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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그 여적

일회용 대한민국

일회용 대한민국

 

아침, 저녁식사를 하며 내겐 기다려지는 시간이 있다. 커피마시는 시간인데 언제부터인지는 잘 기억이 없지만 어떤 땐 밥은 대충 먹고 커피타임을 입맛 다실정도로 커피애호를 하고 있다.

내가 집에서 마시는 커피란 일회용커피니까 옛날 다방커피와 다를 바 없다. 지금은 커피문화가 발달해 종류도 많고, 저마다 고급화를 부르짖으며 번화가엔 블록단위로 커피숍이 있고신축빌딩엔 멋진 커피카페열기에 자리다툼도 치열하다고 한다.

커피가 기호식품이니 취향 따라 분위기 찾아 즐기는 거야 당연하겠지만, 즐기는 자유가 자연황폐화를 부채질해선 안 된다는 점을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 함이다.

내가 살고 있는 브라운스톤`서울 주위는 한국경제신문사를 비롯한 오피스빌딩이 즐비해서 점심때의 거리는 인파로 뒤덮인다.

식사를 마친 직장인들 저마다 커피가 든 종이컵 하나씩을 들고 있는데, 그건 식당에서 서비스했거나 아님, 커피숍에서 주문한 커피다.

일회용커피는, 특히 카페에서 주문한 커피는 종이컵에 다시 도톰한 종이허리띠를 두르고, 프라스틱뚜겅에 빨대까지 꽂아있기 십상이고, 냅킨까지 대여섯 장 덤으로 주는데, 우린 커피만 마신 후 스스럼없이 받아든 부품들을 긴요하게 쓰지 않은 채 휴지통에 버리기 일쑤다.

좀만 생각하면 그렇게 버린 종이컵과 냅킨들이 재활용품이 아닌 고급지고, 그것은 질 좋은 펄프로 만든 - 나무에서 생산된 것들임을 간과한다. 

나무 한 그루를 우리들은 마구잡이로 달라붙어 쓰러뜨리고 분해하여 쓰레기로 버리는 행위가 커피문화가 낳은 낭패란 걸 한 번쯤 생각해 봤을까?

그렇게 우리들은 하루에 수십`수백 그루의 나무를 벌채하고일 년이면 여의도만한 숲을 파괴하는 셈인 것이다.

무분별한 벌목은 자연생태계를 파괴하고 나아가서 지구온난화를 야기 시켜 지구멸망을 최촉하는 삶을 자행하는 어리석음이 아니겠는가.

십몇 년 전이었던가일회용종이컵을 사용하지 말자는 캠페인을 범정부차원에서 벌인 적이 있었다. 허나 그것도 잠시, ‘소비가 미덕이란 신자유주의의 자본가들의 물량대량공급에 절약은 구시대의 구두선이 된 낱말이 됐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의식 없이 낭비하는 자연훼손은 우리네 삶의 질을 파괴하는 야만의 행위 다름아니다.

임마누엘 패스트라이쉬 경희대국제대학원교수는 <삶의 향기>에서 우리들의 커피문화가 빚는 낭비에 대해 안타까움을 넘어 고통스럽기까지 하다고  썼다.

커피 한 잔 마시며 그렇게 많은 자원을 낭비하는, 무의식의 자유 - 자연파괴를 즐기는 것만 같아 슬프다는 거였다.

낭비를 낭비인줄 모르고, 자연파괴를 아무 생각 없이 자행하는 커피문화는 야만의 저질문화이다.

그분의 글을 읽으면서 낭비와 자연훼손을 모른 채 그런 커피문화를 즐기는 삶이 당연한 것처럼 여겼던 내가 심히 부끄러웠다.

커피가 기호식품이니 취향 따라 분위기 찾아 즐기는 데야 당연하겠지만, 즐기는 자유가 자연황폐화를 부채질해선 안 된다는 점을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 함이다.

요즘의 나의 일과란 게 오후 1시쯤엔 미동초교엘 다니는 꼬맹이가 수업이 끝나, 학교엘 가서 애를 데리고 방과후학원엘 가는데 길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직장인들의 손에 든 커피를 애가 어떻게 보고 있을까 궁금했다.

오피스빌딩이 즐비하고 건물마다 커피카페가 있어 점심을 든 직장인들은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커피 한 잔씩을 손에 들고 있는 풍경이 유행이랄까?

