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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엄홍길루트와 망월사 - 도봉산2

엄홍길 코스와 망월사의 양기 - 도봉산2

 

지난주 도봉산 엑서더스에 끼어들어 맛 들린 난 오늘 또 실성한 놈이 장날 장꾼 따라가듯 배낭족 틈에 끼어 도봉을 향했다.

다락능선을 올라타 포대정상에서 포대능선을 타고 망월사를 낀 ‘엄대장 코스’를 밟으며 하산하려는 속셈 이였다.

 

은석암를 곁눈질하고 다락능선의 바위연봉을 탐하는 정취에 빠져드는 맛은, 지난 주말에 이어선지 쬠은 여유까지 부리며 폼 잡고 움트는 연둣빛 세상을 완상해보기도 했다.

세월 때 덕지덕지 붙은 바위들도 화사한 진달래꽃 몇 송이씩은 가슴에 달고 봄기운에 엉덩이 들썩거리고 싶은가 보다.

 

다만 아까부터 후미진 곳에서 갓 시들어버린 초라한 노란꽃잎의 생강나무와 산수유만 빼고 말이다. 산수유와 생강 꽃은 누구보다도 먼저 꽃 피워 후손을 남기기 위해 눈발 속에서도 여리디여린 꽃술을 내민다.

잘못하단 추위에 꽃잎 동사할까 노심초사 꽃술 같은 꽃잎 여러 개를 모둠 피워 충매를 유혹하는데, 금년엔 이상한 날씨 탓에 화사한 다른 꽃들이 줄줄이 만발하는 통에 수정도 못하고 쓸쓸히 퇴장해야할 판인 것이다.

 

세상 돌아가는 게 하 수상쩍으니 세월도 수상하고 그래 꽃들도 헷갈리나 보다. 만월암을 지나니 포대능선 칼바위들이 명료하게 다가서고 망월사가 바위숲 속에 한 폭의 그림이 됐다.

바위산엘 가면 도저히 풀리지 않는 수수깨끼는 사람보다 더 닮은 얼굴이 없다는 것과 누가 그렇게 만들어 곳곳에 멋들어진 아트페어를 만들었느냐? 는 거다.

 

더구나 그 얼굴, 모습은 철따라, 보는 시선에 따라 천태만상을 일구니 말이다.

포대능선을 넘은 바람결이 여간 싸하다. 바위요새를 등받이 앉아 숨 고르면서 시인 박몽구의 <도봉산 망월사에 가서>란 시를 생각해 봤다.

 

“중국 쪽에서 날아든 황사로

며칠째 서울 하늘이 매 맞은 아내들의 눈처럼

퉁퉁 부은 오후

도봉산 망월사로 훌쩍 발길을 돌린다

병풍을 치듯 둘러선 포대 능선이 뒤를 가리고

아직 꽃샘추위가 발톱을 뽑지 않았는데도

성미 급한 진달래들이 눈길을 돌리는 걸

허락지 않는 암자 앞에 앉아

산 공기 한 모금 들이마신다”

---후략---

  어찌 눈두덩 퉁퉁 부은 게 여자들뿐이랴? 남자들도 뜬금없이 뒤통수 얻어맞은 듯한 서울하늘을 탈출하고파 도봉산자락으로 엑서더스 하는 산님들인지도 모른다.

중국황사보다 흉악한 사설(邪說)로 우리내 마음을 병들게 하며 진정을 불신트라우마 중증에 시달리게 하고 있다.

그래도, 계절이 하 수상해도 봄은 포대능선에 기어이 오고 있다. 연초록 싹이 나목들 표피를 뚫고 눈을 내밀며, 햇볕은 두터운 낙엽을 쑤석대 바스락소릴 내고 있다.

 

황산지 봄 연무인지 뽀오얀 시계로 아지랑이 아물아물 선뵈는 서울의 시가지는 산록들이 에워싸고 있어 그지없이 아름답다.

북한산이 있어서, 그토록 많은 엑서더서들이 찾아들어 짓밟아도 쉬이 변하지 않는 바위산이어서 서울은 행복하다.

