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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스님의 사랑 & 파계 - 소요산

스님의 사랑 & 파계 - 소요산

 

 

 

오전10시 넘어 소요산주차장에 들어섰다. 

일주문을 통과하여 원효폭포 앞 속리교까지의 나들목길은 소요산을 찾는 이들을 청량감에 푹 빠지게 한다.

오리길이 미처 못되는 초록터널 숲길은 한사코 편편하여 해찰하기 좋고, 연초록 싱그러움에 긴장이 확 풀리며,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개울물의 속삭임에 침잠하다가  미아가 된 햇살덩이에 탄성을 삼키는 거였다.

 

 

깊고 넓은 골짝을 에워싼 숲들은 짙은 녹색하늘을 만들어 파란하늘과 숨바꼭질 하면서 오월의 부신 햇살을 탐닉하고 있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햇살이 연둣빛이파리에 부서져 은빛보석으로 흩어지고, 부서진 보석이 단풍나무에 닿기라도 하면 빨`주`노 이파리는 사시나무 떨 듯  브르르~현란한 바람을 일으키는 거였다.

 

 

그 시원한 미풍을, 싸한 청량감을 코 벌렁거리며 무진장 들이키며 걷다보면 원효폭포가, 원효굴이 떡하니 앞을 가로막는다.

난 여태 산사길목을 들나며 이토록 해찰하기 좋고, 싱그런 초록하늘길에 마음 달뜬 기억이 별로다.

 

 

이 갈수기에 폭포수는 여리게나마 울림을 잊지않고 있다.

실빛 물안개는 옆의 원효굴의 촛불을 풍무질하며 원효의 세계를 밝히고 있었다.

정녕, 옛날 스님도 여기서 가부좌하고 선경에 들었을 테다.  조금이나마 일상의 탈을 벗고 오라는 속리교를 건너면, 바위를 건너뛰는 실개울물이 깊은 골짝 적요를 울리니 예가 소요산임이 틀림없다.

 

 

여기서부턴 가파른 골짝을 더듬는 백팔계단이라. 계단은 깊은 골의 속내가, 벼랑바위의 음영이 서늘함을 안겨주지만 속옷을 적셔오는 땀방울을 가시진못한다. 

해탈문이 앙증맞게 아취를 그렸다. 문에 발을 들여놓으면 바위마당인데 방심하다간 천길 낭떨어지 지옥에 들지 모른다.

원효대사 스님은 예서 뭐가  맘 걸려 뛰어내리려 했을까?

삐딱하고 급격한  백팔계단을 올라 부도탑에서 한 숨 쉬고, 다시 스님들의 정진의 요사채인 백운암 앞에서 땀을 훔친다.

협곡 커브길을 돌자 바위벼랑에 바위키만한 삐쭉한  현대식 3층건물이 코와 마주친다. 

뭘 하는 곳일까? 라고 괴이하게 처다보니 화장실이라. 발상이 유치하단 생각은 나 만은 아닐 것 같다.

 

 

계단을 다시 오르니 독경소리가 낭창하다.

나한굴 앞 마당은 꾀 넓은데 우측 가장자리 끝은 낭떨어지로 물안개 속으로 숨어 가늠키 어렵다.

거기 소에 떨어지는 폭포수는 독경소리를 청음으로 다듬고 있다.

폭포가 원효스님이 파계를 해야했던 옥류폭포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님은 파계의 고수였단 생각이 들었다.

애욕일까 아님 사랑 이었을까? 마음경계 따라서 파계도 오도의 경지도 되는가 싶단 생각에 스님의 행적을 엿보고 싶은데 가당찮은 넉두리일 테다. 

어느 비바람 세찬 밤이었다. 암자에서 정진하던 스님 귀에 왠 여자의 소리가 들리는 거였다.

허나 자기를 찾아 올 여인은 없었다. 헌데도 결코 헛소리는 아니란 생각이 드는 거였다.

