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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다락능선,Y계곡,자운3봉,천축비경의 도봉산

다락능선,Y계곡,자운3봉,마당바위,천축비경의 도봉산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

마당바위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도봉서원 앞에 있는 김수영시인의 <풀>이란 시다.

 

-바윈 질펀하게 마당을 이뤘다. 어느 마당보다 더 넓고 단단하게 깔았다.

여명보다 더 빨리 일어나고 계절보다 더 먼저 멍석을 깐다.-

라고 마당바위에 앉아서 김 시인을 흉내 중얼거려봤었다.

 

도봉탐방지원센터 뒤 광륜사 뒤로 빠져 은석암을 향한 시간은 10시 반이었다.

5년도 더 넘었을 테다.

어느 산악횔 따라 관음암코스로 자운봉을 올랐다 하산했으니 도봉산에 대해선 백치나 다름없음인데, 오늘 용케 운이 좋았던지 광륜사 뒤에서 어느 산님께 좋은 코스를 소개해 달랬더니 친절하게도 자기와 동행을 하자는 거였다.

 

날렵하고 훤칠한 키에 잘 생긴 송선생(성함을 굳이 묻질 안했는데 정상부근에서 내가 사진을 찍느라 인사도 못하고 헤어져 속상했다. 본시 내가 해찰이 좀 많아 동행한다는 게 애시당초 못할 노릇이긴 하다. 해도 내가 심히 미안했다.)은 성큼성큼 앞장서며 다락능선을 안내했다.

 

계곡엔 진달래가 빨간 꽃잎을 벌리고 봄을 영접하는데 그 많은 산님들은 어디로 갔는지 본격 능선을 타자 몇 분뿐이라.

도봉산이 화강암덩어리라서 바위와 동거하는 놈은 꼬부라진 소나무들이고 숨 찬 산님들은 그 밀애의 장소에 끼어 가쁜 숨 뱉고 있다.

 

송선생이 스틱을 접으란다. 까닥하면 내발로 기어야하니 스틱은 애물단지 노릇을 하는 탓이라.

태릉에 산다는 그는 주말이면 산을 찾는, 보기에도 진정한 산꾼 체취가 풍기는 거였다.

이 바윈 어디를 잡고, 저 놈은 어디를 밟으라는, 참으로 자상한 향도였다.

 

포대능선이 잡힐 듯 다가서고, 선인봉이 하얀 옥양목을 휘두른 채 만장`신선봉을 호위라도 하는 냥 내 앞에 나타나서 악수라도 할 태세다.

천길 옥양목주름엔 암벽타는 산님이 나무늘보 아닌 바위늘보가 돼 아찔한 현기증을 일게 하고 있다.

 

참 대단한 심장의 소유자들이라. 선인봉, 만장봉, 신선대와 주봉은 내가 가까이 다가설수록 천의 얼굴, 만의 자태를 하는 거였다.

그 거대하고 오만했던 네 거봉들은 내가 Y계곡에 파고들어 바위크랙에 박아놓은 쇠밧줄에 매달리자 하얗고 까칠한 피부를 들어내며 바위산의 웅좌가 과연 어떤지를 과시하기라도 하는가 싶었다.

 

하지만 쇠밧줄에 하나 밖에 없는 목숨 건 내가 네 거상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볼 겨를이 있기나 하겠는가.

클레이머들이나 가능할 암벽타기 곡예를 몇 백 미터를 하느라 간덩이가 콩알 만해진 내가 식은땀이 줄줄 솟는데 자기들 폼 잡는 위세에 신경 쓸 한가한 처진 절절대로 아닌 거였다.

 

쇠줄에 의지해 바윌 오르락내리락하며 현기증에 잠시 숨 돌리면 아스라한 벼랑에 매미처럼 달라붙어있는 선행자와 후행자의 모습이 딴 세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Y계곡의 쇠밧줄 등벽은 긴장과 두려움을 극복해가는 도전과 성취감을 만끽할 수가 있고, 위대한 자연을 닮아가는 담대함을 느끼는 바여서 나 같은 초보자도 꼭 시도해 볼만한 도전이라고 생각되었다.

 

 

도봉산등정의 매력은 Y계곡 쇠밧줄타기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한 번 타고, 두 번 타고 하다보면 산행의 또 다른 맛과 멋이 지피고, 자신도 위대한 자연의 일부로 혼연일체가 될 수 있음에 감개무량해 질게 틀림없겠단 생각이 들어서다.

 

Y계곡을 벗어나면 자운봉과 신선봉의 배꼽이라. 사방에서 온 산님들로 꽃띠를 만들어 자운봉정상은 화환을 걸쳤다.

잿빛구름이 하늘을 정상 바로 위에 끌어와선지 왁자지껄 소음이 환청인가 싶었다.