 

울적했던 박몽구시인도 여기 포대능선을 밟았겠지.

천여 년 전엔 마의태자도 나라 잃는 비통한 마음 추스르느라 이 능선에 올라 금강산바람을 맞곤 망월사를 뒤로하고 북상했는지도 모른다.

도봉산은 기가 센 명산이란다. 칼끝처럼 날카로운 화강암바위들이 연봉한 전형적인 화체산이 도봉산이라.

 

화체산은 깡패나 칼 찬 장군이 살기에 적당한 곳이란다.

세상에 거칠 것 없이 두려움 없는 무의의 삶을 산 춘성스님이 익산 미륵사에 머물다가 북한산을 거처 북상하다가 도봉산 망월사에 찾아들었다.

양기의 도봉산에 망월사는 양기가 펄펄 넘쳐흐르는 인물이 머물기 안성맞춤인 도량이었다.

 

만해 한용운 스님의 상좌였던 춘성스님(春成1891.3.30~1977.8.22)은 망월사와 궁합이 딱 맞았던 모양이라. 양기는 양기로 다스린다고 망월사에 안주한 춘성스님의 양기는 세인을 까무러지게 했었다.

스님의 유명한 육두문자 일화는 하 많지만, 요즘 청기와기운이 수상하여 헷갈린지라 육영수여사와 얽힌 일화 두 가지만 옮겨본다.

 

 

춘성스님이 강화도에 머물 때 찾아 간 육여사에게 스님은 대뜸 한다는 소리가 “뽀뽀나 하자”고 대들었단다.

또 한 번은 육여사 생일에 청와대에 초대 된 스님은 법설을 기다리는 내빈들에게 잔뜩 찜 들여놓곤 “오늘은 육영수 보살이 지 에미 보×에서 응아~하고 나온 날이다!”라고 일갈하니 그게 설법의 끝이었다.

 

 

서슬파란 독재정권하의 양기 팔팔한 청와대에서 펄펄 끓는 스님의 양기가 부자연스럽게 맞닥뜨려 자연스럽게 무탈했던 그 시절의 그런 파라독스가 차라리 그립다.

 상생은 내가 먼저 머리 숙인 채 자리 깔고 상대의 입장에 서야 세상사 대박 꿈도 꿀 수가 있을게다.

 

 

거짓은 다른 거짓을 낳고, 또 위장의 거짓을 낳아 확대재생산 된 거짓이 진실인양 회자 돼 세상을 불신의 트라우마 늪에 빠져들게 한다.

그 거짓에 대해 얘기하자고 국회에서 야댱대표가 제안하자"너나 잘해!" 라고 육두문자를 쏘아대는 여당원내반장은 설사 춘성스님으로 부활해 흉내라도 내보겠다고 착각한 건 아닐텐데?

 

 

버스에서 어느 전도사가 '죽었다 살아난 예수를 믿어야 천당간다.'고 스님께 포교하러들자,

‘예수가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그건 거짓말이다. 죽었다가 새벽에 살아나는 건 내 자x다. 그러니 내 자x를 믿으라.’ 라고 일갈한 춘성스님이었다.

KH이너써클들아! 그 거짓말들을 죄다 믿으라고?

일찍이 춘성스님이 답한 걸 잊었더냐? 억지 지랄 처봐야 남는 건 썩을 몸뚱이라고-.

아니다. 닉슨은 거짓말 탓에 백악관을 쫓겨났음을 잘 알면서~!

 

 6.25때 불탄 망월사를 수리하게 위해 근처 나무를 베다가 경찰서에 끌려가 문초 받던 스님이 신분을 묻자 ‘나 중대장이다’라고 했다는 그 망월사에 드디어 닿았다.

천길 수직벼랑위에 옹색하나 여유롭게 안좌한 사찰들을 비좁은 길을 요리저리 숨바꼭질하듯 찾아 위태한 난간에서 감탄하는 열락은 망월만이 주는 행복이라 해야 할 것이다.

 

대웅전 동쪽에 토끼 모양의 바위가 있고, 남쪽에는 달 모양의 월봉(月峰)이 있어 마치 토끼가 달을 바라보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데서 망월사라 했단다.

