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굴8비경과 흥국사 그리고 의암호 - 삼악산

 

강원동부지방에 폭설이 내렸다는 기상뉴스에 벼르던 삼악산등정길에 나섰습니다. 춘천을 향하는 차창에 파노라마 되는 산야는 정갈한 수묵화 - 흑백이 연출하는 설화의 미궁을 향하는 몽유였습니다.

 

 

정오를 막 넘어 등선팔경입구인 금강굴에 들어섰습니다. 금강굴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거대한 아귀를 벌리고 나를, 산님들을 잘도 삼켜 됩니다.

쌓인 눈에, 빙결에 전혀 다른 모습이 된 금강굴은 빙하를 녹이는 가녀린 물소리에 겨울잠을 깨려는지 천길 벼랑 위로 파란 하늘 한쪽을 차일 쳤습니다.

 

신선이 놀았다는 제1.2폭포가 빙판 바위위의 나를 유혹합니다. 그건 약과였습니다. 학이 춤추며 놀았다는 승학폭포와 하얀 비단을 펼친 듯했데서 백련폭포라던 폭포는 온통 흰 비단을 휘둘러댔군요.

뿐이 아닙니다. 선녀가 몸 씻은 옥녀담은 이 추위에도 얼음을 깨고 옥빛 여울로 선녀를 기다리고 있으며, 나뭇꾼이 보쌈질했던 선녀의 알몸이 그리운 선녀탕은 또 다른 선녀와 나무꾼의 설화를 로망하는 듯합니다.

 

그런 비경에 108계단을 숨죽이며 오르며 이 굴 속을 밝히는 사금파리처럼 깨진 조각난 파란 하늘을 올려보다가 비룡폭포 앞에서 이 비경의 비밀을 풀 것 같았습니다.

애초엔 바위굴 속에서 은거했던 이무기가 폭포와 물길을 타고 오르다 막힌 동굴을 뚫고 승천할 때 굴천장이 무너져 천혜의 비경이 됐다고-.

 

 

나는 오늘 여길 첫걸음 하지만 한여름 폭포수 우람할 경천뇌우소리보다도 적요를 일깨우는 빙하속의 물길 - 한겨울의 비경이 태곳적이어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108계단이 말하듯 빡센 오르막은 8경에 눈 파느라 땀 흐르는 줄도 모릅니다. 이 계곡의 정상이 삼악산 주봉인 용화봉(654m)이라 결코 높질 않은데도 폭포가 발달함은 이 계곡의 깊이를 가늠케 함이지요.

 

 

산길은 아니, 하얀 설상계곡을 더듬는 고독한 등정은 한 시간 여를 계속됩니다. 정상을 오를 마음이 없으면 108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비경에 취하며 계단수를 세다보면 득도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경 탓에 계단수를 세다 잊기를 수 없이 할 테고 계단 밟기는 계속해야 하니 행선(行禪)이 따로 없겠단 생각이 들었지요.

 

주위 어떤 누구로부터도 방해받지 않고 홀로 자기와 대화할 수 있다는 절대고독 - 새로운 삶의 의지와 영감을 얻는 창조적인 순간이기도 합니다.

홀로산행은 자기와 투쟁이고 대화인 게지요. 하여 겨울산행이 위험하다고 집에선 만류하지만 넝마살(?)을 어쩌질 못하고 발길을 옮깁니다.

 

 

골짝 끝 무렵쯤에 분지가 나타나는데 흥국사가 얼굴을 내밉니다. 성깔이 괴팍하다고 추측했던 궁예가 이 심산 골에 고구려재건을 꿈꾸며 궁궐을 세웠던 걸 유추해보면 말이외다.

지덕 겸비한 비범한 인물이 아니곤 이 골짝에서 그를 따랐을 백성이 몇 명이나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게지요.

서기894, ‘()데기란 데서 기와를 구워 궁궐을 짓고, 고구려재건을 발원하는 흥국사를 세워 왕건과 일전을 벌렸으니 말입니다.

 

 

지금도 여기 흥국사부근엔  와데기 터’와  칼싸움 했던 칼 봉하며 군사들의 옷을 널고 말렸던 옷바위’가 있고,  등선봉 아래‘궁궐터와  금강굴 앞의 말을 매 키었다는 말골’이 있답니다.

궁예의 흔적 - 흥국사는 하얀 눈에 애잔한 비애를 묻은 채 지금 산님들께 편안한 쉼터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여태 꽃을 피운 적 없던 나무도 흰 눈꽃을 피우고 있는 낙엽수들의 전당도 여기서부턴 걸출한 소나무들에게 사랑의 눈길을 빼앗깁니다.

