. 호명을 받고 윤일 데리고 2번진료실에 들어갔다. 어제의 그 의사였다. 며칠분의 약이 더 필요한 까닭을 얘기하자 그는 일단 한 번 더 보자며 윤이의 입을 벌리게 하고 물소독을 하곤 코에 흡입기를 넣어 농한 콧물을 쬐금 빨아내는 거였다. 그리곤 여느때처럼

“밤에 잠은 잘 자고 있지요? 좋아지고 있습니다. 5일치 처방전 끊어드릴테니 여행갔다와서 다시 보지요. 됐습니다.”

‘좋아지고 있다’는 소리는 매번 하는 소리였다. 그렇게 하여 한 달을 넘겼는데 오늘도 역시 여행후에 다시 오라는 소리였다. 진료비7천원 안팍도 그대로고-.

옆의 약국에서 약을 받아 나와 윤이의 방과후학원을 가면서 ㅎ의원에 대한 불만은 오늘따라 더욱 팽배해졌다. 깔끔한 실내에 최신식 의료장비를 갖추고 네 명의 간호사와 두 전문의가 진료행윌 하는데도 심정적으로 유쾌하지 않고 불신이 번지는 소이는 왜일까?

반면 아까 병원 같지 않던 비뇨기과 노인의 진료는 신뢰감이 물씬 솟는 이유는 뭔가?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세월호 침몰로 야기 된 불신 내지 안전에 대한 트라우마 현상일까? 라고 억지 부릴 일도 아닌 거였다. 배금사상이 최우선한 그간의 성공지상주의와 을에 대한 갑질의 행포에도 숨죽여야했던 관행이 만연한 탓일 터였다.

부도덕, 부조리로 부를 축적하면 성공한 삶이란 이기주의는, 정치인을 비롯한 사회지도층과 관피아와 자본주의의 결탁이 빚은 폐해가 사회를 짙게 침투한 비정상이 정상처럼 여겨짐이다.

불신, 불안정, 안전불감증은 정치인과 언론이 제 몫을 다하지 못한 까닭이 제일 크다 할 것이다. 설사 정치가 부패하드라도 얼론이 깨어 가차없이 죽비노릇하는 걸 지속했다면 오늘날 같은  불행과 깊은 트라우마는 야기되지 않았을 것이다. 언론이 편향되고 일회성 냄비두드리듯 해서는 부조리와 안전불감증은 독버섯처럼 숙성된다.

관피아 못잖게 나라를 망치는 사람은 제 구실을 안하는 언론인이라. 워터게이트로 닉슨이 대통령직을 사임케 한 건 도청보다도 그걸 은폐키 위한 거짓말을 언론인의 불굴의 정신이었다. 불편부당한 깨어있는 언론이 오늘날의 미국이 있게 함일 것이다.

박근혜정부 1년차 국정과제평가보고서에 정흥원국무총리가 위원장으로 있는 '국가재난관리체계평가'는 '우수함'이라고 국무조정실장이 금년 2월5일 박대통령에게 보고 했었다. 그 우수한 재난관리가 세월호참사엔 속수무책이었다.

이 정부는 총체적으로 썩어있었던 거다. 언론이 모른척 한 탓이 클 것이다. 중단없는 언론의 감시와 편달은 어떠한 비리나 부정도 발붙게 하지 못한다. 어론이 깨어있어야 부강한 나라를 기대할 수 있다.

세월호의 비극앞에 언론이 바로나는 계기가 되길 기원하고프다.

2014.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