지난 주말에 오른 최고봉인 739.5m의 자운봉을 비롯해 만장봉·선인봉·주봉·오봉·우이암 등 의 암봉과 아름다운 암벽사이로 41개의 사찰이 있고, 선인봉을 오르는 등반코스만 37개나 개척돼 있다니 일 년 내내 찾아도 도봉을 다 볼 수 없음이라.

 

이 칼봉과 능선 사이로는 도봉계곡·송추계곡·오봉계곡·용어천계곡 등 수십 개의 맑고 아름다운 계곡이 있다.

영선전과 대웅전 뜨락에서서 싸한 바람결에 묻혀오는 철 잃은 눈발에 멈칫거리다가 깎아지른 계단을 내려서자, 바위동굴에 문수보살님을 안치한 전각이 출입문만 밖으로 내밀었다.

 

동굴천정과 밖으로 난 구멍은 자연채광으로 신비한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절로 경배를 아니 올릴 수가 없었다.

천길 수직암벽위의 영선전은 아찔 천상의 전각이 됐다.

그 수직단애를 끼고 휘돌아 내려서면 거대한 타원형바위 아랜 철철 넘치는 석간수가 있다. 이 높은 곳에, 이 가뭄에 넘치다니!

어느 해엔 천 명분의 김장을 하기도 했다니 석간수의 량을 짐작하겠다.

 

바로 그 아래 달을 잡아채기라도 하려는 듯 전나무 한 그루가 망월사문지기처럼 우뚝 서서 망월하며 넘치는 석간수를 몽땅 마시는지 자웅이 사뭇 기를 질리게 한다.

망월사는 국내 여느 사찰과는 품세가 다른 높은 암벽에 층층요새처럼 위풍당당하다.

포대능선과 나락능선이 파놓은 협곡에 가파르게 자리한 망월사를 빠져나와 하산한다.

 

하염없는 돌계단으로 이어진 협곡엔 만상의 바위와 천태의 암벽이 헬 수 없을 세월을 삭혀먹은 나무들과 어울려 가파른 돌계단을 내려밟는 긴장을 씻어준다.

엄홍길대장이 유년시절을 난 곳이 골짝에 있고, 자운봉을 오르락내리락하며 훌륭한 산악인이 되게끔 했던 모산이 바로 도봉이란다.

난 오늘 ‘엄대장 코스’란 등산로를 밟으며 하산길에 들었다.

 

학창시절, 엄 대장이 두꺼비바위에서 오버 행어(over hanger)를 해냈다는 그 두꺼비를 바라보며 엄대장도 양기가 어지간히 센 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양기와 양기가 합치면 비범한 인물이 난다고 했다. 비범치 않고서야 세계의 지붕들을 죄다 정복할 수 없을 테다.

 

이 깊은 골짝 바위 하나하나도 가뭄에 바짝 탔는데 바윈 골수를 짜서 몇 송이 난을 꽃피워내고 있었다.

털부숭숭한 이파리에 해맑고 청순한 흰 꽃은 바위가 무위한 돌덩이만은 아니란 걸, 기적은 도처에서 이뤄지고, 찾기 나름으로 행복도 내 주변에 머물고 있다는 걸 알게 해주는 바위골짝하산 길 이었다.

 

심원사입구 석간수통에서 목을 축이고 대원사앞을 지나 망월사역사로 들어섰다.

전철에 앉아 박몽구의 시를 다시 떠 올려본다.

 

세상의 높은 집 다 내주고

넓은 땅 부자들에게 다 퍼 주고

바위 틈새에 제 목숨 하나 붙일 흙 마련한

진달래 향기 천 리를 불붙이듯

사방이 온통 막혔는데도

막혔던 가슴 훤히 뚫리니 웬일이냐 ---후략---

 

다섯 시간의 행복은 도봉산이 주었다기보다는 내 스스로 찾은 거라고 자만에 취해봤다.

도봉산엑서더스는 당분간 멈출 수 없단 생각으로 열차 속에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

  2014. 04.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