난 애한테 물어봤다. “커피 들고 있는 사람들이 보기 좋니?”라고. 꼬맹인 대답했다. 그냥, 먹고 싶어. 나도 커서 실컨 먹을래.” 

커피가 어린애한텐 안 좋다고 금단의 음식처럼 가르친 땜에 호기심만 가득한 애였다. 정작 나의 질문의도완 동떨어진 대답이었지만 꼬맹이가 날마다 보는 우리들의 커피문화는 즐기는 자유고 컵은 쓰레기통이 넘치도록 버리는 미덕(?)’이 하나도 이상할 게 없을 테다.

그게 학교에서 배우는 자연파괴행위란 걸 미처 알 턱이없음이다짐짓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학생들에게 제자리에 가만있으라.’고 방송하며 지들만 살겠다고 몰래 빠져나온 선장`선원들과 다를 바 없음아니겠나?  

그런 우리들을, 어른들은 이중인격자이고, 신뢰할 수 없는 인격파탄자임을 애들은 철들면서 알아챌 거고, 그 낭비문화를 우리들처럼 즐기며 자연파괴를 할 거란 걸 추측해보면 아찔해진다.

부정부폐, 불의는 악이라고 가르치면서 부정부폐로 치부하고, 불의에 빌붙어 고위직에 올라 호가호위하는 삶이 성공한 인생처럼 보이는 세상에서 정의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삶을 살라고  가르칠 수 있을까?

패스트라이쉬 교수가 고통스러울 만치 안타까웠던 건, 우리들이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낭비와 그런 이율배반행위가 즐김의 자유를 구가하는 선진문화처럼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었.

그런 즐김의 지각없음을 답답해 하고 안타까워 그는 평소 자기가 사용하는 컵을 내밀며 커피를 주문하자, 카페직원은 의아한 눈빛으로 이상한 사람취급을 하는 성싶었다고 실토했.

직장에서 자기만의 전용 컵 사용하기 캠페인을 벌리면 어떨까. 낭비로 버리는 컵이 나무를 살려 지구온난화를 방지하며, 프라스틱쓰레기를 줄여 환경파괴란 범죄를 범하지 않음이라면 솔선수범해야 함이라.

그건 곧 우리후손들에게 살기 좋은 자연을 유산으로 남겨주는 행위이고, 낭비가 자원파괴며 저질문화를 즐기는 자유는 지구공멸의 길임을 어른들은 실천해야 함이다.

교수는 제안한다. ‘일회용 대한민국을 벗어나 진정한 문화선진국- ‘자연환경을 보호하는 대한민국이 되자고.

일회용컵 안 쓰는 행위가 우리에게, 인류에 지대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일이라면, 그런 값있는 일을 외면한 채 즐김의 자유를 구가할 자격이 없다.  

그는 매력적인 게 실은 가치가 거의 없다는 뜻의 반짝인다고 다 금이 아니다(All that glitters is not gold).' 란 금언으로 안타까운 심정을 정리하고 있었다.

자기 컵을 사용하는 커피문화는 참으로 쉬운 실천으로 가능하다. 인식의 전환만 있으면 된다. 무심코 주문해 마시는 커피 한 잔이 나무를 갉아먹는 해충노릇이라면 당신은 해충이 될 텐가?

 ‘일회용 대한민국이란 오명도 벗을 수 있는 애국자가 되는 삶이기도 하다.

2014. 06

 

  

 

 

 

 

#.요즘엔 100m 반경 안에 커피전문점이 6개씩 있고 그 가게 전부 손님으로 꽉 차 있을 정도다. 커피 한 잔 값이 점심 값에 육박하는 것도 1유로(약 1380원)짜리 커피에 익숙한 유럽인들에겐 충격이다. 유럽인들을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커피집의 숫자나 커피 가격이 아니다. 바로 에스프레소를 기다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에스프레소라는 단어는 속도를 뜻하는 'express'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백 년쯤 전에 에스프레소가 이탈리아에 등장했을 때 이렇게 불린 이유는 커피 한 잔을 뽑는 데 45초밖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에선 에스프레소를 마시려면 20분을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너무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빨리빨리'의 나라인 한국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데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릴 줄 몰랐다.

*니콜라 피카토 | 주한 이탈리아 상공회의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