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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벌거벗은 보살과 용문산

벌거벗은 보살이 지킴 하는 용문산

 

 

  용문산관광단지에서 멋들어진 홍송들이 들러리선 일주문을 통과하여 얼음 깨는 여울소리 위 보현교에 올라서자 저만치서 거대한 나무가 나잇살만큼 검튀튀 한 세월의 떼껍을 두르고 주위를 압도함을 마주하게 된다. 천백 살 먹었다던가? 천오백 살이라던가?

모든 허세와 군더더기 떨쳐낸 겨울산사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있는 신장42m가 넘는 보살님은 사찰과 용문산의 지킴이시다.

 

나는 작년 늦가을에 황금가사를 두른 눈부신 보살님을 사진으로 보고 벼르다가 오늘 찾아 배알한다. 근데 오늘 검튀튀한 모습이 굳어진 내 가슴을 쿵 내리치며 심호흡케 하는 거였다. 치장이라곤 발부리에 우툴투툴 튕겨져 나온 공기주머니인 유주(乳柱)위에 살짝 덮어쓴 흰 눈뿐이다.

 

 

검튀튀한 피부는 천년의 세월이 만지작거린 바람의 손 떼이고, 빗물이 고였다 마른 흔적이며, 햇볕에 덴 자국일 테다. 그 민낯이 사시사철 걸친 어느 가사보다 더 위엄 있어 보여 나를 추스르게 한다.

이 보살님은 용문사가 두 번의 화마전소 때도 끄덕없이 버틴 채 오늘을 있게 하여 사천왕문이 필요 없고, 용문산은 6.25전란 때 가까스로 아군이 승리하여 이후 반전의 계기를 마련케 했다는 게다.

 

벌써 11시 반이 됐다. 늦어 산사를 에두르고 정상을 행해 골짝을 파고들었다. 아름드리 나목들이 제 멋에 폼 잡고, 바위너덜 길은 나의 눈길을 뺏는데 하얀눈 고깔 쓴 바윌 더듬는 물길소리가 겨울잠을 깨우는 실내악처럼 은밀하다.

고드름을 수염마냥 단 폭포가 재잘거리고 그 밑의 소(沼)는 고기눈깔처럼 파랗다. 눈 뺏고 귀 훔치는 게 어디 한 둘이 아닌데 방해꾼은 바위너덜길이라.

 

 

나무데크 구름다리 건너길 십여 번, 골짝은 한시도 평탄한 길을 만들어주지 않아 신경을 곧추서야 했다. 한 시간을 그렇게 정신팔리다보니 용각바위가 인살 하고 마당바위가 높다랗게 자릴 편다.

 

 

깊고 긴 골짝이었다. 허나 여기까진 약과였다. 능선을 타기위해 오르는 북벽의 가파른 산길은 엊밤의 눈이 산님들의 발길로 다져진데다 빙판이 돼 땀으로 멱을 감게 했다.

정오에야 시작하는 등산이니 산님이 보일 리 없다. 초행길에 등산로가 험하여 기우가 슬슬 지피기도 했다.

 

 

반시간을 헉헉대며 오르니 능선에 닿고 상원사쪽에서 온 산님들이 한바탕 고요를 뒤집고 있었다. 보아하니 그쪽길이 능선에다 양지쪽이어 오르기 더 수월한가 싶었다.

능선도 여간 가파르고 또한 본격 바위숲이라. 한숨 돌리려하면 나타나곤 하는 가파른 계단은 지팡이를 들었다 내리기도 귀찮았다.

 

 

용문산이 상당한 악산(겨울엔 특히)이란 걸 미처 생각 못했다. 그래 아이젠도 챙기질 않아 얼마나 아쉽던지-.

한 시간을 또 그렇게 내 자신과 싸우다보니 정상아래 수직에 가까운 계단이 버티고 있고 산님들이 줄줄이 굴비처럼 매달려 있다. 산행 내내 내 눈엔 한 분도 안보였었는데 어디서 언제 이렇게 많이 모여들었을까?

 

오후2시반이 돼서 용문산정상인 가섭봉(1167m)에 올랐다.

정확인 정상은 군부대가 점령한 탓에 언두리만 만지작거리다가, 쌩쌩 내 얼굴 때리는 한파가 성가시기도 하여, 선점한 산님들 사이를 삐집고 엉덩이 밀어 넣을 자리도 없어, 엉거주춤 배낭 들고 보온통의 커피만 꺼내 한 모금 목에 붓고 계단을 내려왔다.

 

나의 점심이라야 대게 걸으면서 육포를 꺼내 질겅질겅 씹으며 보내는 편이니 점심시간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정상에 서면 사`팔방 한 번 휘~ㄱ돌아보며 폼도 잡는데 오늘은 그 멋마저 포기해야 했다. 등잔등의 땀이 어는지 몸이 으시시해 졌다.

 

가파른 만큼 하산길은 신경이야 날 서지만 속보고 힘이 덜 부친다. 바위골산의 멋은 소나무 붙들어다가 골수 짜서 애면글면 키우는 바위얼굴과 훼훼 휜 나무의 풍상인데 용문산의 그 풍정도 못잖았다.

용문산의 활엽수거목들의 위용도 대단한 놈이 하 많아 그 자태에 홀렸다간 밤중에 하산해야 할 판이었다.

 

상원사방향으로 하산 길 택한 건 옳았다. 능선에 눈이 거의 녹아 빙판은 면할 수 있었다. 그래 눈을 즐겁게 하는 여유도 부릴 수 있었다.

상원사갈림길에서 반시간쯤 내려오니 아까 배알했던 보살님이 용문산마루에 걸친 햇살을 온 몸으로 받고 있었다. 햇살을 안고 서 있는 보살님의 자태가 더 늠름하고 또렷하다.

 

대웅전석가모니불이 마주 선 은행나무보살을 보고 빙그레 웃으니, 은행나무보살도 석가모니부처를 보고 웃고 있다는 어느 분의 용문사기행문 생각이 났다.

그 기행문엔 주지스님(虎山스님)의 말씀도 있었던 바, 은행보살은 땅 속에서 뿌리로 하루 계곡 물기를 80드럼이상을 빨아들인다고 했었다.

 

뿐이랴, 삼월삼짇날엔 봄기운 내라고 막걸리 20말을 발부리에 부어준다는 거였다. 그렇게 식욕이 왕성하니 한참 떨어져있는 푸세식뒷간의 오물 치우기를 10년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단다.

다만 냄새 땜에 수세식으로 개조하고 싶어도 은행보살 건강 생각해서 어쩌질 못한다고 했었다.

 

그렇게 천 몇백년을 살아온 은행보살은 지금도 가장 늦게 단풍이 들며 은행알도 8가마니를 생산한단다. 그래 자연스레 천연기념물 30호를 차지한 셈이다.

그 보살과 울퉁불퉁한 바위너덜골짝 길의 여울소리와 깨 벗은 나무들의 누드쇼와 얼음 깨뜨리는 폭포를 생각하며 용문사경내를 빠져나왔다.

 

평탄하고 밋밋한 길을 쬠도 허락하지 않은 용문산은 산님들에게 호연지기를 사게 할 명산이란 생각이 들었다.

용문산은 사시사철 여느 때던 우리에게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할 악산이란 생각이 다섯시간 내내 드는 거였다.

2014, 03. 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