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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폭설쓰나미에 묻힌 선자령

폭설쓰나미에 묻힌 선자령

 

눈 해일이 휩쓸고 간 선자령 초원에

넋 나간 채 멍하니 서있는 풍차

바람을 먹고사는 그가

바람을 외면하려

우두커니 산마루를 쳐다보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정녕 시종 산초를 불러 그가 그의 주인

돈`키오테님이 털보 양이라도 타고 나오시게 하여

저 풍차를 향해 질풍노도로 내달리면

그 바람에 돌지 모른다고

넋 놓은 풍차는 돌아갈 거라고

하나가 돌고, 마흔네 대가 죄다 따라 돌면

추위걱정도 쬠 덜지 모른다고

산초를 불러봅니다

양떼의 기사 돈`키오테님을 초대해봅니다.

 

이건 사뭇 구원의 몸짓

산더미 눈사태에 아랫도리 붙잡힌 채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의 순간

저 처절한 소리 없는 아우성

설토에 뿌리를 박아 얼망정

태양을 향한 간절한 몸부림이여!

회색하늘아래서의 절규는

끈질긴 생의 노래일

아! 살아있음의 엄숙함이라니

그들의 하염없는 몸짓에

경외감이 뭉클 솟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순환의 역사, 자연의 역설을

 

여긴 해발 1500m이상의 고원지대

양떼들의 천국 초지였습니다

그 평화롭던 초록분지가

눈부시게 하얀 눈 세상이 됐습니다

티끌 하나 없는 순수의 천지

어쩜 심술궂은 화가의

타다 만 부지깽이들을 꽂은 설치장난이

이곳이 생명 있는 것들의 삶의 터였음을

퍼포먼스 한 야외무대로

거대한 묵화!

그래,

차라리 진정한 평화의 전당입니다

하여 난 겨울나무를 사랑합니다

줄기에 잔가지만 남겨

허공에 선을 그어 바람과 구름이 머물고

하늘과 별이 걸리니

허허로운 겨울나목은 우리들의 진면목일 텝니다

생존의 본질인거지요.

 

눈쓰나미 앞에서 모든 살아있는 건

초개였습니다. 허나

흔적도 없이 사라진 초목들의

질긴 생명의 엿보임이

도처에서 감동으로 다가서는

설국이 선자령 입니다

관목들은 그대로 하얀 설토를 뒤집어 쓴 채

흰 봉분 속의 미이라가 됐습니다

몸부림에 미완인 봉분엔

이젠 산님들이 미이라가 되려

기어듭니다

그만한 쉼터가 드문 폭설쓰나미 현장인 게지요.

 

눈쓰나미가 일군 설국의 법령은 차례 지키기뿐입니다

가진 자도 못가진자도

잘난 자도 못난 사람도

권력자도 아닌 자도

남자와 여자 하등의 구별이 없는

온데로 줄서야만 하는 평등의 세계였습니다.

 

순수의, 순백의 세상을 향한

발길은 정연한 엑서더스였습니다

가진 건 배낭 하나

눈은 황홀

맘은 감동

양보와 배려는 뭉클

행복지수 세계1위인 부탄왕국이

예 아닐까 싶습니다

성차별 없는 사랑을 공유하고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사랑하는 부탄인들

행복은 놓을수록 가까이 다가온다는 거지요

 

눈쓰나미 앞엔 경계가 구차합니다

경계는 불평과 다툼의 선이지요

일찍이 경계는 가진 자의 심술이며

스스로를 얽는 불행의 가시망입니다

욕망의 하수구를 넓히는

허영이 들킬까봐

철조망이란 불행의 덫을 치는 거지요

가진 만큼 더 불안한 불쌍한 졸부들

쓰나미가 일군 설국엔 철망이

그 욕심의 경계가 초라할 뿐입니다

졸부의 탐욕생활은

가없는 불안으로 자신을 옭는 게지요

불행을 키우는 겁니다

배낭 하나 달랑 짊어지고

선자령에 서볼 일입니다

 

백두대간 허리께

하얀선자령 넓은 정상에 선 인파들

‘넌씨눈(넌 씨발 눈치도 없냐)’이란 말은 낄 자리도 없지요

힘 센 자한테 ‘넌씨눈’놈 될까봐 몸 사릴 필요도

민초들 앞에 ‘넌씨눈’이라 욕먹을까? 눈치 볼 턱없지요.

 

힘 센 자한테 ‘넌씨눈’ 안되려고 폼 잡다

민초들이 ‘넌씨눈’이라고 삿대질하니

사표 낸 어느 (여)장관도 여기 서봤어야 하는데-.

GH이너써클만 바라보는

학벌 좋고 머리 좋은 ‘넌씨눈’놈들 여기

선자령 설궁(雪宮)에 와봤어야 함인데

‘넌씨눈’의 눈치꾼이 입신양명이 아니란 걸

예 와서야

눈시울 붉힐지 모른데.

 

설국 선자령엔 자연이 베푼

백치미의 극치가

감동의 아드레날린을 용솟게 합니다

태양과 영롱한 빛깔이 구름을 가르다

설능(雪崚)을 넘은 농무에 숨어들고

안개는 산을 삼키고 분지를 뿌옇게 덧칠하다

설무(雪霧)를 흩날리면

순백의 무대는 잿빛장막을 칩니다

소용돌이치는 회색구름을 뚫고

한 줌 빛이 사선으로 풍차에 앉자

진눈깨비 군무는 나를 망각의 늪에

침잠시키는

무한대의 시공

뒤따른 습한 눈바람에 어두깜깜

지구의 종말이라도 오나 싶습니다

그래도 불안하지만은 않는

환호가, 신기루가

산님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어릅니다

입장료 없는 우주의 쇼에

자신도 주역이 되려

선자령을 향한 엑서더스를 이어가는 거지요.

 

선녀와 자식들이 노닐던 선자령(仙子嶺)

순수와 고독을 사랑하는 산님들의

천상으로 향한 힐링로드입니다

울창한 자작나무와 잣나무 숲은

소담한 눈꽃을 피운 채

안개의 미로로 우릴 유혹합니다

우주 시원이

태곳적의 음습한 삼림의 미궁이

마치 무릉도원의 들목일까?

가난한 배낭꾼들을 한량없이

심심한 계곡으로

눈`터널 속으로

안개의 품으로

빨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선녀의 자식들이 된 게지요

 

# 선자령탐방 일지 ; 2014년 02월 22일 (약5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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