 

 

-[ '아직도 여인에 대한 동경이 나를 유혹하는구나. 이루기 전에는 결코 자리를 뜨지 않으리라.'
자세를 고쳐 점차 선정에 든 원효스님은 휘몰아치는 바람과 거센 빗소리를 분명히 듣는가 하면 자신의 존재마저 아득함을 느낀다.
'마음, 마음은 무엇일까?'
원효스님은 둘이 아닌 분명한 본래 모습을 찾기 위해 무서운 내면의 갈등에 휘말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바지직,
하고 등잔불이 기름을 튕기며 탔다. 순간 원효스님은 눈을 번쩍 떴다.
비바람이 토막 안으로 왈칵 밀려들었다.
밀려오는 폭풍우소리에 섞여 들어오는 여자의 음성이 들렸다.
스님은 귀를 기울였다.
「원효스님, 원효스님, 문좀 열어주세요.」
스님은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다음 순간 망설였다.

 


여인은 황급하게 문을 두드리며 스님을 불렀다. 스님은 문을 열었다.
왈칵 비바람이 안으로 밀려들면서 방안의 등잔불이 꺼졌다.
「스님, 죄송합니다. 이렇게 어두운 밤에 찾아와서 ‥‥」
칠흑 어둠 속에 비를 맞고 서 있는 여인을 보고는 스님은 선뜻 들어오란 말이 나오질 않았다.
「스님, 하룻밤만 지내고 가게 해 주세요.」
여인의 간곡한 애원에 스님은 문한쪽으로 비켜섰다.

 


여인이 토막으로 들어섰다.
「스님, 불 좀 켜주세요. 너무 컴컴해요.」
스님은 묵묵히 화롯불을 찾아 등잔에 불을 옮겼다.
방안이 밝아지자 비에 젖은 여인의 육체가 눈에 들어왔다.
와들와들 떨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스님, 추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제 몸 좀 비벼 주세요.」
여인의 아름다움에 잠시 취해 있던 스님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공연히 들여 놨나 싶어 후회했다.

 


떨며 신음하는 여인을 안 보려고 스님은 눈을 감았다.
그러나 비에 젖어 속살이 들여다보이는 여인의 모습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모든 것은 마음에 따라 일어나는 것 내 마음에 색심이 없다면 이 여인이 목석과 다를 바 있으랴.'
스님은 부지중에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여인을 안아 침상에 눕히고는 언 몸을 주물러 녹여주기 시작했다.

 


풍만한 여체를 대한 스님은 묘한 느낌이 일기 시작했다.
스님은 침상에서 밀어 냈다.
'나의 오랜 수도를 하룻밤 사이에 허물 수야 없지.'
이미 해골물을 달게 마시고「일체유심조」의 도리를 깨달은 스님은 다시 자기 정리를 시작했다.
'해골을 물그릇으로 알았을 때는 그 물이 맛있더니, 해골을 해골로 볼 매는 그 물이 더럽고 구역질이 나지 않았나. 일체 만물이 마음에서 비롯된다 하였으니 내 어찌 더 이상 속으랴.'

 


이 여인을 목석으로 볼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여인으로 보면서도 마음속에 색심이 일지 않으면 자신의 공부는 온전하다고 생각했다. 스님은 다시 여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여인의 몸을 비비면서 염불을 했다.
여인의 풍만한 육체는 여인의 육체가 아니라 한 생명일 뿐이었다

 


스님은 여인의 혈맥을 찾아 한 생명에게 힘을 부어주고 있었다.
남을 돕는 것은 기쁜 일 더욱이 남과 나를 가리지 않고 자비로써 도울 때 그것은 이미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이 되는 것이다.
돕고 도움을 받는 자의 구별이 없을 때 사람은 경건해진다.
여인과 자기의 분별을 떠나 한 생명을 위해 움직이는 원효스님은 마치 자기 마음을 찾듯 준엄했다.