 

 

시계마저 흐려 떼 몰려오는 바람이 뺨을 후려칠 때야 앗차! 몸을 가눈다.

헛디딘 날엔 그대로 뼈도 못 찾을 하늘 밑인 것이다.

줄서서 내려와 다시 줄서서 주봉엘 오른다. 불귀의 객 안 되려고 시키지 않아도 여기선 다 차례를 지키는 거였다.

 

 

우측 칼바위가 하늘을 파고들고 어스름한 능선은 북한산을 가리키며, 운무 속에 희미한 북한산웅봉들을 뭐가 부끄러워 모자이크로 선뵈고 있다.

정상은 어떤 기후, 어떤 계절, 어느 시각에 올라서도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 용솟음친다.

한 번쯤은 비상하고 싶단 생각은 정상에 서면 누구나 공감하는 바고, 그래 활강과 비행이 이뤄젔을 테다.

 

마당바위에 들어섰다. 오지랖 넓은 바윈 질펀한 틈새마다 나무를 심어 훼훼 꼬아놨고, 지나는 산님들 다 끌어다가 그 밑에 주저앉혀 울긋불긋 꽃을 피웠다.

그래 바위멍석에도 사람꽃이 만발하여 봄이 완연하다.

그 넓은 바위마당에 봄이 만화방창 난장을 일궜고, 난 꼬부라진 소나무아래 앉아 솔잎 사이로 기웃대는 칼바위 주봉능선을 훔치는데 문득 박몽구시인의 <다락 능선에서>이란 시가 생각났다.

 

“4월을 몇 걸음 앞두고,

도봉산에 봄의 기미가-----(중략)-----

꽃샘바람 마른 가지를 꺾을 듯 불어 젖혀, ---(중략)---

온산에 새빨간 진달래꽃 사태이네

아직 귓불이 빨갛게 얼라

다락능선을 넘어오는 찬바람 앞에

움츠리고만 있는 사람들에게

잎보다 먼저 불같은 꽃을 피워 올린 진달래는

봄은 남이 갖다 주는 것이 아니라고

밤들어 땅이 얼수록

발가벗은 알몸을 더욱 부서져라 부비고 있네

사랑은 겉만 보며 물러서는 게 아니라고, ---(후략)---

 

사랑은 꽃샘추윌랑 아랑곳 않고 맨살 뜨겁게 부비며 빨갛게 꽃피워 열매를 맺는다고,

사랑은 내면의 옹골참이 진짜라고 마당바위에 이른 다락능선을 넘어 온 바람이 속삭이는가 싶었다.

 

 

석굴암을 지나 천축사를 찾았다. 진달래마냥 빨간 연등이 대웅전 트락을 불태우며 만장봉으로 번지고 있다.

의상대사가 이곳에서 수도한 탓에 673년에 옥천암을 세웠고, 이성계가 개국100일기도를 여기서 올렸데서 1398년 중창하여 천축사라 개명했단다.

 

 

배불사상이 조선이념이었으나 문정왕후는 화류수목조용상(樺榴壽木珇龍床)을 바치니 명종은 1474년 불상을 모시는 중창을 했다.

인도승려 지공이 나옹화상에게 이곳의 경관이 천축국 영취산과 비슷하다고 하여 ‘천축사’란 이름이 유래 됐단다.

운무관은 입실하면 4~6년간 면벽수행을 하는 곳인데 뒤뜰의 석간수와 백 살 먹은 보리수를 보고 싶어 고양이처럼 기어들었다.

 

북한산 도봉산세가 영취산과 닮았다. 정도전이 한양에 도읍을 정한 또 하나의 이유와 태조가 백일기도를 올린 사유를 가늠할 것 같았다.

송림 사이를 유유자적하며 하산하다보니 들머리 때의 광륜사에 닿았다. 오후 3시 반이 넘었다.

멋과 맛에 흥취한 채 도를 닦는(도봉)하루였다.

2014. 03. 29

후기:

도대체 도봉산은 서울사람들 아니, 우리에게 뭘까?

주말, 도봉산역에서 도봉탐방지원센터까지의 도로는 서울을 탈출하는 엑서더스의 아수라장이다.

개나리봇짐 아닌 배낭 짊어진 채 하루종일 도봉을 향하는 엑서더서들의 정체는?

사람나고 세상 생겼다는 걸 여기 엑서더스의 길에서 실감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아웃도어용품은 다 모아 전시됐나 싶고,

입 풀칠 할 간단한 먹거리는 깡그리 좌판에 늘어놓은 난장이 질펀하게 펴젔다.

서울은 물론 대한민국의 어중이떠중이 산님들, 산꾼들은 죄다 모여드는 급박함이라니!?

도봉은 도를 닦는 길을 말함이라서 모두 다 도통하러 입산하는 건가?

내 그 까닭을 모르겠다.

그 땜에라도 담에 또 나도 여기 엑서더서가 되야할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