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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주검이 삶을 치유하는 곳 - 선`정릉

주검이 삶을 치유하려면

 

서울 강남의 빌딩숲 속엔 웬만한 공원 뺨치는 초록 숲이 있다. 두 내외와 아들이 잠들어있는 초록능인데 빙 둘러선 금싸라기빌딩속의 사람들을 치유하는 진짜 금싸라기공간이다.

빌딩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뉴욕 센트럴파크 새끼인가 싶기도 하다. 화창한, 폭염이 내려쬔다는 오늘, 삼성서울병원에서 위암수술4년차 검진결과를 듣고 금싸라기초록 숲을 찾아 들었다.

 

 

선릉 출입문인 홍살문과 정자각은 주변을 수리중이라 숲길을 택했다. 금방 회색빌딩숲을 걷다 울타리 하나 사이로 짙은 녹음솔밭에 발을 디디니 숨쉬기부터 상큼하다.

구부러진 홍송들이 하늘을 가리도 꾸부러진 황톳길을 만들어 햇살까지 동강내어 꾸물거리게 하고 있다. 짙은 녹음은 눈도 마음도 온통 초록으로 물들게 한다. 상쾌하다.

 

 

숲길을 택하니 정현왕후릉이 먼저 나타난다. 잠시 머뭇대다 좌측으로 발길을 돌려 녹음의 정적을 밟는데 외국여성 한 분이 벤치에서 독서삼매경이라.

회색빌딩을 탈출하여 뙤약볕을 피해 푸른 주검 옆에서 책을 펼쳐들었다는 한가함이 그리 행복하고 아름답게 보일수가 없었다.

성종임금이 잠든 선릉에 이르렀다. 곡장을 휘두르고 지대석을 쌓아 푸른잔디 속에 능침한 성종임금은 일생이 극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열세 살짜리 소년은 임금자리완 얼토당토 않았는데, 어느 날 뚱딴지같이 용상자리를 차지하게 되니, 성군이 되려고 죽어라고 밤낮으로 공부(경연)를 했다.

왕실과 신하들이 건강걱정을 태산같이 해도 책보는 게 그리 좋아 피곤 한줄 모르겠다.’ 라고 한 성종 이였다. 후세사람들은 그의 치적은 세종 다음이라 했다.

 

 

뿐이랴, 재위25년에 1612녀를 슬하에 두고 38세에 운명했으니 쏟은 정력 또한 절대적이라. 해마다 낳은 자식만큼 저술과 치적도 많았다. 

밤낮으로 공부하면서 언제 정사를 논하, 어느 틈새에 사랑을 했는지? 참으로 집중력이 극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다시 정현왕후릉으로 향했다.

 

원비(공혜)가 후사 없이 죽고, 연산을 낳은 윤씨는 용안에 손찌검 했다고 폐비시킨 후, 5살 아래인 정현왕후가 계비로 들어서 69세로 승하하여 성종 옆에 능침했다.

그 시어머니(정현왕후)가 부러웠던지, 생전엔 남편 독점 못 해 서러웠으니 죽어서라도 나 홀로만 사랑받겠다고 중종의 둘째계비문정왕후는 고양희릉에 있던 중종의 능침을 여기로 옮겼었다.

 

중종의 능침인 정릉을 향해 울창한 송림을 헤친다. 땡볕이 빽빽한 숲에 녹아 흐물대는 벤치에서 피서를 즐기는 몇 사람의 탐방객 외엔 숲길은 한적하다 못해 고요하다.

까마귀가 깍깍 여름을 찍는다. 솔침 맞은 햇살은 싸라기눈이 돼 흩날린다. 구불구불 황톳길은 힐링로드다.

강남 금싸라기 땅에 이만한 녹음공간이 있다는 건 남편 독차지 하고팠던 여인의 욕심이 한 몫을 한 땜이다.

 

고양엔 원비인 단경왕후와 첫째계비 장경왕후 능이 중종능침 옆에 있었다.

땜에 자기도 죽어 양주로 가면 중종을 독차지할 수 없겠다싶어 시부모 옆으로 미리 이장을 시키고 사후 중종 옆에 묻히려 했던 문정왕후의 독점욕을 생각해 봤다.

여자의 애욕은 사후세계까지를 관통하려한다.

 

그러나 정작 중종능침 부근은 지대가 낮아 한강이 범람하면 침수하는 탓에 문정왕후는 죽어서 여기에 못 오고 태릉에 능침 해야 했다.

그런 사연의 중종능침을 찾아든다. 잡귀를 물리친다는 홍살문을 들어서면 높고 낮은 두 개의 길에 반석을 깔았는데 그 직선의 쌍길은 정자각에 닿았다.

 

높은 좌도(左道)는 신의 길, 낮은 우도(右道)는 임금의 길이란다. 신의 길은 누구도 밟아선 안 된다.

정각(丁閣)은 제사당이다. 사당에서 정면에 중종의 능침인 정릉이 있다. 푸른 언덕이다. 정자각과 비각에서 관망하는 홍살문쪽의 빌딩숲은 고금의 경계가 또렷하다.

 

이런 훼손되지 않은 능이 서울경기 일원에 42기가 있고, 문화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유산으로 등제 됐단다.

나는 한 시간 반여를 꼬부랑숲길을 거닐며 여름 한나절을 비켜설 수 있었다.

옛사람은 죽어 넓은 땅을 소유할 수 있어 도심에서 우릴 치유할 공간을 남겼지만, 지금의 우린 깨끗한 생애만이 후예들에게 '치유의 삶'이란 귀감을 선사할 수있을 것 같다.

 

배고픈 것만 참으면 도심에 이만한 피서처가 있을까 싶었다. 문득 배가 고파 생각났다. 탐방객이 적은 건 능 안에선 식음이 금지 된 탓도 있겠다고 말이다.

허나 다이어트 하는 여자들은 어디 피서지로 향했을까? 예 와서 문정왕후의 사랑을 엿볼 만한데 말이다.

2014. 07. 04