 


여인의 몸이 서서히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린 여인은 요염한 웃음을 지으며 스님 앞에 일어나 앉았다.
여인과 자신의 경계를 느낀 스님은 순간 밖으로 뛰쳐나왔다.

폭풍우 지난 후의 아침 해는 더욱 찬란하고 장엄했다.
간밤의 폭우로 물이 많아진 옥류폭포의 물기둥이 폭음을 내며 떨어지고 있었다.
스님은 훨훨 옷을 벗고 옥류천 맑은 물에 몸을 담그었다.

 


뼛속까지 시원한 물속에서 무한한 희열을 느끼는데 여인이 다가왔다.
「스님, 저도 목욕 좀 해야겠어요.」
여인은 옷을 벗어 던지고는 물속으로 들어와 스님 곁으로 다가왔다.
아침햇살을 받은 여인의 몸매는 눈이 부셨다.
스님은 생명체 이상으로 보이는 그 느낌을 자제하고 항거했다.
결국 스님은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너는 나를 유혹해서 어쩌자는 거냐?」
「호호호, 스님도 어디 제가 스님을 유혹합니까? 스님이 저를 색 안으로 보시면서.」

 


큰 방망이로 얻어맞은 듯한 순간 스님의 머리는 무한한 혼돈이 일었다.
'색안으로 보는 원효의 마음'
이란 여인의 목소리가 계속스님의 귓전을 때렸다.
거센 폭포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계속하여 여인의 음성이 혼돈으로 가득 찬 머리 속을 후비고 들어올 뿐.
'색안으로 보는 원효의 마음'을 거듭 거듭 뇌이면서 원효스님은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

 

폭포소리가 들렸고 캄캄했던 눈앞의 사물이 제 빛을 찾고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의식되는 눈앞의 경계를 놓치지 많고 원효스님은 갑자기 눈을 떴다.
원효스님은 처음으로 빛을 발견한 듯 모든 것을 명료하게 보았다.
'아, 그것으로 인하여 생기는 그 마음까지도 버려야하는 그 도리!'
스님은 물을 차고 일어섰다.
그의 발가벗은 몸을 여인 앞에 아랑곳없이 드러내며 유유히 걸어 나왔다.

 


주변의 산과 물, 여인과 나무 등 일체의 모습이 생동하고 있었다.
여인은 어느새 금빛 찬란한 후광을 띠운 보살이 되어 폭포를 거슬러 사라졌다.
원효스님은 그곳에 암자를 세웠다.
자기의 몸과 마음을 뜻대로 한 곳이라 하여 절 이름을 자재암이라 했다.
지금도 동두천에서 멀지 않은 단풍잎으로 유명한 소요산 골짜기에는 보살이 목욕했다는 옥류폭포가 있고 그 앞에는 스님들이 자재의 도리를 공부하는 자재암이 있다. ]-
                                               <한국지명연역고>에서 발췌

 

 

자재암 앞 좁은 마당의 통나무의자엔 백팔계단을 올라온 중생들이 숨돌리고 있었다. 그 분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다시 가파른, 징글밎게 이어지는 백팔계단을 오르다 바위가 나무를 붙잡은 건지, 나무가 바윌 옭아 낙석을 막는 건지 헷갈리다 하늘 아래 생명있는 것들은 허두로 존재하는 게 없단 생각을 해 봤다. 

 

 

싹 틔워 태양을 향해 발돋음 하면서 곱게 꽃 피우고 씨앗 만들기 위한 생, 미세한 곤충도 후손 얻기 위해 바지런 떨며 이웃과 공생하는 길 찾는, 하늘 아래 생명 있는 것들은 한 시각도 맬급시 허둥대지 않는다는 걸 생각하며 고된 백팔계단을 오른다.

 

 

하백운대에 올라섰다. 징글맞은 계단에서의 탈출이었다. 바위능선은 몸짱 소나무들을 앞세워 산님을 맞는다.