흰 눈꽃송이 뭉실뭉실 매단 채 허리 꼬부라진 송백들은 겨울의 진객입니다. 그들의 영접을 받으며 초원에 들면 하얀 고깔을 쓴 홍송들이 떼거리로 나타납니다.

돌너덜지대는 하얗고 두터운 엠보싱천을 둘러썼네요. 333계단도 그 속에 숨어들어 산님들을 헉헉 숨차게 했던 기억마져 뭉개버렸습니다.  뽀송뽀송한 눈이불 위에서 신나게 딍굴고 싶습니다.

 

 

산님들 두어 분이 선채로 기갈을 해소하고 있군요. 정상을 향한 딸깍고개는 바위 숲이고 구부러진 노송군락인데 바윈 죄다 두터운 소복을 하곤 내 신경을 날 세웁니다.

정상(용화봉;654m)에 서는 덴 두 시간이 걸렸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들 왔는지 산님들이 만석입니다. 하긴 그 빼어난 경치 땜에 하산을 미룬 탓이겠지요.

송백사이로 엷은 박무를 쓴 의암호와 춘천시가지는 빼어난 한 폭의 산수화로 다가서니 말입니다.

 

 

세상을 온통 하얗게 붓 칠한 겨울만이 선사하는 삼악산의 장대한 수묵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기막힌 순간들입니다. 순백의 캔버스에 푸르른 의암호, 거기에 검은빛비늘 들어낸 붕어 한 마리가 헤엄치고 있습니다.

그 호수 뒤론 춘천시가지가 박무를 뒤집어쓰고 신기루인양 숨바꼭질을 하네요. 춘천이 호반의 도시란 말이, 자연미 물씬 풍기는 도회란 걸 여기서 어림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상원사를 거처 의암댐쪽으로 하산키로 했습니다. 아까 금강굴입구에 데려다 준 택시기사님은 의암댐코스빙판길은 대부분이 바위절벽이라 위험하다고, 오늘은 피하라고 제게 신신당부했었는데 말입니다.

영초산악회원 십여 명의 산님들이 그쪽으로 하산하고 있어 뒤따르기로 했습니다. 근데 그 칼바위(눈 덮여 잘 모르겠으나)능선에 고립 된 송백들의 멋진 자태는 기가 막히고 눈을 환장케 합니다.

 

 

그 환장할 설화투성이인 백송사이로 뉘엿뉘엿 얼굴 드미는 의암호수와 북한강과 산준령들은 겨울이 아니곤 창조할 수 없는 자연의 신비경이지요.

칼바위를 두텁게 덮은 설계(雪界)를 지팡이로 헤치고 발을 내딛으며 조망하고 한 컷 담는 그 맛과 흥은 미쳐보지 않곤 모르리란 생각이 드는 게지요.

이 바위벼랑길에 산님들 추락사고가 심심찮게 뉴스에 오르기에 여간 조심해야하는 오늘입니다.

 

 

홀로 산행인 제가 이 코스를 택한 데는  영초산악회산님들이 선도를 하였고, 설화만발한 송백이 허리꼬부라져 설국의 진경을 뽐내는데야  난 그들 꽁무니를 따라 수직에 가까운 험한 바위벼랑길 1.7km를 주파할 수 밖에 없었던 게지요.

참으로 난한, 신경 바짝 차리고 골롬처럼 기다시피 해야했던 하산이었습니다. 그 깎아지른 절벽 사이에 상원사가 있는데 석간수 몇 조롱은 내가 흘린 땀을 어지간히 보충해 주는 거였습니다.

 

 

매표소에 닿아서야 의암댐 비취에 긴장을 내려놓습니다. 세금을 하마처럼 퍼먹은 4대강개발의 자전거길이 호수가장자리를 휑하니 뻗어 난 그길로 의암호를 건너 춘천행 시내버스에 올랐습니다.

4km남짓한 코스를 세시간반쯤 뭉그적댔으니 알찬 산행 한 셈이지요. 겨울이 물러서고 강수량이 좀 보태지는 날 다시 한 번 와야되겠단 다짐을 했습니다.

알아야 보이고. 보여야 사랑하게 되며, 사랑해야 소통으로 혼연일체를 이뤄 진정으로 알게 된다지요.

 

 

등선팔경과 흥국사와 삼악산과 의암호를 오늘, 겨울이란 雪界에서 사랑할 수가 있게 됐음에 행복해 합니다. 참으로 대단한 하루였습니다.

산님들께 강추하고 싶은 설계의 삼악산입니다.

2014. 02. 09

 

 

 

 

 

 

 

 

 

 

 

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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