트인 사위에서 몰려오는 바람 한 무리와 세월에 닳아 휘이 굽은 나무들의 환대 속에  청량한 녹음에 몸 푸는 특권은 능선에 선 산님들 만의 것일 게다. 

 

 

 칼바위능선을 밟는다. 밟으면 밟을수록, 칼능선에 빠져들수록 멋있단 탄성을 삼킨다.

바위들은 어떻게 소나무들을 건사했을까?  소나무들은 바위무덤이 뭐가 좋아 고행을 하고 있을까?

설악공룡능선은 멀리서 감상하는 바위숲의 절경이라면, 이곳 칼바위능선은 솔숲을 헤집고 더듬는 능선이어 오감을  날 서게 하는 거였다.

그 체감의 칼바위능선길 한 시간은 소요산의 진수라!

 

 

오후 2시, 나한대(571m)를 넘어 의상대를 향했다.

골이 깊어 오르고 내림이 힘 빠지게 하지만 신록은, 피톤치드는 상쾌한 에너지 원으로 스며들었다.

동두천이어설까? 간혹 외국인이, 가족등반으로 인사를 해 왔다. 그들한테 소요산은 짐짓 기품있는 산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아름다운산을 가진 우리들인가!  반 시간을 즐기니 의상대(587m)다, 공주봉이 저만치 물러섰다.

스님이 요석공주를 기려 명명했다는 공주봉은 나의 산행 피날래봉우리다,

34살에 당나라 당항성으로 유학을 가는 길에 날 저물어 초막에서 마신 물, 그 시원했던 해갈수가 아침에 보니 해골수였다.

 

 

토하려다 생각해 보니 깨끗하고 더러움은 한 생각의 경계 탓이란 깨달음에 스님은 유학을 포기하고 정진하여 신라에 명성이 자자했다.

어느 날 스님은 미친사람처럼 거리에서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 주겠는가, 나는 하늘을 받칠 기둥을 찍으련다" 라고 독백하고 다녔다.

이 소문을 접한 무열왕이 스님의 뜻을 헤아리고, 자기의 딸을 짝지워주면 훌륭한 인재가 태어날 것란 생각이 들었다.

 

 

결혼 3일 만에 생과부 된 둘째 딸을 생각하며 무열왕은 스님수배령을 내린다.

그 기미를 알아 챈 스님은 문천교다리에서 발목이 삐진 시늉을 내며 수배꾼들과 마주쳤다.

무열왕은 스님을 요석궁의 공주에게 보내 합궁을 하게 주선을 했다.

당시 신라는 남녀의 연애에 대해서 자유분망한 시대라 남녀가 눈이 맞아 살을 섞는 게 흉이 아니었다.

하물며 부왕이 매파노릇 하고 남자가 유명한 원효인데 공주가 치마끈 풀지 않을 까닭이 없잖은가.

 

 

 

스님과 요석공주는 그렇게 만나 사흘간 살을 태웠는데  공주가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이 설총이었다.

 스님은 파계 후 스스로를 소성거사라 부르며 민중 속에 불교를 설파했다.

그 공주를 생각하여 소요산 봉우리 하나를 공주봉이라 이름함이라.

공주봉(526m)에 섰다. 펑퍼짐한 봉우린 산이 아닌 마당이라.

 

 

모든 사람을 품어 자비의 세계로 인도하려는 스님과 공주의 넉넉함이려니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근데 하산 하려하자 그 마당밑에 굴이 있고 토치카문이 두 개 있다. 공비 탐색을 위한 방공호였다.

불온한 시대의 상흔이 볼썽 사나운데 여태 방치하고 있다니?

부처 되는 길에 너와 내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한낱 경계심일 뿐 아니겠는가!

 

 

하산한다.

푸나무 울울창창한 바위너덜계곡은 원시림을 맛보게 한다.

한 시간을 골짝을 더듬으니 아까의 속리교에 섰다.

아아! 소요산은 원효스님만큼 멋진 산이라! 사랑했음 싶다.

2014. 05.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